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2)
―카프리곤(Caprigon)?
드라고니아는 바로 새로 나타난 몬스터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투란은 그 형상을 관찰하면서, 박살나는 바위 괴물을 보며 황당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바위를 부순다는 윙거가 주먹질하다가 날름 삼켜지면서 패인 흔적조차 못 남긴 바위 괴물이 마른 진흙 인형처럼 깨져나가고 있었다.
두툼하니 윤곽만 갖춘 쪽은 둔하게 움직이다 부서졌고, 그나마 드레이크의 형체가 선명한 나머지는 나름대로 빠르게 대처하려다가 부서졌다. 어떻든 간에 저 카프리곤은 빠르고 강해서, 바위 괴물이 어찌할 수가 없는 상대인 모양이었다.
‘저거 산양이야, 염소야?’
투란은 둥글게 나선으로 말린 뿔, 양과 염소의 어중간한 머리 생김새에다가 두 발로 깡충거리면서 굵고 큰 손을 휘둘러대는 카프리곤을 보며 엉뚱한 궁금증을 토해내고 말았다.
누런 털이 휘날리는 녀석의 길쭉한 입속에는 가지런한 송곳니와 이어진 두툼한 이빨들이 침이 가득 묻은 혀와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꼴을 보니 얌전히 풀 뜯어먹을 녀석은 절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게 왜 괴물 바위를 때려부수고 있는가?
―드레이크 다음에 카프리곤을 노렸군.
‘응?’
드라고니아가 넋두리처럼, 뭔가 한탄하는 낌새로 꺼낸 소리는 투란을 놀라게 했다. 지금 때려부수는 놈을 박살나고 있는 녀석이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잖은가?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을 말하고 있는 중인가?
―저 반쯤 조각하다 만 것 같은 바위 괴물은 레저렉션 스톤(Resurrection Stone), 부활의 힘을 지닌 돌로 알려져 있었다. 정체를 밝혀내는 데 수백 년이 걸린 괴물이지. 따지지 말고 좀 들어!
슬그머니 물으려 하던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멈춰야 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은 조금 속도가 올라간 채로 이어진다. 투란이 끼어들어 딴 데로 이야기가 새는 것을 피하려는 듯…….
―저게 먹어치우려 하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영적구조체(靈的構造體), 쉽게 말해서 영혼(靈魂)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굉장히 느린 데다가 괴상하지. 설명한다고! 저 돌은 자신이 포식할 대상에게 달라붙는 것으로 사냥을 시작해. 달라붙어서 대상의 물질적인 정보, 피와 살을 흡수하고 그 일부가 되려 하지. 그게 성공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녀석은 삼키기 시작해. 대상의 영혼을…… 그게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못해도 이백 년이고.
‘떼내지 못해? 이백 년이면 어지간해서는 그보다 먼저 죽을 텐데?’
투란은 빠르게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한숨을 쉬는 듯한 말투로 차근차근 대답하며 설명한다.
―일부가 된단 말이란, 녀석이 완전하게 몸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몸의 일부가 된 녀석을 떼어내면 어찌 되겠나? 그래, 그러니까 떼어낼 수 없어. 그렇게 된 상태에서 녀석은 대상의 영혼을 오랜 시간에 걸쳐 삼키는 거야. 물론 이성을 지닌 존재라면, 그런 녀석에 대해 알아차리고 자살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놈의 진짜 능력이 드러나. 녀석의 사냥감은 녀석이 영혼의 포식을 완료할 때까지 죽지 못한다. 불사신(不死身)이라고 해도 좋을 테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몸을 완전하게 재구성하는 거다. 좀 쉽게 설명하자면, 누군가 몸에 저 녀석을 대고 있으면 곧 몸에 일정한 형태의 흔적이 생겨난다. 그러면 그 흔적을 지닌 자는 쉽게 죽지 않고, 완전히 죽었다 해도 되살아난다. 사냥감의 수명이 이백 년이 안 된다면, 녀석은 그 늙어 죽어가는 몸조차도 다시 전성기의 육체로 복원시켜 버리지. 그렇게 해서 녀석은 사냥감의 영혼을 포획상태로 유지하고, 끝까지 포식한다.
‘그래서 부활석이군.’
투란은 어느 정도 납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영혼을 포식한다니…… 그게 대체 뭔가?
먹히는 쪽에서는 그걸 어떻게 느낄까?
피와 살이 튀고 찢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것과 다를까?
―투란…… 그딴 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꼴이 된다. 자기 자신을 잊어가고, 주변을 잊어가고…… 자신이 미쳐가는 것을 느끼는데 죽을 수도 없는 상태…… 그런 몰골이 된다. 어떻게 아냐고? 저게 아직 레저렉션 스톤이라고 불릴 때, 드라코눔의 한 명이 희생되면서 그 증상을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겼으니까. 그 뒤로 저건 소울테이커(Soultaker)라고 불린다. 이름 그대로, 누군가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서 가져가는 놈이라고.
