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
‘모두 싸우지 않는다.’
투란은 항아리가 아니었다.
몬스터 로드의 힘으로 형성, 구현된 괴물은 무엇보다도 몬스터 로드의 권능을 따른다. 때문에 투란의 몸에 피어난 덩굴줄기들은 성장을 원하지만, 협력하고 있었다. 결코 서로를 압도해 잡아먹는 것이 아니었다. 한쪽이 강성하다 해도 한쪽이 필요하면 그 자리에 대한 침식을 하지 않았다.
심장에 자리 잡았던, 투란의 의식을 구현해 낸 녀석이 본능을 들이대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작게 조각난 악마의 심장들은 아주 가볍게, 투란의 의지를 본능보다 우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협력하며 서로의 경계를 지킨다!
사아악, 사삭.
전해지는 감촉에 투란은 손목을 휘감으려는 풀잎을 봤다.
싹싹 핥다가 감아서 좀 더 조이고 싶어 하는 듯한 꼬락서니였다.
어느새 주저앉은 탓에 엉덩이 쪽으로도, 허벅지 쪽으로도 풀잎들이 아까보다 더 열정적으로 핥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속이 울컥하는 느낌이었고, 투란은 일어서야 했다.
그나마 서 있으면, 발목 언저리에서는 금방 포기하는 듯하니.
‘장화 때문인가?’
상당히 너덜거리고 찢긴 채라 속살이 꽤 드러난 발 언저리였다.
하지만 그 너널너덜한 조각들을 살갗에서 번져 나간 실그물이 붙들고 감아 움켜쥐고 있었다. 장화 부분만이 아니고 투란의 몸에 아직 남아 있는 옷 조각들이 다 그렇게 넝쿨이 살갗을 감으며 확장한 부분에 닿고 붙들린 채였다.
새삼 투란은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깨달았다.
‘살갗만 겨우 덮은 게 아니었네?’
맨살의 감촉, 섬세하게 확장된 촉각 탓에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사실은 맨살이 노출된 것이 아니었다. 구르고 떨어지며 찢기고 남은 옷 조각, 겨우 몸에 걸린 잔해를 악마의 심장이 형성시킨 덩굴줄기가 단단히 움켜쥐고 몸에 붙여 놓았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었다.
그저 당연하다 여긴 것인데,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투란은 한 번 더 자신이 이모저모로 멍청한, 모자란 애송이 몬스터 로드라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몸에서 돋아난 몬스터가 뭔 짓을 하는지 제때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그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실망과 좌절을 오래 품고 끙끙거릴 수도 없었다.
아직 그의 심장은 반쪽이고, 문장이 뿜어 주는 힘—이젠 투란이 대놓고 ‘오러’라고 우기는—으로 버티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서둘러 심장을 되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조각나고 먹힌 몸의 조각을 원형대로 복원시키는 것.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손가락이 잘려 나가 돌아다니는 몬스터 로드가 존재할 리 없었다. 투란은 다리 하나가 없어 강철로 만들어진 가짜를 붙이고 다니는 작자도 봤는데, 물론 몬스터의 기괴한 모양과 능력으로 없어진 부분을 대신할 수는 있어 보였다.
문제는, 그 없어진 부분을 채우는 시간의 한계였다.
한숨과 함께 투란은 똑바로 섰다.
‘누가 그랬더라…….’
“자신의 한계를 똑바로 봐라.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한계를 넘지 못해.”
떠벌리기만 하는 허풍쟁이라고 기억하는, 현자인 척하는 연금술사였던가?
뭔 개소리냐고 샤오콴 마을의 아이들이 멀뚱거리면서 봤지만, 그는 당당하게 일생에 도움이 될 교육을 한다고 나불거렸다. 그거 어디다 쓰냐고 어떤 녀석이 묻자, 언젠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더 당당하게 대꾸했다.
잠시 그 말에 따라 현재 상태를 점검한 투란은 놀림당해서 열받는 기분이었다.
‘도움이 안 되잖아!’
써먹어 버린 반쪽 심장은 회복시킬 방법이 없었다.
어딘가에 알 수 없는 비전, 비술이 있어서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 투란에게는 없다. 그러니 남은 반쪽을 다시 악마의 심장으로 변화시켜 버텨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무한히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의 형상을 무한정 유지할 수 없으니까!
투란도 샤오콴 마을에서 본 적이 있다.
싸구려 부적이라도 효험이 좋은 거니까 괜찮다면서, 자기 그릇에 감히 담을 수 없는 몬스터를 삼켰던 몬스터 로드. 그자는 결국 폭동을 일으켰다. 사람의 탈을 완전히 찢어 버린, 그냥 몬스터 같던 그 모습. 몇 시간을 날뛰다가 지쳐서 쓰러졌고, 바로 묶여서 뒈지게 맞았다.
