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5)
멍하니 투란은 눈을 깜박였다.
홀시딘은 가만히 이를 지켜봤다.
잠시 후, 투란이 겨우 할 말을 찾았다는 듯이 입을 연다.
“홀시딘, 이거 절대로 알려지면 안 돼요. 절대로, 절대로!”
홀시딘은 황당함에 잠깐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짓다가 나직하니 으르렁거렸다.
“무슨…… 죄졌냐!”
투란은 그런 마법사를 향해 뿌득뿌득 이를 가는 표정을 짓고 말한다.
“나중에 키린 만나서 모르는 척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 시공이 헷갈리는 이야기는 알은척도 안 할 거니까, 내가 안단 이야기가 소문으로 퍼지면 안 된단 말이죠!”
“……뭐? 만나서? 너,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키린 왕자를! 어떻게?”
투란이 하는 말의 요점을 외면한 채, 홀시딘이 놀라 되물었다.
투란은 쿵쾅 가슴을 치며 다시 말을 꺼낸다.
“아, 나! 그게 아니고, 그 헷갈림인가 하는…….”
하지만 홀시딘의 으르렁거림이 바로 투란의 음성을 덮어 버리고 있었다.
“지금 한 얘기는 어차피 너랑 나만의 이야기야! 나 시크릿 키퍼라고, 바로 너의! 그러니까 키린 왕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냐? 어떻게? 언제? 어디서? 야, 야! 그거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그 박력이 잠깐 투란을 맹하게 했다.
어째서?
간단한 의문을 품는 투란을 향해 홀시딘이 듣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답한다.
“왕가의 혈통이 분명한 몬스터 로드이고 수십 년을, 거의 칠팔십 년을 행적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왕자잖아! 아직 수가 적은 에테온 왕가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키린 왕자만이 그 수습이 가능하다고! 상아탑으로서는 키린 왕자를 보호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지!”
“아…… 보호…….”
살짝 투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끄덕거림이 납득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괴물 왕자를 보호’한다는 말에 의심을 키운 투란이었다.
불꽃왕을 다루며 드라고니아의 광분조차 잠재운 키린, 그래서 이런저런 의미를 모두 담아 괴물 왕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의부(義父)가 괴물왕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곁들여졌으며, 친부가 반역왕이란 점은 키린의 이야기를 할 때 오히려 의미가 흐릿하다 할 지경이었다.
키린이 누군가를 보호한다거나 위협한다면 모를까,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로부터 키린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는…….
“얀마, 아무리 강해도 튀통수 맞는 수가 있잖아! 넌 뒤통수 안 맞냐? 소소한 오해로 인해 일어난 비극에 휘말리는 것도 피해야 할 위험이라고!”
“아, 그런 얘기였구나.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요. 아주 귀가 먹게 생겼네!”
후욱,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고르는 시늉을 한 홀시딘이 얼굴 가득히 자제심과 인내심을 채우면서 다시금 묻는다.
“허엄, 험! 자, 이 정도면 작은 목소리지? 그래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거냐?”
투란에게는 왠지 한층 더 무서워진 분위기가 팍팍 풍겨 나오는 몰골로 보였으니, 몇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에, 그러니까…… 일단 시크릿 키퍼로서 이것도 지켜 줘야 하는 거 알죠? 좋아요, 말해 줄 테니까……. 남부의 도시, 빅대디를 찾으면 만날 수 있다고 했어요. 어, 도시 이름이 뭐였더라……?”
“베오기탄?”
“응? 알아요?”
말 꺼내고 살짝 기억을 더듬는 척하는데 바로 나오는 도시 이름에 투란이 어리둥절해서 홀시딘을 삐딱하니 쳐다본다. 투란에게는 낯선 도시, 춤추는 산맥 바깥쪽에 위치한 곳인데 상아탑의 마법사에게는 어째서 낯익은 곳인가?
“빅대디의 도시, 그렇게 불리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걸로 끝이냐?”
“어, 그러니까…… 빅대디를 찾으면 누굴 만날 수 있고, 그러면 나도 키린을 만날 수 있다고……. 왜요, 안 되는 일이었어요?”
홀시딘이 급격하게 시무룩해지는 것을 보며 투란은 의아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네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못 찾는 모양이다.”
“엥? 아, 잠깐. 내가 직접? 무슨 뜻이에요? 키린이 만나러 오라고 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보내거나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나 대신 가서는 만나지 못한다는 뜻?”
“그래. 빅대디가 너를 확인하고 난 다음에 키린 왕자에게 연락을 넣을 거야. 아마도…… 네가 그 도시에 들어가는 즉시 너에 대해 알아낼 테니까.”
“시크릿 키퍼가 비밀로 하는 일까지 다 알아낸다고요?”
