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4)
츠으으…….
수정의 으스러진 가루가 투란의 주변을 맴돌았다.
품에 안은 꼴로, 사실은 팔로 둘러치고 가슴으로 짓누르려 하지만 닿지 않고 깍지 낀 손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팔의 원주(圓周) 중심에서 버티고 있는 수정만이 가루로 깨져나가고 있지 않은 탓이었다.
주변에 얇게, 아주 엷게 색칠한 듯이 자리 잡은 수정조차도 투란의 품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격렬한 힘에 휩쓸려 으깨지고 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겠다는 듯, 투란을 압박하기 위해서 몰려드는 형세인데…… 금빛 모피가 흘려내는 황금색 광채가 이를 모두 흘리고 흩어내버릴 뿐이었다.
투란은 실밥이 갈라진 듯한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고르고니아의 눈빛을 뿜어내면서 보다 강하게 품고 있는 수정 덩어리를 응시(凝視)해야 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시커먼 진창이 수정의 껍질에서 스며나와 뭉치게 되면 또다시 눈알을 뿜어내고 기괴한 힘을 보일 것이 뼛속 깊이 느껴지니…….
투란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핏빛의 톱니 고리는 길게 이어지는 나선을 그리면서도 수정 덩어리에 닿지 못하는 채, 투란의 가슴과 수정 덩어리 사이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는 분명하게 투란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뚫어, 뚫으라고!’
투란은 이렇게 마음으로 외쳐야 했다.
하지만 핏빛의 톱니 고리는 그리 쉽게 전진하지 못했다.
수정이 뿜어내는 힘이 단순히 작은 돌의 힘에 버티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조차도 차단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투란은 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뚫을 수 있어…… 분명히 그런데…….’
닿지 않지만 관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대치되며 서로 버티는 힘의 격돌…….
얼마간 이 괴상한 짓거리가 지속되었는가 거의 시간에 대해 잊을 무렵, 투란은 눈이 깜박거리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오래 부릅뜬 채로 버틴 탓이었다. 사람도 그렇듯, 고르고니아 역시 뜬 눈으로 지나치게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는 자각(自覺)이 꽤나 뒤늦게 투란을 찾아온 셈이었다.
그리고 그 가물거리는 눈동자가 흔들리며 시야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실은 그야말로 손바닥까지밖에 되지 않는 짧은 풍경 속에서 투란은 퍼뜩 깨달았다. 자신의 손바닥이 수정 건너편이라는…… 수정 덩어리는 가슴과 손바닥 사이에 있다는 아주 단순한 광경이었다.
찰나의 순간, 투란은 이제껏 핏빛 톱니 고리를 몬스터의 정수를 삼키기 위해, 손에 받아서 옮겨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고…… 작은 돌을 삼켰던 순간도 기억해냈다. 두 가지 기억이 스쳐 가며 겹쳐지는 순간, 투란은 새롭게 상상하며 염원했고……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 속에 상상을 덧칠했다.
간절하고, 강력하게!
이제까지 호응해왔던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을 향해 투란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쏟아부었다.
자신이 상상한 방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그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이기를 바란다고…….
이러한 간절한 염원이 투란의 마음에 가득 차서 다른 모든 것을 잠시 잊은 순간, 문장이 투란의 마음에 반응했다.
어렵지 않은 듯, 원래 그렇다는 듯…….
‘어?’
투란은 등에 자리 잡은 문장의 가닥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날개처럼, 누군가에게는 길게 뻗은 천칭의 저울대처럼 느껴지는…… 등에 부드럽게 굽은 채로 달라붙어 대부분의 몬스터 로드가 거기 그런 무늬가 생겼는가도 잊고 있던, 새카만 금 같은 문장의 가닥이 등의 살갗에서 몸 안으로 스며오는 듯했다.
두 가닥은 그대로 투란의 가슴을 중심으로 삼아 두 팔로 금을 그듯이 뻗어나가는 느낌을 줬고…… 이를 느낀 순간 투란은 가슴의 작은 천칭이 선명해지면서 좌우로 뻗은 저울대를 길게 늘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등과 가슴의 문장이 서로 다른 자리에 차지하고 있던 것을 잊었다는 듯이 투란의 몸 안팎에서 호응하며, 두 팔을 관통하고 두 팔의 안쪽을 물들이면서 손바닥을 향해 거침없이 금을 그었다.
투란의 눈에 보이는, 작은 돌의 무늬로 채워진 깍지낀 손바닥…… 이제는 그냥 원래 맞잡은 손처럼 조각한 것처럼 겹쳐진 손가락 틈새에서 문장의 시커먼 금이 만났다. 만난 금은 작은 원을 꾸미며 그 속을 비웠다.
투란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핏빛 톱니고리가 선명한 원통처럼 또렷한 광채를 뿜어냈고, 이는 바로 손에 생겨난 작은 원과 호응했다.
핏빛 톱니바퀴가 막대 같은 흔적을 남기면서 바로 수정 덩어리를 관통해서 손에 맺힌 작은 원 속을 채웠다.
