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9)
―네가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해.
‘엥?’
투란은 불꽃으로 일렁이는 키린의 모습을 보며 의아함만 가득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믿는 것을 의심하라니?
보통 믿는 것은 의심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일 텐데.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가 의아해하며 이해하기 위해 생각하던 어느 순간, 투란은 드레이크의 ‘삶’에서 한 토막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아무것도 없는 널찍한 바위, 햇볕에 따뜻하게 달궈진 바위였고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채로 바람마저 옆에 끼고 있는 듯한 바위였다. 드레이크는 어린 시절 그 바위 위에서 반나절가량을 뒹굴었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해와 바람이 넉넉하게 몸을 채워주고 있었으니, 잠을 자며 더 많은 힘을 축적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드레이크가 다시 깨어난 것은 머리 위에서 어미 드레이크가 한껏 불꽃을 입에 물고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터뜨렸을 때였다. 어미의 격노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옆으로 튀며 날아가려던 찰나, 드레이크는 자신의 꼬리부터 몸통, 네 발이 몽땅 뭔가에 물려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바위가 꿈틀거렸고, 늪처럼 기어올라오면서 다시 단단하게 굳어졌지.’
그런 일을 겪고 자랐기 때문에 드레이크는 자신의 새끼에게는 아예 바위에 다가가기 전에 불로 그을려 놓는 짓부터 시켰다. 어디든 일단 불을 질러놓고 재로 깔개를 만들도록…….
‘그러니까, 뭐든 확실하게 보이더라도 일단 확인하라는 이야기인가요, 키린?’
투란은 지금 눈에 보이는 키린이 과연 이런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는가 의아했지만, 어쩌면 답을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여기며 물었다. 이미 한번 투란의 생각에 호응해서 대답을 하기도 했으니!
―투란, 이건 몬스터에 대해서만 하는 말이 아니야. 이렇게 재앙과 괴물이 넘쳐나는 곳에서만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냐. 세상 어디에 있든지, 오히려 인간의 도시, 나라를 넘나들게 된다면 더욱 멈추지 말아야 해. 상대가 짐승이든, 인간이든……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야.
‘왜?’
저절로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의혹과 함께 반발이 피어올랐다.
샤오콴 마을에서 가장 지독하게 말다툼의 원인이 되고, 싸움의 원인이 되는 일이 바로 신뢰(信賴),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일이었다.
사냥꾼, 몬스터를 사냥하든 마수를 사냥하든 함께 가야 할 동료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항상 목숨이 걸린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장 인기 없는 동료가 바로 신전의 사제들이잖던가.
그 목숨이 위험에 처하거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협과 맞닥뜨릴 때…… 신전의 사제들은 즉각 귀환술이라는 신전의 마법에 의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제 본인이 누군가를 대신해서 몸으로 막고 죽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귀환술은 거의 즉각적으로 신을 섬기는 사제를 환영(幻影)처럼 변화시켜서, 미리 지정한 안전한 장소 혹은 사람 곁으로 사제를 날려보내는 마법이었다.
신전의 관계자는 그런 귀환술을 마법이라 하지 않고 ‘은총(恩寵)’이라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 사냥 나간 마법사가 그렇게 동반했던 이들을 내팽개치고 떠난다면 즉각 배신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할 일을 신의 은총이니까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몬스터 헌터들은 절대로 사냥에 나갈 때 일행에 사제를 끼워넣지 않았다. 헌터들이 사제를 찾는 것은 사냥을 떠나기 전, 사냥을 마친 후였다. 나가기 전에는 혹시나 신전의 마법, 그 은총의 힘을 받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제를 찾고…… 사냥이 끝난 다음에는 사제들이 지닌 치유와 축복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절대로 사제와 함께 가지는 않으려 했다.
물론 그런 몬스터 헌터들의 습성을 사제들 쪽에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몬스터 사냥에 끼어들려는 사제, 주로 전투사제였고 성기사 불리는 이들은 갖은 수작을 다 부린다.
사실 투란이 알고 있는 온갖 거짓말과 속임수 중의 대부분이 오러클과 함께 왔던 전투사제들을 보고 배운 것이었다. 몬스터 헌터들은 거짓말하면 칼로 쑤셔주는 것이 전통이었고, 잘못된 정보를 꺼내는 것은 주먹질로 다스릴 일이라고 여겼으므로…….
키린은 이런 일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일까?
드레이크의 ‘삶’은 이 산맥 깊은 곳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고, 예상과 아주 다를 수 있다고 투란에게 잘 알려주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이 샘가에서조차도 방심할 수 없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있는 중이고…….
