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9)
“한 가지 난관에 대한 해결책부터 들어야겠다. 그대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려줘야 할 일이야. 카엘, 티탄의 눈알을 대체 어떻게 가져갈 참이지?”
조그마한 말다툼이 끝난 후, 백금의 거인이 다시 진지한 태도를 회복한 채로 묻고 있었다.
반쯤은 호기심에 그러나 반쯤은 진심으로 염려하기에 내놓은 물음이었다.
때문에 카엘도 소소한 장난질이 섞인 말다툼의 분위기를 떨어내고 조금 성실하게 답한다.
“들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옥 깊은 곳에서도 버텨 내는 전설적인 보관함이 있잖아. 내가 그걸 하나 갖고 있거든. 뭔지 짐작하겠어?”
“용(龍)의 보고(寶庫)?”
백금의 거인이 어이없다는 듯, 한편으로는 네 말을 의심한다는 듯이 짤막에게 되뇌었다.
“응.”
해맑게 대답하면서, 카엘은 말로만 해 봐야 안 되는 줄 안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손으로 스윽 그어 보였다. 허공에 남겨진 손의 자취는 투명한 일렁임으로 고정되었고, 그 투명한 공간 안쪽으로 깊은 골짜기 같은 광경을 보여 주었다.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었나? 이런, 투아란에게도 하나 마련해 줄걸.”
백금의 거인이 매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카엘은 잠시 어이없어하다가 혀를 차며 으르렁거린다.
“대마도사에게도 어려운 일이거든! 투아란은 마도기(魔導機)로 겨우 마법을 썼다면서? 마법구(魔法具)도 어려워한 애라서 특별히 제작한 마도기라며? 무리야, 무리!”
백금의 거인이 조금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소질이 없기는 했지, 마법에는. 하지만 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계의 대마도사여, 내가 드래곤이야.”
“……아, 그래.”
카엘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적당한 마력이 필요하기도 한 마법구, 보통은 마력을 자체적으로 품어서 대충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다. 하지만 간혹 그런 도구의 마력조차 발동시키지 못하는 이도 있고, 몬스터 로드는 그 마력을 오히려 억제해서 못 쓰는 도구로 만들기도 한다.
마도기는 그런 마법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마력(魔力)을 인도(引導)한다는 특별한 기능이 추가되어 있다. 사용자의 간단한 손놀림으로도 그 기능이 완전히 발휘되도록 만들어지는 셈이다.
백금의 거인, 드래곤의 사념체는 그러한 마도기로 ‘용의 보고’를 제작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과시한 것이고!
하지만 카엘은 끝내 한마디 해야 했다.
“투아란 전용으로 만들어, 만들 거면. 용의 보고가 지옥의 귀물(貴物)이란 점을 제발 잊지 말라고.”
“……알았다. 그런데 그대의 보고가 정말 티탄의 눈알을 버텨 낼 수 있기는 한가? 부피나 중량, 마력 용적만 해도 그냥 꺼내 놓기가 난감한 물건인데?”
살짝 돌려 묻는 말이었다.
이 특별한 보금자리에서야 티탄의 눈알을 꺼내 주고받을 수 있다 해도 카엘이 세상에 나가 꺼내게 되면 심상찮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영향력이 없을 수가 없으니, 그에 대한 대책은 있느냐고.
대마도사는 드래곤의 사념체를 향해 미소하며 대답한다.
“이미 쥴이 반지를 건네줬어. 그러니까 아까부터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더스크와 크리스털까지 이미 삼킨 녀석인데 왜 용의 문장이 깨어나질 않냐고.”
“반지의 차원 수납이라면 티탄의 눈알을 다룰 수 있겠지. 그대가 거기에 간섭할 수 있으니 굳이 세상에 티탄의 파편이 섞이는 일도 없을 테고…… 안전하겠군.”
눈살을 찌푸렸지만 백금의 거인은 일단 지금 일에 몰두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의문은 당장 풀 수 없으니 해야 할 일부터 하자는 듯.
그 표정을 살피며 카엘이 느릿하니 말한다.
“아, 그거 말인데…… 티탄의 파편은 이미 세상에 풀려났어. 아직 못 느꼈어? 어…… 생각보다 왕가의 마법이 잘 제어한다고 해야 하나? 뭐, 나도 아직 거기까지 자세히 알아본 것은 아니라서…….”
“뭐가 풀려났다고?”
침묵, 당혹, 거듭되는 물음.
백금의 거인은 노골적으로 인간적인 감정과 태도를 드러내면서 한껏 심각해서 짜증 난다는 기분을 담아 되묻고 있었다.
