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1)
Chapter 27. 아르고누스
‘헐…… 이게 뭐야.’
투란은 자신의 한 부분이 마냥 신나게 잠든 것을 느껴야 했고,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몸에 맴도는 활력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래도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에게는 잠이 필요한 것인가 싶었다.
―자는 거냐, 깬 거냐?
투란보다 더 기막혀하는 소리로 묻는 드라고니아였다.
‘잠깐, 기다려봐.’
투란은 일단 드라고니아의 물음을 치워놓고 자신의 상황에 집중했다.
먼저 블랙 슈레더, 화이트 아우터의 변종인 아우터 계열 몬스터란 놈이 노리던 궤도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투란이 뿜어낸 ‘작은 늪’의 소용돌이, ‘어비셜 볼텍스’의 엄청난 축소판이 지닌 궤적을 가르기 위해 그 틈새의 궤도를 노리고 있었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투란은 바로 ‘작은 늪’을 뒤틀었고, 노림수가 들킨 저 검은 눈알은 거침없이 공격해 들어왔다.
그냥 블랙 슈레더의 능력으로 갈아버리기 위해서……!
억지로 투란이 뒤틀어 버린 ‘작은 늪’이 소용돌이 오러를 이용해 버텨봤지만, 역시 갈라졌다. 이미 거의 본능적인 냉정함으로 이를 예상한 ‘투란’, ‘악마의 심장’ 속에 자리 잡은 투란은 이에 대비해 끄집어낼 수 있는 최고의 대책을 꺼냈고, 버텼다.
그 최고의 대책인 스테노아, 고르고니아의 금색 눈동자는 신경유체인가 뭔가라고 하는 검은 진창과 주변의 눈알을 모조리 돌처럼 굳게 했다. 더 이상 이 주변에서 투란을 보는 것이 없도록, 주변을 잔뜩 훑어본 다음에…… 투란은 스테노아의 잠에 취해들어갔다.
‘그런데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다?’
투란은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 번 되새겼고…… 느꼈다.
‘악마의 심장’이 고르고니아의 몸 안에서 활기차게, 하지만 아주 느리게 넝쿨을 형성하며 번져가는 과정이 느껴졌다. 넝쿨줄기로 변화하는 내부의 힘줄, 핏줄은 ‘악마의 심장’이면서도 동시에 고르고니아의 혈관(血管)이며, 육신(肉身)의 조직이었다.
우득, 뚜득.
투란이 집중하는 사이에 몸이 변화를 증폭시켰다.
구부정했던 고르고니아의 몸을 대신하듯, 반듯하게 펴진 사람의 몸과 닮은 체격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 살갗과 몸을 덮은 그물 무늬의 각질은 여전히 남겨져 있었다. 얇고 가늘던 팔다리도 굵직하게 변하며 보다 탄탄한 살집과 힘줄을 지닌 형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고르고니아의 살갗과 황금빛 모피를 덮은 채였다.
이제는 어슬렁거리는 대신에 뛰고 달리는 쪽이 더 어울려 보이는 모습이 돼 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투란은 이런 외형의 변화보다 내부의 변화에 더 흥미를 느끼고 집중하고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아주 더디게, 뿌리를 키우며 넝쿨줄기를 뽑아내는 대신에 원래 있던 힘줄과 핏줄이 이어지며 변화하는, 몬스터 로드의 방식으로 고르고니아의 내부를 차지해가고 있었다.
‘과연, 이래서 사냥하는 동안에는 스며들 수가 없었구나.’
저절로 이해가 되고 있었다.
