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5)
‘흐흠?’
투란은 크리스털로 이뤄진 알을 살피며 어리둥절했다.
정교하게 세공(細工)해 놓은 듯한 크리스털은 위아래가 똑같은 비율인 알처럼 생겨서는 톱니바퀴 무늬가 맴도는 동그란 거품 방울 속에 도도하게 서 있는 꼴이었다. 보통 알이 아니라도 이런 형태면 어디론가 기울어져 데굴거리는 것이 정상일 듯한데…….
문장 속 풍경이 그런 환경과는 상관없으니 저리 세워진 채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전혀 투란에게 종속된 듯한 느낌도 없이, 크리스털의 타원형 알은 오히려 투란을 노려보는 듯한 분위기만 풀풀 휘날리고 있었다. 마치 바위 속에서 투란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하며 싸우던 성질 그대로라는 듯…….
이 풍경이 문장 속이 아니란 듯!
‘어째서, 보이드에도 꿈쩍 않는 건가, 이놈은?’
그 분위기를 가볍게 여길 수가 없어서 투란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이놈은 몬스터 엠블럼에 삼켜진 다음에도 어찌 이리 당당할까?
“크리스털 셀이니까.”
투란의 생각에 대꾸하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담담한 말이었다.
“그게 뭔데?”
투란이 생각을 멈춘 채로 되물었다.
이 이상한 것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이 궁금증이 풀릴 테고 제대로 다룰 방법도 분명해질 것이므로.
잠깐 뭔가 고심하는 듯한, 투란에게 설명하기 적당한 말을 고르는 듯한 낌새가 역력하게 드라고니아의 별빛 무리에서 흘러나왔다. 그 낌새에 투란이 살짝 으르렁거려 볼까 할 때, 말이 나온다.
“하룻밤 만에 성을 쌓는 마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어? 마법사 아저씨도 공갈일 거라고 하는 그런 마법이잖아. 뭐, 그럴 수도 있잖겠냐고 샤오덴 할배는 그러드만…… 세상에는 대마법사니 뭐니 하는 것들도 나돌아다닌다고.”
“대마법이라 할 만도 하지. 상당한 상위의 마법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는 마법이니까. 그렇게 성을 쌓는 마법 중에서, 크리스털을 이용하는 마법이 있다. 그 마법에 의해 완성된 성은 크리스털 캐슬(Crystal Castle)이라고 부르지.”
“얘는 캐슬이 아니라 셀이라면서?”
“성을 쌓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 벽돌이라든가 기둥이 될 나무라든가 하는 것이 있잖아. 크리스털 캐슬이라는 대마법을 구성하는 작은 마법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털 셀이고…… 크리스털 캐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마법이다. 소재와 캐슬의 특성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마법이거든.”
“그러니까, 이 단단한 알이 크리스털 캐슬의 벽돌이란 거야?”
“아니, 그 알이 바로 크리스털 캐슬이다. 크기는 그만해도, 그 알은 분명히 요새이고 성채야.”
드라고니아의 말을 투란은 바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흙장난으로 만들어 올린 장난꾸러기의 성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풍경 속에서 보이드 속에 담긴 이 작은 알이 진짜 성이라고 하는 말이었다.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게 성이라고? 요새?”
“그래, 그리고…… 크리스털 캐슬은 강력한 생존주문 중의 하나기도 하지.”
“생존……?”
“가혹한 환경,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주문을 시전한 자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마법이지. 크리스털 캐슬의 안쪽은 시전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거든. 때문에…… 크리스털 렐름(Crystal Realm)이라고 할 정도야.”
“그니까, 얘가 지금 이 보이드 안에서…….”
“그래, 자신의 존재를 지킬 성벽을 쌓고, 버티는 중이란 거다.”
“요만한 게?”
투란은 다시 크리스털로 된 알의 형상을 살피면서, 저편에 가득 퍼져 있는 드라고니아의 별빛무리를 향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간, 뭔가 한숨을 쉬는 듯한 낌새를 띈 대답이 나온다.
“크리스털 렐름의 범위, 쉽게 말해서 크리스털 캐슬의 규모는 어디까지나 그 마법을 사용한 자의 특성과 주변 환경에 맞춰진다. 크기라든가, 성의 모양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니까, 그 녀석은 지금 문장 속의 상황에 맞게 크리스털 캐슬을 구성한 것뿐이야. 바위 벽감 속에서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던 거고…… 그쪽에서는 아예 성벽 너머를 향해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침략까지 하고 있었다고 봐야겠지.”
“아하하, 아하핫.”
투란의 헛웃음이 짜증을 담고 흘러나왔다.
드라고니아의 별빛무리가 일렁이면서 좀 더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살짝 한 걸음 물러서는 낌새가 있었다. 지금 투란의 기분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그런 드라고니아의 기척을 신경 쓰지 않은, 성난 투란의 외침이 쩌렁쩌렁 문장 속 풍경을 울리며 퍼져 나간다.
“까불고 있어!”
* * *
“후우.”
입으로 숨을 세게 토해내면서 투란은 잠시 목뒤를 잡으며 손으로 주물렀다.
