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38)
‘그게 그거라니! 아으으!’
투란은 마음속으로 더 짙게 비명을 질렀다.
비어 있는 자리에 투란이 자신을 새겨 넣었던 그때, ‘투란-아르고누스’를 덮여왔던 격류(激流)가 바로 원래 아르고누스가 지녔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아르고누스를 이제껏 지탱해오던 의지였고, 그 힘을 조율하며 발휘하게 만드는 길잡이였다. 그 방대한 기억의 격류는 당연히 투란에게 위험했다.
투란도 본능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위협이었다.
드레이크의 정신을 공유하면서 겪은 일을 되풀이할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는, 드레이크의 ‘삶’보다도 더 방대하고 오래된 기억의 격류에 투란의 정신은 완전히 파괴될 수 있었다. 혹은 방대한 기억의 바다에서 자신의 진짜 기억을 잃은 채로 방황하든가…….
때문에 ‘투란-아르고누스’로서는 당연히 이 위험요소를 깔끔하게 제거한 것이다. 본래 지녔던 수많은 눈알에 대한 기억과 함께!
‘아오오오!! 어떻게 이런 일이!’
투란은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으로 자책했다.
자신을 거스르는 몬스터의 잔재, 그냥 그렇게 여기고 깔끔하게 공허(空虛)의 힘으로 뭉개버렸다. 그렇게 해도 ‘패러블랙 잉크’는 그 본질 속에 새긴 눈알의 형상, 능력을 결코 잃어버릴 리가 없었으므로!
‘투란-아르고누스’가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느꼈기 때문에 거침없이 해치웠다.
그런데 그게 이런 결과가 될 줄이야…….
좀 더 침착하게 그 몰아닥치는 격류를, 심상 속에서 분리해서 한곳에 몰아넣고 가둔 다음에 길들이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때늦은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폭풍처럼 투란의 마음을 두들겼다.
―흐흠,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구현하면서 검토하면, 결국 언젠가는 모든 눈알에 대해 파악할 수 있잖겠나?
드라고니아는 위로하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담긴 낌새를 투란은 놓칠 수가 없었다.
‘재밌냐! 이게 웃겨?’
그 고생을 하고…… 사실 고르고니아 아니었으면 진작에 도망칠 궁리부터 했을 정도로 위험하고 사나운 상황을 돌파해서 얻은 몬스터였다. 그 정체는 드라고니아조차 뭔지 헷갈릴 정도지만…… 어쨌든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삼켜질 수 있는 몬스터였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홀랑 박탈당한 꼴이라니!
몬스터 로드에게는 가장 억울하고 분한 순간이 아닌가!
시체줍기였다면, 그냥 얻은 것만으로도 적당히 만족할 수 있겠지만…….
‘멋지게 사냥했는데! 아으으…… 으어엉!’
투란은 마음속으로 우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은가!
이 심정을 조금은 느꼈는지 드라고니아가 웃음기를 거둔, 신중한 말투로 투란의 뇌리에 선명한 소리를 전해온다.
―놀리는 말이 아니다, 투란. 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을 완벽하게 형성해냈다. 빛에 대해 반응해서 돌이 되는 그 약점까지 정확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넌 이미 이 아르고누스라는…… 뭔지 모를 몬스터를 완전하게 장악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앞으로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구현해내면서 수백 년, 어쩌면 천년 가까이 이 아르고누스가 쌓아온 힘에 대해 탐구하면 되는 일이다. 서둘러서 단숨에 그 힘을 손에 넣지 못했다고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에 여유를 좀 지니는 것이 어때?
‘앞으로 한 천 년간 탐구하라고? 지금 나 놀리는 거 맞지?’
―그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잖아.
‘걸려! 지금 내가 대충 눈알이 몇 개인지 알아? 세보려고 했는데, 잠깐 사이에 수천 개가 스쳐 갔다고, 수천 개! 끝은 보이지도 않았어! 그런 걸 하나씩 꺼내보고, 그게 뭔지 하나씩 겪으면서 파악하려면…… 몇백 년이, 아니 진짜 천년은 걸린단 말이야! 크아앙!’
입은 꼭 다문 채로 떠들다가 투란은 아예 짐승흉내를 내는 소리까지 상상하고 말았다.
―흠…… 투란,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긍정적으로. 그러니까, 너는 앞으로 많은 눈알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 아니겠어? 무엇보다…… 눈깔꽃이라면 지금 바로 저 아래로 내려가서…… 하나 집어삼켜도 되잖나?
“이게 진짜……!”
울컥한 소리를 입으로 뱉으면서, 투란은 발딱 일어섰다.
문장 속의 풍경에 집중하면서, 잠시 외면하고 있던 눈앞의 풍경…… 격변하며 격동하는 산 아래, 거대한 늪의 방대한 풍경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투란이 또박또박 소리 내서 말문을 열었다.
“저 지랄인데, 가긴 어딜 가냐고!”
―확실히 아까보다 상태가 더 나쁘기는 하군. 그래도 혹시 가까운 곳에 떠내려가려다가 걸린 거라든가, 없을까? 잘 좀 살펴보지그래?