콰아앙, 콰쾅!
으우움! 카아아!
바위가 으깨져 나가는 소리에 이어서 카프리곤이 지르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굉장히 화난 듯했고, 짜증을 내는 듯한 괴성은 바위가 깨지면서 내는 파괴적인 음향을 가볍게 짓누르는 듯이 울렸다.
잠시 드라고니아의 말을 되새기며, 카프리곤과 소울테이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투란은 묻는다.
‘그럼, 저 반쪽 드레이크의 모습은 뭐야? 드레이크를…… 드레이크의 영혼을 모두 삼켜서 저리되었다는 거야?’
―그래. 드레이크가 지닌 영적구조체를 완전하게 삼켰기 때문에 소울테이커는 더 이상 그 몸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거다. 천천히 녀석은 드레이크의 몸에 대해 잊어가는 중이지. 그러는 사이에 새로 잡아먹을 사냥감을 찾아낸 거고, 그 사냥감을 쫓으면서 아직 남은 드레이크의 몸이 지닌 본능에 충실한 거다. 윙거를 잡아먹은 까닭이지. 뭐, 잡아먹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분해해서 흡수했다는 쪽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러니까 저 모습의 드레이크는 거의 이백 년 전에 이미 사냥당한 셈이구나.’
투란은 겨우 한 가지를 정리한 듯이 생각할 수 있었다.
기억 너머에서, 투란은 자신이 지워버린 드레이크의 ‘삶’이 남긴 기억 너머에서 얼굴 한쪽을 돌이 차지하고 있는 기괴한 놈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투란의 드레이크는 그놈이 대체 동족인가, 아니면 동족을 닮은 다른 놈인가 분간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영토 내에서 몰아내 버렸을 뿐이고…… 쫓겨난 녀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잡아 먹힌 놈이었구나. 어느 정도 먹혀서 제대로 된 놈이 아니니까, 그렇게 플레임 버스터에 저항 못 하고 가버린 거고…….’
투란의 드레이크는 일단 동족으로 보고 경고 삼아 바위를 부숴 버릴 정도의 플레임 버스터를 뿜어냈다. 그리고 녀석은 그대로 달아났다. 그 뒤에 남은 것은 동족이라 하기에는 아주 이상한 놈이었다는 기분 나쁜 감정…….
음므우우웃!
카프리곤의 괴성이 길고 높이 울려 퍼졌다.
바위에 대한 파괴적인 음향은 멎은 채였다.
‘음? 다 때려부쉈나? 저렇게 부숴 놓으면 끝나?’
―아니, 전혀.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아주 확고했다.
‘에?’
―카프리곤을 잡아 삼킬 생각은 있나?
‘응? 어? 앗, 없어졌다!’
투란은 갑작스러운 물음에 흠칫하다가 카프리곤이 없어진 것을 봤다.
어느 순간에 숲을 가르며 가버린 것이다.
한숨처럼 드라고니아의 말이 이어진다.
―놓쳤군. 저게 침식당했나 당하지 않았나 확인할 수가 없겠군.
‘뭐? 야, 너…….’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웬일로 몬스터를 삼키라고 권하려나 싶었다가 나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그저 소울테이커가 카프리곤에게 파고들었는가를 궁금해한 것이다. 투란을 꼬드겨서 카프리곤을 잡게 하면, 아주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소울테이커가 어떻게 생겨먹었나, 그 실체를 보고 싶지 않나?
투란이 울컥하거나 말거나 드라고니아는 다시 한 번 여유롭게 유혹하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이는 투란에게 바로 의문을 품게 했고, 그동안 드라고니아가 슬금슬금 내보이던 태도를 되짚게 했다.
‘소울테이커란 거, 결국 수백 년에 걸쳐 영혼 하나 처먹는 거 아냐? 그런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소울테이커가 영혼을 포식한다는 뜻은, 이 세상의 영적 구조에 구멍을 뚫는 짓이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했듯, 쉽게 말해서 영혼이다. 제대로 말하면 이 세상을 이루는 영적 구조물, 몬스터조차도 그 구조에 덧씌워진 채여야 이 세상을 거니는 존재로서 구현되는 그 세계의 혼(魂)에 놈은 구멍을 뚫는다. 그 구멍은 섭리의 틈새가 되고, 그 틈새로부터 새로운 혼돈이 스며들지. 즉, 소울테이커는 세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괴물이란 말이다. 드라코눔의 아칸이 가장 경계하고 혐오하며, 싸워 없애야 하는 몬스터에 속한다.
이야기와 함께 짙게 배어나오는 피로감이 먼저 투란에게 전해왔다.
