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2)
뽀득, 사악.
한 손에서는 그림모스의 가죽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거친 마찰음을, 한 손에서는 뱀의 왕족 가죽이 부드럽게 스쳐 가는 경쾌한 소리를 냈다.
예리하게 귀를 기울이며, 눈을 부릅뜬 채로 이를 보던 투란이 살짝 입을 열었고…….
“아하하하……! 우아아하하핫!”
큰 웃음과 함께 뒤로 벌렁 몸을 뒤로 누이면서, 곧바로 단단한 암벽의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바로 투란은 몸의 이상을 느끼면서, 웃음을 멈춘 채로 거친 숨을 몰아내쉬어야 했다.
분명히 성취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성취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소모되었다.
그 여파를 ‘악마의 심장’이 먼저 느꼈고, 투란은 자신이 상상한 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에 잠시 잊었던 것을 되새기면서 알아차려야 했다.
새로운 성질, 능력을 지닌 ‘패러블랙 잉크’, 부르기에 따라서는 ‘투란-아르고누스’의 잉크 2세일 수도 있는 녀석을 생성해내기 위해서 작은 돌의 능력이 아낌없이 사용되었고…… 그러는 데 소모된 힘, 마력이 바닥난 투란에게 그 반동(反動)이 찾아오고 있었다.
마법사의 마력과 다른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 이는 몬스터 로드에게는 생명력이나 다름없다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투란은 지금 몸을 통해서, 뼛속 깊이 말라가는 감각 속에서 철저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심했나?’
생각하는 것조차 피로하게 여겨졌다.
‘악마의 심장’이 가슴에서 힘겨운 맥동을 하며 당장 투란이 할 일이 뭔가를 분명하게 뇌리에 심어주려 할 지경이었다. 저 아래,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곳…… 폭포 아래의 거품 가득한 웅덩이, 그리고 매달린 채로 햇살을 쏘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푹 잠들어 쉬어야 한다고!
이제는 웃음도 뱉을 수 없는 거칠면서도 여린 숨결로 투란은 뒹굴다가 엎어진 몸으로 기어야 했다. 내려다보기가 무섭던 암벽의 가장자리로 가서, 폭포를 겨냥하고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미 팔다리는 가느다랗게 말라 있었고, 기어가는 것도 힘겨울 지경인 까닭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이런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면서, 힘겨운 숨결 속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가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했고, 눈앞이 오락가락해서 머리로는 생각할 겨를이 부족한 투란에게 넉넉한 생각의 결과를 전했으므로…….
어찌 되었든 투란은 저 아래편의 폭포를 겨냥해 뛰어내릴 수 있을 테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빛과 물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는 딱히 목숨이 위험한 상태라기에는 여유가 좀 있는 셈이다. 이런 여유가 투란의 좁아진 생각에도 드리워지는데…….
끼이이―!
‘응?’
가늘고 긴 새 울음소리, 정확하게 투란이 그 눈을 얻어냈던 뿔수리의 울음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그리고 기어가면서 고개를 돌리는 투란의 곁으로, 어깨에서 고작 한두 뼘 정도의 거리에 뭔가 툭 떨어졌다.
떨어지자마자 입을 좌악 벌려 보이는 그것은…… 뱀의 머리통이었다.
사람의 허리 정도는 가볍게 한입에 물어버릴 듯이 큰 뱀의 머리는 위아래로 길쭉하게 돋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채운 입을 열었고, 바로 통통 튀는 움직임으로 투란의 어깨부터 삼키는 꼴로 달려들어서, 투란의 몸을 물었다.
“엥?”
투란은 엉겁결에 활짝 열린 뱀의 입 속으로 손과 팔을 싹 집어넣는 꼴이 된 채로 놀란 소리를 내야 했다. 뱀이 물려고 하니 반사적으로 팔뚝으로 아래턱이나 뱀의 입술 위를 쳐서 밀어내려 했는데…… 뱀의 활짝 열린 입 속으로 그냥 어깨까지 쑥 담그는 꼴이 되었다. 그렇잖아도 물려던 녀석이었으니, 뱀의 송곳니 두 쌍, 아래위로 길게 돋은 독이빨이 그대로 투란의 가슴과 등에 박혔다.
