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
―먹자! 먹자! 먹자! 배고프다!
갑작스럽게 쿵쾅거리는 거센 반향을 일으키며 가슴이 고동쳤다.
투란은 일순 당황했다.
‘어……?’
그 당황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속에서 올라왔고, 그는 자신이 피를 토하며 숨을 못 쉬고 쿨럭대던 꼴에서 벗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목과 허파로 악마의 심장이 오밀조밀하게 채워 넣은 넝쿨의 실그물들이 훼손된 그의 폐부를 모두 대체해 주었다. 터졌던 혈관들도 실로 꿰매고 덧대서 복구하고는, 흘러넘치는 피는 넝쿨을 통해 다시 쭉쭉 빨아 혈관으로 되돌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몸속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악마의 심장 투란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먹자고!
‘뭘?’
겨우 상황 파악을 끝낸 투란은 악마의 심장을 향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손아귀에 엉긴 핏물에 달라붙은 하얀 안개의 슬러시를 무시하고 저 풀뿌리를 캐서 씹자는 건가?
슬러시가 점점 그 덩치를 키웠고, 때문에 손이 점점 무거워졌다.
피 맛을 제대로 본 듯, 이제 어느 구멍에서 피가 나오는지 찾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투란의 입 언저리에도 작은 슬러시 방울이 점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거기 묻어 있던 피는 이미 살갗의 실그물이 들이켜서 심장으로 보낸 후였지만.
―먹자, 이놈!
‘이놈?’
투란은 돌연 눈가에 꿈틀,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맑아지고 시원해졌다.
그 선명해진 눈길이 닿은 곳은 당연히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손, 이미 팔목까지 하얀 안개의 슬러시가 한껏 피를 맛보고 매달려 부풀고 있었다. 어디 숨어 있는 한 방울이라도 찾아내서 삼키겠다는 듯.
투란이 단단히 쥔 주먹의 손등은 거의 각질처럼 실그물이 엉긴 상태였다. 모름지기 손등은 단단해야 한다고 우기듯, 악마의 심장 넝쿨이 그 부분을 몇 겹의 실그물로 덮어 놓은 것이다. 슬러시는 거기에 비비적대는 꼴이었다.
‘먹을 수…… 있다고, 이놈을?’
투란은 다시 자신의 가슴을 향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먹자, 먹자, 먹자아아!
어린애가 생떼를 쓰는 듯한 대꾸가 의식 속으로 강하게 되돌아왔다.
멍하니 있던 투란은 어느새 자신의 손이 풀리며 손바닥을 활짝 여는 꼴을 봤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팔목과 손 언저리의 힘줄에 넝쿨이 간섭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런 일도 되는 거야!’
몬스터의 본능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보다도 심장에 담긴 의식이 적극적으로 손발을 움직이는 것에 투란은 더 놀랐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역시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원래 악마의 심장이란 몬스터는 심장을 파먹고, 죽은 놈을 움직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손바닥에는 원래 토해 냈던 피 냄새가 아직 맴돌았다. 하지만 피는 이제 보이지 않았는데, 한 방울의 피에도 미쳐 달려드는 하얀 안개의 슬러시처럼 악마의 심장이 뿌린 넝쿨 혈관이 그 피를 놓치지 않고 들이마신 때문이었다.
넝쿨 혈관이 잔가시를 세운 채, 하얀 안개의 슬러시를 핥으려 들었다.
투란은 손을 조몰락거렸다.
처음에는 한 손을, 나중에는 두 손을 마주 대면서 삭삭 비비고 조몰락거렸다.
‘아, 진짜 먹는…… 들이마시는 거냐!’
놀란 마음과 다르게 그의 손은 슬러시를 마시고 있었다. 손의 감각, 촉각의 섬세함이 명확하게 전해졌다.
투란은 슬러시를 한입에 털어 넣은 것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채운 실그물과 잔가시가 아주 자잘한 것을 핥듯이 그 걸쭉한 액정을 조이고 할퀴는 식으로 덩굴줄기가 직접 흡입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각난 슬러시의 방울은 처음에는 느리게, 손목을 넘어서면서는 아주 빠르게 투란의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곧장 들어왔다.
‘앗, 차가! 시려!’
투란은 팔목부터 팔뚝, 어깨를 넘어 심장으로 슬러시가 들어오는 감각에 몸서리쳐야 했다. 무슨 얼음 조각이 몸을 헤집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심장에 담아도 되는가?
심장 안의 피 웅덩이 속에 넣어도 되는가?
‘아……!’
투란의 손은 계속 조몰락거렸고, 마음은 심장 안의 풍경을 들여다봤다.
두 개의 방이 있었던 심장이 이제 완전한 광장처럼 뻥 뚫려 하얀 슬러시를 맞이했다. 몸 밖에서는, 심장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검푸른 송곳니를 잔뜩 뿜어낸 채로!
