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10)
“쌍으로 지랄을 하네……라고 하더군.”
“보이드에 선 드라코눔의 아칸?”
거인이 말하는 와중에 카엘이 중얼거렸다.
무슨 이야기인가는 간단했다.
옅은 잠결에 엿본 드라코눔, 그 일족의 혼령이 만들어 낸 심상 체계를 통해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들어서 호기심이 생겼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드라코눔의 아칸이었고, 그 아칸은 보이드의 영역에 우뚝 선 채이다?
“누구야, 그게?”
맹하니 카엘이 물었다.
거인이 담담하게 카엘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늘 불꽃왕의 반려였던 아이.”
“어? 아…… 엥?”
카엘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납득했다가 흠칫했다.
한순간에 다양한 심경의 변화를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이었다.
거인의 백금빛 눈동자가 그런 마도사를 가만히 지켜봤다.
카엘은 벅벅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한다.
“아까 말했잖아, 에테온에서 가장 특이한 변화가 있었다고. 어…… 거의 백 년 가까운 일이 돼 버렸나? 아니, 팔구십 년? 아무튼, 나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어. 변화의 징조로 깨어나서 기록을 살펴본 정도니까. 반역왕이라는 희한한 녀석이 등극하고 나서, 그 아들이 불꽃왕의 반려가 되어 있더라고. 그래, 드라코눔의 아칸이 아니라 인간의 아이, 그 애가 키린이야. 그러니까…… 그 애로 인해서 드라코눔의 아칸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거든. 음, 간단히 말하자면 죽었어. 그런데 정말로 그 아칸이 맞아?”
끔벅끔벅.
거대한 눈이 백금빛 눈꺼풀을 두어 번 움직였다.
거인의 입가에 흥미로움이 가득 담기며 입꼬리까지 주욱 치켜 올라갔다.
그 꼴을 본 카엘은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재밌을 것 같긴 하네. 그러니까 죽은 지 거의 백 년…… 아니, 팔구십 년은 될 듯한 녀석이 정말로 보이드의 영역에서 나불거리고 있었던 것 맞아?”
“만약…… 더스크 라이더와 크리스털 가드, 두 꼬마가 몬스터 엠블럼에 수납된 것이 맞다면, 몬스터 엠블럼이 그 둘에게 보이드의 영역을 열어 준 것이라면, 그 아이도 불꽃왕의 반려 자격을 잃은 채로 거기 함께 있다. 기묘하지? 이는 그대가 조사해야 할 일이 맞지?”
“맞아. 너무 희한해서 바로 알아봐야 할 것 같군.”
“그 아이가 반려를 잃은 채로, 불꽃왕의 새로운 반려라는 키린의 이야기를 듣다가 한 말이다. 쌍으로 지랄을 하네…… 분명히 그렇게 울분을 담아 말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듣다가?”
“모른다.”
“어? 모르다니?”
“프로브를 통해 관측한 결과인데 걸러진 채야. 그저 보이드의 영역이라 누락된 것이 아닌가 했다만, 지금 그대가 놀라는 모습을 보니 정보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봐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대체 키린이 걸어왔다는 영웅적인 서사를 듣고 저 아이가 왜 심통이 났는가 말이야.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그리고 왜 그 이야기를 하는 마법사와 몬스터 로드에게 불만을 가득 품은 것일까? 왜 그 둘을 프로브로 지켜보고 있는가도 궁금하다. 어떻게 고른 마법사와 몬스터 로드이기에 보이드의 영역에서 그리도 열심히 지켜보는 걸까?”
“찾아보도록 하지. 그런데…… 키린 이야기는 왜?”
카엘은 거인이 거대한 입술에 백금 광채를 번들거리며 떠드는 광경을 보고 살짝 질렸다는 듯이 대답하다가 다시 거래 쪽으로 말을 옮겼다.
거인이 웃었다.
“모르니까. 그리고 투아란이 늘 알고 싶어 했던 영웅의 이야기일 테니까.”
“투아란이 영웅 이야기를?”
“정말로 있는 존재냐고 궁금해했지. 투아란은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억울한 처지의 자신을 돕고 나약한 자신을 돌봐주는, 그런 영웅이 실재한다고 믿을 수가 없다 했어. 눈앞의 위험은 피하거나 누군가를 방패 삼아 막고, 다가올 위험과 재앙은 아예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인간들을 경험한 게 전부였으니까. 과연 키린은 어떨까? 나는 궁금하다.”
“그 이야기를 수집해서 넘겨주면 정말로 용의 심장을 줄 거야?”
카엘이 눈을 가늘게 하며 확인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뿍 담아 물었다.
그저 호기심을 채우는 정도가 고작이 아닐까 싶은데, 용의 심장이란 아티팩트까지 내줄 정도로 중요한 일이 결코 아닌 듯 싶은데…… 진심으로 그런 거래를 할 것인가?
