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6)
Chapter 28. 이상한 녀석이 쉬울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본능에 새겨진 채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투란의 의지를 받아들이면서 반응해줬다. 크리스털의 성채, 다른 곳도 아닌 몬스터 엠블럼의 심상 속에 자리 잡은 성채 속에서 투란은 바로 ‘문’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투란-아르고누스’, 그 이름이 새겨진 영역에서 ‘투란’이란 무늬―‘문자’에 마음이 닿는 순간…… 투란은 문장 속 풍경 속에서 작은 크리스털의 알이 영롱하게 반짝이며 ‘천칭’ 속에 박힌 거대한 알 속으로 스며드는 광경을 봤다.
당연하게 여겨졌고,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의 마음속에는 갸웃하는 의문 한 조각도 함께 피어났다.
‘이게 대체 뭔 몬스터지?’
“무슨 말이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품은 것보다 한층 더 심각한 의심을 품고, 이를 한껏 담은 듯한 말투로 얼른 묻는 소리였다. 소리에는 소리로 답해야 한다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기척이 투란에게 절실히 느껴졌다. 마치 조금 전 투란이 생각한 바를 드라고니아가 알아차리는 일이 힘겨웠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음, 얘…… 아르고누스라고 자기 이름을 속에 써놨어.”
“뭐? 이름을…… 각인된 이름을 지녔다고?”
드라고니아는 확실히 놀라고 있었다.
투란은 그 놀라는 낌새 속에 분명한 지식의 냄새를 맡았다.
“아르곤이랑 비슷한 이름이잖아, 그거?”
“분명히 아르곤과 마찬가지 신화에서 흘러나왔다는 징표겠지. 그렇게 각인된 이름을 지녔다면, 분명히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불린 존재란 뜻이고.”
“에? 그럼 고르고니아에게도 그렇게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투란은 색다른 방향에서 놀랐다.
이제부터 고르고니아 어디에 이름이 새겨졌나 찾아봐야 하나?
그래서 거기에도 투란 자신을 새겨 넣어야 하나?
드라고니아의 별빛 무리가 조금 밝게, 맑은 혼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일렁이며 대답이 나온다. 어딘가 곤혹스럽다는 듯, 어딘가 난감하다는 듯…….
“고르고니아, 스테노아. 그건 분명히 세 자매의 맏이로서 이 세상에 그 형상을 갖출 때 붙여놓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게 눈에 보이는 문자로 그 형상에 새겨져 있지는 않아. 투란, 정말 크리스털 캐슬 안에서 이름을 봤나?”
“봤으니까 아는 거지. 아르고누스라고 새겨져 있었다니까. 아, 설마 내가 아르곤이란 이름을 놓고 지어냈을까 봐?”
“그럴 리야 없겠지.”
드라고니아는 헛기침하는 듯한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절대로 투란에게는 있을 리가 없는 일이란 듯…….
그 낌새를 알아차린 투란이 불만을 가득 실은 말투로, 삐친 소리를 내고 만다.
“뭔지 설명해줄 거야, 말 거야?”
“이건 알아야 할 일이다.”
“어?”
꽤나 단호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였기에 투란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저건 억지로 투란에게 외우게 할 정도로 엄한 태도 아닌가!
당황해하는 투란의 기척을 파고들 것처럼, 드라고니아의 말이 바로 흘러나온다.
“신화 속의 존재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존재를 이 세상의 섭리에 맞게 기술(記述)하고 그 형상의 원형(原形)을 먼저 작성(作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큰 규모의 마법을 담은 그림이 그려진다. 그걸 마법도상(魔法圖像)이라 하는데, 그 중심이 되는 자리에 새겨지는 것이 이름이다. 그 이름은 소환하는 자가 소환되는 존재를 제어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고, 가장 근본적인 수단이기도 하지. 졸지 마!”