혈관을 타고 들어온 슬러시는 손에 달라붙었던 걸쭉하고 끈적끈적한 상태 그대로였다. 사람의 몸 안이든 밖이든 따지지 않고 일단 스며들어 녹이고 흡수한다는 몬스터 슬러시, 그 본성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농도 짙은 피를 만나 더 단단해진 듯도 했다.
그 슬러시를 향해 심장이 허물을 벗어 던졌다.
밖이 아닌 심장 안쪽의 허물이었다.
허물은 장막처럼 피와 엉기는 슬러시를 덮었다.
잔가시와 수준이 다른 송곳니가 바쁘게 들락이며 허물을 쑤셨고, 그 움직임에 따라 허물이 빙빙 돌면서 둥글게 뭉쳐졌다. 어느새 심장은 텅 빈 방의 허공에서 큰 공 하나가 구르는 광경을 만들어 냈다.
‘이게 뭐야?’
투란은 자신이 몸속, 심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보는 듯이 생생하게 느끼면서 다른 것을 잠시 잊어야 했다.
악마의 심장은 허물을 한 번만 벗은 게 아니었다.
공의 형태를 만들어 굴리다가 다시 한 겹을 덧씌우고 또 굴리고 다시 덧씌우고…… 그렇게 단단하게 뭉치면서 허물과 피가 섞인 채로 들이마신 하얀 안개의 슬러시를 조이고 또 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압축되던 공이 터졌다.
터진 공은 짙은 색채로 송곳니와 심장을 가득 채우는 새로운 ‘피’가 되었고 그 순간 심장이 강하게 맥동하며 격류가 뿜어졌다.
‘어!’
투란은 이제까지 간간이 뿜어졌던 피의 격류를 다시 선명하게 느꼈다.
혈관을 타고, 혈관이 아닌 곳에 뻗은 넝쿨의 가닥을 타고 나간 새로운 피는 그의 온몸에 구석구석 퍼졌다. 손끝, 발끝까지.
‘차갑지…… 않아? 아니, 시리지 않아. 차가운 게 시원해진 건가?’
손을 오므렸다 폈다, 조몰락거리는 사이에 손에 엉긴 하얀 안개의 슬러시가 무게를 줄여 갔다. 굵고 크게 열린 팔 안의 혈관, 넝쿨 가닥은 이제 거침없이 안팎 가리지 않고 잔가시를 바싹 세운 채로 슬러시를 할퀴고 핥아 댔다.
피는 더 찾을 수 없고, 그 크기를 줄여 가던 슬러시가 결국 하얀 안개의 형태로 다시 흩어졌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 이 근처에 제가 찾는 것이 있다고 확신한 듯이 투란의 주변을 가득 채우며 맴돈다!
투란은 잠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었다.
‘이빨거머리…….’
그때도 피를 빨려던 이빨거머리는 그의 팔에서 피를 찾지 못했다.
주변을 두른 풀잎, 열심히 핥아 댔지만 그의 살점 하나 떼어 먹지 못했다.
오히려 투란이 그 뿌리를 캐내 씹었다.
‘그 노란 거!’
풀잎의 구근에서 튀어나온 노란 점액, 그게 닿았을 때 투란은 잠시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뭔가 따지기도 전에 금세 사라졌다.
투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들었던 것 같은데…… 이게 뭐라고 했더라?’
가물거리는 기억 저편에서 누군가 이런 경우에 대해 말한 것을 들은 듯했다.
약인지 독인지랑 관계가 있는 듯도 한 이야기였다.
‘아, 그거다! 적응한다고!’
“약을 자주 쓰면 나중엔 효과가 없어. 몸이 약에 적응해 버린다고. ……뭐? 약이 독이 될 리가 없다고? 된다, 돼! 너무 자주 쓰면 효과가 사라지고 한꺼번에 많이 쓰면 약은 독이 돼!”
“하핫, 이 정도 독은 더 이상 나를 쓰러뜨리지 못해! 왜냐고? 난 이미 독에 대한 적응을 끝냈거든! ……어? 아니, 그게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 그저 독을 조금씩 계속 몸에 담으면 몸이 그 독에 적응해서 독의 효과가 잘 안 듣게 된다는 거지. ……어? 약? 아, 맞다. 약도 그렇게 쓰다 보면 효과가 사라진다더라.”
투란은 제각각 따로 들었던 이야기를 겨우 더듬어 냈고, 깨달았다.
악마의 심장은 적응시키고 있었다.
악마의 심장 껍질, 넝쿨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하얀 안개나 풀잎의 노란 물, 그런 것이 투란의 몸에 스며들었을 때, 피의 격류를 통해 몸에 퍼트려서 투란이 그 독성에 반응하지 않게 했다.
‘매번 그랬나?’
문득 투란은 몇 차례 느낀 피의 격류가 모두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연히 고동치는 심장이 ‘아니.’라고 대답해 주는 듯했다.
불성실하고 무관심한 대답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소리를 외치느라 어쩔 수 없는 꼴이었다.
―먹어! 먹어야 해!
‘아, 그래.’