투란이 원한 대로, 투란이 상상한 대로…… 원래 그럴 수 있었다는 듯!
그리고 마침내…….
콰드드득!
수정이 꽉 조여지면서 이질적인 음향을 토해냈다.
뭔가 단단한 것이 뭉개질 때 듣던 익숙한 소리 안쪽에 뭐라 할 수 없는 기괴한 느낌의 소리가 섞인 채로, 수정은 그 중심을 관통하는 붉은 빛의 막대에 휘말려 들어가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음향을 울려냈다.
수정 속의 검은 진창은 뒤섞인 채로 핏빛 막대 속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깊은 곳에서 울어대던 타원체를 잠깐 노출시켰다. 시커멓게 물든 채로 약간 농도만 다른 검은 색채의 이상한 무늬를 지닌 타원체는 수정의 중심이었고, 때문에 핏빛의 막대를 피하지 못한 채였다. 그렇게 타원체 중심부의 한쪽이 관통당한 몰골이 잠깐 보였고, 바로 검은 진창의 흐름에 뒤섞이며 핏빛 막대 속으로 일그러져 휘말려 들어갔다.
투란의 품에 안긴 수정 덩어리가 완전히 핏빛 속에 휘감겨 녹아 사라지고, 힘의 공백(空白)이 생겨났다.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한 울림이 세차게 일어난 것은 아주 잠깐 사이였다.
찌잉!
짧고 강한 울림과 함께 투란을 향해 크리스털의 분진이 쇄도했다.
사방에 흩어진 채로 그림자처럼 바싹 움츠려 있던 검은 진창의 조각들도 이에 휩쓸린 채로 끌려왔다.
핏빛 막대를 향해, 수정 가루와 검은 물결이 회오리처럼 몰려들고…… 막대 속으로 사라졌다.
파앗!
한순간, 소리를 삼키는 소리가 울리면서 이리저리 꼬였던 강렬한 힘의 자취가 지워졌다.
투란이 허리를 젖히는 모습으로 살짝 몸을 뒤로 기울였다.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힘, 갑자기 사라진 힘으로 인해 똑바로 서 있기 어려워 비틀대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힘의 격돌이 사라짐과 함께, 깊고 깊은 공동의 암벽이 이제 자기 차례라는 듯한 반응을 일으켰으니…….
쩌억, 쩌저적!
‘어?’
더 자세히 보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파아앙, 투란의 등에서 드레이크의 날개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원래 드레이크의 형상보다는 확실하게 작은, 불과 2, 3미터 폭의 날개였다. 그러나 그 날개가 펄럭이며 쏟아낸 힘은 투란을 바로 저 높이 보이는 희미한 틈새를 향해 쏘아올렸다.
쩌엉, 콰앙.
암벽이 투란이 사라진 자리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크리스털의 압제(壓制)에서 벗어난 다음, 자유롭게 원하던 대로 붕괴(崩壞)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쐐애애애―!
귓전을 스치는 바람결 속에서, 투란은 까마득하게 보이는 틈새를 가늠했고 지금이 밤이란 사실을 느꼈다. 그 틈새에서 흐르는 빛은 여전히 밝게 보이지만, 붉은 늑대가 거기에 확실하게 호응하는 듯이 본능을 토해내는 덕분이었다.
너무 지친 몸에 새로운 활력을 담아야 한다는 듯, 저 여린 빛이 그런 활력을 채워줄 수 있다는 듯!
달리 선택할 것도 없었다.
바로 투란은 왼손을 뻗으려 했고…….
작은 돌의 무늬가 몸에서 사라지며, 고르고니아의 형상도 훌렁 벗겨지듯이 지워져 갔다. 등을 채운 날개 역시 더 이상 상승할 추진력이 필요 없다는 듯이 오그라들며 없어졌고, 드레이크의 두 발, 아주 작게 볼록했던 꼬리도 그 형상을 지웠다.
붉은 털이 휘날리는 왼손이 울퉁불퉁한 암벽을 긁으며 투란을 가속시키겠다는 듯이 더 위로 솟구치게 했다. 짙고 검게 물들어가는 녹색의 오른팔이 이를 돕듯이 움직였다.
여전히 작아 보이는 틈새에서 은빛 불꽃의 광채를 보며, 투란은 고르고니아의 눈동자와는 다른 성향의 황금색 눈동자를 띄운 채로 위를 향해 두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투석기에 의해 제대로 겨냥되어 쏘아졌지만, 중간에 장애물이 많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야 하는 바윗돌처럼 투란은 하늘을 향해 뚫린 암벽의 틈새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솟아나갔다.
그렇게 두 팔로 암벽에 몸이 스치고 긁히는 충격을 완화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그랑츄의 튼튼한 발가락으로 암벽을 긁고 디뎌 차면서 투란은 자신의 속도를 만끽하며 치솟았다.
‘와, 빠르다!’
―이 얼빠진 녀석아! 날갯짓은 적당히 했어야지!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상승하는 속도가 위험한 것을 지적하듯 투덜거렸다.