금빛 모피는 어지간해서는 뭔가 달라붙지 못하게 흔들거렸었다. 그래서 몇 달에 걸쳐 뿔에 고리를 걸고, 몸의 곳곳에…… 심지어 굵어 보이는 털가닥마저 섬세한 실 가닥의 줄기로 감으며 매달려야 했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고르고니아의 몸에 골고루 자리 잡은 얼룩무늬처럼 붙여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고르고니아의 체내로, 입과 항문(肛門)을 통해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스며들었어도, ‘악마의 심장’ 줄기는 고르고니아 몸 안에서 바로 자리 잡을 수도 없었다. 바로 소화되고, 녹아버렸으니까. 거기에 저항할 수 있는 껍질과 줄기를 이루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작고 미세한 줄기를 한순간에 키워서 폭발적인 ‘어비셜 볼텍스’의 오러를 뿜어낼 양분을 확보해야 했고…….
이모저모로 8개월을 소모해야 했던 고르고니아 사냥이었잖나.
그동안 관측해왔던 고르고니아의 기묘한 게으름, 그것이 지금 투란을 찾아왔다. 한데 이게 이유 없는 게으름이 아닌 듯했으니…….
잠과 함께 고르고니아의 금빛 모피가 성장하며 두꺼워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블랙 슈레더의 공세에 대항하면서 살짝 소모된 듯한 느낌이 착각이 아닌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고르고니아의 황금 모피도, 진짜 황금처럼 접촉에 따라 마모되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이라서, 잘 먹고 잘 자면 그 소모된 양의 모피는 금세 회복되고 보다 더 두꺼워지겠지만!
‘그래서 상처가 남아 있었구나. 이 녀석…… 오래 살면서 먹고 자는 시간을 제대로 채울 수 없었을 때 상처를 입은 거였군. 다치지 않지만, 회복은 아주 더디고…….’
새로운 이해가 투란의 마음에 스며왔다.
몬스터 에센스를 삼키고 투란이 문장 속에서 봤던 고르고니아, 스테노아는 완전한 형상이었다. 투란이 사냥해서 잡았을 때 봤던, 그 상처의 흔적 따위는 전혀 없이 순수한 그 정수로부터 형성한 모습이기에!
하지만 투란이 어설프게 고르고니아의 힘을 사용하다 상처를 입는다면…….
‘그래서 자려고 했군.’
스테노아는 새로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영양을 확보하고 자는 일을 하려 했다. 그 본능적인 의지에 투란은 잠깐 넘어간 것이다. 몬스터가 지닌 자기보호의 본능, 거기에 투란 스스로 지닌 방어의 본능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셈이기도 했다.
그 결과, 잠든 채인 스테노아의 상태는 아주 빠르게 강화되고 있었다.
그 심장은…….
‘등뼈에 달라붙었나?’
구조적으로 사람이나 짐승과 달랐다.
한쪽으로 치우친 자리가 아니라, 등뼈의 위쪽에 바싹 붙은 채로 몸의 정중앙을 따르고 있는 꼴이었다. 거의 맥동을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는 저절로 몸 안을 알아서 기어다니듯이 흐르는 것도 괴상했다.
‘그러고 보니, 이건 드레이크와 닮았네.’
문득 투란은 기억해냈다.
드레이크 역시 가슴 양쪽에 넓게 자리 잡은 폐의 중심 정도 되는 자리에 심장이 있었다. 그 숨결과 함께 심장은 열심히 맥동하는 듯했지만, 피의 흐름보다는 빛과 바람을 몸에 골고루 퍼뜨리는 것이 목적인 듯한 박동이었다. 느리게, 피는 알아서 돌고 조금 다른 파동을 퍼뜨리는…….
우득, 우드득.
투란이 목을 가볍게 돌리니, 바로 굳어진 뼈마디가 풀리는 것처럼 상쾌했고 듣기 불안하게 하는 굵직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스테노아의 잠은 깨지 않았다. 그야말로 머리 위는 잠든 채인데 몸은 슥슥 움직일 수 있게 된 듯한 상태!
―투란?
기다리다 지친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다시 한 번 투란에게 들려왔다.
‘어? 헤에…… 확실히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구나.’
투란은 경쾌하게 답을 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면서 대꾸하냐!