투란은 그 피로감 속에서 드라고니아가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지닌 의무, 책임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티탄 클래스의 거대한 영역 몬스터와도 맞서야 하고, 얼핏 보면 수백 년에 겨우 하나 정도의 피해를 낳는 괴물과도 맞서야 하는 투쟁의 책임…….
하지만 지금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의지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자신의 뜻에 따라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는 절망적인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는 듯하잖나!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피는 태도로 투란은 다시 나무를 타고 건너면서 카프리곤이 파괴한 바위가 널려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상당히 짓밟히고, 으스러진 나무들이 굴러다니면서 잔뜩 깔린 숲의 빈터처럼 보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카프리곤의 흔적은 그저 옅은 냄새 정도였고, 주로 이 큰 바윗돌 조각상이 날뛰다가 제풀에 깨져 흩어진 듯한 풍경이었다.
‘와! 이거 그냥 다 부서졌는데, 끝장난 거 아냐?’
투란은 가장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는 조각, 드레이크의 발톱 모양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다른 조각들 중에서도 아직 드레이크의 파편 같아 보이는 것이 조금 있기는 했다. 하지만 카프리곤이 얼마나 잘 밟아놨는지, 대부분 그냥 큰 바위가 산산이 흩어진 돌멩이가 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투란,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이건 낮과 밤이 지나야 제대로 알 수 있어. 여기서 하루 정도 보낼 수 있겠나?
‘응? 그거야 뭐…… 그런데 뭘 보고 있으면 되는데?’
―저 잔해가 뭉쳐들려 하는 자리.
‘흠?’
투란은 더 뭐라 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찾았다.
그 밑동의 굵기를 확인하며,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의 폭을 가늠한 다음에 그리로 올라가 누웠다.
‘좋아, 하루 정도는 봐야 한다면…….’
투란의 눈이 잠시 부릅떠졌고, 눈길이 풍경을 주르륵 스쳐 갔다.
이제부터 변하는 것이 뭐가 있는지, 잘 지켜볼 작정으로!
또르르, 또오오!
괴상한 새소리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제멋대로 울리며 서로 응답했다.
달이 흘러갔고, 해가 치솟았다.
투란은 나뭇가지에 늘어져 엎어진 꼴로 흩어진 바위조각의 잔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누군가 본다면 나무 위에 걸린 시체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반쯤은 졸면서, 반쯤은 깨어 있는 꼴로 투란은 그렇게 하루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아직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말한 잔해가 모이는 자리를 알 수가 없었다.
어느새 어제 그 무렵이 되어 갈 때가 되자,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이 묻는 말을 꺼낸다.
‘정말 뭉쳐들기는 하니? 꼬박 하루 지났는데…….’
―응? 그거 보고 있는 중 아니었나?
‘어?’
드라고니아가 묘하게 내놓는 대답은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투란이 보는 것을 드라고니아가 본다, 그러므로…… 지금 투란은 아무 변화도 없다고 생각한 풍경 속에 사실은 이미 변화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투란은 정신을 집중했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어제 본 풍경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지금 보는 것과 비교해봤다. 이에 바로 반응한 ‘악마의 심장’이 아주 간단하게 이를 끝내버리니…….
‘저 작은 거?’
크고 거대한 것 중심으로 뭐가 뭉칠까 해서 그쪽에 초점을 맞추던 투란은 부러진 나무 밑동에 걸쳐지듯이 떨궈진 꼬리의 파편을 가리키며 물어야 했다. 저건 자꾸 부스러지면서 그냥 흘러내리는 것처럼만 보였는데…….
―그래, 이제 녀석이 자신의 무늬를 갖췄을 거야.
‘무늬?’
―동그라미 한쪽 귀퉁이를 지운 무늬, 입을 벌린 동그라미처럼 생긴 거. 대부분 아래쪽이 지워졌지만……
‘그런 무늬를 늘 만들어?’
투란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가며 물었다.
―유일하게 녀석이 물질체계에 지닌 자신의 형상이라고 해야겠지. 사냥하려는 생명체의 어느 한구석에 소울테이커는 반드시 그런 무늬, 마크를 드러낸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왜냐고 물어도 소용없어.
‘어, 그래.’
꼬리 파편 언저리에 다가서며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린 애처럼 ‘왜?’란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올 뻔했다.
하지만 괴물의 손톱자국이나 발자국이 왜 그렇게 생겨나냐고 묻는 것처럼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긁히고 할퀸 자국처럼 소울테이커도 자신이 덮친 사냥감에 그런 흔적을 남기는 것뿐일 테니까.
그리고 곧 투란은 소울테이커의 마크, 무늬를 볼 수 있었다.
이끼 덮인 바닥에 부스러져 있는, 미세한 돌가루가 그 마크를 품은 채로 주변으로 길게 이어진 돌빛 티끌의 금이 보였다.
―알을 만드는 중이로군.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