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6)
Chapter 26. 아르곤, 눈알 수집가?
입구를 돌파하는 순간,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깊이 파고드는, 위로 경사진 구멍이 보였다. 밖에서는 물의 장막과 굽어진 굴의 형태 때문에 보일 리가 없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단순하게 바위와 흙, 자갈 따위가 구르는 굴이 아닌 탓에 더욱 밖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도 보였다.
끈적대는 질감이 눈으로도 느껴지는 검은 진창이 꿈틀거리면서 눈깔꽃을 뱉어내며 느릿느릿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는 넓고 커 보이는 경사진 구멍 너머…… 투란은 일단 날개를 접으면서 해체했다. 이런 곳이라면 어린 드레이크보다는 더 어울리는 몬스터가 있잖은가.
우득, 발이 변했고 잿빛바위 그랑츄의 살갗과 ‘악마의 심장’ 껍질이 섞인 채로 검은 진창을 디뎠다. 끈적거림이 바로 살갗을 타고 느껴졌다. 그리고 뭔가 깊이 스며오는 지독한 느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 수 없는 섬세한 압력이었다.
‘응?’
투란은 조금 놀랐다.
여기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진창이나 늪에는 위험을 느껴보지 못했다.
‘악마의 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악마의 심장’조차도 놀라고 있었다.
이 진창, 눈깔꽃을 숭숭 뿜어내는 이 검고 끈적한 것이 ‘악마의 심장’ 껍질을 섬세하게 으스러뜨리고 있잖은가! 덤으로 그랑츄 중에서도 살갗 튼튼해서 바위 같은 걸로 유명한 잿빛바위 일족의 발마저도 움찔거리면서 속살이 물렁거리며 몸의 무게에 눌려 깨지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지 눈깔꽃만을 뿜어내는 검은 진창이 아니란 점은 바로 투란의 다음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진창에 대해 대응할, 자신만의 늪을 발로 밀어내 보내면서 ‘작은 늪’을 이루는 돌의 힘도 끌어낸다.
우웅.
‘엥?’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색다른 돌의 울림이 투란을 놀라게 했다.
심장 깊은 곳에서 작은 돌이 검은 진창의 맛을 느끼며, 흥분하고 있다니!
‘맛있다?’
돌의 힘이 닿는 곳에서 돌이 겪는 감각이었다.
좀 더 직접, 돌은 저 검은 진창에 닿고 싶어 했다.
투란은 바로 이에 호응했다.
발바닥, 어차피 물렁거리면서 진창에 망가지는 그랑츄의 형상을 해체하고 뒤꿈치와 발가락을 치켜올린 앞굽 쪽으로 돌을 형성했다. 덤으로 발가락을 덮은 발톱도 돌의 조각으로 바꾸고.
디딘 바닥이 변했다.
검은 티끌, 먼지가 발 주변에 푸석거리며 피어올랐다.
발에 형성된 돌과 닿은 진창이 오그라들면서 지워진 결과처럼 보였다.
그렇게 저지른 것은 투란의 발, 돌이 된 부분이었다.
‘먹어 치웠나?’
투란은 돌의 감각을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늪과 닿게 되면 돌은 이런저런 맛을 느끼고는 했다. 꽤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단지 확장된 감각의 일부로 여기면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지금 돌이 제대로 ‘맛있다’는 느낌에 휩싸인 순간이 되자 돌은 저 검게 끈적이는 진창을 먹고 싶어 했다. 더 많이 닿아, 더 들이마시고 싶어 했다.
‘뭐, 나쁘진 않아.’
이 상황에 대해 판단은 이랬다.
바위처럼, 아주 단단한 돌같이 강인하다는 잿빛바위 일족의 그랑츄로도 버틸 수 없어 물렁해지게 하는 검은 진창이었다. 여기에 대해 작은 돌은, 오러 몽거의 그 강렬한 볼텍스를 견뎌낸 작은 돌이 한 번 더 견디고 이겨내며 투란의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쁘다고 여길 부분이 없잖은가?
그래서 투란은 곧 두 발에 점점이 박힌 돌의 형상을 덧붙인 채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는 사람의 몸을 기반으로 돌무늬 샌들을 신은 것처럼.
푸석, 퍽.
진창은 돌에 닿을 때마다 오그라들었고, 기묘하게 절반가량은 검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러는 탓에 흐르던 진창이 말라 갔다.
“음?”
경사를 따라 구멍을 넘어가려던 투란은 빙글빙글 도는 눈알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잠시 멈칫했다. 여기서 맺혀 저기 입구를 넘고 물의 장막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주먹만 한 꽃봉오리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그 눈깔이 아니었다.
동글동글한 채로, 누군가의 눈꺼풀 속에 감춰져 있다가 드러날 법한 눈알이었다.
투란으로서는 이름 모를 짐승이 외눈을 데굴거리는 꼴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상황이었다. 만약 저 눈알이 검은 진창에서 툭 솟아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힘든 이 상황에 투란의 손이 저절로 나아갔다.
진짜 눈알인지 아닌지 손끝으로 찔러보려는 듯이.
