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4)
먼저 투란은 ‘패러블랙 잉크’의 신품을 생성하기 위해 염원하던 과정을 되새겼다. 어떤 식으로 염원을 했고, 어떻게 잉크의 성질에 대해 파고들었던가……. 그리고 그 결과로 왜 그렇게 온몸이 마를 지경으로 힘들었던가!
잠깐 투란의 눈길이 방향을 바꿨다.
뿔수리가 싹싹 살을 발라먹고 떠난 자리, 거기에는 아직 토막났지만 길게 늘어진 채인 독구렁이 보르가의 커다란 잔해가 놓여 있었다. 뼈도 멀쩡하고, 검은 바탕과 붉은 윤곽선을 지닌 비늘의 가죽도 거의 그대로…… 뿔수리의 억센 발톱에 뜯기고 찢겨 나간 부분을 빼면, 그 부분을 기워놓기만 하면 투란의 곁에 있는 완전히 마른 머리통과 붙여서 온전한 보르가의 형상으로 돌아올 듯도 싶었다.
‘배가 불러서 갔고 말이지.’
뿔수리의 부리와 발톱으로 싹싹 다 먹어치운 것으로 보였지만, 투란의 입장에서는 아직 충분히 한 이틀을 먹어치울 것이 거기 남아 있었다. 가죽과 뼈, 그리고 얇아보이지만 보르가의 크기를 고려할 때, 몇 사람이 아껴서 며칠을 먹을 수 있을 듯한 살점의 파편들…….
투란은 마주 모았던 손을 내리고 바싹 마른 보르가, 뱀의 머리통을 들고 나머지 잔해를 모으기 시작했다. 모으면서 벗겨진 껍질 깊은 곳에 아직 두툼히 남아 있는 속살은 바로 먹어치우기도 했다.
‘이거 두 토막 정도 먹어서, 그럭저럭 괜찮아졌었지?’
뿔수리가 굵직하게 잘라 던져준 보르가의 토막은 거의 전체의 삼 분의 일(一) 정도였다. 뿔수리는 그 삼 분의 이(二)를 거의 먹어치우고, 큰 부리와 발톱이 닿지 않는 자잘한 곳을 남긴 채 가버렸고…….
투란은 보르가의 송곳니에 손을 대봤다.
아직 독이 그 속에서 뭉클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또한 ‘악마의 심장’에게 좋은 양분이 되어 준 것이었다.
가볍게 투란의 손가락이 이빨의 날카로운 끝에 닿았고, 살갗이 살짝 뚫리는 듯하면서 열렸다. 보르가의 송곳니 두 쌍이 위아래로 맞물리는 듯하면서 투란의 손가락에 꽂힌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그 미세한 영역에서는 투란의 손끝에서 흘러나간 ‘악마의 심장’ 줄기가 티끌보다 가늘고 섬세하게 보르가의 송곳니 안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예 독액의 뿌리까지 더듬어가는 침입이었고, 이를 통해 투란은 보르가의 머리 골격 깊은 곳에 숨겨진 독의 그릇을 찾아냈다.
‘이 녀석 보게, 독주머니가 달린 게 아니라 아예 뼛속에 독항아리를 가지고 있네? 어쩐지 바싹 말릴 정도로 다 훑어냈는데도 독이 계속 나오더라니…….’
이모저모로 살펴보면서도 신기하게 여긴 일이었다.
하지만 보르가, 이 독구렁이가 뼛속에 독액을 저장한 것은 이제야 겨우 깨닫는 투란이었다.
―몰랐나? 보르가의 뼈는 머리끝에서 꼬리 끝까지, 모두 그런 독액 포낭(包囊)을 지니고 있다. 이놈이 몬스터인 상태로 전이(轉移)하게 되면 그 독액 포낭이 으스러지면서 온몸에서 독안개를 흘리는 꼴이 되지.
‘야, 미리 좀 말해달라고.’
뒤늦게 말을 꺼내는, 투란은 뒤져서 알아차린 다음에야 설명하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덜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의 독구렁이가 보르가라 불리는 것도 몰랐는데, 독을 어디 숨겨 가진 놈인지 알 게 뭔가!