손에 닿으면 살짝 흩어지는 안개를 보며 투란은 혀를 날름거려 봤다. 살짝 차가운 느낌만 들 뿐, 제대로 마실 수는 없었다.
하얀 안개는 멀리 가지 않았지만 다시 투란에게 함부로 닿아서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결코 보통 안개로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이거, 내가 어디로 가면 따라올 것 같은데.’
주변을 맴도는 안개는 분명 그 너머를 뿌옇게 만들어 투란이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하얀 안개가 그를 먹잇감이라 확신하고 계속 맴돈다면 어딜 가든 이걸 두르고 다녀야 할 터였다.
‘먹을 수는 있는데 먹지 못한다니…… 피를 보면 환장해서 달려드는 놈이 떨어져서 저러면…… 응? 어라?’
갑자기 번쩍,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
투란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하하, 에이…… 설마.”
떠오른 생각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얼마나 확실한 발상인지, 투란이 더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악마의 심장 속에서 투란의 의식은 이를 ‘먹기 위해 해 보자!’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웃는 사이에 투란의 손은 활짝 펼쳐졌고, 그 위를 살짝 손톱으로 누르자 피 한 방울이 불쑥 솟았다. 아주 적은 한 방울을 손바닥에 담아 하얀 안개를 향해 들이대려는 것이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아주 인색하게 혈관에서 내보낸 한 방울의 피를 향해, 하얀 안개가 거침없이 달려들며 다시 슬러시로 뭉쳐졌다!
투란이 손바닥이 살짝 오므리자, 그 안에 걸쭉하게 꿈틀거리며 맺힌 슬러시가 쭉쭉 빨려 들어왔다. 이제 시린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저 시원한 것이 슬러시가 원래 차가운 쪽인 것을 분명하게 하는 느낌으로, 오히려 기분 좋을 뿐이었다.
‘정말 낚이다니…….’
투란은 조금 뿌듯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방금 벌어진 일을 저 하얀 안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까?
오로지 제 본능에 따르기만 할 뿐인가?
과연 그런 꼴이기에 몬스터인가?
―더, 더, 더 먹자!
멀리서 찾을 것 없이, 본능을 외치며 광분하는 놈은 투란의 가슴팍에도 하나 있기는 했다.
“미끼를…… 좀 더 쓰자고.”
―미끼이이이이이!
뭔가 미쳐 버린 듯한 외침이 가슴에서 반응했다.
곧 투란의 몸 곳곳에 방울방울 피가 돋았다.
하얀 안개가 미친 듯이 몰려들었고, 하얗고 걸쭉한 덩어리가 한 방울 한 방울의 피를 향해 엉겨 붙었다. 그렇게 이뤄진 슬러시는 거침없이 투란의 몸으로 빨려 들었고, 양분이 되었다.
멍하니 주저앉은 채로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다.
투란은 하얀 안개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새삼 둘러보니 기울어진 구멍, 거기에 어울리듯 주변도 언덕이 굴곡진 채로 길게 늘어선 곳이었다. 저 멀리까지 구릉이 보이고, 파인 구멍이 자리한 비탈은 그 너머의 풍경을 가린 언덕인 된 꼴이었다.
하늘에는 낮게 깔린 구름이 보였다. 얼핏 봐도 세차게 흘러가는 기세였다.
몸에서 넘치는 활력을 느끼며 투란은 일어섰고, 저도 모르게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자신이 만든 경계를 넘어서자 바로 발끝에 채는 풀잎이 사삭거리며 핥는 낌새를 알았지만 투란은 무시했다. 뿌리가 노란 점액을 터뜨리지 않으면 풀잎들은 날카롭게 변하지 않으니 그저 밟고 지나가도 되는 혓바닥 같은 녀석들일 뿐이었다.
구름은 구멍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진 구멍에 가려진 저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사람이 걷는 것처럼 빠른 그 속도가 투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본능 깊은 곳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낀 듯, 투란은 비탈을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에 퍼뜩 기억이 났다.
이 너머에 있는 뭔가를 봤을 때, 그의 심장은 죽은 척했다!
‘아, 또 그럴까?’
이번에는 투란이 의지를 북돋우는 중이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까?
결과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투란은 발을 움직였다.
마치 저 구름처럼, 존재하는 자의 의무라는 듯이 저 너머에 있는 뭔가를 봐야 했다.
하지만 비탈의 정상에 서는 순간, 투란은 실망했다.
고요했다.
‘없나?’
뭘 기대했을까?
씁쓸한 기분으로 투란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저편에서 새카만 뭔가가 땅과 하늘을 관통하듯이 치솟았다.
심장이 바로 딱 멈췄다.
그러나 그 순간 투란은 자신을 향해 외쳤다.
‘겁먹지 마!’
소리 없는 외침이었지만,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새카만 무엇이 그대로 투란에게 느껴지고 보였다.
모든 것을 삼키는 허무가, 심연이,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기둥처럼 거기 서 있었다.
곧, 투란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