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7)
―블루 팽.
투란이 움찔했다.
단 한마디가 슬쩍 이어진 것에 불과했지만, 아직 투란은 파란빛 돌을 몽땅 털린 그 일에 대해 넉넉한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몇 개만 좀 남겨줬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파란빛 돌…… 몬스터 블레이드 블루 팽의 소재가 되는 마물(魔物)인 돌을 키린은 싹 삼켜버리고 하나도 남겨주지 않았잖은가!
다시 기억하게 하니, 투란으로서는 또 아쉽고 억울한 기분이 불쑥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거 두어 개만 있으면 넉넉히 정수를 얻을 수 있었어. 하지만 난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지.
“헉?”
투란의 입이 저절로 열리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마음이 저절로 몸을 달달 떨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바위거북의 형상을 이룬 오러가 보다 억세게 투란을 휘감아 덮으면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투란을 놀라게 했고, 생각하게 했다.
‘이건…… 오러의 방어?’
어째서 오러의 방어능력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발휘하는가?
투란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오러 가드(Aura Guard)는 생명의 본질로부터 생성되는 자기방어, 수비의 본능을 기반으로 구현된다. 정신 줄 놓고 미쳐 날뛰는 것도 그 방어할 대상이란 거지.
‘음? 제정신이 돌아왔어?’
정신 줄 놓고 꽥꽥거리는 통에 마음 한편으로 치워놓고 흘려보내던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선명한 말이 된 것에 투란이 의아함을 바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뭔가 드라고니아의 한숨을 쉬게 한 모양이었다.
―이 바위거북의 형상…… 그 오러는 너의 몬스터 엠블럼조차도 안정화시킨다. 몬스터 로드가 오러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도 있었나 싶군. 덕분에 나도 분노를 많이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망할 키린…….
잠깐 쓴웃음을 짓던 투란은 곧 뇌리를 여지없이 쑤셔오는 키린의 목소리, 눈동자에 선명하게 비치면서 풍경 속에 겹쳐지는 키린의 모습에 다시 집중해야 했다. 잔잔하게 일렁이던 바위거북의 형상이 한층 더 강력한 압력으로 투란을 자극한 탓이었다. 아무래도 투란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키린의 배려인 모양인데…….
―투란, 내가 왜 너에게 블루 팽을 남겨주지 않았을까?
갑작스럽게 던져온 물음이 투란의 생각을 멎게 했다.
왜냐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키린이 투란에게 묻고 있다?
‘아니, 왜?’
투란으로서는 이 물음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설명을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묻고 있다니…… 키린의 마음을 어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투란은 아무런 답도 못 한 채, 잠시 맹하고 멍한 채로 눈동자에 비친 키린을 보며 앉아 샘가를 따라 숲에서 돋아난 가지처럼 머리를 흔들고 푸륵대는 물소인지 사슴인지 애매한 녀석들을 시야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투란의 초점 없는 눈빛은 곧 녀석들에게 이상한 신호를 보낸 모양이었다. 푸륵대는 코 울림 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짐승들이 뿔을 내밀면서 천천히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대로 질주하면 바로 투란을 꿰어버릴 듯이 뿔의 각을 잡고 있는 꼴이 참 보기 좋고 가지런한데…….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으로 이뤄진 바위거북의 형상은 여전히 투란을 꽉 움켜쥔 채로 꼼짝 못 하게 하고 있었다. 저 가지런하게 줄 선 뿔이 일렬(一列)로 몰려와 벽처럼 투란을 밀어붙이고 쑤시려 해도 꼼짝 못 할 듯했다.
‘아니, 이런!’
답을 기다리는 키린의 형상, 달려들고 싶어 하는 숲의 짐승들…….
투란은 두 상황 속에 자신이 끼인 채로 꼼짝 못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푸릇, 푸흐흐흥!
―블루 팽은 간결하게 다룰 수 있는 몬스터 돌이었어. 뭐, 그 돌의 성질을 완전히 억누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너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난 그 블루 팽을 너에게 하나도 남기지 않았잖아. 내가 나쁜 생각으로 그랬을까, 아니면 까닭이 있었을까? 투란, 지금쯤이면 거기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두지 않았을까? 저 거대한 몬스터에게서 벗어났으니까 말이야. 혹시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지?
쿵쿵, 쾅쾅.
짐승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울리면서, 땅을 통해 허공을 통해 투란은 살갗으로 전해오는 격한 진동을 느꼈다. 그리고 키린이 다시 이어 토해내는 이야기의 끝 물음에 또 한번 투란은 당황했다.
