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0)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투란에게 샤오덴 할배의 기억을 되새기게 했다. 애들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아니, 딱히 애들이 아니더라도 마을의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다가 걸리면 샤오콴 마을의 꼬장꼬장한 할배에게 붙들려서 한동안 온갖 잔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그 곁에 붙어서 자잘한 심부름도 하고, 대장장이 일을 구경도 하고 했던 투란도 적잖게 갖은 잔소리를 들었다. 귀한 쇠의 원석(原石)을 구분 못 하고 다른 잡석이랑 섞어서 잡동사니 방에 넣었다가 물품의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잡동사니 방을 싹 다 정리할 때까지 들어야 했었다.
‘음, 정리는 확실히 중요하기는 하네…….’
잡동사니 방, 다른 곳에서는 보통 창고라고도 하는 모양이던데 샤오덴 할배의 잡동사니 방은 이런저런 물건을 잔뜩 치워놓다가 지치면 그냥 잠들어도 되는 진짜 방이었다. 그 엉망진창인 방…… 투란이 보기에는 한 번도 정리한 적이 없는 방이었는데, 샤오덴 할배는 거기 마구 늘어놓은 물품이 어디에 있는가 금세 알고는 했었다.
그 방에 잘못 던져놓은 원석을 찾기 위해 방의 물품을 다 빼고 넣고 하면서, 잔잔하게 몰려와 귀를 때려부술 듯한 그 잔소리에서 투란이 배운 것은…… 한 귀로 들어온 소리는 다른 한 귀로 내보낼 수 있다는 사실과 그에 필요한 정신적인 기술과 듣는 척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잔재주였다.
덕분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티탄 클래스의 재앙’이니 뭐니 하면서 시커먼 잉크가 이 일대를 전부 자극한 일에 대해 투덜대는 것을 들으면서 바로 흘려넘길 수 있었다!
물론 거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드라고니아이기에 이런 투란의 마음가짐, 정신적 기술과 태도를 꾸미는 잔재주를 간파할 수도 있었지만…… 여기에는 투란이 샤오콴 마을에서는 지니지 못했던 능력, 드라고니아가 ‘병렬구조(竝列構造)로 독립된 자아의식’이라고 표현했던 재주를 적용시켜서 회피할 수가 있었다.
‘악마의 심장’ 속에 깃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에 담긴 이상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오히려 흥미로운 태도까지 유지했으니, 투란은 더욱 깊이 ‘패러블랙 잉크’의 능력에 대해 집중하며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을 신기해하면서, 투란은 허리춤을 더듬고 뱀의 왕족이라 알게 된…… 투란 앞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어서 맛있는 고기를 남겨준 녀석의 가죽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전부 다 잃어버리고 남은 거라고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늪에 휩쓸려 이 춤추는 산맥 깊은 곳으로 내던져진 뒤로, 투란은 샤오콴 마을에서 가져온 장비를 한 가지만 빼고는 몽땅 다 잃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이 떨어져 나간 것들, 몬스터 로드의 힘으로 먹어치워서 양분으로 삼킨 것들…….
하지만 한 가지는 남아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과 함께, 계속 투란의 장비로서 머물러 주는 것.
문득 오른손의 엄지 쪽을 왼손으로 더듬어 보는 투란이었다.
뽀득거리는 두꺼운 가죽이 먼저 만져지면서 손가락이 거기 있는가부터 의심스럽다! 바로 가죽을 허물처럼 벗겨내서 내려놓으며 투란은 다시 오른손 엄지 안쪽에 감춰진 부분을 왼손으로 더듬었다.
두꺼운 가죽의 방해를 치워놓자, 바로 느껴졌다.
언제 제자리로 돌려놨는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지만, 샤벨투스의 이빨이 얌전히 손의 살갗 안에 피 한 방울 담지 못한 채로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채로 감춰져 있었다. 어쩌다 자신의 손에 건네지게 되었는지가 새삼 또 궁금하게 하는…….
‘뱀가죽이 없었다면 이거만 갖고 벌거벗은 채로 나돌아다녔겠네. 키린을 만났을 때도 그 꼴로…… 으아, 창피당할 뻔했다!’
한숨과 함께 살짝 고개를 도리질하고 투란은 다시 잉크와 뱀가죽에 집중했다.
드라고니아가 씨근거리는 낌새로 잔소리를 하다가 제풀에 지친 듯이 느껴졌고, 이는 바로 투란에게 한숨 쉬면서 짜증을 내는 샤오덴 할배를 떠올리게 했다.
“집중 좀 해라, 이 산만한 녀석아! 들으라 할 때는 좀 제대로 들으라고!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기라도 하냐!”
‘집중.’
잔소리를 기억하기보다는 당장 해야 할 일에, 분명히 해야 할 상황에 투란은 더욱 정신을 모으기로 했다. 잔소리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 잔소리를 여기서 지금 이 순간에 되풀이해 듣는 거랑 다를 게 없잖은가?
