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4)
갈라지고 갈라지다가 다시 멀리 돌아 합쳐지기도 하며, 늪과 엮이다가 따로 흐르기도 하는 강의 줄기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길고 넓게 늘어져 가는 그물 같은 느낌을 줬다.
‘음, 저래서 작은 섬을 지나쳐서 떠내려온 것도 있었구나.’
투란은 자신이 고르고니아의 작은 섬에 도달하기 전에 만났던 눈깔꽃 무리를 떠올리면서 깨달았다. 애초에 그 꽃봉오리 무리도 작은 섬을 향하기는 했다. 하지만 강의 흐름을 잘못타서 지나친 경우였고, 다시 거슬러 올라오지 못한 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자 호수에 그냥 뿌리박고 만 놈들인 듯했다.
이는 결국 투란이 키린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탔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면…….
‘나도 그냥 그 자리에서 썩어 가며 잡아먹혔을 수도 있었네.’
드라고니아가 이러쿵저러쿵 경고하는 말을 듣지 못했을 테니, 일단 들이대다가 뭔 꼴을 당했을까. 돌이켜 생각하니, 뭔가 좋은 방향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쉬이익.
목을 타고 흘러오는 바람결이 날개를 보다 넓게 펼치게 했다.
투란의 몸이 더욱 높이 치솟았다.
강을 바라보던 시야도 넓어졌다.
강과 늪, 그 사이를 메우듯이 짙게 자리 잡은 숲의 풍경, 멈춰 있는 듯하지만 끝없이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광경이 어린 드레이크의 시각 속에서 화려하고 거대한 춤처럼 보였다.
투란은 고개를 들었다.
황금빛 태양, 사람의 눈으로는 그 이상을 보기 어렵고 그저 눈부심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 광휘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둥근 빛의 원은 경계가 끊임없이 흔들렸고, 그 속에서는 붉은 점이 금색의 파문을 일으키며 명멸했다. 때로는 가늘고 긴 붉은 금이 그어졌고, 때로는 노랗게 흔들거리는 얼룩처럼 흔들리는 불꽃의 그림자가 보였다.
‘해가 저런 거였나.’
저절로 떠오르는 감상과 함께, 투란은 날개가 살짝 접혀드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바람이 흐려진 듯한 느낌이 찾아왔다.
날개는 그 바람을 좀 더 깊숙이 끌어안으려 오므리려 했다.
투란은 두 손을 허리로 늘어뜨리면서 날개를 힘껏 접었다가, 과감하게 펼쳤다.
아래편에서 울린 폭음이 귀에 들어오기 전, 투란은 정적이 가득한 상공을 향해 빠르게 치솟았다.
싸아아아아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가 투란의 귓가에서 진동했다.
목덜미에 열린 틈새, 드레이크의 숨결이 들락이는 틈새로 강한 바람결이 밀려드는 음향이었다. 그 소리와 함께 날개 속으로 더 많은 바람이 채워지는 듯했고, 일렁이는 태양의 광휘가 더 세차게 금빛 비늘 가죽을 휘감는 듯했다.
하지만 상승이 멈춰가는 순간, 투란은 날개에서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위로 오를 수 없다는 느낌이었고, 반쯤 접었던 날개가 펼쳐지는 순간 피로감은 보다 분명하게 투란의 등과 가슴을 향해 흘러들었다.
‘어라? 왜 이러지? 어려도 사흘 정도는 날 수 있을 텐데? 사람 몸이니까,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텐데? 아래에서 뭐가 날 잡아당기나?’
투란이 갸웃하는 의문 속에 흐려진 바람에 활짝 펼친 날개를 걸쳤다.
천천히 몸이 한쪽을 향해 기울어졌고, 바람을 따라 처지면서 흘러갔다.
—그게 중력이라는 거다. 대지의 인력(引力)이라고도 하는 힘이지. 그 날개에 갖추고 있는 날아오르는 힘, 그 부양력과 중력의 접점이 만난 곳까지 날아오른 거야.