물론 찌른다고 저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진짜 눈알이라면 손끝이 닿아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껌벅이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검은 진창의 눈알은 투란의 손끝을 피하지 않고 물끄러미 노려봤다.
그리고 그 눈알의 옆에 새로운 눈알이 툭툭 튀어나왔다.
내밀던 투란의 손가락이 저절로 움츠리고 말았다.
어느새, 한쪽 벽에 눈알이 와글와글하면서 보고 있잖은가!
계속 찌를 거냐고 노려보는 것처럼!
게다가 눈알에 떠 있는 눈동자의 색채, 모양이 전부 다른 까닭은 또 뭔가!
‘이게 뭐야?’
입을 다문 채로, 투란은 한걸음 물러서서 굴의 벽을 바라봤다.
검은 진창이 꾸물거리며 벽에서 꿈틀대는 꼴, 그 속에서 톡톡 튀어나와 장식처럼 보이지만 확실하게 시각을 발휘하는 것처럼 눈길을 던지는 눈알 무더기!
―아르곤?
불쑥 튀어나와 투란의 뇌리를 울리는 드라고니아의 한마디였다.
‘어? 아르곤? 이게 아르곤?’
투란은 재빨리 그 한마디를 낚아챘다.
혹시 드라고니아는 이 이상한 진창에 대해 아는가?
―그럴 리가 없는데…….
‘뭐?’
뭔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한 드라고니아의 중얼거림이었다.
투란은 조금 더 여유를 갖기 위해 살짝 한 걸음 더 물러서다가 등에 닿는 이상한 감각에 흠칫했다. 긴장과 함께 잽싸게 제자리로 걸음을 옮기며 돌아서니, 등 쪽의 벽에도 눈알이 가득하다!
“헐?”
문득 투란은 고개를 들어 올리고 말았다.
경사진 구멍을 넘기 위해 비스듬히 발을 디딘 이 자리, 벽과 바닥뿐 아니라 천장 쪽도 역시 검은 진창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했더니, 역시나 천장에도 눈알이 숭숭 돋아 있다.
바닥에서는 꽃봉오리가 닫힌 눈깔꽃이 몇 송이 돋아났는데, 벽과 천장에는 눈깔꽃과 무관한 눈알이 가득했다.
‘아르곤이 뭐야?’
이 상황에 대해 유일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한마디에 대해 투란은 조금 더 파고들었다. 몸은 긴장한 채였고, 발아래에서는 검은 먼지가 푹푹 솟아났다. 발의 돌에 닿는 진창이 사라진 채였다. 하지만 이미 땅에 뿌리내린 듯한 눈깔꽃은 얌전한 꽃처럼 살포시 그 자리에 박혀 있기도 했다.
―고르고니아의 이야기를 전하는 신화, 거기에서 유래된 괴물이다. 고르고니아랑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도 하지. 백 개의 눈을 지닌 자, 그런 의미로 파놉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더군. 그 신화에서는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아르곤이라고 부르는 놈은 몸에 다른 자의 시각기관, 눈알을 떼서 붙이고 그 시각능력을 얻어내는 괴물을 말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자리에 걸음을 멈춘 채로, 벽과 천장을 흘깃거리는 투란에게는 꽤나 맞는 이야기였다.
‘딱 이놈 같은데. 눈알이 백 개가 아니라 수백 개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데 뭐가 아니야?’
상황을 점검하며 투란은 확인해야 했다.
드라고니아가 아는 괴물이라면, 대처할 방법도 알 터였다.
그러나 비슷한 다른 놈이라면 그런 대응책을 기대할 수가 없다!
―짐승이거나, 괴물의 몸이거든. 아르곤은 이 세상에서 그 눈알을 모아두는 몸으로 여러 가지 변형된 모습을 이뤄냈다. 처음 아르곤을 이 세상에 나타나게 한 이들의 생각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된 거지. 하지만 저런 신경유체(神經流體)의 늪으로 된 아르곤은 없어. 눈알의 숫자도 너무 많고…….
‘신경…… 뭐?’
―악마의 심장과 그랑츄의 체조직을 돌파한 검은 액체 말이야. 늪처럼 꾸물거리는 그거, 미세영역에서 구성된 특별한 액상(液狀) 구성을 그렇게 부른다. 티끌보다 작지만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고, 군체로서 기능하기도 하지. 그런데 왜 그게 아르곤의 기능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저런 건 내가 아는 범위 밖이야.
‘아르곤의 기능이란 게, 어떤 능력인데?’
조심스럽게 다시 발을 옮기면서, 사실 노려보는 것 말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것에 살짝 안도하면서 투란은 움직였다.
―눈알을 뽑아 몸에 이식하는 능력, 아까 말한 것처럼 아르곤은 그렇게 해서 다른 놈의 시각능력을 훔쳐 갖는다.
‘그래서 더 잘 본다고?’
―세상에는 특별한 힘을 지닌 눈알이 많아. 눈깔꽃만 해도 보기만 하는 게 아니잖아. 젠장, 복잡하군. 저게 눈깔꽃의 눈알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히 아르곤의 능력이다. 한번 포획한 눈알은 망가져도 다시 재구성해 내는, 그 능력이야.
