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0)
―그거야 너 스스로 오러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면 당연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키린이 남긴 오러의 각인, 전승을 능가하는 수준이 꽤 높아. 오러 윌더로서 키린의 역량을 뛰어넘을 정도가 안 되면…… 아마 피하기 어려울 거다.
‘크어억! 몬스터 로드인데 웬 오러냐고!’
투란은 고개를 떨구면서 자신을 향해 비명을 한바탕 질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키린이 바라는 대로, 몬스터 로드로서 상급의 수준에 도달하고 어지간한 오러 윌더의 역량 정도는 가볍게 발휘할 경지에 투란이 발을 디디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 날이 올 것 같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답답할 뿐이고!
‘그런데 너는 윙거를 내가 찼다고 아는데, 왜 나는 기억을 못 하지?’
투란이 돌연 화제를 바꿨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미련은 일단 접어두고, 과연 자신이 폭동과 광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가부터 점검해야 했다.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아주 담담하고 평온하게 나온다.
―두 가지 이유가 있지. 하나는 내가 네 문장 속에 자리 잡은 몬스터이기 때문이다. 투란, 네가 사람으로서 갖춘 모든 감각과 기능을 네 문장 속의 몬스터 모두가 공유(共有)한다. 이건 몬스터 엠블럼이 원래 지닌 능력이지.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본능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몬스터 로드가 삼킨 몬스터 에센스가 사람이란 틀을 이용해 구현되기 위한 조치라고도 할 수 있어.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몬스터 엠블럼의 그런 기능을 잘 몰라서, 내가 좀 예민한 마법을 걸어놓기도 했지. 그 마법은 네가 인간으로서 드러내는 역량, 생각, 감정을 포착하고 한번 걸러서 내게 객관적인 정보로서 제공해준다. 내가 너의 감성이나 이성에 휘말린 채로 엉뚱한 판단을 하지 않게 말이야. 뭐, 간단히 말하자면 언제나 냉정한 이성을 지닌 채로 널 지켜보기 위한 마법이지.
‘키린에게도 그런 마법을 썼었어?’
―키린과 함께 있을 때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고 했잖아. 마법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법을 지닌 몬스터가 문장 속에서 마법을 쓴다니…… 진짜 너 이상해.’
―이런 게 되는 네놈이 이상한 거야!
‘에? 뭐야, 내 문장이 특별해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그래! 넌 정말 이상한 문장을 지녔어! 그러니까 키린이 절대로 네 문장을 다른 놈에게 전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거고, 특별하다는 이야기도 아예 꺼내지 말라고 오러로 각인시켜놨지!
‘흠…….’
드라고니아는 아무래도 키린이 투란에게 전한 편지의 내용은 모두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에 담긴 내용을 저리 읊어대는 꼴을 보니…….
투란은 천천히 목을 한 바퀴 돌리면서, 샘과 자신을 중심에 놓고 나무 틈새로 엿보는 비비나비 무리와 윙거를 곁눈질했다. 이상한 녀석들은 어디 갈 생각을 하지 않고서 투란을 구경하는 중인데…… 도대체 왜 저러는가?
갸웃하면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투란의 손이 물사슴에게로 내밀어졌다.
투란이 슬쩍 물사슴을 당겨 몸 가까이 당기는 순간, 나무 틈새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란이 사이좋게 약속한 것처럼 바로 터져 나왔다. 그 꼴을 보자마자 투란은 저 녀석들이 왜 저러고 있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윙거를 그렇게 세게 찼어?’
윙거와 비비나비, 서로 대치하고 있는 녀석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이 물사슴이다. 하지만 윙거가 걷어차이고 난 뒤, 가까이 오지 못하는 모양이 저 상태…… 그래서 투란을 깨워 멀리 가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저 모양인 것!
―폭풍처럼 오러를 휘둘렀다고 했잖아. 윙거가 나무보다 높이 떠서 튕겨나갔다. 어지간한 짐승이라면 그렇게 튕기고 추락하는 것만으로 죽거나 중상이었을 걸. 살아남았다고 해도 겁먹고 도망갔을 텐데…… 윙거는 몬스터답게 위기에 대한 감각이 둔해. 그냥 거리만 두면 안전하다고 여기고 저러고 있는 거다. 뭐, 비비나비 녀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바로 투란에게 쓴웃음을 짓게 했다.
몬스터 중에서는 옆에서 살짝 나뭇잎 밟히는 소리만 나도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는 녀석들도 있기는 했다. 그 또한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먹이를 앞에 두면 목숨에 대한 걱정 따위가 전혀 없는 녀석들이 더 많았다. 본능의 구조가 생명을 지키는데 우선순위를 두는 정상적인 짐승과 다른 탓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몬스터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혔다고, 이제 겁먹고 사릴 거라고 생각하다가 죽는 초보 헌터가 종종 생겨난다고 했다.