‘중력? 인력?’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세계의 구성에 대해 연금술 쪽으로 배운 적이 없나? ……없겠구만. 간단히 말해서, 돌멩이를 높이 날려 보내거나 물을 위로 날려 본 적은 있겠지? 그때 돌과 물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꼴을 봤지? 그리고 떨어지는 것 말이야.
‘어, 그거야 봤지.’
—네 날개는 돌이나 물방울과 다르게 허공에서 계속 널 솟구치게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양력, 날개의 힘도 돌이나 물방울이 도달하는 한계, 정점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땅의 힘, 중력에 거스를 수 없게 되는 거야. 그 한계에 이르게 되면, 날개가 피로해지는 거지. 들 수 없는 무게를 들 때, 네 팔다리가 힘겨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흠…… 그런가.’
구체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고, 느끼고 있었다.
—날개가 강해진다면, 더 높이 치솟을 수 있고 더 빠르게 날 수 있다. 그만큼 힘의 한계선이 높아질 테니까.
‘어, 그렇겠네.’
이번에는 투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날개가 강해지면, 어린 드레이크가 보다 성장한 드레이크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래서 투란은 얌전히 날개를 접었다.
접힌 날개의 꼭지, 발톱이나 손톱처럼 돋은 뿔처럼 보이기도 하는 각질의 조각이 투란의 머리 위에 잔뜩 다가왔다.
‘에, 저건 날개손톱이라고 해야 하나, 날개발톱이라고 해야 하나. 뿔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데…….’
난데없는 호기심이었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간단히 답한다.
—날개촉이라고도 하고, 깃못이라고도 한다.
‘응?’
—방금 궁금하게 여긴 드레이크의 날개 조직 말이다.
‘그런 이름이었어?’
—너희는 딱히 부르는 말이 없지. 날개가 없는 종족이니까. 기껏해야 날개에 달린 발톱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우리한테는 제대로 갖춘 이름이 있다.
‘그래? 날개촉…… 깃못이라고? 흠, 뭔가 알 것 같은데.’
투란은 ‘날개촉’ 혹은 ‘깃못’이라는 드레이크의 비늘 가죽 날개에 돋은 발톱 같은 것을 바라봤다. 뭉툭하고, 단단하고 덜 자란…….
“아아아아아아!”
되새김질하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투란은 괴성을 질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은 메아리조차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괴성을 지르기 위해 몸을 꿈틀거린 탓이라는 듯, 투란의 머리가 아래를 향했고 뒤집힌 풍경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궤적으로 투란이 떨어져 내려갔다.
머리 위에 놓인 땅의 풍경, 저 멀리 높이 걸린 듯한 지평선의 풍경이 빙글거리며 쏜살같이 내려가는 투란의 눈에 화려하게 비쳐 들었다. 날개는 완전히 접힌 채로, 스치는 바람을 삼키며 피로를 덜어 갔다.
구름을 스치고 숲과 강, 늪의 냄새가 코에 닿을 무렵이 되어 투란은 다시 날개를 펼쳤다. 몸이 바로 반등했지만, 흔들림 없이 펼쳐진 날개는 어느새 피로를 잊은 채 투란을 다시 공중에 매달고 날게 해 줬다.
‘그 중력인가 인력인가는…… 결국 이런 높이에서는 괜찮은 거네?’
—부양력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흠…….’
투란은 까마득하니, 5, 60미터의 아래편에 자리 잡은 강과 숲, 살짝 얽힌 늪의 풍경을 보다가 멀리 지평선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지금 얼렁뚱땅 향해가는 뾰족한 산의 반대편, 드레이크의 눈에도 까마득하니 지평선 언저리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지평선을 따라 그어진 듯한 희고 뿌연 길고 긴 절벽 같은 산자락이었다.
‘단단했지, 저거.’