‘인간도 보이는 거랑은 아주 다르기는 하지.’
문득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가를, 그 추락하던 때를 기억하면서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키린의 이야기를 조금 납득하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인간이란 것이 많잖은가.
―음, 역시 이건 몇 마디 말로는 납득하기 어렵겠지? 어쩔 수 없네. 나도 말재주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그냥 앞으로 투란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볼게. 그리고 그걸 투란에게 새겨줄 테니까…… 아,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의 목록도 만들어주지! 해야 할 일이랑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터득하게 되면, 내가 하려는 말의 뜻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거야. 자, 그럼…….
‘자, 잠깐! 키린, 그건 설마……!’
입을 반쯤 벌린 채로, 흘러나가는 오러의 흐름을 느끼면서 투란은 키린을 말리려 했다. 지금 하는 것처럼 그냥 길고 긴 대화를 하자고, 주변의 위험은 투란이 알아서 감당하는 이 대화를 더 오래 하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키린이 지금 투란 앞에 있는 상황이 아니잖은가?
키린이 투란의 반응을 통해 즉각 읊어주는 내용이 좀 바뀔 뿐이고, 이는 사실 키린이 남긴 보여주고 들려주는 편지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키린이 방긋 웃는 와중에 나온 한마디는 투란의 요청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일 수밖에 없었다.
―외워.
“끄…… 켁!”
투란은 머릿속을 들쑤시면서 심장을 콱콱 조여오는 오러의 압박을 느꼈다.
그리고 키린이 다시 한 번, 그 ‘강제주입식 학습법’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세 번, 되풀이해서 기억해. 오러의 흐름을 느끼면서, 그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대답해야 하는 거야. 그럼, 시작한다. 첫 번째로 기억할 문장은…….
“으흑…… 괴, 괴물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이 괴물 노릇을 한……다? 괴물이 없는…… 아윽! 없는 곳에서는 인간이 괴물…… 으드드! 괴물 노릇을 한다! 괴물이…….”
아프지 않으려고 따라 하면서도 투란은 ‘이게 뭔 소리입니까?’라고 되뇌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키린은 투란에게 뭘 이해시키려 하는 중인가?
하지만 이런 의혹은 투란의 마음에서 금세 가라앉아야 했고, 투란은 키린이 만들어놓은 목록을 외우면서…… 그 목록과 함께 이리저리 뒤틀리며 전해오는 오러의 형상과 흐름을 재현하는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게 무슨 뜻인가를 투란이 이해하는 때는 키린이 말한 것처럼, 좀 더 나중의 일이 될 듯했다.
퐁, 퐁, 퐁.
샘의 물결 위로 잔돌이 튕겼다.
어디서 날아와서 튕기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잔돌이 엎어져 있는 투란의 몸에 와서 부딪힌 것만 확실할 뿐이었다.
그 확실함은 투란을 부르르 떨게 했고 끙끙거리는 몸짓으로 일어나게 했다.
―이제 정신 차렸나?
위로하거나 걱정하는 낌새는 전혀 없이 어딘가 지루해하는 낌새로 드라고니아의 목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흘러들었다.
“어…… 걱정해줘서 고맙……?”
되는대로 내뱉다가 투란은 말을 멈췄다.
포퐁, 퐁.
작은 돌 하나가 물에 튕기면서 다시 날아왔고, 투란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받아야 했다. 잠을 깨운 것이 뭔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고, 받아보니 이게 꽤 아프게 날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한데 던진 놈을 보니, 더욱 투란은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비비……?’
건너편 숲에서 나무 사이에서 빼꼼히 눈알을 둥그렇게 뜬 채로, 이 돌을 튕겨 던진 놈은 분명히 비비나비였다. 한 마리가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놈이 나무 뒤에 빼꼼하게 한쪽 눈만 내민 채로 숨어서 한 손으로는 나무를 잡고 한 손으로는 돌을 잡은 채로 숨은 척하는 모습이 분명히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직 뇌리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널 깨우기 위해서 저 녀석들이 계속 돌을 던지고 있었지. 물가에 던져서 물이 튀게도 했었는데, 꿈쩍도 않으니까 이제 그냥 맞출 생각으로 저러고 있는 거다.
‘아니, 왜 저 녀석들이 날 깨우려 하는데?’
딱히 잠든 것도 아니었고 그저 키린에게 강제로 주입당한 이상한 ‘정보’와 ‘목록’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뭔가 갑자기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지쳐 쓰러졌다고 할 만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 과정이 끝난 뒤, 투란은 겨우 ‘악마의 심장’을 형성시켜서 샘가에 들러붙은 채로 엎어져 버렸다.