―열심히 먹어치우고 있길래 이미 알아차린 줄 알았지.
뻔뻔하게 드라고니아가 대꾸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투란도 투덜대지 않았다.
진작에 뼈를 으스러뜨리고 씹거나 했으면 바로 알아차릴 일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드라고니아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늘 그래 왔으니까.
‘악마의 심장’은 깨서 먹어치운 뼈조차도 양분으로 삼으니, 당연히 그래 왔고.
‘음, 별로 많이 먹지 않았었나?’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이런저런 상황에 치이면서 그렇게 배불리 먹은 기억이 없는 듯도 했다. 키린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제대로 사람답게 구워먹었던가?
투란은 고개를 젓고, 일단 보르가 머리뼈 속의 독액을 흡수했다.
그다음, 투란은 보르가의 머리를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다시 두 손을 가만히 모은 채로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무엇을 염원할 것인가를 정하고, 어떻게 염원할 것인가를 다듬었다.
‘한 방울. 검은 잉크 한 방울. 다른 정수는 필요 없고, 특별한 성질을 지닌 한 방울이면 된다……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한 방울, 그러면 되는 거야.’
자신에게 되뇌면서, 투란은 천천히 블러드 크러시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겼고, 한 방울의 열매가 어떤 식으로 두 도시를 전멸시켰는가에 대해 기억해냈다. 한 방울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번져가고, 또 그 한 사람이 어떻게 두 사람에게 피의 오염을 옮겨갔던가…….
쿠릉거리는 먼 곳의 큰 울림이 투란에게 전해올 때, 투란은 생각을 멈췄다.
천천히 투란은 손아귀에 작은 돌을 품은 왼손을 눈가에 올린 채로, 소리 없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고 작은 한 방울, 오로지 내 뜻만을 새겨 넣은 한 방울의 잉크. 저 멀리 여행을 가야 하는 한 방울…… 여행을 하며 뭘 해야 할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잉크를 만나고 내 뜻으로 물들여야 하는 한 방울! 내게 돌아와서, 내 문장에 품어져야 하는 한 방울…… 그러니까, 절대로 꺾이지 않는 의지의 한 방울!’
속삭임 속에서 투란은 상상했다.
작은 열매에 깃들여진 핏빛 한 조각이 어떻게 두 도시를 전멸시켰다 했던가, 그럼에도 어째서 피해가 적었다는 결론이 되었던가…….
‘오랜 세월, 여기서 엄청나게 많은 잉크가 흘러갔지. 그 잉크를 찾아서, 내 뜻으로 물들여! 그리고 여행을 해라, 저 안 깊은 곳으로! 내가 넘어왔던 그 암벽의 산 너머로, 여행을 가. 넓어지고 커지면서…… 내가 본 것을 보고, 겪고, 그 녀석…….’
투란은 자신이 만났던, 악마의 심장을 겁에 질리게 했던 ‘허무’를 떠올렸다. 그 ‘심연’의 기억은 다시 투란의 가슴속을 헤집으며 심장을 떨리게 한다.
‘그 녀석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여행을 하는 거야. 내게 돌아오는 여행, 아주 작은 한 방울 속에 그동안의 여행을 모두 담은 채로, 새로운 여행을 모두 담는 한 방울이 되어서…… 내게 돌아와 삼켜지는…… 그런 한 방울의 잉크!’
투란의 눈이 거대하게 펼쳐진 대난동, 티탄 클래스의 영역(靈域) 몬스터라 부르는 세계를 잠시 둘러봤다.
‘너는 전부 가져가는 한 방울이고, 전부 삼켜 담는 한 방울이며, 내 손에 작게 쥐어질 한 방울이다!’
투란이 다시 눈가에 들어 올린 채로 활짝 펼친 왼손을 바라봤다.
작은 돌의 조각 위로, 새끼손톱 크기로 펼쳐진 새까만 잉크 얼룩이 보였다. 얼룩은 꿈틀거리면서 뭉쳐지며 아주 조그마한 잉크 방울이 되었다. 새까맣게 반짝거리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여린 채로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잉크 한 방울이었다.