‘에, 아무 생각 안 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흔한 변명을 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럴 겨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처음 키린이 그러는 모습을 봤을 때, 키린의 실수 혹은 장난이라 여겼고 투란은 블루 팽을 원했지만 잃은 것은 잃은 것으로 여기면서 그냥 넘겨 버렸다.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다면, 예전에 한번 본 것이라고 의기양양해할지도 몰랐지만…… 키린이 삼킨 블루 팽에 대해서는 딱히 어떤 미련이라든가 집착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키린은 이 급한 상황에 놓인 투란에게 뭘 묻고 있는 중인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무 생각이 없거나, 어쩌면 이 물음이 전해지는 동안에 주변 상황이 좀 험악하게 돌아가거나! 뭐, 어느 쪽이든 괜찮아.
‘괜찮은 겁니까!’
투란은 키린의 모습 너머로 짐승들이 슬슬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현하는 꼴을 보면서, 한탄과 투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들은 지금 투란이 자신들의 위협에 꿈쩍도 않고 앉은 채로 샘가에 버티고 있는 꼴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착각하고 있잖은가! 꿈쩍도 할 수 없는 남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채로!
하지만 곧 불꽃이 차분하게 무늬처럼 가라앉으며, 투란은 바위거북의 형상이 아까보다 더 단단하고 안정된 느낌인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이 상황에 맞춰서 바위거북의 형상이 대비하는 듯한 분위기를 갖춘 셈이었다.
―오토-가드(Auto-Guard)의 기술이로군. 오러의 무투법에 종종 포함되는 재주다. 특정한 상황에 오러가 자동적으로, 반사적으로 대항해서 방어하는 기술이지.
‘어머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황당함과 동시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즉, 이 바위거북의 형상께서는…….
콰쾅, 쿠쿠쿠―!
짐승 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을 향해, 뿔을 들이댄 벽처럼 우르르 거센 발구름을 일으키며 몰려들었다. 그대로 투란을 뿔로 꿰거나, 밀어붙여서 샘가에서 밀어내려는 태도였다.
화르륵!
바위거북의 형상 속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 뿔에 저항했다.
투란이 설마 했던 그대로, 바위거북의 형상은 투란에게 앉은 채로 짐승 떼의 돌진을 맞이하게 강요했다!
‘어쩌라고!’
투란은 느긋하게 이 오러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드라고니아에게, 태평하게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는 중인 키린의 모습을 향해 동시에 외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바위거북이 된 오러의 형상으로 이 돌격을 버틸 수 있을까?
치이익, 치익!
불꽃의 무늬가 흔들거리면서 닥쳐온 짐승의 뿔을 비켜 미끄러지게 했다.
거친 음향은 뿔과 오러 사이의 허공을 찢는 듯했고, 투란에게 새로운 기척을 느끼게도 했다. 이 음향의 틈을 노린 듯, 뭔가가 높은 곳에서 덮쳐오고 있었다. 투란의 등 뒤편에서, 짐승들의 몸 위에서…….
캬아앙!
‘비비나비!’
그 울부짖는 소리, 오러의 감각을 통해 투란이 갑작스럽게 끼어든 녀석의 정체를 추측하는 순간…… 짐승 떼가 음음거리고 푸륵대는 소리를 더 크고 높게 울려대면서 그에 맞서는 상황이 이뤄졌다.
하지만 기습을 한 비비나비는 가볍게 짐승 한 마리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목뒤를 긁으면서 투란의 앞쪽 샘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촤아악!
물결이 투란의 발끝으로 번져왔고, 투란은 이제 키린의 모습 너머에서 제대로 보이는, 헤엄치려는 듯한 비비나비를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거 뿔 달렸네? 아, 뿔비비!’
투란은 말로만 듣던 비비나비의 품종이 그 허리춤까지 잠긴 얕은 물결 속에서 킁킁거리며 사냥 성공을 기뻐하며 가슴을 두드리는 꼴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쓰러지고 있는 짐승 한 마리가 녀석이 노린 목표인 듯한데…….
푸우흣, 므흐으흣!
짐승 떼가 소란을 떨면서 쿵쿵거리며 물러서며 땅을 울렸다.
일렬로 투란을 밀어붙이려다가 끼어든 뿔비비에게 무리 한 마리를 잃자, 녀석들은 더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물러서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투란에게 알려주는 바는 한 가지였다.
‘이것들, 물사슴이었구나.’
물가에 사는 두꺼운 몸이 마치 소 같아 보인다는 사슴, 물가 근처가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다고 해서 물사슴이라 한다는 말도 있었고 물소의 이종사촌 같은 놈들이라 물사슴이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아무튼, 그 생김새와 하는 짓이 물소랑 닮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데…… 이 녀석들은 무리를 짓고 방어를 하다가 무리 중 하나가 쓰러지면 그 한 마리를 포식자에게 넘기고 물러서는 걸로도 유명했다.