“지금 주도록 하지.”
“어…… 엥!”
카엘은 덤덤한 거인의 말에 놀랐다.
뒤이어 거인이 바로 한 손을 쑤욱 자기 배 속에 쑤셔 넣었다가 빼는 광경에 다시 놀랐고, 그 커다란 손바닥 위에 놓인 달걀이 가득한 패널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렇게 마도사가 놀라거나 말거나, 거인은 중얼거리며 세심한 눈길과 손길로 패널 위의 달걀을 고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 33번과 44번이 거의 비슷한 수준인가? 이 정도면 숙성했다고 봐야겠군. 음, 그러면…… 카엘?”
두 개를 골라서 손가락 끝에 붙여 끌어 올린 다음이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카엘을 본 거인이 매우 인간적인 표정으로 갸웃했다.
“어…… 아냐, 아무것도. 그냥…… 아티팩트를 그렇게 키우는가 해서.”
카엘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스스로 어이없음을 지워 버리려는 듯한 손짓을 마무리 지으며 대꾸하고 말았다.
“흉내 낼 필요는 없다. 투아란의 아이디어였지. 씨앗을 키우듯이 틀에 맞춰 키워서 아티팩트로 만들어 낸다니까 모판에 심어 키우는 거냐고, 나중에 모판에서 뽑아만 내면 바로 쓸 수 있냐고 하더군. 그래서 이런 식으로 구성해 본 거다. 패널 하나에 백 개씩 동시에 키울 수 있고, 서로 연계해서 성장을 촉진시키기도 하지.”
“어…… 그래. 그……러네.”
“받아야지?”
“응? 아.”
내밀어지는 달걀을 보며, 사실 노랗게 물들어 반짝거리는 알의 형태는 세공된 무늬가 표면에 가득해서 어떻게 봐도 신비로운 알이라고 해야겠지만 어째서인지 카엘은 ‘양계장에서 판매용으로 내놓은 백 개짜리 달걀 한 판’을 떠올리고 있었다.
패널조차도 아티팩트인데…….
“잠깐, 왜 두 개야? 이거 둘이 한 쌍이어야 기능하나?”
두 손으로 공손히 하나씩 받던 카엘이 흠칫하며 물었다.
거인은 고개를 젓고 나머지를 다시 배 속에 집어넣으면서 대답한다.
“아니, 하나는 그대의 몫이고 다른 하나는…… 저 보이드에서 투덜거리는 녀석에게 주라고.”
“응? 아칸에게? 잠깐, 그 이야기는…….”
“그대가 알아서 잘 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세한 일은 믿고 맡기지.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바도 없잖나?”
빙긋, 기묘한 웃음을 한껏 띤 채로 거인이 말했다.
카엘의 눈길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 눈길 속에 담긴 의문, 의혹을 모두 접어 버리고 카엘은 담백하게 말할 뿐이다.
“알았어, 하나는 내가 갖고 하나는 전해 주지.”
“44번을 갖고 33번을 전해 주면 좋겠어.”
“……갑자기 왜 디테일이야?”
“그야 그대가 넷이라는 숫자를 죽음이랑 연계하는 걸 좋아하니까. 셋이란 숫자를 은근히 행운으로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껄껄, 웃는 몰골이 백금빛 입술 사이로 백금빛 치아까지 드러냈다.
거인을 올려다보며 카엘은 혀를 차고 말았다.
“그냥 습관이야. 뭐, 농담 삼아 하는 말이라면…… 내가 33번을 가질게, 하면 되나?”
“원하는 대로.”
낄낄, 거인은 다시 웃을 뿐이었다.
카엘이 입술을 삐죽이며 신비로운 알들을 소매 안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소매 안에서 나오는 카엘의 손에는 나팔이 꽂힌 작은 화분이 들려 있었다.
거인이 반가워하며 말한다.
“오랜만에 보는군! 여전히 그걸 쓰나?”
“딱히 바꿀 이유가 없어서. 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모양으로 줄까?”
“아니, 지금은 그게 좋겠다. 오랜만에 잠에서 깨었으니 지난날의 추억도 괜찮다 여겨지거든. 그런데 그거 하나에 키린의 이야기가 전부 담겨 있는가?”
“이번에 간단히 수집한 시가(詩歌)야. 아직 전부 모으지는 않았어. 모으는 대로 새를 보낼 테니까, 우선 이걸 듣고 있으라고.”
“저번처럼 노래하는 주점의 풍경이 모두 담겨 있는 거지?”
“켜고 끄는 것은 마음대로 해. 소리만 듣고 싶으면 소리만 듣고, 풍경까지 보고 싶으면 투영체를 가동시키고…… 조작법은 이미 알잖아.”
카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인은 그 커다란 손으로 이미 그 티끌처럼 보이는 화분을 받아 들었고, 바로 손바닥 위에서 작동시켰다.