원래는 그대로 자고 깰 생각이었지만…… ‘악마의 심장’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새로 각인된 ‘정보’와 ‘목록’을 정리하는 통에 투란은 정신을 잃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잠 대신에 고요함이라도 챙겨서 쉬던 중이었다.
―윙거가 샘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았지. 뿔비비를 우두머리로 삼는 비비나비 녀석들은 윙거를 피해 반대로 돌았고. 그래서 윙거가 샘을 그대로 가로질러 건너려 했는데…… 덤으로 너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나?’
기억에 전혀 없었다.
뭔가에 위협을 받았던가?
‘악마의 심장’은 그런 낌새를 전혀 전해주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뭔가에 위협을 받았다면, 투란은 즉각 이를 알아차리고 대처했을 텐데…… 윙거의 위협 따위는 ‘악마의 심장’에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던가?
―윙거는 의외로 신중해서 슬쩍 건드리기부터 했지.
잠깐 등 뒤에서 풍겨나오는 수상한 낌새를 깨닫고, 투란은 고개를 돌려, 비비나비 떼의 반대편을 바라봤다.
나무 틈 사이로 윙거가 우뚝 선 채로 잔뜩 찌푸린 듯한 낯짝을 하고 투란을 향해 검은 광택의 괴상한 눈알을 번들거리는 꼴이 보였다. 두껍고 굵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팔뚝에서 뼈가 맞물린 채 마찰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윙거는 투란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나한테 한 대 맞은 것처럼 삐진 꼴이래?’
투란으로서는 윙거라는 몬스터가 보이고 있는 태도를 달리 생각할 방법이 없었다. 저건 틀림없이 어쩌다 한 대 맞고 삐진 채로 나무 뒤에 숨은 척하는 모습이었고, 원망하며 노려보는 눈초리였으니!
―기억하는 거냐? 아니면 저 녀석의 태도에서 추측한 거냐?
곧 들려온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에게는 괴상했다.
‘기억? 추측? 정말로 저게 나한테 맞았다는 말이야?’
―추측이로군. 윙거의 태도를 통해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니, 인간이란 정말 이상하군. 뭐, 어쨌든 맞는 추측이었다. 저 녀석, 엎어진 너를 집어 씹으려고 하다가…… 제대로 한 대 맞고 날아갔지.
‘팼다고? 내가? 잠깐…….’
투란은 ‘악마의 심장’을 통해 고요함에 빠졌을 때의 상황을 다시 점검했다. 비록 자신은 고요하게 주변으로부터 감각을 끊어놓고 있었다지만, ‘악마의 심장’은 오히려 경계를 더 깊이 하는 지각의 영역을 넓혀둔 채였다. 그리고 주변 상황을 기억해놓았다.
하지만 ‘악마의 심장’은 윙거의 공격이나 접근 따위를 전혀 기억한 바가 없었다.
‘그런 적 없는데.’
투란이 재차 기억하는 상황을 검토한 후에 심각하게 대답했다.
몬스터 로드가 기억에 듬성듬성 빠진 구멍이 생겼다는 것은 폭동이라든가 광란을 일으켰을 때 흔히 생기는 일이었다. 과연 지금 투란에게 그런 일이 생겨난 것이라면…….
―오러의 형상으로 팼잖아. 키린의 편지…… 편지라고 부르기가 뭐한 그 오러의 폭풍 같은 힘을 두른 채로, 발버둥 치는 몸짓으로 윙거의 손이 닿기도 전에 녀석의 다리를 걷어차서 자빠뜨렸고, 옆구리에 주먹질 발길질을 거침없이 날렸지. 그 덕분에 윙거는 하마터면 저 두툼한 몸에 구멍이 나고 허리가 부러져서 못 일어날 뻔했다.
‘오러?’
투란은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키린이 오러를 통해서 전하는 과정은 지독했다.
덕분에 마음껏 몸부림치기는 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상황은 오직 키린의 모습과 목소리뿐이기는 했다. 거기에 집중했으니까.
하지만 그 집중된 상황이 주변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게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무투법의 수련과정에서는 흔한 일 중의 하나다. 오러라든가, 수련하던 비기가 완전한 틀을 갖추는 각성의 순간이 오면…… 종종 수련자가 정신이 반쯤 나간 꼴이 되지.
드라고니아는 한편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다는 것처럼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불쑥 물었다.
‘이 편지…… 키린의 편지를 막을 방법이 없나? 그냥 내가 조금씩 꺼내 보는 수는 없어?’
키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