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1)
Chapter 29. 불꽃의 편지
“끄아아―!”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투란은 뒤로 발라당 누워 버렸다.
물론 앉은 자리에서 고민해서 또렷한 방법이 없는 것이 누웠다고 바로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하지만 두 손에 뱀과 그림모스, 두 종류의 가죽…… 다른 곳에서 얻은 것도 아니고 바로 투란 자신의 몬스터에게서 얻어낸 두 가죽을 쳐들고 그 뒤에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기묘한 전환이 찾아왔다.
‘뱀 가죽을 만드는 잉크랑, 그림모스 가죽을 만드는 잉크랑 다른 몬스터처럼 분리해서 삼켜두면 안 되나?’
손에 하나씩 들고 쳐올린 손모양을 한 두 가지 가죽은 쥐에 쏠린 것처럼, 뭔가 먹성 좋은 놈이 물어뜯은 것처럼 패인 흔적이 여러 곳 생겨난 채였다. 이는 투란이 다시 그림모스의 가죽을 기억시켰다가, 뱀가죽을 기억시켰다가 하는 짓을 되풀이한 때문이었다. 당연히 ‘패러블랙 잉크’는 한 가지만 기억했고…… 뱀가죽을 기억시킬 때의 불쾌함, 그림모스의 가죽을 기억시킬 때의 상쾌함을 투란에게 몇 번씩 되풀이해서 알려줬다. 투란의 의지에 따르기는 하지만, 뭐가 더 좋은지는 여실히 밝힌 셈이기는 한데…….
발딱, 투란은 다시 앉았다.
두 발을 바닥을 댄 채로 앞에 놓으며, 두 가지 가죽을 올려놓고 빈손을 싹싹 문지르면서 투란의 마음이 몬스터 엠블럼을 두드렸다.
좌충우돌하면서 잠시 엉뚱한 짓을 해본 탓인지, 투란은 어느새 잉크의 흐름과 성질, 변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손바닥에 솟은 작은 돌로부터 흘러나온 시커먼 잉크빛은 또 색다르게 투란의 감각을 자극했다. 이는 ‘투란-아르고누스’로부터 생성되고 흘러나온 잉크가 아닌,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원래 아르고누스가 투란을 공격하기 위해서 흘려내던 잉크였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작은 돌로부터 나온 몇 방울의 시커먼 잉크는 갈팡질팡하면서도 투란의 손 위에서만 맴돌았다. 뭔가 중심을 잃은 듯했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듯…… 갓 태어난 탓에 어쩔 줄을 모르는 채로 작은 조각의 가죽을 쑥쑥 뱉어냈다 지웠다 하고 있었다.
‘아, 그때도 그랬지.’
새삼 작은 돌을 얻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투란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작은 돌이 뿜어낸 늪은 독립된 몬스터…… 그러므로 투란이 할 일은…….
작게 찰랑이던 잉크가 투란의 손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채로 가슴에 닿았다.
문장이 잉크를 순식간에 삼켰고, 그 과정이 끝나는 순간 투란은 ‘투란-아르고누스’의 ‘패러블랙 잉크’가 성질을 바꾼 것을 알아차렸다. 뱀가죽을 기억하고 있다가 바로 그림모스의 가죽으로!
“어? 헉! 아차…….”
두 주먹을 쥐면서 투란은 자기 머리를 두드렸다.
동일한 형질의 에센스는 몬스터 엠블럼 속에서 한 가지로 통합된다.
문장 속의 잉크는 새로 삼킨 잉크 속에 담긴 가죽의 기억을 받아들이면서, 달랑 또 한 가지 가죽만 기억했다!
생각이 모자라서 저지른 실수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투란은 작은 돌이 맛보고 삼킨 원래의 잉크가 눈알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았다. 딱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르고누스가 눈에 대해 간직했던 기억은 정말 없어졌다는 아쉬움은 불쑥 튀어나왔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다시 손바닥을 쳐들고 봤다.
작은 돌은 그림모스의 가죽을 기억하는 잉크를 생성할 수 있었다. 그 속에는 가죽뿐 아니라, 기묘한 눈알에 대한 기억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잉크는 그 기억을 건드리지 못했다. 아르고누스의 일부이면서도 독립된 존재로서, 잉크가 독자적으로 생성하고 해체하는 것은 오직 가죽뿐이었다. 눈알에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아르고누스가 관리, 결정하고 있었다.
작은 돌이 손바닥에서 사라졌다.
한숨이 한 번 더 투란의 입술 사이에서 맴돌았다.
‘아티팩트라면서…… 왜 이렇게 해놨지? 가죽을 여럿 기억해도 되는 잉크면 안 될 리가…… 아니, 잠깐…….’
흘러가던 투란의 생각이 살짝 꼬였다.
그러고 보니 샤오덴 할배가 이상한 물건을 만들 때의 기억이 저절로 튀어 오르면서 투란에게 속삭이는 듯한데…….
