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
피슉!
노란 점액이 튀었다.
투란은 그런 거 상관없다는 듯이 거칠게 풀뿌리의 구근을 찢고 씹고 삼켰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다른 방향에서, 아주 선명하게 천천히 되새겨지고 있었다.
투란의 입이 구근에 닿는 순간부터 구근이 꿈틀대며 멀어지려 했다.
하지만 투란의 입술은 아주 거칠게 구근을 찍어 눌렀고, 입술에서 번져 나간 껍질이 미세하고 가는 가시처럼 구근을 걸어 당겼다.
투란의 손에 붙잡혀 입안으로 밀려든 구근은 경련을 일으켰고, 그 경련이 줄기로 뻗어 가면서 투란이 당겨 올린 땅속 넝쿨이 꿀렁거리고 꾸물거렸다.
이내 풀잎은 경기를 일으키며 빳빳해졌고, 투란이 아무렇지도 않게 구근을 이로 찍고 깨물어 씹자 구근 안에 담겼던 노란 점액이 입안으로, 입가로, 얼굴 전체로 폭발하듯이 튀었다.
‘뭐야, 왜 이리 느리지?’
그 과정을 투란은 순식간에 해치웠지만, 그의 감각은 아주 느리게 다시 한 번 짚으면서 마지막 순간의 노란 점액에 보다 집중하게 몰아붙였다.
노란 점액이 닿은 입안은 잠깐 찌릿했고, 얼굴에도 찌릿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자 투란의 살갗에 그물 친 악마의 심장 넝쿨이 실 줄기가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점액이 닿은 부분을 채웠다. 노란 점액은 넝쿨 속으로 늪의 진액 때처럼 빨려 들어왔고, 찌릿거리는 느낌이 은근히 혈관 안에서도 느껴졌다.
그 감각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심장에 노란 점액이 흘러든 다음에는 강한 맥동과 함께 피의 격류가 일어나고, 거기에 휩쓸린 순간 찌릿함이 사라지면서 시원하게, 거침없이 흘러가는 피가 느껴질 뿐이었다.
투란은 이 감각의 의미가 뭔지 아리송했다.
이를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설명할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누가 곁에 있어서 설명을 조를 수도 없다!
‘기억해 두지, 뭐.’
일단 투란은 가슴을 향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그에 대해 생각하면 뭔가 제대로 알 것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구근이 씹히면서 빳빳하게 펼쳐지고 세워지는 풀잎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당장 몸에 닿아서 찌릿하기만 한 노란 점액과 다르게 풀잎들은 확실히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칼날을 보여 주는 듯했다.
‘설마?’
혹시나 해서 투란은 씹어 삼킨 풀잎 구근의 뿌리줄기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당기고 밀며 곤두선 풀잎이 닿지 않게 했다. 그러다가 슬쩍, 굽어지고 길어진 손톱을 그 풀잎의 모서리에 대 본 것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싹둑.
손톱이 바로 잘려 나갔다! 흡사 손톱이 바람이 되어 풀잎을 스쳐 갔는데 그 끝이 끊어져 버린 것 같은 결과에 투란은 소름이 돋았다.
이런 것은 사삭대며 그를 핥던 풀잎만 보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 아닌가!
긴장한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며 또다시 뻣뻣하게 곤두선 풀잎을 확인하고는 발목 쪽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먹어 치울 때 닿았으면 여기저기 몸이 베였을지도 몰랐다. 손가락처럼 굵지 않은 부분이라면 싹둑 잘려 나갔을 것이고!
상황 파악이 이 정도에 이르자, 투란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발가락으로 땅을 긁어 팠다.
앞서 발목 언저리에서 끌어 올린 풀잎과 구근 줄기 덕분에 발 주변에는 이미 빈 구멍 같은 영역이 생겨 있었고, 열심히 긁어 판 다음에는 그럭저럭 앉을 만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거기 쪼그리고 앉은 채, 투란은 다시 주변을 팠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구근 줄기를 이리저리 당기고 건드리며 풀잎의 반응을 살폈다.
누가 본다면 안개가 은근히 짙은 풀잎 가득한 땅바닥에 소년이 달라붙어 흙장난을 하나 보다 여길 만한 모습이었다.
‘셋, 넷…… 여덟 정도네.’
구근은 땅속에서 주변으로 줄기를 뻗고, 굵은 마디를 만들었다.
그 마디가 땅속과 땅의 경계에 선 채로 풀잎을 뻗어 내는 생김새였다.
투란이 세어 본 것은 구근 하나마다 주변에 뻗은 줄기로 만들어 내는 마디 수였다.
구근 하나를 건드리면 반응하는 풀잎을 뿌리는 마디들.