슬슬 길어질 듯한 말투에 투란이 슬그머니 문장 밖으로 마음을 돌리려 하는 순간, 꽥 하고 드라고니아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자려는 게 아니고…….”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고 한편으로는 깨어 있으려고 했었다.
깨어 있는 쪽으로는 문장 밖의 격변하는 풍경을 보려 했고…….
하지만 드라고니아의 이어지는 말은 그런 투란의 마음을 움켜쥐고, 보다 쩌렁쩌렁 울리면서 주의하게 만드는 힘을 싣고 있었다.
“이름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마법도상, 아직 소환이 이뤄지기 전뿐이다! 소환이 이뤄진 후에는 마법도상, 그림이 아니라 실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실재를 얻게 된 존재 속에서는 그렇게 각인된 이름을 볼 방법이 없어! 즉, 고르고니아의 정수를 네가 얻었다고 해서, 그 최초의 소환에 사용된 마법도상 속에 새겨진 이름을 네가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건 그 아르고누스라는 녀석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야. 한데 넌 그 각인된 이름을 봤다잖아!”
“음, 정상이 아니네?”
“그래, 정상이 아니…….”
“몬스터구나!”
“야!”
드라고니아가 꽥 소리를 지른 순간, 투란은 잠시 침묵했다가 차분하게 말을 꺼내 늘어놓는다.
“저기, 나도 실체라는 말이 뭔 말인가 알거든. 그러니까 실체가 있으면 그 그림 속의 이름 같은 것을 볼 수 없단 말이잖아. 그런데 이 녀석은 실체가 있었고, 방금 샅샅이 훑어내면서 거기 있는 이름도 봤거든. 아, 그게 설마 이름일 줄이야…… 키린에게 글자 안 배웠으면 글자인 줄도 몰랐을걸. 정말 이상한 글자 많이 억지로 외웠다고! 암튼, 그러니까 난 원래 실체를 갖추면 보일 리가 없는 것을 봤잖아. 그렇다면…… 거기 알맞은 뭔가가 없어? 실체를 갖췄지만, 그 이름이 보이는 그런 거 말이야. 혹시 잠깐 잊었지만 지금 생각나거나 하는 거, 없어?”
갑작스럽지만, 꽤나 조리 있는 척 뿜어져 나온 소리였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잠시 곤혹스럽게 했고, 별빛무리를 한층 더 짙고 맑게 일렁이게 하며 생각하는 기척을 흘렸다. 그리고 투란이 말을 꺼내기 위해 보였던 침묵처럼 짧은 시간이 지나고, 드라고니아가 느릿하니 대답을 꺼낸다.
“딱 한 가지…… 마법도상이 완성된 후에도, 그 실체 속에서 마법도상을 간직하고 보이는 것이 있기는 하지.”
“있는데 왜……?”
투란은 아리송하고 어리둥절했다.
조금 생각하고 바로 투란이 삼킨 몬스터랑 맞는 경우를 알고 있으면서 왜 드라고니아는 처음부터 그걸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티팩트, 소환된 경우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도구로서 제작된…… 살아 있는 아티팩트가 이 경우랑 비슷하지. 하지만…… 아티팩트는 어쨌든 도구라고. 이런 곳에서 굴러다니면서 괴물 노릇을 할 수가 없어. 스펠 오브처럼, 어긋나고 폭주하는 마력으로 인해 아주 잠깐 몬스터처럼 일그러진 경우도 있긴 하지. 그러나 이 녀석은 이곳에서 아주 장시간 머물면서 분명하게 괴물로서 활동했다. 스펠 오브도 아니고…….”
“잠깐! 그게 뭐야?”
“응? 뭐가 뭐야?”
“스펠 오브! 뭐야, 그게?”
투란은 으르렁대며 물어야 했다.
설명이라고 늘어놓는 말이 어째 점점 못 알아듣는 쪽으로 가잖나!
이런 소리를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한숨처럼 드라고니아의 웅얼거리는 듯한 설명이 흘러나온다.