길고 높은 산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아까보다 훨씬 빠르고…… 뭔가 격렬한 느낌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 위에서는, 더 높은 쪽의 정상 가까운 곳에서는 이 풍경 속에 어울리는 큰 매가 한 마리 뒤뚱거리는 묘한 모습으로 날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살짝 새는 말이 투란의 입에서 나온다.
“쉽지 않아, 정말.”
투란은 잠시 고개를 들어 높이 나는 큰 매를 쳐다봤다.
머리가 삐죽거리는 것이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매는 아닌 것 같지만, 투란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꼴이었다. 저쪽의 격렬한 풍경의 난동이야…… 이 산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으니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그래서 투란은 다시 심상 속 풍경으로 집중했다.
조금 더 고집스럽게, 조금 더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 * *
셀 수 없는 작은 면으로 이뤄진 크리스털의 알을 중심에 놓은 채, 흐릿하며 여린 파문을 일으키는 엷은 막이 생겨났다. 투명한 채로 출렁이는 엷고 여린 피막(皮膜)은 크리스털 알을 봉쇄해 버리듯이 수십 조각으로 생겨나며 작은 파문을 담은 채로 생겨나 있었다.
파문은 곧 막을 흔들면서, 작게 방울처럼 솟는 형상을 만들게 했고…… 수십 조각의 막에서는 제각각의 형상이 생겨났다. 어떤 것은 바늘 같고, 어떤 것은 칼을 흉내낸 모양이었고 어떤 것은 손을, 어떤 것은…….
“그게 뭐냐?”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흘러나왔다.
투명한 피막을 놓고 투란이 얼굴을 들이대고 미는 듯한 꼴을 본 다음이었다.
텅 빈 투명한 얼굴을 흔들면서 투란이 대답한다.
“저걸 혼내줄 물건들이잖아.”
“얼굴로 어쩌려고?”
기막혀하는,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투란도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피막에서 튀어나온 바늘, 간혹 창처럼 길고 굵은 모양을 한 것까지 섞인 뾰족한 것들이 한꺼번에 크리스털의 알을 찔렀다. 그다음 칼, 도끼, 망치 따위가 몰려들었고…… 투란의 얼굴도 입을 연 채로 사나운 짐승이 먹이를 덮쳐 물려 하는 꼴로 크리스털의 알을 향해 덮쳐갔다.
투명한 피막의 형상을 한 ‘보이드’의 여린 힘은 그대로 크리스털을 깨고 가르며, 그 파편을 휘감으며 깊이 파고들었다. 파고들며 피막은 안팎을 뒤집듯이 펄럭였고, 그때마다 조각난 크리스털이 튀어올랐다. 얼굴을 담은 피막은 아예 크리스털 알을 싹 덮었고, 펄럭이며 뒤집어질 때는 두꺼운 크리스털 껍질을 통째로 벗겨내듯이 담고 튀어나왔다.
크리스털 속에 숨어 있던 검은 진창이 출렁이며 드러났다.
투명한 피막은 더 짙은 파문을 띄운 채로, 검은 진창도 움켜쥐고 당기며 감싸 뜯어냈다. 쉬지 않고, 계속…… 이 광대한 공허 속에서 여린 힘이 일으키는 파문은 무한하다는 듯이 투명한 피막의 형태를 자아냈고, 결국 그 안 깊은 곳에 아주 조그맣게 자리 잡은 검은 알을 끄집어냈다.
끈적이지도 않고, 흐르지도 않는 검은 껍질의 알은 크리스털이 이루고 있던 형상과 거의 똑같은 모양이었고 껍질 위에 온갖 형태의 선을 담은 무늬를 간직한 채였다.
그 검은 알이 드러나는 순간, 투란은 이제껏 벗겨낸 채 늘어놓은 검은 진창과 크리스털의 조각들이 이룬 경계의 안쪽에 처음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되었다. 크리스털 벽으로 이뤄진, 검게 일렁이고 물컹거리는 것이 가득한 큰 성의 안쪽이 이럴까?
그 중심에 놓인 검은 알을 향해 다시 여린 힘의 파문이 이뤄낸 투명한 피막이 손의 모양으로, 몰려갔다. 검은 알을 움켜쥐고, 쥐어뜯고…… 간혹 찌르고 쪼개면서 벗겨내는 온갖 형태로 여린 힘이 검은 알을 뒤틀고 그 무늬를 열며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투란은 도달했고,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이…….’
한번 꼬인 흔적을 간직한 넓은 끈이었다.
그 끈이 고리를 만들며, 단지 한번 꼬인 채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크게 펼쳐져 원 하나 모양을 하는가 하면, 허리를 접은 원처럼 두 개의 작은 고리 모양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세 개의 고리처럼 꼬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끈은 단 하나의 면을 지닌 채로, 이루고 있는 고리 속에 한껏 기이하게 느껴지는 무늬를 간직한 채로 투란을 맞이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모양에 따라 살짝 보이다 마는 곳도, 감춰졌다 드러나는 부분도 많은 무늬인데…….
