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1)
Chapter 31. 짐승의 사슬
휘이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귓전에 소리까지 선명하게 울리는 바람이 스쳐 갔다.
나무의 꼭대기, 삐죽한 끝 가지가 겨우 손목 굵기에 불과한 것을 한 손으로 잡은 채로 발가락으로 나무를 할퀴듯이 디딘 채 비스듬히 선 모습으로 투란은 밀림을 둘러봤다.
나무 끝 가지를 잡은 손, 꼿꼿하게 기둥처럼 솟은 나무를 디딘 발…… 손가락과 발가락의 손톱, 발톱은 사람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로 굽어 나와 있었다. 갈고리처럼 완연하게 굽은 손톱, 발톱이었고 이는 사람의 손발에 맺히는 힘을 더욱 크게 북돋는 효과도 함께 발휘해줬다.
‘생각보다 편하네.’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에 얻었던 작은 기억의 조각을 더욱 다듬어서 손발을 강화시켜 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덕분에 나무를 오르는데 거의 맨땅을 기는 것처럼 편했다.
더불어 온몸의 힘줄, 핏줄 사이로 정교하게 맞물려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 줄기는 투란이 따로 힘을 쓰지 않아도 강화된 역량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동안 삼킨 몬스터를 형성하며 ‘악마의 심장’이 새로 축적한 기억을 토대로…….
투란은 한쪽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과 눈가가 검게 물들었고, 다시 뜨였을 때 투란의 눈알은 뿔수리의 것이 되어 있었다. 한쪽 눈은 여전히 자신의 눈을, 한쪽 눈을 뿔수리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투란은 이 변칙적인 상황에 대해 적응해갔다.
‘음, 저거 참 똑바로 가네.’
뿔수리의 시야에 걸린 윙거는 우거진 숲의 나무를 그대로 비집고 지나가는 식으로 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앞에 뭐가 있으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어오르든가, 비집으며 돌파하는 꼴이 꽤 바보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보통 짐승 같았으면 저러다가 치울 수 없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갔을 텐데, 윙거는 그런 거 할 줄 모른다는 듯이 저러고 있었다.
―윙거의 지각은 전방과 상방에 집중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개를 돌리거나 하는 일은 위험에 처할 때만의 행동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가면서 위로 넘으려는 것이 당연한 짓이지.
‘그냥 바보로 보인다고.’
―그래, 좌우나 후방의 공격에 상당히 무방비한 상태가 되니 바보스럽기는 하지. 그게 윙거 사냥의 포인트라고 하더군.
‘응? 드라고니아가 윙거를 잡는 데 그런 포인트를 따져?’
투란은 의외의 부분을 지적하면서 조금 놀랐다.
―온몸을 뼈로 무장한 윙거도 있다. 저 녀석은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몬스터 중에서 본 윌더(Bone Wielder)로 꼽히는 종(種)이고…… 앞과 위만 본다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상당히 곤란하게 만드는 요소도 있어. 생각 없이 힘으로만 상대하는 짓을 할 필요도 없고…….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투란을 납득시켰다.
사냥을 하면서 작고 보잘것없는 사냥감이라도 제대로 모르면서 덮어놓고 달려드는 짓은 바보나 하는 짓이고, 초보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드라고니아가 지성을 지녔다면 당연히 효율적인 방식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테고…….
‘그런데 본 윌더가 뭐야?’
팔을 당기고 무릎을 접으면서 투란은 물었다.
나무가 꼭대기 가지를 기울였고…….
―본 윌더란…….
드라고니아가 대답을 꺼낼 때, 투란의 몸은 제자리를 찾으려는 나무의 반동을 따라 튕기면서 멀리 튀었다. 투란이 건너간 다음 나무는 휘어진 채로 옆으로 기듯이 꾸물거리며 자란 놈이었고, 그 반대편에는 온갖 넝쿨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비비 꼬인 형상으로 위로 자란 놈이 보였다.
투란은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다봤던 주변을 기억하면서 바로 나무 위를 달리고, 매달리며 넝쿨을 잡아채는 동작으로 윙거를 향해 높은 나무 사이를 옮겨갔다. 어느새 투란의 두 눈은 다시 온전한 사람의 눈알을 굴리고 있었지만, 눈꺼풀과 눈구멍의 주변으로 검은 가죽이 얼룩처럼 얇게 배어 번진 채였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에도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보통 외골격 형상을 갖춘 채로 뼈를 도구로 사용하는 몬스터의 품종을 말한다. 몸에서 자라는 뼈를 사용하기 때문에 손상된다 해도 얼마 후면 바로 재생시키는 경우가 많아. 드물게도 외골격은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뼈를 돌출시키거나 추출해서 사용하는 본 윌더도 있다고 하더군.
‘넌 만난 적 있어?’
―없다.
‘흠, 만나기 힘들기까지 하단 말이네.’
―나름대로 특이 품종이지. 윙거도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놈은 아니야.