너무 작아서 손을 떠나는 순간, 바람결에 흩어져 지워질 듯한 한 방울의 잉크…….
투란의 오른손이 들렸다.
오른 손바닥에 출렁이며 두꺼운 잉크가 솟아나 고였다.
두꺼운 잉크는 작은 그릇처럼 패였고, 그 형상을 따라 크리스털의 재가 뭉쳐들었다. 반짝거리는 티끌처럼, 작은 빛의 요람처럼…….
투란은 왼손에서 겨우 뭉쳐 힘겨워하는 한 방울의 잉크를 크리스털의 요람 속에 떨궜다. 요람은 닫히면서 크리스털의 물방울처럼 작고 새로운 형상을 꾸몄다. 조그마한 크리스털의 조각을 더듬는 ‘악마의 심장’ 줄기가 실그물처럼 꼬이고, 고치처럼 감쌌다. 고치의 한끝이 길게 늘어진 끈이 되었고, 투란은 이 끈을 잡고 늘어뜨렸다.
휘잉, 휭!
투란은 끈을 돌리기 시작했다.
멀리, 아늑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면서 잠깐 머뭇거리는 듯했던 투란의 입이 열리며 큰 소리가 터져 나온다.
“꼭 돌아오라! 절대로지지 말고! 넌…… 내 몬스터니까!”
투란의 오른팔이 샤머닉 트롤의 형상을 품었고, 사람의 팔로서는 낼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하며 크리스털 방울조각을 감싼 고치를 내던졌다. 고치 속에서 작은 반짝임이 보인 듯한 순간이 스쳐 갔고, 투란은 멀리 날아간 너무 작은 조각을 잠시 지켜봤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슬슬 그림자를 기울이는 광경을 보며, 투란은 돌아서서 암벽 위로 여전히 삐죽한 모습을 자랑하는 산의 정상을 올려다봤다.
―투란, 이러고 끝이냐?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드라고니아의 물음이 한 걸음, 독구렁이의 잔해를 향해 내딛는 투란에게 던져졌다.
‘응? 응.’
털썩, 허기진 배를 느끼면서 투란은 독구렁이 잔해 앞에 앉았다.
이제 빠져나간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투란 스스로도 여행을 하기 위해서 포식(飽食)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대체 뭘 한 건데? 바람에 훅 날려가면 바로 흩어질 그런 잉크 한 방울로 뭘 하려 한 건데?
‘어? 아니, 그래서 크리스털 애시로 싸고, 악마의 심장 줄기로 무장시켜서 보냈잖아. 아르고누스의 잉크를 찾아내서 만날 때까지는 끄떡없다고. 만난 다음에도 저 악마의 심장이 조금씩 잉크를 삼켜서, 크리스털 속으로 흘려넣을 테고…… 그러면 한 방울이 두 방울 될 거야. 그렇게 두 방울이 또 네 방울이 되고…… 더 많은 잉크를 찾아내서 더 큰 덩어리가 되면, 크리스털 껍질이나 악마의 심장 줄기도 필요 없어질 테고……. 뭐, 그러면 저 넓은 곳에 뿌려진 잉크를 결국에는 전부 물들이겠지. 그러면 여기가 안정될 테고, 그럼 끝이지 뭐.’
―엄청나게 낙관적인 생각이잖아! 아니, 하지만 그 발상은 좋다. 그렇지만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한 방울이 아니라 직접 나서는 게 어떤가 싶다만…….
‘안 간다고 했잖아. 너, 날 죽이고 싶냐? 저기가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넌 저기서 버티고 살아남았다. 최소한 이 지역이 진짜 안정화되는가는 지켜봐야 하잖아! 그게 책임지는 자세잖아!
‘흠, 너 정말 날 여기 가두고 싶어 하는구나?’
으적, 와작.
독구렁이 보르가의 가죽과 뼈를 찢고 깨먹으면서 투란은 뚱하니 대꾸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침묵했다가 반박하는 소리를 꺼낸다.
―누가 여기서 나가지 말라든! 적어도 저 난동이 진정되는가 아닌가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거잖아! 잉크 한 방울이 아니라, 몬스터 로드로서 아르고누스를 완전히 제압한 네가 제대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하는 거라고!