“어?”
뱀의 이빨에서 흘러나온 독이 가슴과 등에서 번지는 것이 짜릿하게 느껴졌고, 동시에 뱀의 입에 삼켜진 오른손의 저편이 허전하다는 것도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기력이 돌아오면서 투란은 보다 예리해진 감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통통 튀면서 입을 열고 바로 독이빨을 박아온 뱀의 머리는, 그냥 머리뿐이었다. 목 뒤로 싹둑 절단되어 없었다. 그 머리통의 크기가 투란의 어깨에서 가슴까지 가볍게 한입에 담글 정도로 크고, 독은 상당히 지독해서 ‘악마의 심장’이 좋은 양분으로 삼을 정도로 기뻐할 지경인데…… 이 큰 독구렁이는 틀림없이 머리통만 남은 놈이다!
삼켜진 손을 펼치면서, 잘려나간 채라 속살이 드러난 곳을 움켜쥐면서 투란은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손아귀에서 흘러나간 ‘악마의 심장’ 줄기가 뱀의 머릿속을 헤집으면서 양분을 흡수하고 있었다. 싱싱한 뱀의 머리통 속, 그 뇌수를 섭취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물이라도 마셔야 하는 투란에게 이는 아주 적절한 양분이 되어주는 셈이었다. 그리고 노란 바탕에 세로로 갈라진 뱀의 녹색 눈동자는 투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아르고누스의 본능까지 자극해줬다.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고, 뱀의 속살과 뇌수를 핥는 손길까지 멈출 마음이 없는 투란이었다.
뱀의 눈동자가 곧 투란의 왼손에 덮였고, 이번에는 뿔수리의 때와 다르게 곧바로 뱀의 눈구멍이 비워졌다. 덤으로 곧 투란은 뱀의 가죽에도 슬쩍 잉크를 흘리는 채로, 자신에게 느닷없이 독이 잔뜩 오른 뱀을 던진 녀석을 향해 눈길을 돌릴 수가 있었다.
고맙기는 한데, 이게 대체 뭔 일인가?
보통 이렇게 독이 오른 큰 구렁이를 던지는 까닭은 해코지를 하려는 것 아닌가?
‘헐?’
어이없는 심정으로 투란은 조금 전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뿔수리는 도도하고, 당당하게 암벽 한편에 올라선 채로 목이 끊어진 뱀의 몸통을 토막내고 있었다. 날카롭게 일으켜 세운 뿔수리의 발톱이 거칠게 뱀의 몸통을 헤집고 짓기이면서 절단하는 광경은 둔한 칼날로 고기를 써는 것과 꼭 닮았다.
그리고 그렇게 절단된 굵고 짧은 뱀의 토막난 덩어리가 투란을 향해 툭툭 두어 개 날려졌다. 뿔수리가 발톱으로 퉁긴 것이다. 사람이 손가락으로 물건을 튕겨 보내듯이…….
투란은 재빠르게 손발을 움직여서 뱀의 토막난 덩어리를 받아 챙겼다.
지금 먹을 것을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러다 문득, 투란은 뿔수리의 자태가 굉장히 도도하고 당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눈이 선명하게 움직이며, 투란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어딘가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딘가에서 사냥해온 7, 8미터 길이는 가볍게 넘을 듯한 뱀을 나눠주는 것을 굉장히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도대체 이게 어떤 상황인가?
투란이 잠시 아리송하는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불쑥 뇌리를 울리는 소리를 냈다.
―보르가, 독구렁이 보르가를 사냥할 정도였나.
‘보르가?’