만약 폭동을 일으킨 상태로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면 영원히 괴물이 된 채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가 아니며, 몬스터에게 굴복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었다. 문장이 지닌 고유 마력이 몬스터를 형성하고 구현해 낼 뿐이며, 고유 마력의 용량에 따라 유지 시간, 형성시킬 수 있는 범위, 능력이 결정된다.
이 과정을 간단명료하게 말하면, 결국은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몬스터의 힘을 발휘하고, 그 형상을 유지하는 일에 몬스터 로드는 문장으로부터 발생하는 고유 마력을 소모한다.
그 소모량은 드러낼 몬스터에 따라서, 몬스터 로드의 역량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나 어던 경우건 이를 무한히 지속시킬 수 있는 자는 없다!
투란은 한 손으로 가슴을 살살 문지르면서, 다른 손 엄지를 입에 물었다.
‘아얏!’
평소 살살 깨물던 것과 다르게, 이가 꽤 심하게 물어서 바로 아픔을 느꼈다.
엄지를 빼고 보니, 우둘투둘하니 실그물이 돋아 잇자국에서 샘솟는 핏방울을 삼키고 살을 메우고 있었다. 혀끝에 걸린 핏방울은 이와 혀 언저리에 돋은 실그물이 아주 신나게 쭉쭉 빨아 삼켰다.
‘이놈은 동족이고 뭐고 없이 먹는 놈이었지.’
잘라 놓으면 둘이 되기도 하지만 둘을 다시 한자리에 두면 서로 잡아먹는다고 거침없이 움직이기도 하는 것, 그 성질머리 때문에 악마의 심장이란 이름이 붙지 않았나 의심한 적도 있잖은가?
자기 손가락을 먹을 수 있는 거라 여긴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몬스터다!
‘반쪽, 뛰지도 않는 심장으로 많이 움직일 수 있을까?’
투란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장을 대신하는 힘, ‘오러’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문장의 고유 마력은 언제 바닥날까?
그보다 먼저 배고픔에 쓰러져 죽을 수도 있잖은가!
사악, 사사삭.
발목을 슬쩍 건드리며 핥는 풀잎에 투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날름대는 풀잎은 두꺼운 장화 조각이 남은 자리는 포기했는데, 찢어져서 속살이 가까운 자리를 새로 발견하고 다시 의욕을 불태우는 모양이었다.
투란은 옆으로 한 걸음 옮겨서 일단 찢긴 곳이 쉽게 닿지 않도록 하려 했다.
그 가벼운 움직임이 바로 현기증을 일으켰다.
‘어?’
핑하고 눈앞이 돌고, 투란은 하마터면 그대로 엎어질 뻔했다.
겨우 몸을 버티고 서니, 왜 이러는가가 저절로 깨쳐진다.
가슴에 머물면서, 심장이 반쪽 난 상황에도 투란의 생명을 지키고 정신 줄 놓지 않게 해 주는 이 ‘오러’는 너무 약했다. 생명과 정신을 지키는 데 거의 전력을 쏟아붓느라, 뛰지 않는 심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가 없었다.
뛰지 않는 심장으로 움직이려 하니 온몸이 삐걱대며 어지러운 것이 당연한 결과!
가슴에 맴도는 여린 힘만으로 죽지 않는 것이 기적이었다.
‘오러도 키워야 한다더니, 그래서인가?’
오러 사인이든 오러 마크든 새겨졌다고 해서 오러 윌더가 바로 괴물 같은 힘을 내지는 않는다 했다. 새기고 바로 그렇게 날뛸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암흑가의 블랙 메이지가 만든 가짜 오러 사인, 생명력을 깡그리 소모하게 강요하는 일회용 주문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그거 잘못 새기고 신세 망친 작자가 겨우 살아나 몸을 고치겠다고 약을 찾아 샤오콴 마을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이라면 이 세상이 허용하지 않는 기적의 약물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샤오콴 마을을 들락이는 이들 중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투란은 그렇게 스쳐 가는 이들을 얼간이라 부르며 욕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제대로 된 오러 사인을 새기고 오러를 단련하여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 되지도 않는 짓거리를 하다가 벌받은 거지!”
‘이게 진짜 오러라 해도 이제 갓 깨어난 것…….’
투란은 입을 꽉 다물어서 다시 엄지가 입술 사이로 들어가 깨물리는 것을 막았다. 제 손가락을 씹어 먹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으니까. 잡아먹어 모자란 부분은 심장만으로 충분하잖은가!
‘심장이 필요해. 버티는 데까지 버틸 수밖에 없네.’
투란은 이제 이를 가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면서, 자신의 반쪽짜리 심장을 향해 염원했다. 다시 악마의 심장이 되라고!
두근! 쾅!
‘으아!’