카엘이 역시 말이 모자랐나 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뭐긴, 세계의 양분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남은 채로 부활을 꾀하던 심장이지. 기록을 보니까 그거 봉인하느라고 왕가의 혈족이 꽤 많이 희생했더만. 그 덕분에 변천의 거듭되는 와중에도 왕가의 마법이 간섭받지 않고 악착같이 버틴 모양이야. 뭐, 그 왕가가 종언을 고하는 바람에 살짝 틈이 열려서 재빨리 기어 나온 것 같은데, 금방 정리돼 버렸지. 아니, 전보다 더 튼튼하고 끔찍하게 처리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젠 어지간해서는 세상에 간섭할 일 없을 정도야.”
“그대가 어찌한 것이 아닌가?”
“응? 아냐.”
“그렇다면…… 멸망을 앞에 두고 멈춰 버린 세계가 다시 성장이라도 했다고?”
“어…… 그것도 아냐.”
“그럼 어떻게?”
“내가 재림이라고 의심하는 녀석이 꿀꺽했지.”
“……?”
깜박깜박.
백금의 눈꺼풀이 크게 닫혔다가 크게 열렸다가를 두어 번 되풀이했다.
카엘은 기분 좋아졌다는 듯이 그 표정을 보며 웃었다.
“놀랐지? 어, 나도 놀랐어.”
“문장이 아무리 심오한 대마법의 결정체라 하더라도…… 드래곤조차 경이(驚異)를 느낄 정도라 해도, 검게 물든 티탄의 심장을 삼키고 봉인할 수는 없다. 삼키는 것까지는 섭리에 따라 어떻게 되겠지만, 다른 몬스터처럼 다루거나 그 영향력을 지워 버리는 봉인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러게 말이야. 그러니까 데려와서 물어보자고.”
카엘은 조금 더 크게 웃으며 드래곤의 의문을 아주 즐거워했다.
그런 대마도사의 모습에 드래곤의 사념체는 문득 깨달은 듯, 거인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구겨지면서 허탈한 쓴웃음과 함께 말이 나온다.
“과연…… 전설적인 그림 투아란에게는 불가능이 없으니까, 그 정도라면 정말 나의 투아란이 재림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겠군. 하지만 카엘, 이계의 대마도사여…… 그대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나의 투아란에게도 그건 좀 무리다.”
“그래, 네가 아는 그대로인 투아란이라면 조금 무리겠지. 하지만 드래곤, 너의 변천은…… 흩어져 세상의 간극(間隙)을 헤매는 혼령의 파편을 온전하게 유지하지 못한다고 내가 경고했지? 넌 그걸 감수하겠다고 했잖아. 그러니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나 하라고.”
엄격한 대마도사의 말이었다.
백금의 거인은 잠시 몸을 뒤로 당기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숙여 대마도사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변화가 아니라 성장이다. 정말로 티탄의 검게 물든 심장을 문장에 담아 봉인할 수 있다면, 그건 변화한 것이 아니라 성장한 거야. 마치 용처럼, 지옥의 드래곤처럼 성장한 거라고.”
“그건…… 네가 들려준 투아란의 얘기랑 같네?”
“그래. 투아란은 언젠가 자신도 드래곤이 될 수 있느냐고, 나처럼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문장의 마법으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니 좋아했지. 그리고 하나가 되었다 해도 둘일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나는 드래곤의 마법에 불가능은 없다고 으스댔지.”
“어, 그래! 잘했어.”
회한(悔恨)이 배어 나올 듯한 거인의 표정에 카엘이 재빨리 싹둑 자르듯이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일렁거리는 투명한 손짓의 자취를 가리키며 보채는 말을 잇는다.
“눈알!”
간결하게 요점만 전하는 한마디였다.
순간적으로 거인의 표정이 불퉁해졌다.
흡사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입을 막느냐고, 그리운 추억 좀 함께 나누면 안 되느냐고 불평하는 듯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사념체는 곧바로 백금의 두 팔을 움직여 거인의 몸통을 꿰뚫었고, 뱃가죽을 열어젖혔다. 거인의 복부에 나타난 문, 그 문 너머에는 소용돌이치며 한없이 깊은 구멍을 유영하는 무수한 ‘것’들이 있었다.
카엘은 드래곤이 직접 다루는 ‘용의 보고’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 안에서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 떠돌고 있는 물품들, 드래곤이 자신의 보물 창고에 담아 준 것이니 보물 아닌 것이 없을 터!
“아쉬운…… 시늉이라도 하는 건가? 그대가? 장난하지 말고 제대로 받기나 하게.”
거인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뱃가죽을 잡고 양옆으로 당겼던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열린 문으로부터 도개교가 놓이는 것처럼 백금의 길이 생겨났다.
길은 곧바로 카엘이 열어 둔 투명한 흔적에 닿았고, 공간을 넓혔다.
그 광경에 카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용의 보고’는 원래 그 주인만이 다룰 수 있었다.
