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9)
퍼어억!
가죽과 소용돌이가 맞닥뜨리면서 찰진 소리를 크고 웅장하게 터뜨렸다.
굴과 함께 암벽이 무너져 내리듯이 흐물거리다가 괄괄 흐르는 광경이 바로 펼쳐졌다.
‘전부 가짜였냐.’
투란은 인상을 썼다.
요란스럽게 눈알을 띄우고 저지하려는 쪽을 향해, 조금 큰 소용돌이를 날려줬다. ‘어비셜 볼텍스’, 괴물의 오러를 담은 소용돌이는 그 암벽과 굴을 덮은 가죽과 검은 진창을 휘말며 뭉갰는데, 거기에 암벽이 그냥 녹아내린 꼴을 보였다.
처음부터, 이 공동의 한편을 차지했던 암벽 같은 것은 없고 저 검은 진창이 그림모스의 가죽과는 다른 뭔가의 질감을 이용해 암벽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무너진 건너편은 어둡지만, 훤히 보이는 이상한 풍경이었다.
어딘가 광원(光源)이 있을 듯했지만, 당장 찾기는 어려운 느낌이었다.
투란은 느릿하게, 슬슬 몸을 휘감은 ‘작은 늪’이 괴물의 오러로 인해 증가시켜주는 무게를 가늠하며 걸었다. 이대로 오래 버티려 하면, 괴물―오러 몽거의 오러는 투란을 압축시키고 뭉갤 수도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경고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투란은 돌무늬를 조금 더 두껍게 형성시켰다.
몸을 눌러오는 오러의 압력이 훌쩍 덜어졌다.
‘어비셜 볼텍스’에도 작은 돌은 버틸 수 있다는 증거처럼!
―망할…….
투란이 하는 짓에 드라고니아는 꽤나 마땅치 않아 하는 기색을 바로 소리로 드러내보였다. 약간 쓴웃음이 저절로 지어졌지만, 투란이 그걸 따지고 들 때가 아니었다.
녹아내린 암벽은 검은 수렁처럼 찰랑이면서 몰려왔고, 투란을 그냥 떠내려보내겠다는 듯이 덮쳤다. 하지만 투란을 감싼 ‘작은 늪’의 소용돌이는 그 수렁을 갈아버리고 뭉개버렸다. 투란에게 닿는 것은 오직 ‘작은 늪’뿐이란 듯!
여기에 대해 검고 끈적이며 찰랑거리는 진창은 저편에서 큰 눈을 부릅뜨는 것으로 대응했다. 보통 크기의 눈알로는 어림도 없는, 사람 머리통이나 몸통만 한 눈알이 푸르스름한 광채를 띄고 눈동자 없이 끔벅였다.
‘응? 저거……?’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 눈알에 투란이 어리둥절했다.
어쩐 늘 보던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의 눈알이었다.
―강금룡, 다른 품종의 골든 드레이크다.
‘에?’
간단한 설명은 투란을 황당하게 했다.
드레이크의 ‘삶’을 통해서 이 끈적대는 검은 진창과 엮였던 불쾌한 기억을 되살렸다. 그런데 저것이 또 다른 품종의 골든 드레이크 눈알을 갖고 있다니!
‘과연…… 눈알을 노린다는 말이로군.’
대체 어떤 드레이크가 눈알을 뺏기고 말았을까?
궁금해하다가 투란은 흠칫했다.
푸르스름한 눈알 곁에, 꼭 닮은 모양으로 불그스름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저건 레드 드레이크의 눈알이라군.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속삭임이었다.
‘뭐? 품종에 따라 눈알에 무슨 다른 힘이라도 있어?’
―딱히 특별한 건 없다. 그저…… 드레이크의 능력과 속성에 따라서 시야가 좀 다를 뿐이지. 드레이크의 눈동자에 무슨 이상한 힘이 깃든 경우는 없어.
‘그래?’
투란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꽤 크게 튀어나온 두 가지 드레이크의 눈알을 노려봤다. 저것으로 대체 자신의 뭘 보려 하는가?
‘어라?’
투란의 기억 너머에서 드레이크의 ‘삶’이 잠깐 꿈틀거렸다.
어떤 상대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는 것은 드레이크에게 어떤 의미였던가.
돌연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름한 두 눈알 사이에서 새하얀 거품처럼 눈동자 없는 눈알이 하나 더 솟아났다. 크기는 드레이크 눈알과 비슷한데, 풍겨 나오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저건 드레이크가 아닌 거 같네?’
―망할, 화이트 아우터(White Outer)다! 숨어!
‘에? 어디로?’
바닥에서 솟아난 석순이 좀 크기는 하지만, 지금 투란이 그 뒤에 쪼그리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없었다. 품종이야 어떻든 간에 드레이크의 눈동자 또한 둘씩 나와 있었고…… 그 눈길을 피하려 하면 엉뚱하게 여기저기서 마구 솟아날 가능성도 있잖은가.