풀잎이 몸을 휘감거나 했을 때, 구근을 잘못 건드리면 몸의 그 부분을 썰어 버릴 수 있는 풀잎이 대체 몇 장이나 될까?
투란의 흙장난이 더 심해졌다.
결국 투란은 계속 바닥을 긁고 파서 구근을 노출시키고 풀잎이 돋은 마디를 멀리 밀어서 거의 누워 뒹굴 정도의 자리를 만들어 냈다. 혹시나 살갗을 베고 들어와 싹둑 자르는 놈이 없도록!
‘자, 이제 되었…… 잠깐!’
안도의 숨을 깊이 들이쉬려던 투란이 멈칫했다.
만약 구근의 뿌리 가닥들이 악마의 심장이 뻗어 내는 덩굴줄기처럼 움직이면 방금 한 짓이 뭔 소용이 있을까?
당연히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살짝 투란은 이마에 땀이 맺히는 기분을 느꼈다.
살갗을 덮은 악마의 심장은 땀 따위가 맺힐 리 없게 했지만.
“여태 안 움직였으니 일단 넘어가!”
자신을 다독이는 소리를 뱉으며 투란은 일단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뭔가 지쳐서 배가 고픈 느낌이었다.
―먹자!
‘어헉!’
조급해진 기분에 서둘러 움직이는데, 가만히 있던 가슴이 세차게 고동치며 터져 나온 소리였다. 투란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었다. 갑자기 부지런을 떨면서 움직인 탓에 지친 느낌이 선명했고, 배고프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서너 번 깨물면 꼴딱 삼키는구나.’
투란은 파내서 주변에 늘어놓은 구근을 보며 생각했다.
노출된 구근은 줄기를 꿀렁거리고 꿈틀거렸는데, 꽤나 느렸고 줄기가 땅을 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줄기 안에서 흐르는 것이 줄기를 꿈틀거리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에 따라 땅을 핥는 풀잎들이 요란한 소음을 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귀가 여전히 먹먹하네.’
몸에 와 닿는 것이 아니면 투란은 아직 소리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살갗을 시원하게 해 주는 안개만 짙게 느낄 뿐.
꾸룩.
투란의 생각이 일시적으로 다 날아갔다.
위장이 텅 빈 것이 너무 분명한 신호가 왔다.
도대체 얼마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했을까?
풀잎이 날카롭게 되는 꼴을 보고 긴장하기 전에 잠깐 씹어 먹은 구근은 고작해야 두엇, 바로 주변 정리를 한다고 격하게 움직였다. 그 때문에 지친 것일까?
―오랫동안 쓰러진 채였다.
돌연 냉정하게 울린 가슴의 한마디에 투란은 흠칫했다.
‘그렇군.’
지형이 뒤집힌 상황에서 심장이 죽은 척하고 있었던 시간, 그 뒤에 일어난 일……. 그는 짧게 느꼈지만 정말 그런지 알 수 없었다. 흙장난을 시작할 때는 해가 막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만두려고 보니 이미 날이 저물었을 때도 있잖은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전혀 모르겠는 그런 시간들.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먹을 것이라고는…… 한 가지밖에 안 보였다.
―먹자!
‘그래.’
반쯤 체념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경고를 느끼며 투란은 구근을 먹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생겨 먹은 놈이었구나.’
배가 좀 부른 다음, 투란은 빳빳해진 풀밭을 보면서 눈을 깜박였다.
구근이 씹히거나 깨질 때마다 노란 점액이 튀었다.
점액은 깨진 곳에서 그저 튀어나올 뿐이 아니라 줄기를 타고 마디를 향해서도 폭주해 흘렀다. 그러면 풀잎이 혀를 날름거리다가 확 변해 날카롭게 발딱 일어섰다.
투란의 눈길이 손톱을 향했다.
혹시나 해서 몇 번 더 실험해 본 결과, 풀잎의 모서리가 날카로워지면 돌바닥처럼 단단한 곳도 긁어 자국 내는 자신의 손톱이 바로 잘렸다. 왠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 날카로움이잖은가.
‘몬스터를 형성한 상태에서는 다른 것을 못 삼킨다고 했지.’
즉, 투란이 지금 저 날카로운 풀잎을 삼키려 한다면 악마의 심장을 일단 치워야 했다. 그러면 대체 어떤 일이 생길까?
과연 반쪽만 남은 심장이 정지한 상태로도 해낼 수 있을까?
그가 ‘오러’라 부르기로 한 힘만으로 저걸 삼킬 수 있을까?
‘해 볼까?’
두근거림이 투란의 온몸을 자극했다.
마치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심장 속에 자리한 ‘투란’, 투란의 의식을 담은 악마의 심장은 그 경고를 의아해했다.