―검은 비늘, 비늘 윤곽을 따라서 붉은 테가 둘러쳐진 구렁이, 아래위로 돋은 두 쌍, 네 개의 송곳니에서는 살을 엉겨붙게 하고 피를 말리는 독이 줄줄 흘러나오지. 마수와 몬스터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는 독구렁이다, 이름은 보르가.
드라고니아는 기대하지 않은 상세함으로, 왜 이 큰 뱀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생김새, 특성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라서 투란으로서도 딱히 아니라 하기 어려울 지경이잖나!
―이런 곳에서 상처 입은 채로 사는 놈이라 이상하다 여겼더니…… 눈이 고쳐지고 몸의 마비된 부분이 풀리니까 보르가를 사냥할 정도로 사납고 강한 놈이라니.
드라고니아가 뿔수리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투란은 뿔수리가 던져준 뱀고기 토막을 으적거리며 거침없이 물어뜯고 삼켰다.
뿔수리 역시 그 도도함과 별개로 자신의 두 발 사이에 뱀의 긴 몸통을 당기면서 토막내고 찢어 삼키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이 왜 나한테 뱀고기를 던져주지?’
먹어치우면서도 투란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대답을 해준다.
―뿔수리는…… 특히나 이런 곳에 사는 녀석이라면 상당히 영리하겠지. 그러니까 자기 눈과 몸을 고쳐준 너에게 보답을 하려는 것 아닐까? 사냥을 해서, 먹이를 나눠주는 걸로 말이야.
‘음, 적절한 순간에 돌아오기까지 했네.’
투란은 뿔수리가 망가진 시각이 돌아오자, 몸속 깊이 새겨진 상처로 인해 느끼던 불편함이 사라지자마자 떠난 광경을 되새겨봤다. 마치 투란이 무슨 짓을 했는가 모르는 것처럼, 느닷없이 행운을 잡은 것처럼 훌쩍 떠나는 모습이던 뿔수리였다.
그런 녀석이 투란이 이곳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사이에 사냥을 해서, 사냥감을 나눠주기 위해 돌아왔다니…….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인데 말이야.’
먹어치우는 뱀고기의 진한 피내음과 향기, 아직도 몸에 번지면서 양분이 되어주는 독을 느끼지 않았다면 꿈이라도 꿨을까 싶은 상황 아닌가!
덕분에 폭포로 뛰어내릴 상황을 피했으니, 투란도 이 적절한 순간의 도움을 아주 좋아하며 즐길 수가 있고!
이런 투란의 생각을 느끼고 불편한 듯, 다시 한숨 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어째서 그렇게 무리했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음? 아니, 될 것 같아서 해본 건데…… 어, 필요하기는 필요했어.’
입가를 팔뚝으로 훔쳐내면서, 독특하게 검은 바탕과 붉은 윤곽의 비늘 가죽을 돌돌 말아 물어뜯어 삼키면서 투란은 뿔수리를 바라봤다.
뿔수리도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뱀의 껍질을 싹싹 긁어내며 살점을 모두 먹어치운 다음에 끽끽거리는 묘한 소리를 내면서 투란을 마주 봤다. 맹금의 눈길 속에는 오만함과 함께 투란에게 뭔가 도도하고 당당하게 들이대는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그 분위기 속에 담긴 의미를 투란은 곧 멋대로 해석하고 아예 대답을 해버린다.
“그래, 비겼다. 난 네 상처를 고쳐줬고, 넌 내게 꼭 필요한 먹을 것을 갖다줬어. 그러니까, 비겼어.”
뿔수리의 머리가 잠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투란은 그 정수리에 굵게 돋은 깃, 눈가에서 치솟은 깃의 형상이 진짜 뿔처럼 보이며 왕관이라도 이마에 단단하게 둘러박은 듯한 느낌이란 소리가 뭔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눈가에서 몸을 따라 이어진 흉터, 깃과 깃 사이에 패인 분명한 흔적은 이 뿔수리에게 기괴한 노련함을 더해주는 듯했다.