투란은 잠깐 어이가 없어서 발을 멈췄다.
발아래에서는 새로 닿은 검은 진창을 먹어 치우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검은 먼지티끌이 더욱 독하게 일어나며 투란의 엉덩이와 허리까지 피어오르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짙은 어둠이 맺혀 있을 듯한 굴속이었지만, 묘하게도 이 눈알들을 위한 것처럼 어디선가 빛이 맺혀 뿌려지는 탓이었다.
―아르곤을 놓고, 간혹 눈알수집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녀석은 한번 포획한 눈알을 자기 몸에 박아 넣고 사용한다. 하지만 새로운 눈알을, 이전에 지닌 것과 같은 시각능력이지만 더 뛰어나거나 좋아 보이는 것을 발견하면 이전에 쓰던 눈알을 파내고 그걸 꽂아 쓰지. 그렇게 해서 늘 백 개가량의 눈알을 유지해.
‘얼핏 세도 수백 개잖아. 아, 그래서 저게 아르곤은 아닐 거라 한 거네?’
―그래. 이건 아르곤의 능력을 보인다 해도…… 아르곤을 초월한 놈이다.
‘겁주지 마!’
투란은 입술을 삐죽하고는 좀 더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아직 저쪽에서는 물의 장막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경사진 구멍 너머는 어둠이 가득한 대신 무엇인가에 의해 시각을 활용할 수 있는 여린 빛이 차지한 상황이었다. 검은 진창은 투란의 작은 돌무늬를 박은 발에 쫓겨 흩어지기도 했지만, 아직 이 굴 안을 가득 채우고 저 구멍에도 가득해 보였다.
이제 겨우 입구일 뿐이란 점이 투란에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이 느낌은 분명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졌다.
―투란, 물러서자. 여기서 나가야 해. 정체를 모르는 놈과 더 이상…….
투란은 경사를 밟으며 구멍을 향해 뛰었다.
발아래에서 돌연 눈깔꽃이 피어나며 보라색 독안개를 뿜어냈지만, 이를 무시한 채로 투란은 뛰었다. 벽과 천장의 눈알 무더기가 일제히 움직이면서 그런 투란을 바라봤고 투란은 마침내 구멍 턱에 발을 걸치며 넘으려 하는데…….
“으엑!”
발아래가 무너졌다.
구멍이 그대로 바닥을 지우면서, 투란은 경사가 각도를 바꾸는 것을 깨달았다.
올라가던 길이 내리막길이 되었고, 투란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미끄러져야 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광경을 통해 조금 전까지 보고 있는 이 굴 속의 풍경이 눈속임인 것을 알아차렸다.
벽이라고, 천장이라고, 넓지만 깊이 뚫린 굴이라고 여겼던 곳이 아니었다.
그 굴은 검은 진창이 단단하게 뭉쳐서 밖으로 이어지기 위해 만든 통로에 불과했다. 이곳은 이 산의 중턱이 그대로 빈 것처럼 활짝 열린 광장으로 보였다. 광장의 모서리 쪽에 작은 구멍처럼 굴이 파여 있었고, 그 굴마다 검게 흘러내리는 끈적한 질감의 진창이 보였다.
쿠당.
바닥에서 솟아오른 기둥처럼 굵고 뾰족한 바위에 가서 부딪히면서 투란이 멈춰졌다. 얼른 돌아보니 물의 장막을 만나는 입구는 이제 한 십여 미터 높이의 벽 위에 자리 잡은 꼴로 보였다.
투란은 엉덩이를 깔고 있는 바닥을 손끝으로 긁었다.
이제까지 단단하다 여겼던, 진창과 그 진창에서 피어오른 검은 먼지티끌로 인해 부드럽게 밟힌다고 생각했던 것이 좀 더 부드럽고 질긴 가죽의 감촉을 전해왔다.
‘가죽……? 이 안을 모두 채운 가죽이라고?’
이 공동(空洞) 전체를 가죽이 덮어씌운 꼴이었다.
진창은 그 가죽 위를 흘러다녔고, 저 폭포가 흐르는 입구를 향해…….
‘잠깐, 늪이 단단해져서 무슨 파이프처럼 저기 들러붙어 있었어? 그게 지금 무너져 내렸고?’
투란은 한쪽 무릎으로 바닥을 누르며 한쪽은 세웠다.
손이 닿는 곳을 더듬으면서 투란은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봤다.
천장에 박힌 푸르스름하고 투명한 돌들이 여린 빛을 계속 흘려내고 있었고, 그 빛으로 인해 이곳은 그림자가 어둠처럼 짙게 자리 잡은 듯해도 시야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밝아진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투란은 볼 수 있었다.
가죽 위로 진창이 슬그머니 솟구치면서 꾸물거리는 꼴!
그 진창 바닥을 따라, 투란의 주변으로 볼록거리면서 눈깔꽃의 꽃봉오리가 다가왔다.
―투란, 위험하다! 저건 섬멸의 안개꽃이야! 저놈이 뿜어내는 독안개를…….
파삭, 꽃봉오리가 열렸고 짙은 보라색 속에 검은 실타래가 엮인 안개가 투란의 주변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