―엎어져! 저놈의 시야에서 일단 도망치라고!
투란은 엎드리지도, 피하지도 않은 채 ‘작은 늪’의 소용돌이를 좀 더 치밀하게, 촘촘하게 엮으며 돌무늬를 살짝 더 두껍게, 넓게 해서 몸을 덮었다.
새하얀 색이 사방을 채운 것은 금방이었다.
갑작스럽게 하얗고 큰 눈동자가 부르르 떠는가 싶은 순간, 투란은 주변의 모든 것이 그냥 다 사라지고 새하얗게 변한 세상 위에 자신만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꼴인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어라?’
감각이 어떻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맛을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저 하얀색은 그대로 투란을 삼켜버린 채…….
머리 위도, 발아래도 새하얗다.
팔을 뻗거나 다리를 뻗어도, 온통 새하얀 허공일 뿐이었다.
그런데 떠 있는 것은 아니고, 단단히 딛고 있는 느낌이라니!
일단 보다 촘촘하게 ‘작은 늪’으로 몸을 감싸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묻는다.
‘이게 대체 뭐야, 화이트 아우터? 그런 몬스터가 있나?’
―아우터(Outer)라고 하는 차원경계에 걸쳐서 존재하는 괴물이 있었다. 이건 그중에서 물질의 고유공간(固有空間)에 간섭해서 이런 영역…… 화이트 렐름(White Realm)을 만들어내는 놈의 능력이다. 그게 눈알에서 나오는 거였나? 젠장, 갇히면 안 되는 건데!
‘갇혔다고?’
투란은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다시 한 번 발을 뻗고, 손을 들어 휘저어봤다.
발과 손의 감각이 스치는 모든 것이 허공이었다.
‘작은 늪’에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허공에서 둥실거리지 않고 떠 있는 이 상태는 대체 뭔가?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문이라든가, 나갈 구멍은 없다는 거야?’
갇혀버린 상황에 대해 짜증내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란은 조금 더 진지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놈에 대해서는 꽤나 자세히 아는 낌새였으니…….
―그런 거 없다. 이건 형성되거나 해제되는 것만이 가능한 물질의 틈새니까.
‘해제시키면 나간다는 건가? 그럼, 어디에 형성되는 거야? 어떤 식이지? 뭔가 마법의 핵 같은 것이 있을 거 아냐.’
―투란…… 이건 널 중심으로 생겨난 영역이다. 여기 간섭해서 들락거릴 수 있는 놈은 아우터, 이 영역을 형성한 그 눈알을 지닌 놈뿐이다. 이런 경우라면…… 그냥 갇혔다고 봐야겠지.
‘뭔가 희망적인 소리는 없냐!’
쀼루퉁하니 투란은 한소리 지르면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숨결은 그냥 숨결인 것처럼 코와 목을 들락일 뿐이었다.
감각을 키우며 기다렸지만, 뭔가 달리 걸리는 것도 없었다.
문득 투란은 궁금해졌다.
‘아우터는 이런 걸 만들어놓고 뭘 하지? 들어와서 잡아먹거나 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음? 아무것도?’
―원래 이 화이트 렐름은 이렇게 혼자 덜렁 가두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거든.
‘그럼?’
―이것저것 잡다한 짐승, 괴물을 한자리에 몰아넣는다. 그 한 마리마다 화이트 렐름의 중심이 되어서 서로 엮이지. 그리고…… 이렇게 감금된 녀석들의 할 짓은 한 가지뿐이지.
투란은 흠칫했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것은 항아리 싸움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냥 다 죽이는 걸 구경만 한다고?’
―아니, 이 안에서 생명을 잃거나 파괴된 것은 곧장 아우터의 먹이이고, 양분이 된다. 이 영역이 바로 놈의 배 속 노릇을 하는 거지.
‘꽤나 이상한 놈이네. 그런데…… 이렇게 이상한 녀석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니…….’
문득 세상은 넓고 이상한 괴물은 넘쳐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투란의 뇌리에 스쳐 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없을 거다. 아우터는, 그 계통의 몬스터는 대범람이 터진 시기에 모두 멸종해버렸거든.
“뭐?”
투란은 입을 열고 말았다.
작게 퍼진 소리가 꽤 멀리 간 듯했고, 아주 희미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는 것을 ‘악마의 심장’이 예민하게 포착했다.
―아우터는, 아까 말한 것처럼 차원경계에 자신의 존재를 걸쳐놓는다. 그리고 세계의 구성을 엿보면서, 세계 안에 허용된 물질의 고유공간에 간섭하지. 대범람이 터졌을 때, 세계에는 강력한 혼돈의 충격파가 번졌다. 그 충격파가 아우터의 구성을 근본적으로 뒤틀고 파괴해버렸다. 세계에 닥쳐온 재앙에 몬스터가 먼저 얻어터지고, 다 죽어버린 셈이 되었지.
‘어이가 없네!’
투란은 입을 다물고 기막혀했다.
