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8)
“뭐, 어쩌겠어? 이쪽에서 못 찾아가면…… 데려와야지.”
“……뭐? 지금 무슨 말을 했는가?”
“못 들은 척하지 마!”
“이곳이라면…… 차원 폐쇄를 이용한 탓에 이 세계의 어떤 존재도 찾을 수 없고 엿볼 수도 없으며, 그 존재를 들이밀 수 없는 이곳? 경계 차원으로 구성되어 이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세계에서 어긋난 까닭에 한없이 성장하는 드래곤의 몸을 둘 수 있는 여기? 진심으로 여기, 이곳을 지칭한 것인가?”
“그래, 바로 여기! 이곳! 이 망할 곳!”
“어떻게?”
맹한 거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안에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드래곤의 호기심이 가득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이 세 번째만큼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었다.
그저 심리적이고, 기술적인 장벽이 꽤 높을 뿐이었다.
드래곤의 심리가 지닌 절대성, 드래곤이 취할 수 없는 기술적 수단이라 장벽의 견고함과 높이가 상상을 초월한 것일 뿐이다.
이계의 대마도사라면 어떻게 샛길을 만들 수도 있어 보이는 것이 첫 번째와 두 번째, 그에 비하면 세 번째는 그냥 불가능한 방법이라 여겨지는데 설마 이 세 번째에도 빠져나갈 샛길이 있다는 것인가?
“뭐가 어떻게야, 차원계에 간섭할 수 있는 몬스터를 잡아먹은 몬스터 로드라면 거뜬히 여기 들어올 수 있잖아! 그런 몬스터 로드라면 그림 투아란의 재림이 맞는 거잖아, 안 그래?”
“……현자여, 그야말로 참신하게 개가 짖는 헛소리잖나!”
“현자가 하는 말에 뭔 헛소리가 끼어들어?”
“그 정도 헛소리는 바보가 못 하니까! 그런 바보 같은 헛소리를 쥐어짜 낸 그대의 현명함에 감탄은 하겠다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그런 몬스터를 삼킬 수 있는 몬스터 로드가 존재할 리가 없다는 점은 일단 치워 두지! 하지만 설혹 있다고 해도, 그런 역량을 지녔다는 것만으로 투아란이라고 우기겠다니…… 뭐야, 하이로드 키워서 투아란을 만들겠다는 헛된 야망을 아직도 포기 못 했나! 그거 안 된다고 깨달아 놓고 또 그 짓을 되풀이하겠다고!”
백금의 거인이 불끈불끈한 몸을 팍팍 들이밀면서 분노를 집중시켰다.
그 광채가 주변을 물들이는 꼴을 보며 카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로 손뼉을 쳤고, 거인이 뿜어내는 위압으로부터 몸을 지키며 침묵을 기다렸다.
결국 지친 듯한 거인의 입이 다물어지니, 카엘이 말문을 연다.
“순서를 잘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나는 투아란의 재림으로 보이는 녀석을 데려온다고 말하는 거야. 재림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역량을 지녔을 테니까, 그 정도 역량을 지닌 놈이 투아란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말하는 거잖아! 하이로드랑 경우가 다르지!”
거인은 가만히 대마도사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아주 냉정하게 그 말을 검토하는 듯 찌푸린 표정이 되며 거듭 고려해 보는 분위기가 짙었다. 그러나 결국 드래곤의 사념체는 다른 결론을 얻어 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투아란은 하이로드가 아니었다. 삼키지 못한 몬스터도 많았어. 강력한 몬스터 로드라고 해서 투아란이 되는 것은 아…….”
“아니지! 알아, 안다고! 하지만 이번의 특이 상황은 이제까지 변천에서는 없던 일이잖아! 보이드 속에 더스크와 크리스털을 삼킬 정도로 특이한 녀석이라고! 데려와 만나 보면 알겠지! 직접 그 혼을 네 앞에 둔다면, 어떻게 변화했다 하더라도 넌 알아볼 수 있잖아? 그렇지? 그냥 넘기기에는 아깝잖아!”
“……아까우니 한번 해 보는 것인가?”
어이없는 결론이란 듯 거인이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카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고집스러운 대마도사의 태도를 보며 거인은 그냥 포기했다는 듯, 질문을 바꿔 내놓는다.
“그럼 한가지 확인해 주겠나? 차원계에 간섭할 수 있는 몬스터란 뭘 말하는 거지? 어떤 몬스터가 있기에 이 경계 차원의 단면을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단독으로 드래곤의 은신처를 뚫고 들어올 놈이 있나 궁금해? 없어. 아직 이 세계에는 그런 능력이랑 배짱을 지닌 괴수가 탄생하지 못했어. 변천으로 인해 그럴 환경이 갖춰지질 않았잖아.”
조금 편안해진 듯이 카엘이 답을 늘어놓는 모습에 거인의 백금빛 미간이 한껏 좁아지며 하얀 주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툭, 하니 다시 묻는 말투는 살짝 날카롭고 사납기도 했다.