“칼자루에다가 왜 활시위에 걸 홈을 파놓냐고? 가끔 칼을 통째로 걸어 화살 대용으로 쏘는 놈이 있으니까. 홈이 없이 쏘는 것보다는 홈이 살짝 새겨진 것이 시위에 걸기 좋거든. 뭐, 칼을 그렇게 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게 보통이긴 하지. 하지만 화살 딱 하나가 모자랄 때, 칼을 휘둘러서 닿지 않을 때인데 활이 곁에 있다면 편하게 쏠 수 있는 것이 더 쉽거든.”
다들 할배가 약간 노망기가 있다고 했다.
딱 한 명, 성기사의 우두머리…… 이제는 오러클 워리어였다고 알게 된 그 멀쩡하게 여겨지지 않는 성격의 아저씨만 ‘우와, 그렇군요!’라고 감탄했었다.
따지고 보면, 이 경우 샤오덴 할배의 수작이 엉뚱한 것이고 분명 장난이었을 것이다. 칼자루에 홈 하나 더 파놓는다고 해서 칼 쓰는 데 딱히 지장이 없기야 없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랍시고 저런 소리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닐 리가 없다.
그런데 정말 그때 샤오덴 할배가 장난을 친 것이고, 오러클 워리어는 거기 호응해 준 것일 뿐일까?
‘돌멩이 하나도 아쉬울 때가 있지, 있기야…….
투란은 생각했다.
어쩌면 샤오덴 할배의 말처럼 되는 순간 있을 수도 있었다.
거의 없겠지만, 정말 어쩌다 그럴 수도 있다.
호주머니에 돌멩이 하나가 정말 아쉬울 수도 있으니까!
그 돌멩이가 파란빛으로 물들어 반짝이면 진짜 아쉬움이 몇십, 몇백 배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도리도리, 투란은 옆으로 새는 생각을 다시 바로잡았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아르고누스의 잉크였다.
드라고니아가 아티팩트, 살아 있지만 아티팩트이며 누군가에 의해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라 추측했던 것…….
‘패러블랙 잉크’와 ‘크리스털 애시’를 생성하며, 눈알을 수집―채취(採取)하는 녀석.
‘이 녀석이 잉크를 흘린다.’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사람의 몸에 뼈대가 있고, 살이 있고, 피가 흐르듯…… 아르고누스는 ‘크리스털 애시’로 감싸인 채, 그 안팎을 넘나드는 ‘패러블랙 잉크’를 손발이나 눈, 귀처럼 활용한다. 그리고 그 중심, 심장이면서 머리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그 깊은 곳에 자리한 검은 알의 형상…….
아르곤처럼 눈알을 채집하고 사용하는 녀석에게 몇 종류의 가죽이 필요할까?
아르고누스는 오직 강한 가죽 한 가지를 덤으로 갖춰놓으면 된다…… 중요한 방어에는 크리스털이 사용될 테니…….
‘기왕이면 튼튼하고 독을 뿜으며 잉크의 활동을 덮고 도울 수 있는 걸로 말이지.’
아르고누스의 잉크가 갖출 조건으로서는 더 다른 것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괴물이든 뭐든 스며들고 녹여 삼킬 수 있는 강한 잉크이잖은가. 과연 이 잉크가 스며들지 못하는 것이 뭐가 있을까?
두근, 가슴이 울리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고개를 흔들면서 흐트러지려는 생각을 되돌렸다.
결론은 거의 나오고 있었다.
작은 돌이 굉장히 흥미로워했던 아르고누스였다.
아르고누스도 시커먼 잉크를 뿜어내면서 작은 돌처럼 활용하기 때문일까?
서로 완연히 다르고, 차이점도 아주 컸다.
하지만 둘은 뭔가를 맛보고 수집하며, 기억하려 하는 점은 비슷하잖은가.
그리고 이를 통해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잉크는 눈알에만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어. 아르고누스가 낳았고, 아르고누스의 피이면서 손발이니까. 그렇다면…….’
‘투란-아르고누스’는 투란의 문장 속에 머무는, 몬스터 로드의 몬스터였다.
이전 아르고누스와 꼭 같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투란-아르고누스’에게 새로운 변화를 심어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천천히 투란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래전에 들었던 짤막한 이야기가 기억의 깊은 곳에서 스며나온다.
‘정수(精髓)는 융합(融合)한다. 문장을 통해서 에센스는 하나로 엮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언젠가 잘난 척하며 왈왈대듯이 떠들던 몬스터 로드는 과연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그 말을 들은 어린 투란이 몬스터 로드가 되어 그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란 생각을 했을까?
미묘하게 ‘그럴 리가!’라고 자신에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투란은 집중했다.
손등을 보이는 채로 활짝 펼쳐진 손이 돌로 변했고, 손목과 팔뚝도 돌이 되어 갔다. 돌이 된 손이 거칠게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마주했다. 손가락이 서서히 맞물렸고, 빠득거리는 돌의 마찰음이 울리면서 두 손이 작은 그릇처럼 투란의 앞에 멈췄다.
‘돌이 된 채로 움직이는 것도 되는구나.’