‘책임졌잖아.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아작, 아작…… 콰직.
굵은 뱀의 척추가 투란의 입가에서 으스러졌다.
―뭐가 할 수 있는 만큼이야! 그 작은 조각이 저 굵고 거대한 기둥을 만드는 줄기에 휩쓸려서, 그 틈새에서 살짝 비벼지기만 해도 박살날 거라는 걸 모르겠나! 조그맣다고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저기 조그만 몬스터는 없을 것 같아!
꽥꽥 터져 나오는 드라고니아의 소리에 투란은 잠깐 저 멀리 치솟은 줄기를 흘깃했다. 하지만 그다음 바로 눈앞의 독구렁이 가죽과 뼈를 쥐어뜯으며, 투란은 침착하게 대꾸를 하고 있었다.
‘저 줄기는 악마의 심장을 건드리지 못해. 작은 벌레 같은 녀석들은 크리스털 껍질을 어떻게 못 할 테고.’
드라고니아는 이 대꾸 속에 담겨 있는 확신을 분명하게 느낀 듯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거냐?
호기심이 담긴 물음이 재촉하려 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모두 잡아 억누른 채로 불쑥 튀어나왔다.
‘음, 그러고 보니 내가 키린을 만나기 전이었으니, 너는 모르는 게 당연한가? 저거, 악마의 심장한테 먹혀. 악마의 심장이 저 줄기 굉장히 맛있어하거든. 그리고 저 녀석은 악마의 심장을 만나면 바로 땅속 깊이 숨어. 그런 놈이야, 저거.’
―뭐라고?
‘왜냐고 묻지 마. 겪어봐서 아는 일이니까. 그리고 벌레 같은 녀석들은…… 크리스털 껍질을 내가 꽤나 작게 만들어서 잘 느끼지 못했나 본데, 그거 네가 말한 크리스털 캐슬이라고. 작아도 제대로 된 성이거든. 아르고누스가 저 아래 굴속에서 마지막에 보여준 그거랑 같은 수준이지. 그리고…… 내 몬스터라고. 그래서 거기 매달아둔 악마의 심장 줄기가 자유롭게 드나들고, 그 안에 담긴 작은 한 방울만이 마음대로 스며나오지. 그러니까, 안심해. 저게 작아 보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할 테니까.’
콰직, 콰직.
본격적으로 뼈를 깨고 조각내서 삼키며, 가죽을 찢어 씹으며 투란은 담담하게 말을 마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잠깐 침묵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할 말은 남은 듯한 낌새가 무럭무럭 투란에게 스며왔고, 곧 그 낌새에 충실한 소리가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저 안에는 투란, 네가 만나지 못한 몬스터가 잔뜩 있다. 그 녀석들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고! 내가 크리스털 캐슬이 완전무결(完全無缺)하고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냐? 아니잖아! 저게 다양한 변화에 대응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도, 몬스터 로드인 투란 네가 직접 사용할 경우에나 제대로 작동할 거다! 그래, 몬스터 로드 투란! 눈깔꽃도 아직 저 안에 있고, 또 어떤 신기하고 이상한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잖아! 몬스터 로드로서, 고르고니아와 아르고누스까지 획득한 너라면 그런 작은 한 방울보다 분명하게 여기를, 저 티탄 클래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흐흠, 그럴듯한 이야기인데. 그렇게나 날 여기 가두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야?’
―뭐?
‘계속 말 돌리면서 하는 이야기가 왜 똑같은 결말이냐고. 왜 나를 여기서 못 나가게 하고 싶은데? 제대로 말을 하든가, 아니면 그냥 삐진 채로 조용히 하란 말이야.’
―삐, 삐지다니!
부글거리는 분노가 슬그머니 투란의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어떻게 감히 자신에게 그런 말을 쓰냐는 듯했다.
투란은 짧은 물음 한 가지로 그 분노를 바로 재워버릴 수 있었다.
‘애초에 말이야, 너 대체 키린에게 왜 잡아먹혔다고 했지?’
작은 정적이 투란의 마음에 고요하게 퍼졌고, 투란은 바로 다시 영양섭취에 몰두했다.
으적,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