노골적으로 따지고 싶어 하는 소리가 다시 투란에게 들렸다.
살짝 키득거리는 기분으로 투란이 대답한다.
‘몬스터 로드는 머리가 빈 몬스터로도 변한다고. 그래도 생각할 수 있고, 자기 맘대로 움직이지!’
―그러니까, 지금 뇌수 부분은 다 재워놓은 채로 악마의 심장으로 사고기능을 유지한 채로 움직인다고?
‘음, 그렇지, 그럴 거야.’
뭔가 꼼꼼하게 따지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어려워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약간 건성으로 답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거의 감긴 채인 고르고니아의 눈이 아닌 ‘악마의 심장’의 감각으로 주변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바로 고르고니아의 눈을 떠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주의를 게을리할 수도 없었고 마음 놓고 여기를 나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투란은 자신이 본 신경유체인가의 흐름을 거슬러 가듯이 내디뎠다. 그러는 사이에 점차 깊이 잠이 들어가는 듯, 두 눈은 감겨갔고…… 어느 순간, 순수하게 ‘악마의 심장’이 주는 감각으로만 주변을 살핀다고 여겨지는 때가 왔다.
‘젠장.’
바로 저편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진창이 새로운 눈알을 뽑아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독자적인 능력의 ‘악마의 심장’은 저것이 거품처럼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유리나 크리스털 같은 느낌의 눈알인 것도 파악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가루 같은 빛…… 너무나 작으면서도 잘 성기고 얽힌 채로 육각형(六角形)을 맞물리며 뻗어오는 차가움!
금빛 모피가 보다 짙은 황금색으로 물들면서 투란의 몸을 더 깊이 그 속에 파묻는 것처럼 살랑거렸다. 그 위로 새하얀 눈보라가 희미한 백색의 광채를 동반한 채로 몰아닥쳤다.
하얀 얼음이 순식간에 투란의 주변을 채색했고, 바닥에서 석순을 닮은 얼음이 거꾸로 치솟는 빗줄기처럼 굵직하게 치솟아 올랐다.
파앗, 촤아악!
얼음이 깨지고 흩어지다가 다시 희미한 광채 속에서 굳어졌고, 어느새 투란은 얼음 벽 속에 갇힌 듯한 꼴이 되어 있었다.
그 꼴로 투란은 한쪽 눈을 크게 뜨며, 두 뿔을 휘젓듯이 얼굴을 검은 진창 속의 크리스털 눈알 쪽으로 들이댔다.
금빛 광채가 희미한 백색을 물들이듯이 번져갔고…… 크리스털 눈알의 주변에서 찰랑이던 검은 진창이 굳어졌다. 깨끗한 거품처럼 맑았던 크리스털 눈알에 금이 갔고, 맑은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조각난 눈알을 허공에서 움켜쥔 것은 희미하게 남아 있던 백색 속에서 엉겨가는 얼음이었다.
얼음벽 속에서 투란이 떴던 한쪽 눈이 감기고, 뿔이 앞뒤로 흔들거렸다.
쩌적! 째앵!
얼음벽이 깨지면서, 투란의 상체가 지나올 정도의 구멍이 열렸다.
짙었던 황금색이 엷어지면서, 금빛 모피가 살랑거렸다.
투란의 몸을 얼려버리기 위해 스며들던 얼음이 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투란은 무릎을 내지르며 발을 뻗었다.
하체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도 깨지면서, 온전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문 같은 구멍이 생겨났다.
후우욱!
크게 숨 쉬는 소리와 함께 금박 입은 뿔이 거칠게 흔들렸다.
감겼던 두 눈이 실금처럼 뜨였고, 금색 눈빛이 여리게 흘러나왔다.
‘완전히 눈 감고 자는 거는 포기하자고.’