그러나 투란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속도를 즐겼고…… 결국 위에 열린 작은 틈새에 도달했다.
“켁?”
길고 가늘게 그어진 틈새는 생각보다 좁아서 투란은 잠깐 거기 끼어야 했다.
카악, 카칵.
두 손을 먼저 밖으로 내밀어 단단한 바닥을 긁으며, 투란은 몸을 움츠리고 뒤틀면서 겨우 암벽 사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깐 기어나온 그대로 엎드린 채로 거친 숨을 몰아내쉬다가 투란은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봤다. 붉은 털을 채우며 스며오던 은빛 불꽃이 보다 선명하게 두 눈에 새겨지면서, 투란의 몸 안에 달빛의 마력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후우…… 하아…….
숨을 고르는 투란의 뇌리로 다시 드라고니아가 잔소리를 퍼붓는다.
―암벽이 무너지는 범위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적당히 뛰어올랐어도, 깔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다음에 천천히 올라오면 되는 걸, 뭐 급하다고 그리 날갯짓을 해대서 쏘아올린 돌멩이처럼 튀어 오르냐고! 그 속도면 인간의 몸은 암벽에 들이박아서 그냥 짓뭉개질 정도였잖아!
‘어, 그랬어? 그렇게 심했나.’
투란은 은색으로 더 휘황하게 타오르는 달을 바라봤고, 붉은 늑대의 팔과 눈동자를 통해 더 깊이 달빛의 마력을 들이마셨다. 이제 좀 쉬어야 할 때였다. 저 괴상한 눈동자를 뿜어내는 녀석은…… 보이드 속에 띄워놓은 채이니까.
―속도가 뭔지 이해는 하고 있는 거냐? 속도란 거는…….
드라고니아의 이어지는 잔소리는 투란의 마음에서 희미해졌고, 뭔가 낯선 자장가처럼 울렸다. 그래서 투란은 그 박자에 맞추듯이 숨을 쉬면서…… 바로 잠이 들었다. 나머지는 깨어나서 생각하기로 하고!
후우아하아…….
―이 자식이!
“응?”
목젖을 울리며 소리를 내다가,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밝은 햇살이 제대로 눈에 꽂혀 들고 있잖은가!
‘아, 날 밝았구나! 깼네?’
자신의 상태를 깨달으면서, 투란은 천천히 두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머릿속이 개운한 느낌이었다. 몸은 약간 저린 듯하면서도 팽팽하게 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발을 둘러보면서, 투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목을 타고 사락거리는 듯한 ‘악마의 심장’ 줄기가 느껴졌다.
가늘고 섬세한 그물처럼, 아직은 사람이 숨쉬기에는 힘겹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듣는 척하고 자다니!
드라고니아의 성난 외침이 한 번 더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잠시 투란은 어이없어 웃어야 했다.
‘잠든 사이에 계속 떠들고 있었어?’
―잠든 줄 몰랐다!
‘아, 그렇게 감쪽같이 잤나……?’
―능청 떨지 마! 그건 뻔뻔하게 잔 거라고!
‘음…….’
목을 좌우로 흔들면서,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새삼 위험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낯선 풍경이니 봐둬야 했다.
먼저 발 쪽에는 길게 양옆으로 늘어진 암벽의 틈새가 보였다. 밤에 기어나온 틈새인데, 이렇게 봐서는 그 아래로 깊은 암벽의 틈이 있는 줄 전혀 알 수가 없어 보였다. 정말 거기 고개를 들이대고 내려다본다 해도…… 아마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테지만.
그리고 틈새의 건너로 높이 치솟은 암벽은 여기가 이 정상이 아닌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은 한참 더 올라가야 이 바늘처럼 뾰족한 산의 정상이 나온다는 듯했지만…….
‘아, 그래도 아래보다는 가깝겠는데.’
투란은 이곳이 산의 정상에 꽤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일어서면서 등에 두고 있던 풍경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투란은 자신이 기껏해야 15, 16미터 정도의 길이와 8, 9 터의 폭을 지닌 돌출부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본다면, 이 돌출부는 그냥 울퉁불퉁한 표면의 일부일 뿐이겠지만 막상 올라서면 그래도 사람이 뒹굴 만한 여유로운 곳인 셈이었다.
‘그냥 돌이네, 전부…….’
투란은 몇 걸음 움직이면서, 조금 더 주의하다가 금방 결론을 내렸다.
낮이 될 때까지 덤벼온 것도 없고, 깨어나 움직이는데도 딱히 반응하는 것이 없었다. ‘악마의 심장’은 유지되지만, 다른 몬스터의 형상은 모두 잠든 채인 것도 아마 이 텅 빈 바위의 풍경 탓일 테고.
잠깐 바위 끝자락까지 가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투란은 다시 털썩 앉았다.
‘그럼, 어디…….’
길들이고 알아야 할 때였다.
보이드에 담아 놨던 새로 삼킨 몬스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