문득 투란은 그 산자락에서 몸부림치다가 크게 다치고, 나뭇잎이 뿌리는 녹색의 즙에 녹아 버린 뱀의 왕족을 떠올렸다. 몬스터라고밖에는 생각이 안 되던 그 크기, 생각해 보니 다 자란 드레이크라면 잡고 먹을 만하다?
‘가죽이 질겨서 못 먹으려나?’
허리에 두른 뱀 가죽, 악마의 심장이 알뜰하게 챙긴 것을 다시 한 번 웃음 지으면서 투란은 고개를 돌렸다. 보고 있자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련하게 피어나는 기억이 있었다. 저 너머를 향해 뭔가를 동경하면서도 가서는 안 된다는 본능에 그르렁거리던 드레이크의 기분이었다.
가슴이 다시 슬쩍 파인 듯한 빈 곳이 느껴졌다.
첨벙, 콰아아!
저 아래 물살을 가르며 뭔가가 높이 치솟아 올랐다.
바로 투란은 그게 뭔가 바라봤다.
얼핏 봐도 5, 6미터는 되는 길이의 몸통이 철갑 같은 비늘로 덮였고 양쪽을 넓고 크게 벌린 지느러미의 끝은 무슨 도마뱀의 발톱을 달고 있는 꼴이었다. 저 괴상한 철갑 물고기는 투란을 향해 머리와 몸을 흔들며 흐리멍덩한 눈알을 들이댔고, 주둥이를 겨냥하듯이 내밀었다.
‘저게 드래곤 파이어라도 쏘려나?’
투란은 그 주둥이를 보고 의아해했다.
힘차게 강을 박차고 올라왔지만, 덩치도 제법 크지만 아직 투란이 머무는 공중에 닿기에는 거의 3, 40미터의 아래편이었다. 저기서부터 불길을 쏜다고 해도, 이 주변에 짙게 흐르는 바람은…….
푸우웃!
철갑 물고기의 입에서 물살이 뻗어 나왔다.
‘그런 것도 있었지.’
문득 투란은 기억할 수 있었다.
어린 드레이크가 저놈이 쏘는 물살을 피하는 것을 즐기며, 저걸 사냥해서 먹는 것도 즐겼다. 간혹 꽤나 위험할 정도로 지독한 물살을 뿜어낼 수 있는 놈도 있지만, 그 경우는…….
‘내가, 나와 하나가 된 드레이크가 잡았지.’
기억과 함께 투란은 한쪽 날개를 접고, 회오리의 궤도를 타는 듯이 돌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래, 그랬어.’
투란은 한쪽 다리를 접고, 한쪽 다리가 뻗었다.
뻗은 다리에서 가늘고 촘촘한 실 가닥이 뿜어져 나왔고, 맞물리듯이 꼬이며 두껍게 엮여 갔다. 어느새 길고 두툼한 밧줄 덩어리처럼 생긴 굵은 줄기가 투란의 한발과 이어진 채로 늘어졌다. 그 덩어리는 꿈틀거리면서 변했고, 곧 두껍고 굵은 발가락을 지닌 발처럼 변했다.
투란이 뻗은 다리를 내질렀고, 매달린 줄기 끝에 형성된 두껍고 굵은 발이 그대로 철갑 물고기의 몸통을 걷어차 올렸다.
콰륵, 콸콸!
다시 주둥이로 쏘아내려 했던 물살이 물고기의 벌린 입에서 넘쳐흘렀다.
철갑 비늘이 햇살 아래에서 반짝였고, 물고기는 몸통을 꿈틀대는 꼴로 투란의 앞쪽으로 치솟아 올랐다.
투란은 입을 열었고, 입술 주변이 금빛 비늘로 덮였다.
붉은 소용돌이처럼, 불길이 투란의 입에서 쏟아져 나가 치솟는 물고기를 휘감았다.
파아앙!
새로운 날갯짓과 함께 투란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고, 투란은 손을 물고기의 익어가는 철갑 틈새를 헤집고 파냈다. 큰 살점 한 덩이가 투란의 손에 쥐어진 다음, 물고기는 강물을 향해 추락해 갔다. 완전히 익어 버린 채로.