“몬스터 로드의 역량은 둘째이고, 첫째로 그대가 골라 삼키게 하겠다는 몬스터가 아예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잖은가? 설마 그대……?”
“설마? 내가 뭐? 엉? 마법으로 다른 세상에서 소환이라도 할 거냐고? 안 해! 아까부터 뭔가 대화가 엇나가는 것 같은데, 난 데려온다고 했지 뚫고 들어오게 하겠다고는 안 했거든!”
“경계 차원을 넘고도 버틸 수 있는 몬스터를 삼키게 해서 이리로 데려온다고……?”
“아까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었잖아! 설마 멀쩡한 척하지만 잠이 덜 깬 거였어? 찌릿찌릿한 거 한 방 놔 줄까?”
투덜거리는 카엘을 백금의 거인은 조금 풀어진 눈길로 내려다봤다.
하지만 곧 거인의 입술이 달싹이며 물음이 이어진다.
“어떤 몬스터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몬스터 로드가 삼키고 그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몬스터가 있기는 있는가?”
“능력이 뭔가를 따지지 않아도 괜찮잖아? 여기 와서 버틸 수만 있으면 되니까…… 아, 그래! 여기 와서 버틸 수 있는 몬스터라면 지난 천 년 동안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어. 나 아닌 너, 드래곤의 위대한 변천을 버텨 내면서 숨어 있다가 겨우 성장하기 시작한 괴물들이야! 내 탓으로 생겨나지 않았으니 그렇게 노려보지 마!”
“이계의 대마도사여, 그대는 지금 내게 변천의 시공 역전에도 불구하고 본성을 유지한 채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래, 그런 괴물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변천이 반복될수록, 처음에는 존재가 너무 희미해서 전혀 드러나지 않던 녀석들이 거듭되는 변천 속에서, 전생(轉生)의 변화에도 자기(自己)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거야. 정상적인 세계의 생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지. 그런 인과로 인해 너의 보금자리에서도 버틸 수 있는 존재의 특이성을 확보했다는 거야.”
“흥미롭군.”
“음……?”
“보고 싶어졌다.”
“야!”
“샘플은 있는가?”
“어이!”
“없는가? 그렇다면 하나…….”
파치싯, 콰르릉!
“내 말을 들으라고옷!”
갑작스럽게 호기심을 이어 가던 드래곤의 사념체, 백금의 거인을 향해 백금빛의 벼락 다발이 쏟아졌다. 거인의 몸 곳곳이 잠시 지워지는 듯했지만, 금방 다시 백금의 질량이 증가하여 사라진 부분을 채웠다.
그리고 씩씩거리는 대마도사 카엘을 향해 거인은 고개를 까닥하며 민망한 표정으로 말한다.
“실례했군. 변천의 소산물이란 말에 잠시 흥분했다. 염려할 일은 없다. 나의 수면은 적정선에서 유지되고 있으니까.”
“……그래, 지금 눈을 조금만 더 떠도 너한테 호응한 혼돈의 지옥이 변천에 새로운 변수가 될 괴물들을 쏟아 낼 테니까 적정선을 유지하길 바라.”
카엘은 드래곤의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백금의 거인은 어깨를 으쓱할 뿐,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백금 거인의 눈동자가 잠시 요란하게 요동쳤고, 대마도사를 향해 또 다른 물음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만남의 구체적인 용건은 무엇인가? 그대는 마음을 정했고 앞으로 꽤나 바빠질 듯한데 2천…… 아니, 3천 년 만에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나 같은 존재에게 과정보다는 결과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대가 오늘 이 순간에 여기 온 진정한 목적을 알고 싶군.”
“하아…… 이제 제대로 잠이 깬 모양이네? 그래, 그래야 하긴 해. 하지만 여태 한 이야기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야. 너 스스로 변천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을 두고 그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정도는 느꼈지? 오직 자신의 목적에만 충실해서 잠만 자고 있다가는 이 보금자리를 뚫고 들어오는 괴수가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 인정하지?”
“……인정한다.”
“그림 투아란을 다시 만나기 전에 네가 뒈져 버리면 내가 곤란해진다는 것도 되새겨 두길 바라. 네가 죽어 버리든 지옥으로 떨어지든, 그림 투아란을 만나서 이 차원 폐쇄를 푼 다음이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놔.”
“……이야기의 요점은 알겠다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모르겠다.”
“티탄의 눈알.”
“…….”
당당하게 내밀어진 카엘의 손을 백금의 거인은 잠시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복잡한 사고를 증명하듯, 백금의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리고 움직였다.
거인의 4, 5미터나 되는 체격에 비하면 2미터도 되지 않은 데다 앉아 있기까지 한 마도사의 몸은 아주 작아 보였다. 하지만 그 작은 몸이 내미는 더 작은 손은 마치 거인이 온몸을 올려놔도 될 정도로 커 보이니, 거인의 고개가 숙여지며 그 손에 자신을 얹으려는 듯한 묘한 몸짓마저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거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가까워진 거대한 눈동자가 마도사를 거울처럼 비출 때, 말이 나온다.