몬스터 헌터로 나서는 이들은 보통 짐승이라든가, 간혹 만나는 마수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확인하고 몬스터도 잡을 만하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짐승과 마수를 상대해본 경험을 통해서 착각하는 것이다. 짐승이나 마수라면 충분히 제압된 상태로 보이고, 자신의 우세를 넉넉히 보였다고 착각하다가 몬스터의 반격에 죽는다.
하지만 저렇게 거리를 두고 있는 녀석들에게 반격은 기대할 수가 없다.
“흥, 흐흥! 저것들이 자기네 입만 입인 줄 아나! 나더러 얌전히 떠나라고? 이 싱싱한 녀석을 그냥 두고? 너네가 가라고!”
중얼거리는 말을 큰소리로 토해내면서, 투란은 물사슴의 가죽과 고기를 손으로 찢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굵고 길게 휘어진 손톱은 은근히 예리해서 투란의 손짓에 따라 물사슴은 가죽을 열고 피를 뿜어내야 했다.
핏물이 투란의 팔과 발 사이에 튀어올랐고, 바로 엷게 투란의 살갗에 맺힌 실그물이 이를 흡수했다.
으적, 와작!
잘라낸 물사슴의 살점을, 날 것으로 씹으면서 투란은 양쪽을 향해 우물거리는 얼굴을 도리도리 흔들면서 보여줬다. 덤빌 테면 덤비라는 듯, 잔뜩 약 올리는 시늉을 하면서.
샘 건너편에서 비비나비 떼가 발광하듯이 광분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깨어난 투란을 향해 돌을 던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꽥꽥거리면서 나무를 들이박고 할퀴며 날뛸 뿐이었다.
샘 이쪽 편, 숲의 우거진 나무 틈새에서 윙거는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행동에 나섰다. 두꺼운 입을 뒤집듯이 입술을 치켜올리며 송곳니로 가득한 입을 활짝 열어보이더니, 바로 주먹질하는 시늉을 했다.
빠득, 휘잉!
닿을 리가 없어 보였던 주먹이었지만, 팔뚝을 감싼 뼈의 갑주가 절단되는 것처럼 분리되더니 굵고 긴 끈을 매달은 채로 주먹이 날아왔다.
으적대던 투란은 그 날아오는 주먹에 눈을 부라렸는데, 주먹이 노린 것은 투란이 아니었다. 대뜸 물사슴의 다리 한 짝 곁으로 떨어지더니, 주먹이 펼쳐지면서 날름 다리를 움켜쥔다!
“쿨럭!”
삼키던 것이 살짝 목에 걸린 탓에 기침부터 토해내면서 투란은 발로 당겨져 가는 물사슴의 다리를 찍어 눌렀다. 윙거의 손아귀, 길게 이어진 굵은 힘줄로 된 끈이 잡고 당기는 힘은 상당해서 투란의 발뒤꿈치에 눌린 물사슴의 다리가 쑤욱 미끄러지면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투란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돌덩이, 꺾인 나무토막을 바로 알아차렸다. 꿀꺽, 두 손에 쥔 것을 잘게 찢어 마시듯이 삼키며 비비나비 쪽을 쳐다보니…… 이 녀석들이 윙거를 향해 투척하고 있었다.
나무 틈새에 서 있는 윙거에게 닿은 돌덩이나 나무토막은 거의 없었지만, 간혹 닿는 것이라 해도 윙거는 아픈 시늉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윙거는 주욱 미끄러져 자신에게 가까워지던 물사슴의 다리가 멈춘 것에는 포효했다.
꾸엑대는 듯한 윙거의 괴상한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스윽 고개를 돌렸다. 히죽대는 웃음은 자연스럽게 투란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물사슴의 다리는 굵고 큰, 드레이크 새끼의 발톱 아래 짓눌린 채였다.
―잡은 놈은 뿔비비인데, 대체 뭐 하는 짓이냐?
한심해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그놈은 쟤가 먹었잖아. 아,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왜 비비나비 잡아먹으려 하지 않고 물사슴을 노리지?’
저 주먹을 날려서 뿔비비를 단숨에 잡아먹지 않았던가?
―그야 비비나비 녀석들이 나무 타고 도망치고 잘 피했으니까. 원래 윙거가 있던 자리랑 비비나비 떼가 있는 자리랑 바뀐 거 보고 모르겠어? 샘을 중심으로 빙빙 돌고 있다가 멈춘 거라고.
‘응?’
투란은 잠시 눈을 깜박였고, 드라고니아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윙거는 비비나비를 쫓다가 지금 지쳐서 쉬운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그 쉬운 먹잇감을 투란이 차지하고 있는 중이고…….
“하, 하, 하. 그런 거구나. 그래도 안 줘!”
일부러 뒤틀린 웃음을 내면서, 투란은 물사슴의 가죽을 더 잘게 찢고 살점을 긁어내며 열심히 삼켰다. 피 한 방울도, 살점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삼키다가 투란은 문득 물사슴의 가죽과 눈알에 생각이 미쳤고…….