그런데 카엘이 주인인 ‘용의 보고’를 드래곤의 사념체가 아주 가볍게 그 입구를 넓혀 자신의 보고와 이어 버린 것이다. 그 이음이 곧 통로가 되고 강제로 욱여넣은 듯한 거대한 눈알이 그리로 주욱 밀려오는 광경은 그다지 신기하지 않았다. 잇는 것과 이음매를 통로로 바꾼 것, 그 통로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이 카엘에게는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다른 드래곤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면 드래곤과 만나서 ‘용의 보고’를 펼쳐 보이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 될 터였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다가 그냥 다 털리는 수가 있으니까!
“나만 가능하다, 이곳이기에 가능하다. 염려할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
슬그머니 상냥한 말투로 거인이 백금의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카엘은 그 눈을 마주하며 ‘진짜?’ 하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내 생각을 느낀 것처럼 대답하는가?
진짜로 내 생각을 읽어 냈는가?
읽어 낸 것에 대한 대답은 진실인가?
‘이곳이기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다양한 의문이 대마도사의 마음에 불쑥불쑥 솟아났다.
“그런 호기심보다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내게 보여야 하지 않나?”
드래곤의 사념체가 핀잔했다.
도도한 거인이 목소리에서 백금의 광채를 내는 기색을 느끼며 카엘은 자신의 ‘보고’를 바라봤다.
티탄의 눈알이 통로에 압착되어 넘어온 다음에 곧바로 둥글게 형태를 갖추고 눈동자를 실룩이더니, 미쳐 날뛰려 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직접 다루는 ‘용의 보고’가 아닌 것을 알았다는 듯, 마음껏 날뛰며 티탄의 마력으로 오염시킨 다음에 뚫고 나오겠다는 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움직임이었다.
“과연 티탄의 파편! 살 한 조각에도 의지가 담겨 있군. 하지만…… 그 존재를 담는 형태는 제약이 될 수밖에 없지.”
카엘은 피식 웃으며, 어린아이의 재롱이라도 구경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용의 보고’ 깊은 곳에서 곧바로 대마도사의 손짓에 따라 시커먼 덩어리가 튀어 올랐다.
덩어리는 흐물거렸고 물감처럼 퍼졌다.
시커먼 물감은 금방 티탄의 눈알을 발견했고, 광풍(狂風)처럼 덮쳤다!
미쳐 날뛰려고 꿈틀거리며 눈동자를 굴리던 눈알에 당황한 듯한 표정이라도 담긴 듯한 광경이 살짝 드러났다.
그러나 눈알은 시커먼 물감을 피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눈알이 검게 물들었다.
시커먼 구슬이 불룩거리다가 푹푹 꺼지며 압축되었다.
어느새 카엘의 ‘보고’는 평안을 되찾고 있었다.
곳곳으로 흘러 나가던 마력조차 완전히 정돈되며 카엘의 마력으로 변질되어 갔다.
가만히 이를 들여다보던 거인이 입을 연다.
“아르고누스의 파편을 사용한 것도 놀랍지만, 그대…… 티탄의 마력을 변환시킬 수도 있었나?”
“새삼 뭘 놀라나? 용의 보고를 창조하고 운용하려면 필요한 드래곤의 마력을 내가 어떻게 얻었다고 생각해?”
카엘은 살짝 으스대는 말투로 대꾸했다.
거인이 스윽 배를 닫고, 이음매를 지워 버리며 대답한다.
“그대라면 용살자(龍殺者)의 격을 이미 갖췄다고 여겼지. 용의 심장 정도는 흔한 아티팩트이기도 하고…….”
“흉악한 사고방식이로다. 뭐, 안 될 일이 아니긴 하지만…… 어, 잠깐! 용의 심장이 아티팩트라고? 그거 용을 죽여 심장 빼냈다는 이야기가 아니지?”
으쓱하며 대답하던 카엘이 흠칫해서 되물었다.
거인은 싱긋 웃었다.
그 웃음에서 카엘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한숨과 함께 대마도사는 드래곤의 사념체를 향해 달리 물어야 했다.
“그래, 용의 심장이란 아티팩트를 뭐랑 거래하고 싶은 거야?”
“키린.”
한마디였다.
잠시 카엘은 혼란스러웠다.
“키린? 그 아이는 왜? 잡아 와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겠고, 그 애가 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다오.”
“어? 이야기? 뭐?”
카엘은 한층 더 혼란스러워 되묻고 말았다.
세상에 나간다면, 춤추는 산맥으로 몇 걸음 들이기 무섭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괴물 왕자 키린의 노래 아닌가.
그런데 이 드래곤은 왜 그 이야기를 원하는가?
“나는 드라코눔의 일족을 통해 세상을 엿볼 수 있다.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이렇게 잠시 살짝 깨어난 상태에서 변천의 결과를 살필 수 있었지. 그 불안정했던 드라코눔을 그대가 안정시켜 준 일에는 여전히 감사한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에 내가 막 눈을 떴을 때…….”
카엘은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 잠꼬대 같은 소리가 진심인가 의아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