“주문을 담은 구슬. 크기는 담는 주문, 사용될 곳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조건에 맞춰서 정해진 주문을 토해내는 마도구가 스펠 오브다.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주문을 쏟아내기 위해서, 미리 마력과 함께 주문을 각인시키는 형태로 간단히 제작할 수 있다. 필요한 지식만 갖춘다면…….”
“그게 몬스터처럼 된다고?”
“아주 잠깐, 잘못된 상황에서 조건이 갖춰지지도 않은 채로 주문을 뿜어내는 경우가 있어. 그 순간에는 마치 주문을 사용하는 몬스터처럼 날뛰거든.”
“음, 그러니까 아티팩트니 뭐니 해도 그럴 수 있단 소리네? 그럼, 얘도 그렇게 아티팩트인 몬스터네. 좋아, 알아들었어!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 몬스터를 삼켰다! 잘 써먹을 수 있을 거야! 음핫!”
“뭐?”
드라고니아에게서 울컥한 기분과 짜증이 피어오르는 낌새를 가득 담은 울림이 불끈거리며 새 나왔다. 하지만 투란은 이를 재빠르게 외면하면서 떠들어댄다.
“어차피 지금 생각만 한다고 알 수 없잖아? 당장 답을 구할 수도 없는 걸 붙잡고 여기서 놀고 있을 시간 없어. 이미 삼켰는데 어쩔 거야? 이렇게 저렇게 꺼내 쓰다 보면 더 알 수 있을 테고, 그러면 답을 알게 되겠지. 이런 몬스터가 어떻게 생겨난 건지…… 안 그래?”
“너, 어디서 나온 경험적 실증주의자냐?”
“그게 뭐야? 이상한 말 쓰지 마!”
“이상하긴…… 으, 관두자! 그보다, 아르고누스란 이름 말고는 또 다른 문자는 없나?”
“응? 아! 혹시 패러……어쩌고 잉크라고 들어봤어?”
투란은 아르고누스의 이름 다음에 새겨들은 시커먼 잉크에 대해 물었다.
선명하게 그 이름을 되뇔 수 있지만, 조금 전 드라고니아의 반응을 겪고는 그냥 적당히 중간을 뺀 이름을 꺼내서 자세히 따지지 못하게 할 궁리였다. 이 생각이 전해졌다면 또 고함을 지르겠지만.
“패러노믹(Paranomic) 잉크? 그건 질감을 띤 마법 잉크인데…… 특정한 소재의 질감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그 잉크로 질감을 고스란히 옮겨 기록하기 위한 마법물품이지. 잠깐, 투란! 설마…… 눈알을 뿜어내던 그 시커먼 진흙 늪이 잉크였다고?”
“내가 패러……어쩌고 하는 잉크 같은 걸 어디서 보고 알았을 것 같아?”
굉장히 뻔뻔한 말투로, 투란은 자신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드라고니아를 놀리는 듯이 되묻고 있었다. 바로 울컥한 말투의 대꾸가 별빛무리의 출렁거리는 빛과 함께 돌아온다.
“망할. 도대체 아르고누스란 게 뭐야! 이름이 새겨진 실체를 휘두르고, 잉크 갖다가 눈알을 쥐어짜내…… 투란, 설마 크리스털 셀에도 그렇게 이름이 담겨 있었나?”
“셀 아니던데, 애시라고 하는 것 같았어. 같은 거겠지?”
이번에는 아주 솔직하게 투란이 대답했다.
드라고니아에게서 식겁한 반응이 나왔다.
“애시? 뭔 애시? 젠장 크리스털 셀의 성질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고! 설마 드라코눔에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변형 마법인가…… 아니, 그러고 보니 크리스털 셀이 몬스터의 일부가 되어 있을 리도 없으니…… 다른 마법일 가능성이 더 높은가……. 도대체 어떤 얼빠진 마법사가!”
뒤로 이어져 나오는 낮은 중얼거림, 길게 이어질 듯한 그 소리를 투란은 바로 외면하기로 했다. 누군가 깊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졌을 때는, 그냥 두는 편이 훨씬 좋으므로!