‘패러블랙 잉크’의 얼룩이 투란의 손바닥에 돋아났다.
검게 얼룩진 투란의 손은 재빠르게 물사슴의 머리를 더듬었고 퀭하니 가라앉은 눈구멍을 덮었다.
짧은 사이에 아르고누스의 채집이 끝났다.
‘음, 별로 좋은 거 아니구나.’
물사슴의 눈과 가죽은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고누스가 기억하는 과정, 그 기억을 새겨 넣는 방식은 투란을 흥미롭게 했다.
그리고 포식(飽食)…….
투란은 비비나비 떼와 윙거 사이에서 자신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며 물사슴의 뼈까지 분지르고 으깨서 먹어치웠다. 가죽 한 점조차도 남기지 않는 포식이 끝났을 때, 비비나비 떼와 윙거가 보이던 소란도 끝났다.
아무래도 녀석들은 먹을 것이 사라지고, 먹을 만하지 않은 투란만 남게 된 상황에 흥미를 잃은 모양이었다. 비비나비 떼는 바로 나무를 찍어 타며 소란스럽게 멀어져갔고, 윙거도 송곳니를 덮은 채로 축 늘어진 꼴로 모습을 감췄다.
투란은 샘에 잠시 발을 담갔고,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과 몸에 뿌린 다음에 일어섰다. 물사슴의 자취가 사라지고 난 탓인지, 투란이 선 주변으로 몇 곳이 세게 패이고 긁힌 흔적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물사슴의 몸통 절반은 부서져 없어진 건가?’
먹어치운 크기랑 원래 물사슴의 체격을 뒤늦게 비교해보면서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네 오러에 휘말려서 이 근처에 핏물과 티끌이 되어 흩어졌지. 왜 그것도 닥닥 긁어 먹어치우려고?
‘아니, 이제 사냥해야지.’
―사냥?
뭘 더 처먹을 작정이냐고 묻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반문이었다.
투란은 피식 웃으면서 윙거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거 재밌는 놈이잖아. 뼈로 팔뚝을 감싸고, 뚝 떼서 던지고…… 난 저런 놈이 있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다고.’
―지금 네 수준에서 본다면, 전혀 필요 없는 약한 놈이 아닌가? 굳이 잡아서 문장의 역량을 낭비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약해? 흠, 그건 아닌 것 같은걸.’
투란은 조금 걸음을 재촉하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이런 우거진 숲, 밀림 혹은 정글로 불리는 사냥터에서 진짜 강한 것이 무엇이냐고 서로 잘 안다고 떠들며 싸우던 헌터들의 모습이 기억 너머에서 불려나와 투란의 뇌리를 채웠다.
“강한 놈? 약한 놈에게 잡아먹히는데 과연 강한 놈일까?”
“그거야 쪽수로 밀어붙여서 잡아먹은 거잖아!”
“걔네는 언제나 쪽수로 사냥한다고!”
“한 마리씩 있을 때는 마수라고 부르는 게 민망하기는 하지.”
“그럴 때가 있나? 없잖아!”
“그렇다고 잡아먹는 놈이 강한 놈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그렇기도 하지. 강한 놈도 어쩌다 상처 입고 골골거리다가 약한 놈에게 물려 죽는 수도 적잖으니까.”
“야, 결국 살아남는 놈이 제일 세다는 이야기로 되돌아오는 거냐?”
“에잇, 관둬!”
‘항상 돌고 돌아 제자리였지.’
키득, 투란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샤오덴 할배는 그런 논쟁을 가만히 보다가 툭툭 한마디씩 하고는 했다.
“무식한 것들, 공부 좀 해라. 왜 맨날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야. 옆에서 듣는 내가 지겹다.”
할배의 목소리가 울리면, 그다음은 새로운 이야기로 새기 쉬웠다.
할배가 아는 게 많으면, 어디 이야기해 보라고 도발부터 시작해서…….
‘할배는 끝내 뭐가 더 강하다든가 밀림에서 최강이 뭐라든가 하는 말은 안 했지?’
투란은 샤오덴 할배가 교활하게 허리가 쑤신다는 등, 등짝이 피곤하다는 듯하면서 길어지는 이야기에서 도망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무엇이 진짜 강한 놈이라고 단정 짓는 이야기를 샤오덴 할배는 늘 피했다.
그 모습에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누군가 그랬는데…….
“정글의 상황은 늘 변화하지. 그러니까 고정된 상황에서 뭐가 더 세냐고 따지고 강함에 순위를 매겨봐야 결국 진짜 싸움이 시작되면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노인네가 그걸 아니까 입을 다물고 피하는 거지. 뭔 소리를 해도 결국 나중에는 바보가 되거든. 강한 것이 뭔가 따진다는 꼴이 다 그렇지 뭐…….”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 투란은 딱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하든 약하든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 조심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