“의미를 모르겠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카엘은 마법을 모르는 이에게 질문을 받은 평범한 마도사처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린 다음에 목뒤를 쓰다듬으며 건들거리는 태도로 대답한다.
“그러니까 드래곤 네가 이 세상이 찢어질 때 봉합을 했잖아. 그래서 원래는 멸망했어야 할 세계가 네 힘으로 유폐된 채로 유지되었지. 그런데 그 후 봉합을 찢고 이 세계를 이치에 따라 온전한 멸망으로 다시 끌고 가려 한 티탄이 있었어. 그때 투아란을 잃어버린 너는 가뜩이나 분노가 들끓던 참이라 그 티탄을 찢어발기고 토막 내 버렸지. 응? 아, 그 기록을…… 기억을 내가 찾아냈어. 꽤 힘들었지만, 아무튼 찾았다고. 넌 그렇게 찢긴 티탄의 심장을 이 세계의 양분으로 삼아 떨궈 버리고 팔다리는 차원 격리를 위한 도구로 써먹었어. 놈의 몸뚱이는 다른 세계와 경계를 긋는 데 자원으로 소모하고, 그 머리통은 냅다 삼켜 버렸지. 몬스터 로드처럼 정수를 분리한 것이 아니라 그냥 통째로 삼켜서 드래곤의 위장 속에 담아 버렸잖아. 난 거기서 눈알을 빼 달라, 이 말이야.”
“네크로 메이지란…… 참으로 놀랍군. 변천이 적용되기 전의 상황까지 읽어 낼 수 있었나? 그대가 이 세계에 도달한 무렵에는 이미 변천이 거듭되어 모두 사라졌을 기억이거늘.”
백금의 거인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살짝 고개를 뒤로 빼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엘은 빚쟁이처럼 손을 쑥 내밀며 보챈다.
“그래, 내가 참 대단하지. 그러니까 티탄의 눈알!”
그런 대마도사의 태도에 백금의 커다란 눈알이 살짝 흘깃거리며 주변을 훑는가 싶더니, 조금 당혹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주르르 나오는 이야기는 아쉬움이 어린 말투로 꾸며져 있었다.
“내 배를 가르고 가져가고 싶다는 이야기라면, 불가능하다네. 이계의 마도사여,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자기 배를 가르고 오래전에 소화된 것의 원형을 도로 꺼내서 그 한 조각을 도려내는 일은…….”
카엘은 잠깐 고개를 삐딱하게 누였으나 곧 으르렁거림을 가득 담아 외친다.
“잠꼬대로 시답잖은 농담하지 말고!”
제대로 일그러진 카엘의 표정을 확인하며 백금의 거인이 웃었다.
“유머 감각은 소중히 하는 것 아니었나?”
“아, 나! 갑자기 뭐가 웃겨서 그러는데?”
“투아란이 그랬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어떻게 먹어 치운 물품을 고스란히 복원해서 입으로 다시 꺼내냐고. 소화시켜서 똥으로 싸지르는 쪽이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고 말이야. 꽤 오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투아란은…….”
“갑자기 추억은!”
회상으로 깊은 감상을 머금은 거인의 낯짝을 어이없다는 듯,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보며 카엘이 외쳤다.
백금의 거인은 고개를 까닥하다가 숙였다.
이번에는 굳건하게 팔짱을 끼고, 한층 진지한 인간의 표정을 띤 드래곤의 사념체가 이계의 대마도사를 향해 묻는다.
“그대는 이번에 제대로 걸어 볼 각오를 했지? 내게 반드시 투아란을 데려온다고, 진짜보다 진짜 같은 모조품이 아닌 진정한 투아란…… 나의 투아란을 데려올 각오를 했지?”
“나는 각오가 끝났어. 너는 어때?”
“진정한 투아란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변했다 해도 상관없다. 설혹 도저히 투아란이라 인정할 수 없는 완벽한 가짜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변천마저 저질렀고, 그로 인해 투아란에게조차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각오했으니까.”
“야, 갑자기 남편 잃고 비탄에 젖은 미망인 표정 짓지 마! 너 지금 근육 넘치는 미친 아저씨 꼬락서니거든! 정말 너…… 암컷 아냐?”
“난 존재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성별이 없는 드래곤이다!”
“네네, 그러시죠. 그러니까…… 내 제안도 다시 생각해 봐. 진정한 투아란이 돌아왔지만 네가 기억하는 인간이 아닐 경우…… 어쨌든 차원 폐쇄만 끝낼 수 있다면, 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기꺼이 너에게 추억의 결정을 선물해 줄 테니까. 자, 이제 내놔. 티탄의 눈알! 처음 듣는 소리라는 표정 짓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