곧 드레이크의 ‘삶’ 한 자락이 투란의 마음을 채웠다.
시커먼 잉크, 거기서 흘러나온 가죽…… 절대로 그림모스의 가죽이 아니었던 것.
‘이것도 기억과 함께 사라진 걸까? 아니, 눈알이랑 다르다. 가죽은 딱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 왜?’
감각적으로 잉크의 능력을 파악하고, 마음으로 더듬어 생각하던 투란은 결국 직접 가죽을 다뤄보기로 했다. 애초에 원하던 것을 위해서는 실제로 확인해봐야 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꼬여 묶인 뱀가죽의 끝자락, 작은 여분으로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투란의 손이 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시커먼 핏방울이 작게 뭉쳤고 뱀가죽의 끝자락을 바로 포식(飽食)하듯 삼켰다.
투란은 곧 강하게 잉크를 향해 염원했고, 느꼈다.
‘패러블랙 잉크’는 먼저 곤란해하며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뱀의 왕족이 남긴 가죽, 이를 맛보면서 그 구조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뱀의 왕족 껍질이 그림모스의 가죽보다 나은 점을 딱히 느끼지 못하면서, 오히려 독을 방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훨씬 저열(低劣)하기 때문에 굳이 생성(生成)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투란의 의지는 그런 뱀가죽을 원한다니…….
이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딨냐고 의아해하는 꼴이었다.
이 저항감을 억누르며, 투란은 다시 보다 강하게 염원했다.
결국 잉크가 투란의 의지를 따른다.
두 손을 앞으로 내미니, 이번에는 뱀의 껍질이 부드럽게 투란의 손목까지 감긴 형상으로 나타났다. 독가루도 없고, 그 두께도 적당히 조절되어서 산뜻한 느낌이 손가락에 걸리는 뱀의 비늘가죽 장갑이었다.
잠깐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투란은 다시 허물을 벗듯이 손을 감싼 뱀 가죽을 벗겨서 내려놓았다. 조금 전에 벗겨놓은 그림모스의 두툼한 가죽 곁에 놔두니…… 날렵하고 날쌔 보인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지경이었다.
‘이 녀석도 두께를 적당히 조절하면…….’
튀어나올 때마다 그냥 두껍고 질기고 강하게 생성된 그림모스의 시커먼 빛깔을 보면서 투란은 잉크를 통해 가죽을 좀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자 했다. 이미 뱀가죽도 어느 정도는 적당히 다뤄서 손에 씌웠으니까, 어려울 것은 없는 듯했는데…….
“응?”
다시 두 손을 살짝 덮는 뱀 비늘가죽의 형상을 보면서, 조절하려 한 탓인지 조금 전보다 좀 더 얇게, 좀 더 촘촘해서 거의 손 위에 색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향해 투란의 어리둥절한 소리는 저절로 나왔다.
‘악마의 심장’이 적절하게 조절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투란은 자기 이마빡과 목덜미에 땀이 물컹 솟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긴장하고 당황한 탓에!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투란은 다시 잉크에 집중했다.
쓰윽.
이번에는 손목과 팔뚝까지 시커먼 잉크가 번졌고, 어김없이 뱀의 왕족 껍질이 샘솟으며 자리 잡았다. 그림모스의 가죽을 원했지만, ‘패러블랙 잉크’는 그게 뭔지 전혀 감도 못 잡는 듯한 느낌이다?
―딴짓하고 있었냐!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꽤 심하게 잉크가 뿜어내는 가죽에 반응한 탓에 결국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왜 이러는가를 이 짧은 동안의 일을 전해받으며 느낀 듯, 어이없어하며 덧붙인다.
―원-스택(One-Stack)의 메멘토 베슬(Memonto Vessel)인가 보군.
‘그게 뭐야?’
번쩍 투란의 눈이 두 개의 초점으로 벗겨놓은 손모양의 가죽 허물 둘을 동시에 노려봤다. 뿔수리의 눈이 지닌 시력은 순식간에 두 가죽의 깊고 섬세한 무늬를 무슨 성벽처럼 투란에게 보게 해줬다. 얼마나 정교하고 미세한 단위로 두 가죽을 생성해냈는가를 확실하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말이다!
―한 가지만 기억한다는 말이다. 스펠 오브(Spell Orb), 거기 주문을 기록할 때 사용하는 단위개념이 스택(Stack)이지. 스택 하나에 주문 한 가지, 스택의 수가 늘어나면 새길 수 있는 주문도 많아진다. 그래서…… 멀티 스택, 혹은 매니 스택이라고 해서 스펠 오브의 성능을 재는 말로도 잘 쓰인다. 원 스택이라는 거는…….
‘딱 한 가지 주문만 새기는 스펠 오브?’
―그래, 그리고…… 아마 그 잉크라는 녀석은 가죽에 한정해서는 원 스택, 한 가지 형질만 기억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눈알과 다르게 말이야.
‘아니, 왜!’
투란은 마음 깊은 곳을 향해 절규했다.