끼이이―!
뿔수리가 날개를 펼치며 바로 암벽의 한편에서 몸을 던지듯이 뛰어올랐다.
곧 처음 투란이 보았을 때처럼 뿔수리는 산의 정상을 한 바퀴 감으며 맴돌았고, 곧바로 멀어져갔다. 이제 볼 일을 다 봤다는 듯…….
멀어지는 뿔수리를 잠시 지켜보다가 투란이 중얼거린다.
“잘 가.”
짧은 한마디와 함께 투란은 기지개를 켰고, 온몸에 골고루 퍼지는…… ‘악마의 심장’이 바로 해체해서 온몸으로 퍼뜨린 뱀고기의 양분을 느끼면서, 그 지독한 독이빨의 위력에 감탄했다.
‘아니, 이 녀석 이빨에서 계속 독이 새 나와?’
아직 독구렁이의 머리통은 투란의 몸에 이빨을 박은 채였다.
―보르가의 독은 키클롭스도 쓰러뜨린다. 넌 대체…….
드라고니아가 불만이 넘쳐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헐? 이게 그렇게 지독한 놈이라고?’
뱀의 송곳니를 천천히 몸에서 떼어내면서 투란은 새삼 그 빈 눈구멍, 말라버린 가죽의 형상과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머리통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이런 투란의 태도에 드라고니아가 버럭 소리지른다.
―젠장, 지금 그걸 구경할 때냐!
‘응? 왜?’
―왜냐니! 저 티탄 클래스인 영역 몬스터에 대해서 손 놓을 작정이냐고!
‘저 넓고 큰 걸 어쩌라고?’
슬쩍 뱀의 머리통에서 눈길을 떼어, 드라고니아가 말한 광대한 영역을 돌아보며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는 채로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드라고니아도 바로 뭘 어찌해야 한다고 명쾌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대신 잠깐 주저하다가 뚱한 낌새로 말을 쏟아낸다.
―생각을 해! 뭘 어떻게 할 것인지! 여기서 균형을 깬 거는 너잖아! 저게 저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게끔 생각을 해! 지금 저쪽으로 물러선다는 것만 보고 안심하지 말고, 저게 여기, 이 자리를 경계로 해서 밖으로 넘어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라고! 가능하다면 저걸 더 깊은 곳으로 처박을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하잖아!
‘아니, 그런 걸 어떻게…….’
투란은 아주 난감했다.
뭔 눈에 가늠이나 되는 몬스터도 아니고, 그냥 늪지대 전체랑 간혹 솟은 바위산, 숲의 넓고 넓은 지역이란 놈한테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은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나 모를 아르고누스도 뭔가 딱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그동안 흘려냈던 잉크가 아르고누스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로 뭘 어찌할지 몰라 미쳐 날뛰는 탓에 저것도 덩달아 발작하는 걸로만 보이는데 상황이었다.
―젠장, 뭐든 생각해내라고! 고작 가죽 짜내는 몬스터 만들고 좋아라 하는 정도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라고! 괜히 뿔수리 눈알이나 고쳐주고, 뱀고기나 얻어먹고 신나 할 상황이 아니야! 저놈이 산맥 밖을 향하게 되면, 저놈이 품고 있는 대규모 몬스터가 무리 지은 그대로 세상에 풀려난단 말이다! 그러면 대범람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생각해내! 뭐든! 저걸 저 안으로 몰아넣고, 다시는 나오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내라고!
‘야, 순 억지잖아. 나가서 대범람이라면, 저건 이미 이 안에서 대범람 수준이란 거잖아. 그런 걸 나 혼자 어쩌라고? 아르고누스를 내가 삼켰다고 해도, 저 넓은 곳을 향해서 내가 할 일은 겨우 늪에 잉크 한 방울 던지…… 응? 어? 가만…….’
―뭘 생각해냈나! 그럼, 해! 그게 뭐든!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막무가내로 외치고 있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