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8)
어깨에서 치솟는 피안개는 마치 투란의 상처에서만 솟구치는 듯했다.
스쳐 간 것은 분명히 빛줄기의 형상이었고, 그 궤적에 피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블러드 레이의 특성이다. 피를 매개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섬광처럼 경면 반사도 되지 않아. 정통으로 맞으면 아주 위험하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급한 말투로 투란에게 말했다.
그 급한 이유를 투란은 묻지 않았다.
투란의 상처를 보기가 무섭게, 눈알 무더기가 껌벅거렸고 또 다른 붉은 눈동자를 지닌 눈알들이 쑥쑥 솟구쳐 나오고 있었으므로!
‘눈깔꽃이냐?’
투란은 문득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눈알 쪽을 봤다.
오그라들면서 작아지고는 있는데, 눈깔꽃의 눈알처럼 시들어 꺼지는 것이 아니었다. 작아지는 눈알 주변으로 힘줄처럼 돋아난 가죽의 윤곽이 보였고, 뭔 핏줄처럼 맥동하는 꼴을 보였다. 그리고 오그라들던 눈알이 다시 또렷하게 붉은 눈동자를 드러내며 부풀 낌새다!
‘아니구나.’
계속해서 피어나는 눈깔꽃을 보면, 이곳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확인이었다. 저렇게 회복되거나 새로 돋아나거나!
투란은 흘깃 상처가 메워지는 어깨를 봤다.
‘작은 늪’이 검붉은 색채로 상처를 덮고, 그 자리에 넝쿨가닥이 흐르면서 봉합하고…… 회색의 실그물이 엮이면서 상처가 사라졌다.
‘그랑츄의 바위살갗도 으깼다, 이거지.’
핏줄기가 붉은 빛줄기처럼 날아왔기에 ‘악마의 심장’은 즉각 반응해서 맞을 듯했던 곳을 거울빛으로 물들였고 그 속은 그랑츄의 탄탄한 살집으로 채웠다. 한데 상처를 입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저것이 눈깔꽃이 뿜어내는 것처럼 순수한 빛의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투란의 눈길이 주변을 둘러봤다.
한번 시험해서 성공한 공격을 좀 더 화끈하게 퍼붓겠다는 듯, 붉은 눈동자가 석순을 따라 줄줄이 돋았고, 바닥에서도 보였다. 그 눈동자의 시선이 이어지는 곳에 투란이 있기만 하면 된다는 듯, 주변을 가득 채울 기세였고 그러고 있었다.
문득 투란은 궁금해졌다.
‘야, 저게 대체 어떤 놈의 눈알이야?’
꽤나 한가한 물음이라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는 기척부터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당황하면서도 공황상태에 빠져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꽤나 흥미로워하는 기척을 보이며 대답한다.
―가슴에 눈알을 달고, 목 위가 없는 놈이다. 몸의 나머지 부분은…… 키클롭스랑 같은 구조인데, 체격은 기껏해야 이 미터 정도에 불과하지. 덩치가 큰 인간 정도라 할 수 있겠지.
‘처음 듣네. 이름은 뭔데?’
꿈틀거리면서 부풀고 있는 붉은 눈동자의 눈알 무더기를 둘러보며 투란은 여전히 여유롭게 물었다.
―너희 인간 사이에서는 흔하게 눈깔가슴이라고 하는 듯도 한데, 눈깔꽃처럼 말이다. 하지만 수백 년 전, 대범람의 시기 이외에는 나타난 적이 없는 놈이지.
과연 드라고니아가 의외로 자세한 설명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투란이 확인하듯 묻는다.
‘저것도 중첩되거나 하나?’
―그런 건 없다.
드라고니아는 짧게 대답하며, 투란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쏘아지려 하는 블러드 레이의 폭우에 어찌 대항할지 궁금했다.
곧, 소리 없는 불그스름하고 탁한 빛줄기가 수십, 수백 가닥으로 투란을 향해 뿜어졌다. 어느새 발을 멈춘 채로 제자리에서 맴돌 듯이 두리번거리는 투란이 좋은 목표라고 판단한 듯!
‘와아, 많기도 하네!’
한순간에 뻗어오는, 사람의 눈으로는 거의 포착할 수 없는 블러드 레이의 가닥을 느끼면서 투란은 감탄했다. 그리고 세상이 움직이는 광경을 잠시 세웠다.
섬광처럼 보이는 듯했던 블러드 레이가 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깔꽃이 뿜어내는 파괴의 섬광과 다른 점이 겨우 제대로 투란에게 보이는 셈이었다. 진짜 섬광이었다면, 투란이 아무리 ‘악마의 심장’으로 뇌리를 두들기고 감각을 뒤틀면서 생각의 속도를 가속한다 해도…….
―이런 재주도 부릴 줄 알았나? 뇌수의 반응속도를 끌어올리고 신경처리(神經處理) 능력을 가속해서 사고 과정 전체를 고속화하다니…….
‘그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설명해줘.’
투란은 일단 드라고니아의 감탄이 섞인 잔소리를 옆으로 치우고, 집중해야 했다.