눈알과 비교해보자면, 가죽은 둔하고 거칠었다.
눈알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다!
너무 해괴하고 이상한 가죽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데 어째서 이 잉크는 가죽은 딱 한 가지만 기억한단 말인가!
폭포처럼, 폭풍처럼 쏟아내는 투란의 투정에 드라고니아가 왈칵 으르렁대는 소리로 대꾸한다.
―그 많은 눈알을, 그런 식으로 본질 속에 기록하는 것도 엄청나게 까다롭고 어렵거든? 보통 눈알도 아니고 이런저런 괴물의 눈알, 그 정수까지 기록하는 거잖아. 가죽은 특별한 용도로 한 가지만 있어도 넉넉하다 여긴 걸 테지. 아르고누스가 아티팩트로서, 생명을 부여받아 제작된 거라면…… 그 가죽을 생성하는 능력은 그저 보조적인 것이고,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그리고 그보다! 지금 저 난리가 범람을 일으킬 수도 있는 재앙이란 내 이야기는 어디로 흘려들은 거냐! 잉크 갖고 장난할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
‘응? 어, 범람…… 없을 거야.’
―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잉크에 대해 말하다가 끝에 붙인, 흘려듣던 잔소리의 한 구절에 대해 재빠르게 ‘악마의 심장’ 속에서 ‘투란’이 내린 냉정한 결론을 토해냈다. 당연히 드라고니아는 대체 무슨 근거로 투란이 이리 강하게 확신하는가를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 난장판이 향하는 곳은 산맥 깊은 쪽이거든. 보라고, 아래쪽에 비비나비를 가두는 저 거무스름하고 투명한 벽…… 이 산을 넘는 게 아니라, 계속 저쪽으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보이지? 저 벽이 이 난장판을 가둔 채잖아. 거의 지평선에 닿는 것처럼 넓어서 몰랐는데, 잘 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저 거뭇하고 투명한 것이 경계라서……’
―맙소사…… 티탄 클래스의 영역(靈域) 몬스터였나…….
‘뭐야, 그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너무 놀라는 기척에 놀라서 말을 멈추고 물어야 했다.
깊은 쓴웃음, 자책과 비명이 이어진 듯한 낌새가 드라고니아로부터 흘러나와 투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로는 쉽게 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이었고, 쉽게 바라볼 수 없는 어둠처럼 투란을 긴장시키는 기척이었다.
‘왜?’
짧게, 그러나 강하게 투란이 다시 물었다.
―아까 말했지만…… 티탄 클래스란 지평선을 물들일 정도로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영역(靈域)’이란, 특정한 형상을 감춘 채로 어느 정도 범위의 지역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드라고니아는 차분하게 말을 하다가, 차마 더 잇기 어려워 했고 더 말하기를 불편해했다. 하지만 투란은 너무 짙게 배어나오는 그 자괴(自愧)하는 감정을 느끼면서 알 수 있었다.
‘이 땅이…… 저 늪이 가득한 전부가 몬스터였다고? 저쪽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몬스터랑 몬스터 같은 나무랑, 온갖 것들이 가득한…… 이 넓은 땅이 통째로 몬스터였다고 하는 거야?’
―그 광대한 범위에 깃든 몬스터란 말이다. 아니, 네 말대로 생각해도 틀렸다고 할 수가 없군. 그래, 이 거대한 지역이 바로 몬스터였다. 이 거대한 몬스터는 자기 영역 속에 다른 생명, 괴물이라도 상관없는 채로 생명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얹어놓은 채로 영향력을 끼얹으며 자리 잡고 있던 거다.
‘영향력이라면?’
―홀로 다니는 것이 보통이고 그 습성인 마수나 몬스터가 여기서는 함께 뭉쳐다니는 것도 그 영향력 탓이겠지. 저기 치솟는 줄기, 저 촉수(觸手)가 이놈이 실체화시켜 직접 사용하는 몸의 일부분일 테고…… 이 지역 전체에 발휘되는 힘의 파편일 거다.
‘아르고누스가 그걸 붙잡아 놓고 있었나?’
투란은 불쑥 물었고, 다음 순간에 폭발적으로 스며오는 드라고니아의 전율(戰慄)과 경악(驚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맙소사, 그럴 수 있어! 이런 영역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면, 맞상대할 괴물이 필요하다고 여긴 거라면……! 하지만 대체 누가…….
두서없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가는 드라고니아의 말이었고 이는 곧바로 드라고니아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을 투란은 쉽게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지금 투란이 할 일은…….
‘정리 좀 해서 이야기하라고. 어, 난 잠깐 이놈의 원스택 잉크랑 놀아봐야 하니까 말이야.’
상큼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면서, 자신도 생각할 여유를 좀 챙겨야 했다.
도대체 가죽을 눈알과 차별하는 이 못된 잉크를 어찌해야 하는가?
차별은 보통 좋지 아니한 짓이라 하는 것이며…… 지금 투란은 아주 옳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