그리고 지금 투란에게도 바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르고누스.’
* * *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미친 듯이 격동하는 저편의 풍경을 외면하면서 투란은 잠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직 사람에게는 해롭지만, 그래도 ‘악마의 심장’은 새로운 바람결을 들이쉬면서, 그 안에 담긴 독소를 통해 더욱 활력을 품은 것처럼 왕성한 기력을 투란의 몸에 퍼뜨렸다.
‘좋아, 그럼 해보자!’
잠깐 드라고니아가 말했던 ‘경험적 실증주의자’가 뭔가, 어렴풋이 투란은 지금 자신의 행동이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스쳐 보내면서 오른쪽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분명한 사람의 손, 손금의 주름 속에서 시커먼 일렁임이 나타났다.
정말 잉크란 이름 그대로, 시커먼 색채이면서 이전과 다른 가볍고 날렵한 찰랑임을 느끼면서 투란은 살짝 미소했다.
이 ‘패러블랙 잉크’는 틀림없이 아르고누스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이는 곧…….
‘좋아, 눈알!’
손바닥에 고인 시커먼 색채 속에서 파문이 일며 둥글고 볼록한 형체가 솟아났다. 그 속에 담긴 기이한 촉감은 투란을 살짝 간지럽히는 듯했고, 어딘가 시원한 느낌도 줬다.
‘이제 뜬다!’
다시 한 번 손바닥을 관통하는 간질거리며 시원한 느낌 속에서, 둥글고 볼록한 형체 속에 금이 그어지며…… 눈꺼풀을 열 듯이 갈라졌다.
쩌억!
“엑? 어어억?”
손바닥 속에, 새카만 구슬 같은 것이 잠깐 눈알처럼 눈꺼풀을 젖히며 보인 순간이었다. 투란은 가득 그 구슬 깊은 곳까지 햇살이 스며오는 것을 느꼈고, 구슬은 돌빛을 머금더니 그냥 돌처럼 단단해지는 척하다가 바로 으깨졌다.
“으켁? 이게 뭔……!”
손바닥에서 검은 잉크가 출렁이는 속에서 깨진 검은 눈알의 잔해가 돌빛 조각이 되어 흘러내렸다.
전혀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 투란을 꽤나 놀라게 한 순간이었다.
―응?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이네? 이 정도 광량(光量)이면 바로 돌이 되는 게 당연하지. 근데, 그게 뭔가 궁금해서 꺼내본 거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놀란 마음에 반응한 듯, 이 상황을 포착하면서 중얼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디퍼…… 뭔 리저드? 광량이 뭐?”
―디퍼 다크, 아주 깊은 땅속의 어두운 영역이다. 빛이라고는 정말 한 점도 없는 곳이지. 그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리저드 종(種)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거의 못 봐. 그래서 아예 디퍼 다크 리저드라고 부른다. 그 몸은 빛에 반응하면, 바로 석화(石化)해버리지. 광량, 빛의 양에 따라 돌이 되는 정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렇게 높은 산에서 햇살 가득한 날이면, 뼛속까지 돌이 될 수밖에 없는 놈이야. 그런데, 왜 그런 놈의 눈알을…….
“눈깔꽃 불렀어!”
―눈깔꽃?
“희귀종 눈깔꽃! 나도 한번 그 빛을 저쪽에 쏴보고 싶었다고!”
―리저드 눈알이 나와 깨졌잖아?
“그래! 왜 그 캄캄한 곳에 산다는 리저드 눈알이 나왔지!”
―투란, 뭔 짓을 하는 거냐?
“뭔 짓을 하긴! 뭔가 잘못된 거라고!”
꽥, 투란은 높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기우뚱거리는 큰 매가 미친놈 가까이 있기 싫다는 듯, 산 정상에서 맴돌다가 조금 멀리 기울어지며 나는 광경이 투란에게 아주 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