눈을 띄우고 있는 것은 ‘악마의 심장’ 줄기가닥이었다. 이는 실밥 같은 눈의 흔적을 따라 돋아난 줄기가닥이 작은 창살처럼 눈꺼풀을 억지로 받쳐 올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르고니아의 눈빛은 미약하나마 새 나갔고, 그 시각은 투란에게 주변을 보게 해줬다.
‘두껍네.’
투란은 신경유체가 보다 밝아지고 굵은 덩어리로 뭉쳐 있는 광경을 살폈다. 마치 좀 더 이 검은 진창의 중심에 다가서는 느낌이잖은가.
―방법이 바뀌었다. 녀석은 더 이상 널 파괴하는 것보다, 그냥 그 자리에 묶어두고 못 오게 막을 작정을 하고 있다.
‘응? 그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지적에 조금 전 상황을 더듬었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느꼈다. 검은 진창도 저 터져버린 눈알을 중심으로 조금 거센 파문을 만들면서, 얼어버린 투란을 멀리 밀어낼 듯한 모양을 꾸미다가 멈춰진 채였다.
고르고니아의 눈빛에 굳어지지 않았다면, 얼음벽 속에 박히듯이 갇힌 투란은 이 바닥의 흐름에 따라 멀리 실려나갔을 것이다. 어쩌면 들어온 구멍으로 밀려나서 여전히 잘 떨어져 내리는 저 밖의 폭포를 따라 버려졌을 수도 있었다.
‘슬슬 제대로 꾀를 부린다는 거네.’
약간 곤란하다는 생각이 번뜩 투란의 생각 속에 스쳐 갔다.
이번의 상황을 되짚어 보니, 이제는 단순히 불쑥불쑥 튀어올라오는 눈알의 힘만으로 어쩌겠다는 짓이 아니었다. 눈알과 함께 저 검은 진창을 함께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당장 검은 진창이 투란에게 위협은 아니었지만…….
‘가죽 속에 스며들고, 가죽째로 요동도 친단 말이지. 게다가 잿빛바위 그랑츄의 살갗도 물렁거리게 했고, 걸리적거리는데.’
몸 안에서 맴도는 역할로 작은 돌이 낳은 ‘작은 늪’을 꺼내게도 했다.
신경유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악마의 심장’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힘을 과시했고!
온갖 기괴한 능력의 눈알도 이것저것 마구 뿜어내지만, 저 검은 진창은 있는 그대로도 위협적인 괴물…….
‘응? 어라?’
흘러가던 투란의 생각이 잠시 멎었다.
―왜 그래?
너무 갑작스러운 기분을 알아차린 듯, 드라고니아가 바로 물어오고 있었다.
‘아, 깜박 잊었어.’
―뭘?
‘내가 몬스터 로드이고, 키린까지도 특별하다고 말한 문장을 지녔다는 거.’
―뭐?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하는 사이, 투란은 걸음을 내디디면서 씁쓸한 기분을 충분히 느끼고…… 되새겼다. 다시는 잊지 않겠다는 듯!
―투란?
투란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다시 불편해진 낌새를 가득 담은 채로 불렀다. 하지만 투란은 생각으로, 언어의 형태로 답하는 대신에 행동했다.
가득 뭉쳐 있는 신경유체가 보이는 검은 진창에 두 손을 밀어넣고 뜯어냈다. 굳어진 검은 진창은 으스러지는 가루를 흘려내면서도 두꺼운 나무껍질처럼 뜯겨 나왔다. 일부는 검은 가죽인 채였고, 그 속에서 검은 재처럼 가루가 흘러내리기도 했다.
금빛 모피에 뜯어낸 검은 진창을 쓱쓱 문질러, 뭐 묻은 것을 털어내고 닦아내는 투란이었다. 말끔하게 검은 진창만 남겨 놓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깊은 숨결과 함께, 투란은 검은 진창의 파편을 가슴에 댔다.
검은 고리가 이빨을 드러낸 바퀴처럼 투란의 가슴에서 맴돌며 나타났다.
곧 핏빛 톱니바퀴가 검은 진창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