키득거리는 작은 생각은 잠시 스쳤고, 금세 사라졌다.
대신 투란의 마음은 자신이 내린 해답에 집중되었다.
‘패러블랙 잉크’의 새로운 형성이 시작되었다.
작은 돌, 두 손과 팔뚝까지 드러난 돌이 웅웅 울었고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힘을 꺼내 사용하는 것이 상쾌하다는 것을 투란이 느끼게 했다. 그리고 맞물린 손 사이에서 시커먼 핏방울이 맺혀졌다.
작은 점처럼 두어 방울 생겨나는 순간부터, 시커먼 핏방울은 투란의 손에서 손목을 타고 팔뚝을 향해 질주하려는 듯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너무 작고 여린 두어 방울로는 그런 긴 여행은 무모한 시도였다. 돌 위를 길게 늘어지며 흐려진 시커먼 핏방울은 꾸물거리며 가는 금이 되어 굳어질 뿐이었다.
작은 돌이 보다 선명하게, 정교하게 울었고 시커먼 핏방울이 좀 더 많이 맺혀 갔다. 결국 두어 방울에서 작은 그릇을 채울 정도로 부풀어 오른 시커먼 핏방울은 충분히 넘쳐흐르며 투란의 팔을 거쳐 가슴에 도달할 수 있었다.
투란은 가슴을 더듬는 시커먼 핏방울, 새로 태어난 잉크를 잠시 지켜봤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은 오직 투란의 가슴속뿐이라는 듯이 시커멓게 흘러와 가슴에 매달린 핏방울, 잉크가 살갗을 넘나드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투란의 살갗에는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고, 따로 느껴지는 고통도 없었다.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좋아.’
투란의 두 손에서 돌이 가라앉듯이 사라졌다.
돌의 힘이 사라진 순간, 투란은 돌연 머리 한구석이 핑 도는 것을 느꼈고 피로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물들이는 것을 깨달았다.
‘으아…… 무리했나.’
마치 자기 힘을 생각하지 않고 무거운 것을 받아 들었다가 내려놓지도 못한 채로 바르르 떨다가 기운이 다 빠져버릴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나치게 힘을 쓴 뒤의 후유증이 딱 이럴 텐데…….
시커먼 핏방울이 이런 투란의 상태를 느낀 듯, 조금 더 조급하게 찰랑이며 가슴팍을 더듬으며 맴돌았다.
투란은 정신을 다잡았고, 해야 할 일을 했다.
문장이 가슴에서 맴도는 새로운 잉크를 삼켰다.
여느 때보다 빠르게, 한 방울의 잔해도 남기지 않고 투명한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양도 훨씬 적은 느낌이었다.
후우아아.
긴 숨을 몰아내쉬면서 투란은 문장 속 풍경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속에서는…….
* * *
다른 모든 것을 잠시 외면하듯, 투란은 ‘천칭’의 정상에 자리 잡은 보석의 알에 집중했다. 그 속에 담긴 것에 몰입해 들어갔다. 그 안에 새겨져 있는 사람의 형상과 보석 알의 모습에 집중했다.
보석알은 역시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상반부의 외각(外殼)에는 크리스털의 무늬가 선명하게 도드라진 채였고, 이는 여차하면 보석알 전체를 뒤덮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보석알의 안쪽, 사람의 형상 위편…… 머리 위로는 작고 검은 알이 자리 잡은 채, 시커멓게 맴도는 잉크 한 줄기를 모자처럼 쓴 듯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검은 알의 모자처럼 차지하고 맴도는 잉크의 주변으로 크리스털로 된 원호(圓弧)가 그어졌다. 완전한 원이 된 크리스털의 선은 폭을 넓혔고, 두 가닥으로 나뉘며 두 개의 크고 작은 원을 형성했다. 보석알의 바깥에서 새로 스며온 핏방울의 검은 색채가 바깥쪽의 큰 원과 작은 원의 틈새를 물들였다.
‘투란-아르고누스’, 검은 알이 새로 들이닥친 ‘패러블랙 잉크’의 신품(新品)을 감상하듯 맥동했다. 이에 호응하여 보석알의 아래편, 사람의 형상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돌도 맥동했다.
기묘한 울림이 보석알에 새겨졌고, 조율(調律)되었다.
* * *
투란은 자신의 눈을 한 채로, 살짝 떨리는 두 손을 내밀어 두 가지 가죽을 쥐었다. 그림모스와 뱀의 왕족, 두 가죽을 쥔 두 손에서 검은 얼룩이 번지면서 반짝이는 잉크가 되었다.
어딘가 산뜻한 광택을 지닌 시커먼 잉크가 바로 두 가지 가죽으로 스며들었고, 두 가죽이 늪에 빠진 것처럼 잉크 속으로 오그라들며 사라졌다. 잠시 투란의 두 손은 찰랑이는 시커먼 잉크가 된 것처럼 작은 파문을 보이며, 액체(液體)로 된 손처럼 스쳐 가는 바람결을 고스란히 표시했다.
투란은 잠시 두 손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