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4)
“아얏?”
투란은 가슴에 찌릿한 느낌에 놀라면서 두 팔로 버티는 모습으로 가슴을 조금 띄우며 핏빛 고리로부터 간격을 둬야 했다. 핏빛의 톱니고리는 이 짧은 접촉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투란이 놀란 만큼…….
핏빛톱니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길어지며, 고리의 회전속도가 빨라졌다.
낯을 찌푸린 채로 투란은 완전히 가슴의 문장과 호응하는 이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살짝 주먹 하나 놓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다.
이 상황이 드라고니아에게 의혹을 던졌다.
―투란? 왜 그러지? 무슨 일이야? 아파한 건가?
조금 낯을 펴면서 투란은 신중하게 조금 전의 상황을 고려하며 대답한다.
‘아니, 조금 놀랐어. 몸에 이상이 생긴 거는 아니고…… 이거, 진짜 이상한 놈인데?’
조금 전에 느닷없이 뜨거운 촛불에 닿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상처가 남거나 위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지만, 너무 뜻밖이라서 깜짝 놀란 경우인 셈이었다. 아주 작은 돌멩이인 줄 알고, 땅에 살짝 묻힌 돌을 집어 올리려다가 손톱이 걸려 빠질 뻔했을 때의 기분이었다. 그 작은 돌멩이가 손끝에 집어지지 않고 오히려 손톱이 긁혀 빠질 뻔했던 까닭은 간단했다. 사실은 아주 큰 돌덩이가 흙 속에 파묻힌 채로 거의 손가락 끝마디 정도의 뾰족한 부분만 살짝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사실은 이 작은 무늬가 전부가 아냐?’
투란은 조금 전에 했던 일을 되새겨봤다.
몬스터 엠블럼의 각인을 먼저 떨궈서, 몬스터의 정수를 맛보게 했고 이를 다시 가슴에 접촉해서 제대로 정수를 끌어모으는 각인을 활동하게 하려 했다. 작은 무늬의 크기로 봐서는 그냥 가슴을 댄 정도에서 바로 무늬를 없애고 삼키기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이 소울테이커의 정수를 끌어모으기 시작한 각인은…… 거대한 산에 떨어진 작은 물방울처럼 맹렬하게, 넓게 펼쳐진 정수를 향해 이제 겨우 뻗어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투란이 지켜보며 주의를 기울이는 지금도, 여전히 핏빛 고리는 아직 소울테이커의 정수를 완전히 흡수한 모습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사납게 돌면서 정수를 끌어모으는 꼴이었다.
이것이 대체 어떤 상황인가?
투란은 문득 ‘악마의 심장’이 묘한 맥동을 하는 것을 느꼈고, 주변의 정황이 기묘하게 이 핏빛 고리의 회전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대한 돌덩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티끌이 되어 나무뿌리 사이로 흩어지고 있었고, 작은 돌의 조각들이 푸석거리며 부서져 바람에 날리는 광경이 보였다. 이런 변화를 보이는 돌들은 모두 바위조각처럼 보이던 드레이크의 형상에서 쪼개져 나온 것들이었다.
‘저거…… 소울테이커에서 만들어진…….’
이 상황에 대한 기묘한 이해가 투란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정수를 강탈당한 몬스터는 투명해지고 으스러지며 모두 사라지고…… 몬스터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이 세상의 분명한 일부가 된 것만 남긴 채로 사라진다.
저 흩날리는 티끌, 먼지는 아마도 소울테이커에 의해 바위 형상 속에 숨겨져 있던 세상의 일부일 터이고…… 바위를 유지하던 부분은 소울테이커의 정수로 되어 있다가 지금 사라지는 중이라면, 딱 이런 상황이 제대로 된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투란은 몬스터의 정수를 한껏 끌어모아 삼키는 중이라는 것.
그러나 투란에게는 또 다른 의문이 곧 닥쳐오고 있었다.
소울테이커가 꾸며내던 드레이크의 바위조각이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핏빛 고리는 정수를 모으고 있었다. 보다 강하게, 보다 사납게…… 톱니고리의 가시는 더 길어졌고, 어느 순간에 허공을 향해 살랑거리며 흔적이 흐릿하게 지워지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조금 더 지켜보고 나서야 투란의 가슴에서 울려 나왔다.
‘유니크 몬스터 소울테이커! 영적 구조체, 영혼을 삼키기 위해 여기저기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놈!’
드라고니아는 여기서 투란이 몬스터 엠블럼으로 이를 모조리 없앨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 기대에 따라 벌어지는 일…… 그렇다면 이 상황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기는 한데…….
‘오래 걸리려나?’
투란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재촉할 수는 있었다.
투란의 가슴이 조금 더 핏빛 고리에 다가갔다.
주먹 하나에서, 주먹의 절반 정도 간격까지 가슴이 핏빛 고리에 다가서며 회전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투란의 의지에 따라,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그렇게 두 팔로 몸을 버티면서 엎드린 꼴로 투란은 몇 십 분을 버텨야 했다. 마침내 핏빛 고리가 멈췄을 때, 투란이 그냥 팔 힘이 빠진 사람처럼 그 위로 몸을 떨구며 가슴을 들이댄 것도 당연했다.