엇갈리는 감각, 혹시나 하는 불안한 느낌이 없을 수가 없었다.
투란은 다시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주변을 맴도는 짙은 안개. 파헤쳐진 흙은 의외로 보송보송한 느낌이었고 숨겨진 구근 따위는 없었다.
안개를 넘어 보이는 것은 그저 맑은 하늘과 기울어진 큰 구멍과 높이 솟은 듯한 한쪽의 풍경, 어느 것도 당장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투란은 하나씩 생각을 정리했다.
문장의 여린 파문, 그것이 진짜 ‘오러’라고 해도 투란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목숨이 위험할 때, 어쩔 수 없이 만난 힘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다시 거기에 의지해서 저 칼날 풀잎을 삼키려면 가슴으로 이어지는 손짓을 최대한 짧게 해야 했다. 구근을 가슴에 대고, 줄기와 풀잎까지 한꺼번에 삼키는 것이 될 테니 어지간해서는 놓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는 상황.
‘큰 심장을 맨 나중에 바꿔야겠네.’
투란은 마음을 정했다.
일단 반쪽으로 정지할 심장을 마지막으로 하고, 몸속 곳곳에 흩어져 맥동하는 덩굴줄기부터 온전한 사람의 살과 피로 바꾸기로.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원래 자신의 형태, 사람의 것으로 되돌린 부분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목과 허파였다.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허파 안 가득 섬세하고 미세하게 번져 있는 넝쿨의 실그물들을 서서히 사람의 허파가 지닌 실핏줄로 바꾸어 갔다.
쿨럭! 쿨럭, 칵!
‘어!’
그러나 어느 순간 투란은 코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물을 손으로 받아 내야 했다. 가슴이 녹아내리는 기분과 함께 코와 목, 허파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그가 마음을 먹기 무섭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몸이 반응을 한 것이다. 코에서 목으로, 가슴속 허파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악마의 심장 덩굴줄기가 물러섰다. 오롯하니, 호흡기관만 사람으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피가 터져 나오고 화끈거리는 통증이 열기가 되어 치밀어 오르다니……?
‘이게 뭔!’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따질 수가 없는 일에 따지려 들기보다는 화가 먼저 났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한데 그런 그의 눈에 훤히 보이는 손바닥, 거기에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핏물, 그 위로 겹쳐서 몰려오는 두꺼운 안개는 또 뭔가?
투란이 뭘 보고 뭘 느끼는가에 상관없이 짙은 안개는 아예 하얀 덩어리처럼 그가 떨군 핏물 위로 몰려들었고, 축축하고 걸쭉한 꼴이 되었다.
눈을 껌벅이던 투란은 그게 뭔지 알아차렸다.
‘슬러시!’
땅바닥에 물을 뿌리고 범벅으로 만드는 진흙탕, 그걸 닮은 몬스터를 대충 부를 때 ‘슬러시’라고 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종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슬러시 계통의 몬스터였다. 뭐가 잘못되어 액정화(液晶化)가 이뤄져서 땅 위를 기어 다니거나 고여 있으면 전부 슬러시라고 부르니, 이건 호칭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목소리 높이던 몬스터 헌터가 있었는데…….
‘아니, 딴생각하지 말고! 이 안개가 슬러시라고!’
터져 나오는 연상과 그로 인한 생각을 애써 접으면서 투란은 쿨럭거려야 했다.
핏물이 다시 줄줄 흘렀고, 하얀 안개는 더 열심히 몰려와 걸쭉하게 엉겨 붙었다. 여태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주변을 맴돌던 안개가 사실은 난 이런 거였다는 듯이 돌돌 뭉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온몸으로 숨을 쉬는 자신을 깨달았다.
‘젠장.’
악마의 심장, 그 넝쿨은 늪도 빨아들이면서 투란을 숨 쉬게 했다.
물고기도 숨 막혀 죽을 늪도 숨 쉬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괴물이잖은가.
허파 일부가 날아간 정도는 전혀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듯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여유를 느낄 기분이 아니었다.
피에 엉겨 붙은 하얀 안개의 슬러시가 본격적으로 그의 손에 달라붙으며 더 많은 피를 원한다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쿨럭거리는 기침과 함께 피를 다시 토해 내자, 더 많은 안개가 몰려온다.
“웃……기지 말라고!”
으스러지듯 망가진 허파 속으로 다시 넝쿨의 실그물을 가득 끌어당기면서, 열린 숨구멍과 입을 통해 투란은 분노를 토했다. 핏물과 엉긴 하얀 안개 슬러시를 손을 오므려 짓이기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슬러시는 손가락 사이로 걸쭉하게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한번 피 맛을 본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로 먹잇감을 향해 점점 더 두껍게 몰려왔다. 투란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 보인다는 듯, 슬러시가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