“아니, 그렇게 안다는 말이 아니고! 네가 왕자가 만났던 엉뚱한 녀석 투란이라는 걸 확인해 준다고! 빅대디를 만나 키린 왕자를 찾는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놈에 대해 확인하겠지. 그러면…… 그런 얘기가 키린 왕자에게 전해지면 널 만나러 올 거란 이야기다.”
“어, 복잡한 얘기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네요.”
투란이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홀시딘은 쓴웃음을 짓고 조금 자세하게 설명한다.
“빅대디 쪽에는 아마 너에 대해 대강 얘기해 뒀을 거라는 말이다.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는데, 이렇게 생긴 녀석이고 이런저런 소리를 할 거라고. 그러면 키린 왕자가 그 소식을 듣고 오도록 되어 있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네 흉내 내면서 가 봐야 빅대디는 그냥 무시할 거야. 키린 왕자가 만나려 하는 네가 아닌 걸 알아차릴 테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네가 열쇠이며 암호가 되는 셈이지.”
“흐음…… 뭐, 당장 만나러 갈 일은…… 없잖아요?”
“없지, 없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터졌으니까.”
“에? 중요한 일? 설마…… 내 일 해 주기 전에 그 중요한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러면서 뒤로 미루려고요? 아, 겨우 돌아왔는데! 그냥 나부터 해 줘요!”
“바로 그렇습니다, 폐, 하! 로그람의 옥좌를 채운 분이 이렇게 브로큰 킹덤의 깊은 곳까지 찾아와 몸을 숨기려 하시니, 다른 나라 왕자님 일은 뒤로 미뤄 둘 수밖에 없지요! 알았냐!”
“칫, 그냥 나부터 해 준다고 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투란은 살짝 안도하면서도 투덜거렸다.
홀시딘이 어이없고 짜증 난다는 듯이 투란을 살짝 노려봤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한숨을 푸욱 내쉬고 말았다.
서로를 말썽꾸러기 혹은 사고뭉치로 보는 눈빛이 교차했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점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둘은 그냥 넘기기로 눈빛만으로 합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잠깐 침묵하다 보니 어쩐지 별 의미 없는 이야기로 티격태격하면서 시간만 소모한 것이 아닌가 싶은 묘한 분위기마저 피어날 지경이었다.
결국 투란은 눈치를 보며 까닥까닥 눈짓하고 입술을 삐죽였고, 상아탑의 마법사가 의뢰자의 압박을 핑계로 먼저 입을 열어야 했다. 매우 공식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상아탑의 마스터답게!
“간단히 말하자면, 느닷없이 출생의 비밀을 알아냈는데 엉겁결에 임금님이 되어서 여기까지 도주했으니 그 행적을 숨기고 앞으로도 다른 누가 눈치채지 못하게 잘 숨겨 달라…… 이런 이야기지?”
“간단……하죠?”
어째 말이 좀 길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투란은 파닥파닥 고개를 까닥였다.
홀시딘은 그런 투란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갑자기 무심한 표정이 된 마법사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투란은 움찔하면서 살살 불안하니 그만하라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데, 한숨과 함께 홀시딘이 다시 입을 연다.
“어떻게 살고 싶은 거냐?”
“어떻게? 뭘…… 어떻게요?”
“투란, 넌 알드바인이 당도할 때부터 어마어마한 황금을 쟁여 왔지. 그리고 그 황금을 거침없이 쏟아부어 로열 클래스를 청했다. 필요한 의무 또한 시간 끌지 않고 단기간에 바로 해결했지.”
“……그건 홀시딘도 좋아라 했잖아요?”
새삼 기억나 버렸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투란이 투덜거렸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홀시딘은 헛기침과 함께 말을 잇는다.
“어흠! 로열 클래스의 업적이니까. 어설픈 것보다는 그렇게 두말할 필요 없이 확실한 것이 좋잖아! 아무튼, 그렇게 실력으로 로열 클래스를 확인한 다음에 엉뚱하게 타고난 혈통이 로열 클래스란 것을 알아낸 상황이라고. 그러니까 어차피 숨기는 걸, 거기에 살짝 더 숨기는 셈인데, 네 입으로 떠들고 다녀도 누가 믿을 것 같지 않은 일을 왜 굳이 숨기려 해? 로그람에서 누군가 찾아올 경우라면 이미 알고 오는 거라 숨겨도 의미가 없잖아? 그러니까…… 도대체 넌 어떻게 살고 싶어서 무엇을 어디까지 감추고 싶냐는 말이다. 시알라 남매에게도 네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왕족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거야? 그렇게 그냥 금빛매의 쉼터에서 한가롭게 뒹구는 몬스터 로드, 초보 몬스터 로드로 지내고 싶은 거냐?”
가만히 듣던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끄덕거리며 홀시딘을 마주 보고 대답한다.
