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0)
‘메아리가 돌아왔다니까, 어딘가에 단단한 절벽처럼 막힌 곳이 있잖으면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아.’
투란은 다시 보이는 굴속의 풍경을 보며 대답했다.
하얀 눈알을 푹 꺼지고 쪼그라든 꼴로 검은 가죽 속으로 사라져갔다.
두 품종 드레이크의 눈알은 여전히 부릅뜬 채로 투란을 노려보고 있었다.
왼쪽 팔이 화끈했고, 조금 전에 뿜어낸 충격파가 하얀 눈알뿐 아니라 투란에게도 심한 피해를 입힌 것을 느끼게 해줬다. 하지만 그 상처는 금방 회복될 터였다. ‘악마의 심장’의 넝쿨로, 붉은 늑대의 회복력으로!
―단단하기는 하지만, 절벽이라고 하기는 곤란하지. 화이트 렐름의 경계를 이루는 것은 아주 작은 크기의 눈동자 정도에 불과하다. 그 속에서는 하얀 색채 속에 숨어 있어서 정말 찾기도 까다롭다고. 투란, 너 조금 전에 정확하게 겨냥을 했잖아. 그리고 그 거리를 관통하는 파괴력을 쏘아냈다. 어떻게 겨냥한 거지?
‘메아리. 내가 좀 예민해서 메아리를 들으면, 어디서부터 소리가 돌아오는지 금방 알거든.’
투란은 무거워지는 걸음을 잠시 멈춘 채로,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원래 알아챘던 작고 여린 메아리도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놀라서 낸 소리 덕분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잔뜩 달아오른 예민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을 때, 돌아온 그 작은 소리가 투란을 인도했던 것이니…… 나름대로 있는 그대로의 설명을 한 셈이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그 정도로 넉넉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그렇게 된 거군.
‘흠?’
너무 쉽게 납득하는 모양이라 투란이 도리어 희한하게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딴지를 걸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새로운 눈알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눈동자 없는, 새빨간 눈알이었다.
‘저것도 아우터?’
투란으로서는 조금 전의 하얀 눈알을 떠올리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답은 아주 심드렁하고, 늘어진 말투로 돌아왔다.
―저거? 파이어 아이(Fire Eye).
‘응?’
너무 한심하다는 낌새에 색다른 기분이 솟구치잖은가!
하지만 곧 투란은 그 까닭을 몸으로 겪으면서 알 수 있었다.
붉은 눈알은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처럼 보이더니, 그냥 불을 뿜어냈다.
정말로 불꽃을 이글거리면서, 그냥 뿜어낼 뿐이었다.
그 시야에 담긴 모든 것을 향해, 그저 마구 불길을 뿜어낼 뿐이었다.
‘작은 늪’은 소용돌이치면서…… 이 불길을 무시했다.
삼킬 것도 아니고, 튕길 것도 아니란 듯…….
불길은 그냥 스쳐 가다가 흩어질 뿐이었다.
‘그냥 불붙어서 불을 뿜고 끝?’
―그래.
‘블러드 레이가…… 눈깔꽃이 더 세잖아?’
어이없어서 투란은 이렇게 따질 수밖에 없었다.
―잔꾀가 없는 바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닌가? 이 녀석은…… 생각이 없다. 그냥 닥치는 대로 들이대는 것뿐이고 생각할 때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어딘가 근엄한 척하면서 대답해오고 있었다.
투란은 그 소리보다는 불길 쪽에 더 주의했다.
‘멈추질 않네?’
붉은 구슬처럼 타오르는 눈알은 계속해서 불길을 뿜어내서 투란의 주변을 휘말아버리고 있었다. 거의 투란의 주변, 3, 4미터 안쪽은 모조리 불길로 채워 버리겠다는 듯했고 덕분에 ‘작은 늪’의 소용돌이 주변으로 불의 소용돌이가 보일 지경이었다.