피의 격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그 피의 격류를 일으킨 악마의 심장도 이전보다 훨씬 강렬했다.
마치 어딘가로 쫓겨났다가 겨우 돌아온 듯, 다시는 쫓겨나지 않겠다는 듯, 민활하게 투란의 가슴을 차지하며 없어진 부분 따위는 바로 채워 버릴 기세로 넝쿨을 활짝 펼쳤다.
심장이 절반가량 없어지며 끊어졌던 혈관이 다시 이어졌고 전보다 더 튼튼한 혈관이 금세 자리를 잡았다. 악마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침에 따라 피 흐르는 소리가 폭풍이 몰려오듯이 투란의 귓속을 두들겼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 제각각 돋아나 협력하고 교류하던 넝쿨 가닥이 일제히 이어지면서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큰 줄기에 합류하고 복종해 한 줄기처럼 맥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투란은 이 강렬한 격동을 통해 분명하게 느꼈다.
‘왕이다!’
그의 심장을 먹은 악마의 심장은 왕이었다.
그의 몸을 자신의 영토, 왕국으로 삼은 왕이었다.
투란에게서 생겨난 다른 미숙하고 모자란 악마의 심장 넝쿨 가닥들은 왕의 소질을 간직했지만 왕이 되지 못한 신민이고, 언젠가는 왕을 대신할 수도 있는 왕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왕의 치세를 받아들인 충실한 시종에 불과하니 언제든 왕을 위해 희생할 수 있기도 했다.
―희생은 기억된다.
‘응?’
또렷하게, 악마의 심장이 투란의 의식을 흉내 내면서 자신의 본능을 사유하는 언어의 형태로 전했다.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전하는 듯한 이 낌새가 투란을 조금 당혹시켰다.
하지만 곧 투란도 그 의미를 깨달았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무심결에 입으로 가져간 엄지, 거기서 굵게 휘어 나오며 돋은 손톱!
이렇게 손톱을 키우는 방식은 투란의 몸에서 찾아낸 것이 아니잖은가.
‘아, 기억!’
투란의 손톱에도 가능성은 간직되어 있지만, 사람의 몸에서는 절대로 구현될 리가 없는 굵게 휜 손톱이었다. 이런 성장법은 투란에게 엉겨 붙었던 다른 악마의 심장을 삼키고, 그 녀석의 기억을 물려받은 것!
덕분에 아까처럼 엄지를 깨물어 먹을 뻔한 위기를 자연스럽게 넘겼지만, 혀끝이 쓴 게 몹시 맛이 없다는 점은 투란을 꽤나 실망시켰다.
‘맛이 없으니 딴 놈들도 못 먹는다는 거냐!’
스스로를 향해 괜한 시비를 걸다가, 곧 고개를 젓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에서 두근거리는 심장과 호응해 들이쉰 숨결은 꽤나 깊이 스며들며 온몸으로 번졌다.
사삭, 사사삭!
열심히 발목을 핥으며 어떻게든 휘감으려 드는 풀잎의 존재도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 이걸!”
투란은 울컥해서, 힘찬 숨결과 함께 불만을 소리 내며 발목을 확 채고 발을 높이 차올렸다.
후두두득.
풀잎은 아까랑 다르게 집념을 품은 듯, 그의 발목에 꽉 감겨 있었다.
그 바람에 뿌리째 뽑혀 나온 꼴이 되었고!
‘이놈도 뿌리가 넝쿨…… 응?’
투란은 차올린 발을 좀 더 높이 들었다.
버티는 쪽 다리근육 속에서 넝쿨의 실그물이 번지고 귓속에도 꼼지락대는 미세한 넝쿨 가닥의 소리가 울리는데, 한 발을 높이 차올린 자세로 다른 한 발로 버티면서도 아무렇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섬세한 실그물 덕분에 근력이 강화되고 균형 감각도 더 정교해진 것이다.
‘버티는 데까지 버티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야겠군.’
씁쓸한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 몬스터 악마의 심장은 근본적으로 진짜 자신의 심장이란 점이 조금 위안이 되기는 했다.
―먹자!
‘……에?’
투란의 기분과 다른, 냉정하고 빠른 현실감각을 통한 또 다른 의견이 바로 가슴에서 툭 튀어나왔다.
먹자는 대상은 차올린 발목에 감겨 대롱거리는 풀뿌리, 악마의 심장처럼 구근 모양을 하고 있는데 더 단단하면서 굵고 통통한 것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아, 이 녀석이 정말!’
투란은 입가에 고이는 침이 자신의 진짜 식욕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악마의 심장이 식욕을 자극한 건지 궁금했다.
물론 그런 의문은,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을 향해 식욕을 불태우는 풀잎의 뿌리를 두 손으로 꽉 쥐고서 이로 뜯고 씹어 삼키는 데 방해가 될 것은 아니었다.
으적, 와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