‘오호?’
투란은 싱긋 웃으면서 더욱 빠르게 나무를 타고 움직였다.
굽은 나무, 이끼긴 미끄러운 껍질, 꼿꼿한 나무에 거친 껍질이 연거푸 투란의 손과 발에 스쳐 갔다. 어지간한 사람의 손발이었다면 금세 까지고 핏물이 좔좔 흐를 정도의 격한 마찰이 이어지는 상태였다. 하지만 ‘악마의 심장’이 잿빛으로 물든 얇은 껍질을 이용해 투란의 손발, 노출된 살갗을 싹 덮은 탓에 투란은 그런 소소한 상처 따위를 전혀 입지 않았다.
이는 투란을 즐겁게 했다.
모처럼 제대로 된 몬스터 로드, 투란이 어린 시절에 감동하며 봤던 모습과 아주 달았으므로! 물론 기왕이면 여기서 팔다리가 쫙쫙 늘어나는 모습까지 더할 수 있었더라면 그건 정말 투란이 보고 원했던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처럼 된 것이겠지만…… 거기까지는 살짝 무리였다.
‘악마의 심장’은 여전히 넝쿨을 몸 밖으로 길게 뿜어내는 것을 그리 마땅치 않은 기분으로 느끼고 있었고, 오러 몽거를 삼킬 때 얻은 굵은 줄기에 그런 습성이 있는 것도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을 때, 필요하면 쓰겠지만 이런 식의 이동에 굳이 그런 위험한 노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투란이 거듭 생각해도 냉정하면서 분명한 결정이었다. 게다가 함부로 ‘악마의 심장’을 노출하지 말란 것은 키린의 목록에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투란이 윙거를 삼킬 수 있다면…….
‘손목이랑 발목에 둘러야지. 쭉쭉 뻗을 거야! 아, 목에도 둘러서 머리도 높이 치솟게 해볼 수 있으려나?’
고무쇠랑 비슷한 짓을 할 수 있잖을까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염두에 둬야 할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우선은 윙거를 삼키는 것이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높이 치솟으며 정찰하고, 다시 윙거가 움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어느 순간, 다시 높은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채로 멈춰야 했다.
윙거가 나아가는 방향의 한편으로 뭔가 크고 누런빛이 숲을 지나는 것이 보였다. 앞과 위만 보는 윙거는 아직 그걸 파악 못 한 듯 보였다. 숲 아래편을 지나는 탓에 우거진 나무에 가려져서 아예 볼 수 없는 듯도 했고…….
‘저게 뭐지?’
투란은 그 크고 누런 것이 상당히 자세를 낮추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이 숲의 촘촘함과 크게 우거진 나무들의 모습을 고려할 때, 저것이 제법 크다 해도 저 정도로 몸을 낮추고 움직인다면 확실히 은폐가 될 수밖에 없다.
―저거, 돌 아니냐?
드라고니아도 뭔가 애매한 듯한 녀석에게 호기심을 드러냈다.
투란은 뿔수리의 눈으로 좀 더 자세히 봐야 했다.
두 눈을 동시에 바꾼 채로 바라보니, 확실히 누렇게 티끌이 휘날리는 바윗돌의 질감이 엿보였다. 그러나 그냥 바윗돌 덩어리인 채가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움직임 속에 저것은 뭔가 형상을 갖춘 듯도 했고, 아닌 듯도 한 모습이었다.
마치…….
‘조각을 하다 말았나?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반대편은 확실히 뭔가 뚜렷한 모양인데?’
뿔수리의 시각으로 자세히, 혹은 멀리 이모저모로 살핀 결과 투란은 이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곧 새로운 의아함을 주르륵 끌어낼 뿐이었다.
덩치로 봐서는 투란에게 거의 다 자란 드레이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큰 바윗돌 같은 놈인데, 저렇게 움직이는 놈을 누가 조각을 한단 말인가? 저것이 스스로 형상을 갖추는 중일까? 그렇다면 지금 저 사냥하려는 듯한 움직임은 대체 뭔가? 잔뜩 몸을 낮춘 채로 녀석은 도대체 뭘 노리고…….
‘어?’
투란은 퍼뜩 이어지며 떠오른 생각에 당황했다.
윙거가 움직이는 방향과 저 크고 누런 바윗돌 닮은 녀석이 가는 방향이 교차할 듯 보이고 있었다.
둘이 만나게 되면 대체 어찌 될 것인가?
투란은 일단 좀 더 가까이 가서 봐야 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채로는 숲의 장막에 쌓인 녀석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윙거도 잘못하면 놓칠 수가 있었다. 둘이 교차하면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테니까…….
파앗!
투란이 힘차게 발을 내질렀고, 나무를 걷어차며 튀어나갔다.
‘윙거가 바위를 깨나?’
그러면서 던진 투란의 물음이었다.
―깬다.
드라고니아는 간략하고 명쾌하게 답했다.