몸에 가해져 오는 괴물의 오러 때문에 잠시 멈추고 구경하는 태도였던 투란이었지만, 이 광경에는 의아함을 품었다.
블러드 레이도, 눈깔꽃도 퍼붓다가 멈추고…… 급하다 싶으면 다시 터뜨렸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계속 불길을 뿜으면서 발악하는 것은 이제까지 상황과 비교할 때, 약간 어긋난 느낌이었다. 생각이 없다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는 두고 날뛰는 것 같았는데…….
문득 투란의 눈길이 부릅떠진 채로 껌벅이지도 않는 드레이크의 눈알을 향했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선명하게 뭉쳐서 눈동자를 만들려는 듯했고, 불그스름한 광채도 마찬가지였다. 드레이크의 눈이 저렇게 된다는 것은…….
‘자세히 보고 있어? 아주 자세히!’
투란은 긴장했다.
드레이크의 시각은 마음만 먹고 집중하면 수십 킬로미터도 거뜬하게 넘어서 관찰할 수 있었고, 아주 작고 세심한 티끌을 거대한 바위처럼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눈이 부셔서 눈이 망가질 듯한 광휘라도 관통해서 볼 수도 있고…….
‘작은 늪’의 소용돌이, 거기에 닿아 소용돌이치는 불길.
투란은 그 너머에서 꿈틀거리면서 맴도는 검은 진창과 가죽의 윤기를 봤다. 그리고 그 검은 색채 속에서 흐릿하게 느껴지는 뭔가 비어 있는 듯한 촉감…… ‘악마의 심장’의 예리한 지각으로 겨우 잡을 수 있는 기괴한 감각을 알아차렸다. 이 감각은 조금 전에 겪었던 화이트 아우터, 그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체험한 것과 닮았다.
‘이런!’
투란의 정신이 집중되었고, 몬스터 엠블럼을 세게 두들겼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이 불렀다.
느닷없이 고양(高揚)되고 집중된 투란의 마음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칭의 문장’이 고요하고 강렬하게 반응하며 고유 마력의 위용을 드러냈다.
‘작은 늪’이 중심을 잃은 것처럼 뒤틀렸고, 괴물의 오러가 길을 잃었다.
불길이 거세게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으스러졌고, 검은 색채가 투란의 주변에 가늘게 길게 이어진 그물처럼 드러났다. 검은색의 그물은 불길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것처럼, 투란의 주변을 넓게 감으며 가득 채운 채였다.
그물은 시커먼 칼날처럼, ‘작은 늪’이 사라지고 괴물의 오러가 뒤틀리며 드러낸 틈을 보다 검게 채색하며 투란에게 밀려들었다.
소리 는 금빛의 일렁임이 시커먼 색채의 그물, 칼날처럼 들이닥치는 시커먼 틈새를 맞이했다. 금빛은 두꺼워졌고, 거대한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투란을 집어삼키는 것은 오직 금빛뿐이었다.
시커먼 색채는 금빛과 마주치면서 지워지고, 으스러지며 사라져야 했다.
금빛은 찰랑거리며 일렁였고, 가느다란 실 가닥처럼 흐르면서 얌전히 투란의 형상 위로 자리 잡았다. 그 속에서 두꺼운 뼈로 된 듯한 가면이 스윽 튀어나왔다. 엇갈려 묶어놓은 듯한 실 가닥이 가로지르는 타원의 눈언저리가 또렷하게 금빛의 실 가닥 사이에서 보였고…….
실이 갈라지며, 금빛 가닥 사이에서 눈이 보였다.
살랑거리는 금빛과 전혀 다른 강한 금빛이 끊어진 실 가닥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흐르던 검은 진창이 멈췄고, 눈길을 보내던 모든 눈동자가 멈췄다.
불을 토해내던 붉은 눈알은 달아오른 채로, 타오르는 채로 멈췄다가 자신의 불길에 그대로 녹아 뭉개졌다. 골든 드레이크의 푸르스름한 눈알, 레드 드레이크의 불그스름한 눈알은 초점을 잃고 고정된 꼴이었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눈동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멈췄다.