블러드 레이의 강렬한 공세에 저항할 수 있는, 저 힘에 버텨낼 수 있는 몬스터의 저력을 향해 투란의 마음이 가지를 쳤다.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이 즉각 투란의 마음에 호응했다.
먼저 발을 장식한 돌무늬부터 변화를 보였다.
검붉은 색채의 물감이 번지듯이 돌무늬 위로 흐르는 형상이 덧씌워졌고, 투란의 다리를 감싸듯이 차올랐다. 그 사이에 투란의 몸 곳곳에서 돌무늬가 그물처럼 피어났고, 검붉은 색채의 물감을 뿜어냈다.
물감은 제각각 솟구친 곳에서 제멋대로의 크기로 작은 소용돌이무늬를 꾸몄다.
돌무늬가 그물처럼 덮은 뒤, 검붉은 색채의 소용돌이가 투란의 몸을 덮는 과정은 블러드 레이가 느릿하게 날아드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간격을 둔 붉은 눈동자가 뿜어내는 블러드 레이의 어떤 가닥도 검붉은 소용돌이무늬가 투란을 휘감기 전에 당도하지 못했다.
‘좋아!’
슬슬 머리 한구석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잡아 멈췄던 세상을 놓았다. ‘악마의 심장’이 맥동을 했고…….
―뭔 짓이야!
앞이 잘린 듯한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뇌리에서 울리며, 수십 가닥의 블러드 레이가 투란의 형상을 향해 폭우가 되어 꽂혀들었다.
퍽, 퍼퍽!
자잘한 소리는 한순간에 크게 몇 번 튕기듯이 터져 나왔고, 금방 멈췄다.
블러드 레이의 핏빛은 검붉은 소용돌이무늬와 만나면서 으스러지고, 사그라지든가 빗맞은 채로 튕겨 나갈 뿐이었다.
‘역시, 이렇게 되네.’
투란은 천천히, 몸을 누르는 압력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을 관찰했다. ‘악마의 심장’이 모든 감각을 투란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 시각으로 전환시켜서 풍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주변의 붉은 눈동자들은 블러드 레이를 쏘아내고 오그라들어 작아져 갔다. 그 곁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눈알들이 툭툭 튀어나와 투란을 이모저모로 들여다보려는 듯이 보이고 있었다.
―어비셜 볼텍스는 쓰지 말라고! 말 좀 들어!
‘어? 그 얘기 하고 있었어?’
투란은 한 박자 늦게 뇌리에 스며오는 드라고니아의 소리에 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작은 늪’을 방출시키고 거기에 섞듯이 함께 뿜어낸 것이 ‘어비셜 볼텍스’의 오러였다. ‘악마의 심장’이 기억하는 오러 몽거의 오러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고르고니아의 사냥에 이용했듯이…….
―그런 괴물의 오러가 아니더라도 버틸 수 있었잖아! 돌의 단단한 능력만으로 충분했잖아!
이번에는 오랫동안 모아온 넝쿨줄기에 기대지 않고, 아예 방출시킨 ‘작은 늪’에 덧씌웠다. ‘악마의 심장’이 주변에 줄기를 뻗을 여유도 없었지만, 또 다른 이유가 분명하게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말한 것처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그러면 여기서 저 돌창같이 삐죽대고 솟아난 꼴이 된다고.’
―뭐?
‘막고 견디려고 온 게 아니잖아.’
투란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한 번 더 대답해주고는 걸음에 집중했다.
발아래를 맴도는 검붉은 소용돌이, 거기 닿은 검은 가죽이 갈리고 조각나며 삼켜지고 있었다. 이 ‘작은 늪’은 어디까지나 투란의 심장 속에서 스며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투란의 육체에 양분으로 공급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작은 돌이 낳은 새로운 몬스터였다.
‘악마의 심장’은 그런 ‘작은 늪’과 함께 양분을 축적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잊지 않았다. 갈린 채로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죽을 향해, 돌무늬를 장식하듯이 스며나온 실 가닥 넝쿨이 그물질을 했다.
다시 블러드 레이의 폭우가 쏟아졌다.
투란의 몸을 휘감은 소용돌이의 압력은 거세졌고, 닥쳐온 폭우를 모두 휘감아 뭉갰다. 큰 강이나 호수에 비가 내리다가 물살과 만나 지워지듯, 블러드 레이의 줄기가 검붉은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가는 광경이었다.
블러드 레이를 뿜어내던 붉은 눈동자가 감기며 사라져갔다.
다양한 눈알들이 가죽의 질감 속에서, 끈적한 검은 진창 속에서 솟아나며 투란을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쏟아부었다.
그 시야 속에서 멈추지 않고 투란은 걸었다.
느리게, 힘겹게.
생각을 멈추지 않고!
한숨을 쉬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작은 소리가 투란의 생각 틈새로 스며왔다.
―너는……, 몬스터 로드로군.
‘음? 아니, 이제 와서 뭔 소리야?’