이 나긋한 말은 투란을 잠시 움찔하게 했다.
어쩐지 그럴듯하게 들리잖나…….
그래서 투란은 슬그머니 벼랑 끝에 걸치는 자리로 옮겨갔다.
혹시나 어디서 뭐가 날아와 부딪히면 떨어질까 해서 가지 않던 자리였다.
이 높이까지는 전혀 와서 닿는 것이 없었지만…… 가까이 날던 것은 잡았다 놔준 뿔수리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주의하던 자리에서 투란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외면하던 광경을 바라봤다.
격변(激變)하고 격동(激動)하는 풍경을…….
번쩍, 솨아아―!
섬광이 하늘을 가르려는 듯이 그어졌고, 섬광에 으스러지고 갈라져 버린 거대한 줄기가 산산이 흩어지며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보라색 연무(煙霧)는 그 잔해를 가르듯이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분홍색 털빛을 과시하며 일렁이는 낫과 같은 팔인지 앞발인지 모를 것을 휘두르는 괴물 떼를 물들였다.
우웅, 우우웅.
검은 재처럼 보이는 섬세한 벌레 떼가 뭉쳐 구름처럼 늪과 숲의 상공을 채웠고, 그 속을 관통하는 굵은 줄기 다발을 휘감으며 지웠다. 중간토막이 지워져 사라진 굵은 줄기 다발이 늪으로 떨어지고, 요란한 파문과 함께 철갑을 두른 거대한 물고기들이 튀어 올라…… 검은 재 속에서 껍질과 뼈대만 남기고 사라졌다.
콰앙, 번쩍!
굉음을 먼저 흘리고, 뒤이어 벼락을 쏟아내는 회색 구름은 높은 상공에서 뭉쳐진 채로 허공을 감으며 기어올라오는 굵은 줄기 다발을 태우고 으스러뜨렸다. 그러나 몇 가닥의 벼락은 굵은 줄기 다발의 연이은 상승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고…… 결국 회색 구름이 굵은 줄기 다발에 꿰뚫리는 순간, 이전의 굉음을 완전히 작은 소음으로 만드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구름이 통째로 벼락이 되어 지상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며 사라졌다.
콰아아아―!
늪이 벼락의 폭우를 쳐맞고 격노한 것처럼 높이 치솟으며 사방으로 번졌다. 그 늪의 격류 속에 몸부림치는 숲이 나무들이 가지를 휘두르면서 자기네 주변에서 함께 휩쓸리는 것들을 후려치고 쪼개는 광경이 섞여들었다. 늪은 그런 것들을 다 집어삼키며 지워버리는 듯 보였다.
겹쳐진 섬광이 길고 넓게, 광폭하게 파멸(破滅)을 낳으며 자신을 낳은 자가 소멸하는 과정에 주변을 함께 몰아넣었다. 휘날리는 꽃송이와 함께, 이 세계에 이질적인 형상들이 함께 흩어져간다.
그 흩어짐을 덮치듯, 한껏 늪을 휘감은 거대한 진흙덩어리가 치솟았고…… 수백 미터 짜리 진흙덩어리 아래에서 수십 가닥의 굵은 줄기가 엮이면서 기둥처럼 이어진 꼴도 보였다. 그 기둥이 되어 꼬여 단단해진 줄기뭉치를 향해 치솟은 수백 미터짜리에 맞먹는 크기의 바위덩어리가 튀어나와 처박히는 광경도 바로 이어졌다.
“안 가, 못 가. 절대로 뛰어들 생각 없어!”
투란은 단호하게 자신을 향해, 자기 안에서 그럴듯한 소리를 흘린 드라고니아를 향해 외쳤다. 이 삐죽한 산의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설 무렵, 느릿하게 저 거대한 늪지대가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클레이 웜이라든가, 그 비슷한 큰 것이 또 있나 보다 싶었다.
거기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상쾌함마저 느낀 투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서, 이 자리에 계속 있으면 흘깃흘깃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점점 더 기괴하고 심해져 갔다. 그러더니 이렇게 햇살 가득한 상황에서, 가까워 보이는 수 킬로미터가 되는 곳에서조차 날개를 펄럭이는 비비나비들이 거뭇한 색채를 띤 투명한 벽에 휘감겨 추락하는 꼴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투란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니니 구경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저기 들어간다는 것은…….
어느새 멀리서 신나게 터져 나간 눈깔꽃들의 섬광은 이제 무슨 낙서처럼 허공을 긋는 꼴로 보였다. 그나마 이건 투란이 아는 쪽이고, 도대체 벼락이 되어 쏟아져 내리는 구름이라든가, 재처럼 휘날리며 여기까지 들리는 소리를 잉잉거리는 벌레 떼는 오다가 본 적도 없고, 살면서 들은 적도 없다!
‘드레이크도 저건 피했다고!’
또 다른 ‘삶’의 기억, 드레이크가 남긴 그 기억 속에 비슷한 것이 있기는 했는데…… 드레이크도 피했다, 저런 건!