천천히 색다른 금빛이 보다 뚜렷해지면서, 눈꼬리를 따라 매끈한 금박으로 쌓인 뿔이 솟아났다. 눈이 둘이기 때문이라는 듯, 뿔도 양쪽 눈꼬리에 제각각 하나씩 솟아나는 모습이었다.
후우읏.
길고 묘한 숨소리가 울렸다.
‘블랙 아우터라는 것도 있나?’
투란이 불쑥 던진 물음은 드라고니아에게서 분명한 답을 끌어냈다.
―블랙 슈레더(Black Shredder), 그렇게 부른다. 아우터 계통의 몬스터 맞아.
뿔이 흔들거리면서 주변을 향해 금빛의 눈동자가 환하게 빛났다.
금빛의 시야가 넓어졌고, 더 많은 광경을 눈동자에 담았다.
흐느적거리던, 시야 밖에 있던 검은 진창이 눈동자에 비치면서 바로 멈춰버렸다.
투란은 이제껏 보던 것과 아주 다른 검은 진창의 모습에 놀랐다.
‘속이 꽉 차 있네?’
검지도 않았다.
뭔가 반짝거리는 가는 선, 수백 가닥…… 수천 가닥은 될 듯한 은빛 실이 검은 진창 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건…… 저 이상한 놈의 신경망(神經網)이겠군. 고르고니아의 눈에는 보이나 보군. 신경망 조직이…….
‘흠, 저것 때문에 신경……어쩌고라고 한 거구나.’
―신경유체! 저게 흘러다닌다고, 유체!
‘그래, 이제 섰어. 더 흐르지 않네. 멈췄어.’
투란은 조금 더, 금박의 뿔을 흔들며 주변을 둘러봤고…….
후우우우―!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눈을 가늘게 끔벅거렸다.
곧장 천둥 같은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투란의 뇌리를 흔들었다.
―졸지 마! 이 자식아, 지금 잠들 때냐!
‘어? 음, 내가 졸았나?’
딴청 피웠지만, 투란은 얼굴을 손으로 긁으면서 분명히 느꼈다.
작은 아기 손처럼 생겼으면서도 견고한 각질이 무늬 짓는 손의 이상한 촉감…… 잠이 살짝 달아나는 느낌이 분명했다.
어슬렁어슬렁, 투란은 움직였고 주변에 자신을 휘감고 있는 시커먼 색채, 얼핏 보면 저 검은 진창이나 다름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신경망이라는 은빛은 전혀 없는 것을 툭툭 치고 손으로 잡아봤다.
티끌, 조각을 뿜어내는 균열(龜裂)이 시커먼 색채의 가지를 타고 번져갔다.
금빛을 살랑이는 투란의 주변에 번져 있는 시커먼 그물의 절반가량이 순식간에 균열과 함께 흩어졌고, 균열은 바닥을 향해 빠르게 번져가며…… 새카맣게 번들거리는 눈알에 도달했다.
시커먼 눈알은 균열과 닿는 순간, 푹 꺼지면서 우그러졌다.
화이트 아우터의 하얀 눈알처럼 망가지는 모양이었다.
‘왜, 블랙 아우터가 아니야?’
어슬렁거리는 한 걸음을 내디디면서 투란이 다시 불쑥 물었다.
―화이트 아우터의 변종이다. 그 이상한 능력도 화이트 아우터의 화이트 렐름과 같은 기반을 지녔지만, 변이된 몬스터가 블랙 슈레더야. 보다시피…… 녀석은 렐름을 형성하지 않고, 자신의 간섭능력을 직접적으로 물질의 고유공간에 개입시키지. 그래서 토막내고 갈아버려. 때문에 붙은 이름이 슈레더. 색이 검은 아우터이니까, 화이트 아우터의 이름을 그대로 바꿔서 블랙 슈레더가 된거야. 거의 모든 물질을…… 졸지 마!