그 무늬는 투란이 키린에게서 억지로 배운 문자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보는 순간 투란은 그것이 ‘문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읽을 수도 있었다. 마치 이 끈이 오랫동안 누군가 자신이 품고 있는 그 무늬를, 이 ‘문자’를 읽어주기를 기다린 것처럼 느껴졌고…… 투란은 마음으로 그 무늬, ‘문자’를 품으며 ‘읽었다.’
‘아르고누스.’
끈은 바로 반응해왔다.
꼬이며 세 개의 고리, 두 개의 고리를 이루면서 제멋대로 움직이던 끈이 확 펼쳐지면서 큰 고리, 원 하나를 이룬 채로 딱 멈췄다. 흐느적대던 무늬, ‘문자’가 완전히 펼쳐진 채로 투란에게 새로운 영역을 드러냈다.
아르고누스, 그 무늬가 보다 명확하게 자신이 ‘문자’인 것을 과시하면서 보이다 말다 한 형상을 또렷하게 드러냈고, 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훼손(毁損)되고 결여(缺如)된 광경을 분명하게 투란에게 호소했다.
투란은 그 훼손된 부분, 잘려 나간 듯한 여백(餘白)이 아르고누스가 아닌 것을 바로 ‘알았고’, 거기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하는지도 ‘알았다’.
“투란.”
생각으로, 문자와 소리를 비롯한 언어를 모두 동원해서…… 온몸의 감각까지 불어넣듯이 투란은 거기에 자신을 새겨 넣었다.
새로운 무늬가 생겨났다.
아르고누스, 그 ‘문자’인 무늬와 똑같은 성질의 ‘문자’이자 무늬가 투란이라고 새겨지며 드러났다.
이 순간, 투란은 깨달았다.
이 녀석의 진정한 이름, 바로 ‘투란-아르고누스’라는 것을.
그리고 끈의 바깥쪽에서 검은 노도(怒濤)가 거칠고 사납게 몰려들며 끈의 안쪽에 새겨진 무늬, ‘문자’를 파괴하려 하는 것도 알아차렸다. 저 검은 노도가 파괴하고 지워 없애려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새겨진 ‘투란’의 무늬…… ‘문자’였다.
오롯하게 아르고누스만을 남기려 하는 격렬한 노도, 그 시커먼 범람을 향해 투란은 웃고 말았다. 이 웃음에 ‘투란-아르고누스’의 끈이 바로 반응했다.
아이들이 끈을 가지고 장난치듯, 긴 원의 한쪽이 살짝 꼬집어진 것처럼 안쪽을 향해 밀려와 뒤집어졌고 작은 고리를 만들며 ‘투란’의 무늬 ‘문자’를 감쌌다. 큰 원 속에 달랑거리며 매달린 작은 고리 속에 담긴 무늬를 향해 ‘아르고누스’의 무늬 ‘문자’가 촘촘히 모여들며 닥쳐오는 시커먼 범람의 재앙에 맞서는 광경이었다.
거의 본능적이었고, 이것이 그 본성(本性)이라는 듯한…….
하지만 투란은 그 본성과 무관한 냉정함으로써, 몬스터 로드로서의 본능으로 이에 대항했다. 여린 힘의 파문이 넓은 끈을 중심으로 퍼졌고, ‘투란-아르고누스’의 무늬는 어느새 투명한 피막 속에 깊이 새겨진 채가 되었다. 피막은 곧 둥글게 뭉치며 출렁이는 물방울처럼 변했고, 날카로운 가시를 끝없이 길게 뻗어내면서 덮쳐오는 시커먼 노도를 가르며 흘러나갔다.
여린 힘이 범람하는 재앙, 시커먼 색의 노도를 거꾸로 삼키며 번져 나갔다.
다시 한 번 ‘투란-아르고누스’의 끈이 이 상황에 호응했다.
‘패러블랙(Para-Black) 잉크.’
투란은 시커먼 노도 속에 새겨진 무늬,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 ‘투란-아르고누스’가 다시 한 번 색다른 반응을 하면서 번져 나가던 여린 힘의 파문 위로 기묘한 무늬가 뒤쫓듯이 흘러나갔다. 끈에서 흘러나온 이 무늬는 분명하게 ‘패러블랙 잉크’의 ‘문자’를 담고 있었다.
곧 시커먼 노도가 멈추고, 얌전하게 ‘투란-아르고누스’의 끈 주변을 맴도는 잔잔한 검은 잉크의 샘이 드러났다. 샘은 끈을 보호하듯이 맴돌았고, 그 속에서 크리스털의 파편이 불쑥 튀어 올랐다.
투란은 다시 한 번 새로운 무늬,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크리스털 파편 속에 드러난 무늬였다.
‘크리스털, 애시(Ash).’
패러블랙 잉크 위로 얇은 크리스털의 막이 생겨났다.
곧바로 투란은 자신이 크리스털 캐슬의 안쪽, 크리스털 렐름 속에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의 풍경 속에 있는 크리스털 캐슬이었다.
‘아, 여기서 나가야 하는 거냐!’
깨우침은 금세 투란에게 색다른 쓴웃음을 짓게 했다.
문장 속에서조차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놈이라니.
과연 또 어떤 꼴을 보여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