일단은 희생 없이 무리를 지키려 하지만, 희생이 나온다면 이를 제물로 내주고 무리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녀석들, 그게 물사슴 무리라 했다.
그러므로 이 물사슴 떼를 만나면, 일단 한 마리 잡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야기인데…… 투란의 앞에서 물장구치는 뿔비비는 그런 물사슴의 습성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바로 그 무리 한 마리를 잡고 저 얕은 물속에서 여유 부리면서, 덤으로 얻은 먹잇감이라는 듯이 투란을 보며 혀를 날름거리며 식욕 돋는 표정을 하고 있잖겠는가?
‘바위거북이 저것도 방어해주려나?’
일렬로 우르르 몰려온 놈들의 뿔에서는 확실히 버텨줬다.
하지만 양쪽 눈가에 가지런히 솟은 뿔이 둘 달리고 나무를 손으로 쥐어 꺾는다는 비비나비의 여러 품종 중에서도 제법 괴력이 있는 놈으로 통하는 저 녀석에게는 어떨까? 오러 윌더라면 당연히 검으로 맞서는 놈인데…….
첨벙, 촤악, 첨벙.
뿔비비가 투란을 향해 다가오면서, 물장구를 쳐서 투란에게 한번 뒤집어씌우는 짓도 했다. 아무래도 언제까지 꼼짝 않으려나 확인도 해보려는 듯한 모양으로 보였다.
키익, 쏴아아―!
저쪽에서 갑작스럽게 뭔가 날아들었다.
‘손?’
그 갑작스러운 꼴은 투란에게 딱 굵고 커다란 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손은 생긴 그대로 뿔비비의 머리통을 움켜잡았고, 날아온 그대로 돌아갔다.
뿔비비를 꽉 쥔 채로, 저 숲 사이로 휭하니 사라졌다!
‘헐? 저건 또 뭐야?’
숲의 틈새로, 강화된 오러의 시각을 통해서…… 몬스터 로드답지 않은 감각으로 투란은 이상한 놈을 볼 수 있었다. 이야기 들은 적도 없는, 진청(眞靑)의 두꺼운 거죽을 쓰고 있는 그랑츄처럼 큰 덩치이면서도…… 절대로 그랑츄로는 보이지 않는 그런 놈이었다.
―윙거, 외골격(外骨格)을 도구화시켜 사용하는 몬스터다.
드라고니아는 투란과 달리 저놈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그 설명이 무슨 의미인가, 뿔비비를 잡아채 간 녀석의 손과 팔뚝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팔뚝이 뼈로 감싸인 놈이므로!
‘아니, 그런데 지금 저 팔뚝 뼈…… 뚝 부러져서 날아왔다가 돌아갔잖아! 뼛속에 밧줄이 있어서 뭔 물레나 실패에 감긴 실처럼 날려졌다 감긴 것 같았다고!’
―윙거는 외골격을 이용해 감싼 몸의 일부분을 분리, 결합시킬 수 있다. 주로 두 발이나, 두 팔이 그 분리 결합의 대상이 되는데…… 뼈와 뼈를 이어주는 힘줄마디가 밧줄이나 끈처럼 생겨먹은 거지.
‘그래서, 팔을 날려서 뿔비비를 손으로 잡고 당겼다고?’
어이없는 기분이 투란의 가슴에서 솟아났다.
―투란, 잘 버티고 있니? 아니면…… 상황이 보기보다 안전해서 그냥 구경만 해도 되는 걸지도 모르겠네. 그렇다면 바위거북의 형상을 완전히 기억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구나.
‘자, 잠깐! 이게 뭔 소리야?’
느닷없이 소소한 이야기처럼 나온 키린의 목소리가 투란을 당황하게 했다.
곧바로 투란은 새가 되어 파닥대던, 불꽃의 새 형상을 한 오러의 체험을 되새겼고…… 그 경험이 어쩔 수 없이 날개를 파닥대야 하는 공중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키, 키린! 설마 몸으로 때우면서 억지로 배우게 할 참이었…… 켁, 강제주입식이 그런 식이었잖아!’
분명하게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주변의 위험을 이용해서, 키린은 투란에게 오러의 기술―무투법을 전하려 하고 있었다. 몬스터 로드인 투란에게 오러를 활용하는 방법을 각인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죽든가, 배우든가!
그런데 만약 그런 상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음, 좀 세게 가야겠구나. 배움이란, 빠르고 인상 깊어야지.
바로 이어진 소리가 투란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다음 순간, 투란은 오직 키린만을 보고 듣는 처지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