투덜거리는 대응을 했지만, 투란은 주변을 향해 돋우고 있는 감각을 더욱 확대하며 정교하게 다듬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더 이상 따지기 싫은 듯이 말을 돌린다.
―어쩔 생각이냐?
‘찾아야지.’
투란의 대꾸는 머뭇거림도 망설임도 없었다.
―찾아?
‘코어. 이 녀석, 분명히 갖고 있을 거야.’
몬스터 헌터가 가장 선호하는 몬스터 사냥의 방법은 그 코어를, 몬스터 존재의 핵심을 파괴해서 단숨에 세상에서 지우는 것이다. 그럴 수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몬스터를 잘근잘근 부숴 나가야 했고…… 그건 최악의 사냥방식이라 투덜대는 것이 몬스터 헌터였다.
몬스터 로드 입장에서 보자면, 몬스터 코어는 에센스를 담고 있는 가장 실속 있는 부분이었다. 단숨에 그걸 빼낼 수 있다면 몬스터를 제거하고 삼키는 것이 그야말로 순식간이니까.
어느 쪽이든, 결국 몬스터 코어는 몬스터를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요점이었다. 하지만 모든 몬스터가 그런 코어를 확실한 형태로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투란은 확실한 형태의 코어를 찾겠다고, 그게 있다고 확신하는 대답을 한 셈이었다.
―근거는?
드라고니아는 헛된 생각인가 아닌가 확인하겠다는 듯이 바로 되묻고 있었다. 함께 사냥하는 동료처럼…….
‘지배하고 있잖아. 저 눈알 패거리가 날 보고 있고, 공격 방식을 바꾸고 있어. 저 검은 진흙탕 같은 거랑, 이 출렁대는 가죽…… 모두 나를 보고 궁리하는 꼴이라고. 이런 늪처럼 생긴 녀석에게 코어가 없다면, 저러지 않아.’
―희박한 근거로군. 그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기는 하다.
어딘가 꼬인 듯한 드라고니아의 평가였다.
투란은 쓴웃음이 지어지려는 입꼬리를 뒤틀면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니까! 이거 꽤 정확한 감이라고!’
―감이었냐!
‘몬스터 로드의 감이야, 믿어봐.’
화들짝 놀라는 시늉, 정말 놀라지는 않은 것이 분명한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덜거리는 말을 한 번 더 하고, 투란은 좀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돌무늬의 감각에 몰입했다.
이 감각을 드라고니아에게 조리 있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작은 돌 역시도 이 검은 진창―늪의 성질을 맛보고 알아낸 다음, 말이 아니라 감으로 투란에게 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작은 돌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능력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이 삼킨 마물의 힘을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투란은 이를 ‘알며’ 행동하지만, 설명하려 하면 ‘감’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모스라는 괴물 나방의 껍질을 이용하며 독가루를 뿌리고, 이 암벽 속의 공동을 채우고 흐르며 온갖 눈알을 굴려대는 녀석은 저 검고 끈적이는 진흙탕이었고, 분명히 뭔가의 지배를 받는 상태에서 복종하고 있었다.
마치 ‘작은 늪’이 투란을 보호하며, 투란의 의지에 호응하는 것처럼.
그러니 저 검은 진창에게도 분명히 보호할 대상이 있으며, 그 녀석이 명령하는 대로 따르고 있다……고 투란은 작은 돌이 독특하게 전해오는 ‘감’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투란은 두 손을 다른 방향을 향해 뻗었다.
앞에 졸졸 흐르는 듯한 진창을 보이는 여러 개의 굴을 지닌 암벽이 있었다.
이 공동을 채우려는 듯한 저 흐름 중 한 가닥만이 이곳에 둥지를 튼 놈의 핵으로 이어진다.
작은 돌의 본능이 느끼는 바에 따라 투란은 행동했다.
손바닥에서 좀 더 가늘고 섬세한 돌무늬가 피어났고, 검붉은 소용돌이가 뭉치며 작은 구슬이 되었다가 조금 더 큰 공처럼 빙글거리며 부풀었다.
투란은 숨을 멈추고, 두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두 개의 소용돌이무늬를 간직한, ‘작은 늪’의 공이 암벽의 양편을 향해 날아갔다. 그 안에 담긴 힘이 저절로 공중에서 흩뿌려졌고, 가벼운 진동이 느닷없는 가죽과 진창의 소란 속에 피어났다.
눈깔꽃과 붉은 눈동자의 눈알이 쑥쑥 튀어나와 공을 향해 푸르스름한 백색의 섬광과 불그스름하고 탁한 핏빛의 줄기를 마구 뿜어냈다.
빛의 폭풍과 폭우 속에서 주먹만 한 작은 공 하나가 바로 터졌다.
‘이거 바보? 아니면 꾀부리는 놈?’
방해 없이 암벽의 한쪽 귀퉁이에 가서 꽂히는 또 하나의 소용돌이무늬 공을 보며 투란은 약간 곤란함을 느꼈다.
―그, 글쎄다.
드라고니아도 조금 황당해하면서 대꾸하고 있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이리 오지 말라 하는 꼴이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