강물이 요란하게 물거품을 토해 냈고 거기 휘말려 버린 꽃봉오리, 둥실거리며 흐르던 눈깔꽃 무리 중에는 보라색 안개를 토하거나 저편을 향해 섬광을 뿜어내며 터져 버리는 놈까지 나왔다.
그 덕에 새로 물살을 가르며 솟구쳤던 또 다른 철갑 물고기 몇 마리는 그대로 박살이 나거나 독에 속이 뒤집어진 것처럼 입으로 피를 토하며 둥둥 떠 버렸다. 하지만 강의 흐름과 함께, 새로 거품을 내며 또 튀어나온 녀석들은 기어코 익어 버린 채로 떨어진 철갑 물고기, 동족을 향해 그 주둥이를 박으며 뜯어 먹는 모습을 보였다.
잠깐 날개를 좁히면서, 이 광경을 보다가 투란은 강의 한쪽, 높이 솟아 소리 없이 흔들거리는 굵은 나뭇가지 위로 내려섰다. 날개가 차분하게 접힌 채로 투란의 몸에 붙었고, 가지 위에서 균형을 잡게 해 주려는 듯이 버텼다.
가만히 손에 든, 익어 버린 살덩이를 보다가 투란은 크게 입을 벌리고 물어뜯으며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익은 살점이 목을 타고 넘어가니 어린 드레이크의 감각이 뭔가 만족스러운 듯했다. 투란도 기분이 괜찮았다.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비는 듯했어도.
촤악!
손가락을 빨며, 남은 물고기의 잔해를 털어 내는 투란을 향해 새로 물살을 가른 철갑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저편에서 난동부리며 뜯어 먹는 무리에는 합류하지 못한 듯하지만, 새로운 사냥감을 기꺼이 노리겠다는 듯이 흐리멍덩한 눈알을 투란에게 고정시킨 놈이었다.
입을 확 벌리며, 단숨에 작은 사냥감을 물어뜯겠다는 그 꼴을 향해 투란은 왼손을 내밀었다. 붉은 털이 순식간에 팔뚝과 어깨를 휘감았고 손바닥에는 두툼한 살집이 자리 잡았다. 붉은 털이 살랑이는 팔죽지가 둥글게 볼록거렸고, 손바닥의 살집이 오그라들다가 한 번에 부풀고는 푹 꺼졌다.
파아앙!
거칠게 충격파가 허공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렸고, 입을 벌린 채 강을 박차고 날아왔던 철갑 물고기는 허공에서 5미터 가까운 몸을 폭산(爆散)시키며 해체되었다. 그 잔해를 향해, 다시 물거품이 솟구쳤을 때는 투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쐐에에에에!
날개를 기울여 비스듬히 솟구치는 궤도를 잡은 후, 투란은 자신의 문장 속을 향해 되뇌었다.
‘드라고니아! 드레이크의 정신 공유는 몇 번이나 쓸 수 있는 건가?’
—한 번, 단 한 번만 발휘되는 능력이다.
‘드레이크는 그 상대를 어떻게 고르지?’
—일생에 걸쳐, 주의 깊게.
‘하? 하하하…….’
—드레이크의 반려는…… 그 정신을 드레이크와 공유하면서 드레이크와 함께 남은 삶을 보낸다. 드레이크 또한 자신이 선택한 반려와 함께, 남은 삶을 보내지. 드레이크가 알을 낳는 시기는 보통, 그 반려가 죽은 다음이 된다. 끝내 반려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낳게 되는 거고.
‘하하하하하! 그랬구나, 역시.’
투란은 더 높이 날아오르며, 익은 물고기를 씹으며 느꼈던 아련한 감정을 떨쳐 낼 수 있었다. 보다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투란이 드레이크가 되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드레이크 또한 투란이 되었었다.
그 ‘삶’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