설명의 끄트머리에는 버럭 외치는 소리가 바로 달라붙었다.
투란은 흠칫했고, 머리를 싹싹 휘젓듯이 흔들었다.
금빛의 눈동자가 크게 뜨이면서 주변을 향해 새로운 눈길을 던졌다.
그 눈빛에 닿은 시야 속에서 새롭게 꼼짝도 못 하고 굳어지는 검은 진창과 눈알 무더기가 잡혔다.
‘어…… 이상하네, 자꾸 긴장이 풀리면서 졸립잖아.’
투란은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점검하며 소리 없이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가 이 상태를 아주 냉정하게 판단한 듯이 외친다.
―고르고니아의 게으름이잖아! 스테노아의 게으름이라고! 어지간한 것에는 끄떡도 없는 이 황금 모피랑, 어지간한 놈은 노려보는 것만으로 전부 돌처럼 굳어지게 하는 눈동자!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어슬렁대며 늘어지려고 하는 버릇! 이 버릇이 바로 스테노아의 본성이라고! 휘둘리지 마!
“어, 어어.”
가면 아래에서 입을 벌리며, 투란은 다시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후우웃, 카릉.
살짝 졸다 내는 코 고는 소리 닮은 숨이 쉬어졌고…….
―일, 어, 낫!
괴성이 뇌리를 울렸기에 투란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설마 나 지금 잠깐 잠든 거는 아니겠지?’
―십 분, 늘어져 잤어!
‘켁.’
놀란 마음으로, 투란은 재빠르게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눈빛을 번뜩였다. 주변의 멈춰진 광경은 여전히 멈춰진 채였고, 그 위를 덮듯이 밀려오던 새로운 검은 진창의 파문도 덧씌워진 채로 멈췄다.
그 꼴을 보자, 투란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으, 졸려! 자고 싶어! 젠장, 순수한 고르고니아로는 안 되겠어! 잠을 참을 수가 없어! 미친 듯이 졸려!’
버럭 자신을 향한 외침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드라고니아의 황당해하는 대꾸가 나온다.
―왜 순수한 고르고니아를 형성한 건데? 여태 몬스터 로드라고 전부 섞어 쓰고 있었잖아!
‘에, 저 시커먼 게 너무 무섭게 느껴졌거든. 빈틈없이 견디려다 보니까.’
약간 멍하고 뚱하니, 졸음이 가득한 채로 투란은 웅얼대며 대답했다.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분명히 블랙 슈레더라면, 아다만투스의 석벽조차도 금가게 만드니까. 물질인 이상, 녀석의 날카로움은 피할 수가 없어.
‘그래? 그런데 얘는 싹 무시하고 견뎌내네?’
새삼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금빛 털을 보면서 투란은 신기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금빛의 모피는 작은 섬을 통째로 감싸서 눈깔꽃이 퍼붓는 장렬한 섬광의 폭우조차 어쩌지 못하게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물질을 어쩌고 한다는 블랙 슈레더의 날카로운 위력도 그냥 무시했다.
―그야, 스테노아의 금빛 모피 역시 고유공간의 구성에 개입하는 성질이니까. 다른 것의 간섭을 배제하지…… 내장 쪽으로도 이 모피가 돋아 있었으면, 너의 사냥은 아마 완벽하게 실패했을 거다.
‘없는 거 확인하고 했거든?’
투란은 투덜거리면서 졸음을 견디고, 고르고니아의 심장을 느꼈다.
몸의 한복판, 등뼈 쪽으로 기울어진 듯이 자리 잡은 심장의 고동은 느렸고, 귀 기울이며 느끼면 잠들기 딱 좋았다.
―졸지 마!
‘어, 그래. 이 아르곤인가 뭔가 닮은 놈! 잡아야지!’
투란은 즉시 졸음을 견딜 수 있도록, ‘악마의 심장’을 몸 안에 형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