“그렇죠, 시알라가 주인 노릇 하는 여관에서 편안하게 뒹굴거릴 수 있어야죠. 거기 투자 많이 했으니까. 그리고…… 멜란드나 페란드, 제란드가 지내는 모습도 구경하고…… 가끔은 혼자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냥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괜찮잖아요?”
“그래, 괜찮군.”
홀시딘은 더듬거리면서도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는 듯한 투란을 보며 인정했다.
정말로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곧, 눈가 한구석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숨긴 채로 말해야 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로열 클래스는 원래 왕가를 위한 마법에서 시작되었다. 그 마법을 진짜 왕족에게 적용할 경우…… 반드시 왕실에 왕족의 행적을 알려야 한다는 조건도 그래서 붙어 있지. 왕족의 안위를 왕실에서 모르면 안 되니까. 이 부분은 원래 투란 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어. 너는 혈통과 무관한, 업적으로 상아탑의 지원을 받는 로열 클래스의 자격을 획득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단다. 다른 모두에게 감추더라도, 로그람 왕실에만큼은 알려 줘야 해. 왕이 자리를 비운다 해도 연락망을 이어 놓는 것, 그건 엄청나게 중요하니까. 춤추는 산맥의 왕국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음, 섭정으로도 어떻게 안 돼요?”
투란은 자신이 없는 동안 자신보다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릴 섭정 아리엔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 아리엔이 있는데 굳이 자신의 행적을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홀시딘은 엄격하게 대꾸한다.
“왕의 대행자에게는 더욱 알려야지. 섭정이 왕의 권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춤추는 산맥에서는 왕국의 힘만으로 안 되는 일이 많잖아. 에테온 왕가에서 괴물 왕자의 행적을 최우선으로 상아탑에 의뢰한 것도 그 때문이고.”
“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 그래서 아까…….”
“그래. 로그람도 마찬가지지. 아무리 강력한 망령군단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재앙의 왕자가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투란 네가 바라는 생활을 보장해 줄 거다. 아무튼, 섭정이 되신 여제께는 반드시 알려야 한다. 그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재앙의 왕자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네가 바로 나서 준다고 보증을 해 둬야 한단 이야기야. 그러면…… 그렇게 해 두면 아마 그분도 애써 너의 행적을 확인하려 하지 않으실 거야. 어찌 보면 투란 너는 키린 왕자보다 훨씬 유리하게 행적을 감추고 지낼 수 있는 셈이지. 뭐, 크게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경우겠지만……. 그런 일은 여태 몇 번 해 봤으니까, 어지간해서는 모두 숨길 수 있잖겠어?”
“흐음…….”
투란은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그사이, 투란의 손가락은 살짝 목에 걸린 보석을 만지작거렸다.
홀시딘이 보석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묘한 마력에 흠칫할 때, 투란이 말한다.
“아예 감추는 일은 안 된다, 이 말이죠? 어쩔 수 없이…… 수호 영수로 가끔 연락하는 정도로도 안 되나요?”
“수호자가 연락하게 되면 왕실에서 바로 그 위치를 포착할 텐데?”
“아, 네? 뭐라고요옷! 이런 젠장! 속았다!”
“여제께서 그리 말씀하신 것인가? 허헛, 하아…….”
홀시딘은 눈을 가늘게 하며 투란을 노려봤다.
설마 정말로 몰랐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안 든다는 노골적인 표정의 마법사를 향해 투란이 흠칫하며 변명한다.
“아니, 그냥 수호 영수만큼은 이제 잃어버리지 말라고…… 에잇, 그 말이 그 말인가. 아무튼 홀시딘, 내 위치까지 감춰 줄 수 있다는 거죠? 내 수호 영수가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죠?”
“그래, 그렇게 될 거야. 상아탑을 통한 연락이니, 애초에 로그람에 자리한 상아탑에서 바로 연락이 갈 테니까 이쪽의 흔적은 근본적으로 드러나질 않겠지. 굳이 네 입으로 말해 둔다면 또 모를까.”
“음, 흠…….”
투란이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 꼴을 보며 홀시딘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여제가 이미 투란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겠다고.
‘뭐, 그러면 잘된 일인가?’
어찌 되든 홀시딘은 왕의 비밀을 지켜 줄 것이다.
재앙의 왕자를 세상으로부터 지키며 재왕의 왕자가 세상을 지키도록 도울 것이다.
상아탑의 대마법사는 진정한 왕을 수호할 것이며…….
“아, 참! 내가 황금 많이 갖고 있다는 것도 비밀이에요! 그리고 상아탑에서 연락할 때마다, 금전 좀 대신 받아 줘요. 왕이니까 나라에서 금전 좀 받아도 되잖아요, 그죠? 그죠, 홀시딘……? 마스터 홀시딘, 눈에 흰자만 잔뜩 보이게 하지 말아요! 무섭잖아!”
“작작 좀 하라고!”
철없는 몬스터 로드를 꾸짖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