나무에서 나무로 튀어 움직이는 투란은 살짝 안도했다.
쿠르륵.
윙거가 나무 그루를 옆으로 밀며 나아가다가 멈췄다.
진청의 머리가죽에서 뻣뻣하고 드물게 돋아난 털이 쭈뼛거렸고, 윙거의 고개는 모처럼 자신의 왼편으로 돌아갔다.
크고 거대한 바윗돌이 기괴한 모습으로 윙거를 내려다봤다.
윙거는 잠시 당황한 듯이 멈추고 말았다.
보통 암벽에서나 보는 울퉁불퉁한 바윗돌의 반쪽은 윙거에게 익숙했다.
길 가다가 맞닥뜨리면 할퀴면서 두드리다가 기어올라야 하는 것이 저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반쪽은…… 윙거가 간혹 물가라든가 축축한 곳에서 보게 되는 사나운 짐승을 떠올리게 했다. 그놈들처럼 흉악한 눈매, 이빨을 갖춘 이상한 바윗돌이라니…… 윙거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도대체 이놈은 뭔가?
곧 윙거는 고개를 따라 몸을 돌리면서, 이래저래 느끼던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사나운 짐승이랑 닮은 놈이 사납게 입을 열면서 윙거를 물려 하고 있었다. 덩달아 암벽 같은 반쪽도 틈을 드러내며 열렸고…….
결국 윙거는 상대를 단단한 짐승이라고 판단한 듯이 행동했다.
암벽은 윙거의 주먹에 파이고, 손가락에 긁힌다.
그러므로 윙거는 자신을 향해, 이빨이 드러난 절반과 그냥 뭉툭하게 열린 바위틈새처럼 보이는 절반의 입을 들이댄 놈을 두들기고 부수려 했다.
문제는 그 입이 너무 커서 바로 윙거를 덥석 물었다는 것인데…….
푸아악!
물린 순간, 윙거의 몸이 납작해지면서 진청의 가죽이 찢기며 시뻘건 핏물이 터져 나왔다.
쿠르르륵.
바윗돌 형상이 윙거를 문 채로 높이 치솟았다.
투란은 이제 겨우 이십여 미터 너머에서 드러난 크고 누런 놈의 형상을 보면서 얼른 나무 뒤로 숨었다. 높은 나뭇가지에 발을 딛고 그 굵은 나무통 뒤에서 다시 본 녀석의 모습은…….
‘드레이크잖아! 돌로 된! 근데 왜 반쪽만 드레이크지?’
투란이 의아해하는 사이에 윙거는 바위로 된 반쪽 드레이크의 형상, 그 입에서 납작납작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목구멍도 보이지 않는데, 그냥 바위로 된 혀와 이빨 사이에서 윙거가 으스러지며 그대로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윙거가 뿜어내는 핏물도 바위 혀에 몇 번 핥아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젠장…….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본 것을 향해 좋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토해냈다.
‘응? 저게 뭔지 아는구나!’
투란은 그 감정을 확실하게 느꼈고,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저것에 대해 아주 불길하게 여기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의 반쪽만이 드레이크의 형상을 했고, 나머지는 어설프게 그 윤곽만 갖춘 기괴한 괴물…… 도대체 저것이 무엇인가?
투란의 호기심과 궁금증이 한층 더 깊어지려 하는데…….
―저건 드레이크를 삼킨 괴물 바위야. 너무 붙으려 하지 마라. 저게 널 노리게 되면 귀찮아진다. 어설프게 움직이려고도 하지 마. 이 거리면, 저놈의 몸길이밖에 안 된다고.
드라고니아는 일단 투란에게 경고부터 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얌전히 좀 더 몸을 웅크리면서 좀 더 굵은 나무의 밑동 쪽으로 살살 내려갔다. 우거진 숲의 교차하는 나뭇가지들의 그늘 사이에 몸을 좀 더 감추기 위해서였고…… 윙거를 삼킨 괴물 바위는 주변의 넘쳐나는 온갖 짐승과 숲의 내음을 쫓듯이 투란에게서 좀 먼 쪽으로 쿵쾅거리며 걸었다. 그 사이에 드레이크의 날개 형상이 질질 끌리면서 주변 나무를 팍팍 꺾고 밀어버리는 꼴이 보였다.
가만히 투란이 몸을 좀 더 감추는 자세로 지켜보는데,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라서, 드레이크의 감각은 쓰지 못하는 모양이군.
‘뭐? 저게 드레이크의 감각을 지녔다고?’
―반 이상 망가진 꼴을 보니, 그 감각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좋아. 아, 쫓으려 하지 말고 일단…….
콰아앙! 쩌어억!
투란은 갑자기 들려온 폭음에 놀랐고, 드라고니아가 이어 하려던 말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저쪽에서 괴물 바위가 뭔가에 얻어터지면서 깨지고 있었다.
‘쟤는 또 뭐야?’
새로 나타난 몬스터를 보며 투란은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