손에 닿자마자 화분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화분에 꽂힌 나팔이 한쪽으로 주둥이를 틀며 빛을 뿜어냈고, 숨을 쉬듯이 훅훅거리다가 소리까지 토해 내고 있었다. 빛은 금방 형상을 이루었고 바람 새는 듯했던 소리는 시인의 노래로 변하고 있었다.
에테온의 괴물 왕자님은 용맹하시니
죽음과 공포를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영웅이라네!
크고 낭랑한 외침 같은 서두, 주점의 풍경 속에서 음유시인이 전설을 읊고 있었다.
카엘은 그 환영을 흘깃하다가 손짓해서 살짝 세워 놓고 말한다.
“다른 의견은?”
“……생기면 새를 보내도록 하지.”
“좋아, 그럼 내 계획대로 간다.”
“그렇게 하게.”
간결한 대답과 함께 거인이 손을 높이 들었다.
그 모험의 처음은……!
환영 속의 음유시인이 술잔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술꾼들을 쥐어 팰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라고 버럭버럭 소리치고 있었다.
카엘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바닥에 꽂혀 있던 지팡이가 자연스럽게 카엘의 손에 쥐어지며 뽑혀 나왔다.
카엘은 금빛 강이 길에 흐르는 아래를 흘깃 보고 돌아섰다.
벽은 금방 카엘의 모습을 삼켰고, 백금의 거인이 허공에서 둥실거리며 화분의 나팔이 뿜어내는 영상과 음향에 몰입하는 광경만이 선명했다.
거대한 공동은 거인의 주변과 저 아래의 금빛 강을 남기고 나머지 영역을 모두 칠흑으로 채우며 침묵에 빠져들었다.
카엘이 나간 자리의 벽이 희미한 파문을 지우고 강철같은 견고함이 돌아왔음을 드러냈다.
백금의 거인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키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 *
촤아아!
바닷물이 결을 이루며 거칠게 요동쳤다.
사람 셋이 나란히 앉으면 꽉 찰 조각배는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 위에 앉은 카엘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시이잇, 곁에 둔 지팡이가 숨소리를 토해 내고 카엘을 향해 말을 건다.
―진심으로, 드래곤에게, 사기를 치려는 거야?
“무슨 사기?”
―투아란의 재림이라며?
“그래, 드래곤이 말했던 모든 조건을 갖춘 존재이니까 재림이겠지.”
슈아앗, 지팡이에서 또 다른 숨소리와 함께 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드래곤은…… 속지 않는다.
지팡이의 처음 목소리가 킬킬거리는 웃음과 함께 말을 보탠다.
―조건만 만족했다고 재림이라 인정할 리가 없잖아?
“글쎄다, 어쩌려나…….”
카엘은 미묘한 말투로 대꾸했다.
지팡이의 두 목소리가 동시에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 담긴 의문을 느꼈다는 듯, 카엘이 말을 잇는다.
“수천 년 동안 계속 궁금했어. 지옥의 본체로부터 자멸 코드가 심어진 채로 만들어진 분신, 그 분신이 정말로 독립해서 지옥의 본체마저 삼킬 수 있었나? 그런 기괴한 이적을 일으킨 원인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의 아이였을까? 만약 진짜로 그런 아이가 있었다면…… 혼마저 산산조각 나서 죽어 버렸다는 그 아이를 되찾겠다고 멸망해야 할 세계를 반전시키고 차원을 격리한 채로 시공을 역전시켜 세상이 되풀이되도록 명령한 드래곤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세계를 다시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투영해서 그 아이를 재현하는 편이 더 빠를 텐데, 드래곤은 확신을 품고 이 어처구니없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잖아. 그래서…… 나도 알고 싶어. 이 터무니없는 마법이 성공할지 어떨지, 그리고 성공한다면…… 대체 어떤 아이인가 보고 싶잖아?”
―확실히…….
―대단히 희귀한 존재이겠지.
지팡이의 두 목소리가 슬그머니 동의한다는 듯 속삭였다.
카엘은 피식 웃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한쪽에는 하늘 높이 치솟는 섬과 바닷물이 기괴하게 엮인 풍경이 까마득한 기둥처럼 보이고, 다른 한쪽에는 하늘이 뒤틀리며 지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또 다른 쪽으로는 수평선이 지평선으로 변하는 듯한 광경 위로 구름을 자욱하게 깔고 있는 공중의 대륙이 초라한 느낌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괴상한 곳을 참 잘도 만들어 냈어.”
카엘은 혀를 차며 손을 흔들었다.
새로 얻은 아티팩트 ‘용의 심장’이 곧바로 호응하여 마력을 흘렸다.
마법의 물결은 바람을 끌어당겨 조각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가 향하는 곳은 하늘이 뒤틀린 채로 지상을 내려보는 마경(魔境), 춤추는 산맥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