몬스터의 멸종 치고는 참으로 기괴하잖은가!
세계에 닥쳐온 재앙에 먼저 박살나다니…….
한숨을 참으면서 투란은 생각을 했고, 묻는 말을 꺼낸다.
‘어쨌든, 이 영역인가 하는 것이 무한하지는 않지?’
―무한하지는 않지. 다만, 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야. 네가 아무리 걷고 손을 뻗어내도, 이 영역의 한계에는 도달할 수가 없다. 아우터가 네 크기를 재거나, 가늠해서 이 화이트 렐름을 형성하는 게 아니거든. 너라는 존재의 고유공간, 그걸 왜곡해서 이런 짓을 벌여놓은 거라, 딱 네 한계선을 넘어설 정도의 크기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몬스터 로드도 감금된 채 꼼짝 못 한 적이 있나 봐?’
―물론이지. 몬스터 로드뿐 아니라 마법사도, 오러 윌더도 갇혀서 비참하게 죽어 나온 적이 있다. 우리 일족도 대응책을 찾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 대응책을 나는 물론 쓸 수 없는 거고?’
―높은 수준의 상위 마법을 쓸 자신이 있다면 가르쳐줄 수는 있다만?
‘그냥 마법도 아니고 상위 마법씩이나!’
드라고니아의 뻔뻔한 대답에 투란은 얼굴을 꿈틀하면서 짜증낼 수밖에 없었다.
상위 마법을 쓴다면, 바로 상위 마법사잖은가.
살면서 본 마법사는, 샤오콴 마을의 특이한 환경 속에서도 고작해야 중위 마법사를 본 것이 전부인 투란이었다. 상위 마법사란 희귀한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종자들이다.
그런 종자들이 쓰는 마법을, 최하위의 마법도 그냥 망가뜨리는 게 일인 몬스터 로드에게 써보겠냐니!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가 삐뚤어진 호기심으로 묻고 있었다.
이 역경과 난관에 자신이 도울 것이 없다는 듯, 이제는 그냥 구경만 할 수밖에 없어서 한가하다는 듯한 낌새가 물음 속에 넘쳐났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하며, 조금 심술궂게 당연한 대답을 했다.
‘뭘 어째, 깨고 나가야지.’
―뭐? 깨다니?
드라고니아가 당황했다.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데, 그 속에 담긴 투란의 의지는 너무 확고해서 전혀 방법이 없어 절망하는 낌새가 없었다. 즉, 투란은 진짜로 이 화이트 렐름을 깨고 나갈 작정이란 것인데…….
―아우터가 뭔지도 모르고, 화이트 렐름을 오늘 처음 알고 겪으면서 깰 방법이 있다고?
진지하게 놀라는 드라고니아의 물음이었다.
투란의 입가에 웃음이 살짝 피어났다.
‘어, 메아리를 들었거든.’
―메아리?
투란은 더 이상 드라고니아에게 대답하지 않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목이 두꺼워졌고, 가슴이 회색으로 물들면서 단단해져 갔다.
‘작은 늪’이 투란의 입가와 가슴 언저리에서 물러서며, 몸의 다른 부분으로 흘러가며 덮였다. 곧 한 귀퉁이가 열린, ‘작은 늪’으로 이뤄진 알이 가볍게 진동했다.
투란의 입에서, 그랑츄의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온 탓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곧 메아리를 보다 선명하게 포착했다.
투란의 왼손이 한 방향을 향해 뻗었고, 붉은 털이 휘날리는 팔로 변했다.
팔은 곧 굵어졌고, 투란의 몸만큼 커졌다.
‘작은 늪’이 거세게 가속하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붉은 늑대의 팔과 손아귀 사이로 뭉쳐들었다. 붉은 털에 휩싸인 어깨가 불끈하면서 굵은 힘줄이 돋아나며 덩어리지고, 맥동했다.
투란의 귓가에 그 맥동이 일으키는 뒤틀린 소리가 도달했을 때…….
깊이 들이쉰 투란의 숨결이 멈췄다.
소리 없는 격렬한 충격파가 투란을 덮은 ‘작은 늪’의 알을 출렁이게 했다. 어딘가에 들이받은 다음 되돌아온 반향이었다.
하얗게 채색된 영역의 한쪽이 다른 색채로 금이 갔다.
금 간 곳부터 하얀 티끌, 조각이 흩어지면서 화이트 렐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투란은 그 무너지는 하얀 색채의 한 곳, 일그러지고 우그러진 채로 꺼져가는 둥그런 눈알을 바라봤다.
투란의 왼팔 역시 마찬가지로 푹 꺼지면서 오그라들고 있었다.
거대한 오러 몽거의 덩치에 어울리던 팔이 서서히 사람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퀘이크 블래스터(Quake Blaster), 상위 마법으로 작은 지진을 일으킬 정도의 물질파동을 일으키는 주문이다. 그게 여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주문이지. 어떻게 알았지? 넌 방금 그 원리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드라고니아가 궁금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