―구경거리로는 괜찮잖나?
드라고니아가 잠시 침묵하다가 꺼낸 소리였다.
“응?”
잠깐 투란은 어이없었다.
―기왕 보는 거, 좀 더 자세히 봐두지 그러나? 아, 저기 깨알같이 보이는 거 그랑츄 떼 아닌가?
완전히 관람자가 된 드라고니아의 태평한 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그 깨알 같은 광경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했다.
강화된 눈이 가늘어지면서, 깨알 같은 크기의 그랑츄 떼가 꼼지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넝쿨 나무처럼 꼬여 치솟은 줄기를 타고 오르며 물어뜯고 주먹질하면서 난동 부리는 중이었다.
‘에, 잿빛 바위만 있는 게 아니네?’
가늘게 눈을 뜬 채로, 투란은 알아차렸다.
짙은 녹색의 그랑츄 무리도 섞여 있었다.
그런 빛깔의 그랑츄 패거리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는데…… 손가락 발가락의 깨알 같은 형상, 몸통의 생김새는 분명히 그랑츄였다. 저런 색이면 투란이 삼켰던 샤머닉 트롤의 몸 빛깔과 닮았는데도, 저건 분명한 그랑츄였다. 뭔가 좀 더 자세한 특징을 보고 싶은데…….
―사람의 눈을 강화해봐야 저 정도 거리를 완전히 볼 수는 없지. 드레이크의 눈이라면, 저 지평선까지 꿰뚫어 볼 텐데.
드라고니아가 불쑥 투란이 지금 하는 짓이 바보스럽다고 짚고 있었다.
왜 좋은 눈 놔두고 안 쓰냐는…….
‘그렇게 자세히 보고 싶냐? 저런 걸?’
투란은 자신이 이러는 이유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했다.
이 풍경에서 눈을 돌리거나 외면할 마음은 없다.
사실 신기해서 보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 바로 현재 투란의 생각이고, 감정이었다.
이런 반응과 대답에 드라고니아는 어이없는 듯했지만, 그래도 납득한 듯…… 살짝 웃는 낌새가 전해왔다. 마치 투란이 생각보다 영리해서 재미있다는 듯!
‘아, 너 정말!’
조금 울컥한 기분이 투란의 마음에 스며드는데, 그 마음의 파문 속에서 투란은 문득 눈가가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눈가 곁에서 스멀스멀하게 눈알을 향해 흘러오고 싶어 하는 촉감…….
‘어라?’
아르고누스의 기척이었고, 그 속에 담긴 갈망은 투란에게 이상했다.
‘내 눈?’
‘악마의 심장’이 있었고, 눈이 망가지거나 상처가 나는 일에 거뜬히 대응할 수 있었다. ‘악마의 심장’은 눈을 완전히 새로 키울 수도 있었고, 지금은 시각을 강화해 주는 중이기도 했다.
거기에 아르고누스가 스며들려 하고 있었다.
뿔수리의 눈을 탐낸 것처럼, 투란의 눈을 탐내고 있었다.
투란의 호기심이 곧 이 갈망에 호응했다.
투란의 눈꼬리에서 시커먼 핏방울처럼 잉크가 방울졌고, 바로 눈썹을 넘어 안쪽으로 스며들어왔다. 이상하게 시원한 감각에 투란이 눈을 감는 순간, 눈꺼풀도 시커먼 잉크가 돼 버렸다.
‘아, 이게 내 눈!’
뿔수리의 눈보다 훨씬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촉감으로 더듬어 눈알을 다시 만들어내는 듯한 감각에 놀라며, 투란은 눈을 떴다.
“어? 으앗!”
조금 전 ‘악마의 심장’에 의해 강화된 시각보다 훨씬 맑고, 밝고…… 세계가 보다 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풍경이 투란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르고누스는 ‘악마의 심장’보다 몇 배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투란의 시각을 다듬어 강화했다. 그런데 그 느낌은 억지로 눈을 가늘게 하거나, 눈알을 이리저리 당기는 느낌이 섞인 ‘악마의 심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눈동자로부터 스며오는 듯한 풍경이 투란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했다.
갑자기 너무 선명해진 풍경을 보게 되니, 너무 가까워서 위험한 느낌이므로!
―과연, 단순히 그 눈이 지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었군. 눈의 잠재력을 바닥까지 퍼올리는 거였어.
드라고니아의 중얼거림이 투란의 뇌리에 크게 울렸다.
‘뭐야, 이럴 줄 알았어?’
―블러드 레이라든가, 다른 눈동자들이 보인 위력…… 그 효율성이 내가 읽었던 기록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르고누스의 능력인 모양이야. 아르곤조차도 원래 눈의 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하지는 못하는데…….
‘그래?’
투란은 다시 먼 곳의 녹색 그랑츄에게 눈길을 던져봤다.
깨알 같으면서도 선명한, 그래서 꽤나 이상한 풍경이었다.
다른 눈으로 본다면 대체 저건 어떻게 보일까?
저절로 찾아든 생각이 투란의 마음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