‘아오…… 힘들잖아!’
―그냥 앉아서 기다려도 되는 거 아니었나?
‘시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무시하면서, 서서히 문장 속 풍경을 마음에 담으면서 소울테이커를 보이드의 장막으로 휘감을 채비를 갖췄다.
영혼까지 부숴 버리는 몬스터를 폭주시킬 수는 없었으니!
* * *
어느새 익숙해진 풍경, 익숙해진 톱니고리의 마개가 쌓인 탑의 형상을 부풀리고 좁히면서 몬스터의 정수를 통과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아주 거창하게 톱니고리의 탑 전체를 감싸는 크고 넓은 ‘보이드’의 엷은 막이 소울테이커의 정수를 기다렸다.
빛의 조각처럼 톱니고리의 탑을 통과한 소울테이커의 정수는 바로 투란이 형성시켜놓은 막에 휘감겼고, 완전히 둘러싸였다.
‘보여봐, 어서.’
투란은 소울테이커가 자신의 본래 형상을 갖추기를 기대했다.
과연 이 기대에 호응하듯, 몬스터 엠블럼 속에 삼켜진 몬스터로서 충실하게 응하듯이 빛의 조각은 엷은 회색을 띠면서…… ‘보이드’의 투명한 막에 달라붙은 것처럼 엷게 펼쳐진 형상 속에 무늬, 소울테이커의 마크를 그려냈다.
동그라미의 윗부분이 살짝 지워진, 열린 원의 형상.
‘응?’
그 형상이 흔들거리며 뒤집어지는 꼴은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지워진 원의 윗부분이 아래로 내려오며, 아래 원호가 살짝 지워진 꼴을 만들더니…… 지워진 원의 선이 늘어나며 다시 완전한 원으로 돌아가려는 듯이 보인다?
‘어라?’
곧 투란은 자신이 예측한 것과 다르게, 늘어나 다시 그어지는 듯했던 금이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원을 그리는 꼴을 봐야 했다. 그 탓에 아래가 삐죽한 위로 치솟는 물방울 모양이 된 원을 감싸는 새로운 원을 그리는 선이 양쪽에서 치켜 올라가 맞닿았고, 소울테이커의 마크는 뭔가 아래쪽으로 입을 연 듯한 모양이 되었다.
‘이거 왜…… 응?’
엷은 막에 달라붙으며 펼쳐진 가죽처럼 보였던 소울테이커의 조각, 바윗돌에서 얇게 저며낸 듯하던 형상이 마크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입체를 만들어냈다. 새로 그려낸 마크의 형상에 따라, 아래쪽이 움푹 파인 채로 위로 치솟는 입체적인 물방울의 모양이 나타난 꼴이었다.
‘이게 뭐야?’
투란은 당연하게, 소울테이커를 삼키기를 권하고 소울테이커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던 드라고니아를 향해 물어야 했다.
어째서 이게 무늬를 바꾸고, 이렇게 모양을 바꾸는가?
“이게 무슨 일이지?”
한데 드라고니아도 이런 소리를 내뱉는다!
‘이봐!’
투란은 다시 거칠게 드라고니아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투명한 막에 휩싸인 소울테이커의 형상은 계속해서 변했다.
아래쪽에서 파여 들어간 부분이 뭔가를 스륵 흘리는가 싶더니, 바로 새로운 공 같은 형상이 자리 잡으며 새 나왔다. 그리고 그 공의 형상은 바로 투란을 움찔하게 했다. 윗부분이 따인 꼴이 마치 소울테이커의 마크를 입체적으로 그려놓은 듯하잖은가.
‘새끼 낳는 놈?’
불쑥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로부터 바로 강한 반발이 나온다.
“아니, 새끼가 아니다. 녀석의 일부다. 두 부분으로 나눠진 채이지만, 하나다. 이해할 수가 없군…… 저것이 영적 구조체를 삼키면서 자신의 형상을 끊임없이 부풀리려 한다는 관측은 분명히 있었다. 그게 녀석이 만드는 마크에 반영된다는 말도 있기는 했지…… 하지만 저건 대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머뭇거리며 얼버무리는 부분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이 문장 속 풍경에서, 소울테이커는 투란이 ‘보이드’를 구체화시켜 그려내는 투명한 껍질―막을 삼키면서 저렇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삼키더라도, 어차피 ‘보이드’를 통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투명한 껍질은 줄어들 일이 없었다. 한데 그렇게 삼킨 다음에 저 마크, 소울테이커의 형상이 자라나면서 입체가 되었고 작은 조각마저 낳는다?
‘저게 영혼인가를 삼키는 이유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였다는 거야?’
투란이 내린 결론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잠시 신음하는 듯, 곤혹스러워하며 대답한다.
“그래,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는군. 그렇다면 이 녀석은…… 영기염체(靈氣念體)로서 구동(驅動)하면서 물질화가 가능한 마법 생명체였다는 말인데……. 도대체 이런 게 어디서 생겨난 거지?”
‘야, 그게 뭔 소리야? 설마 나한테 묻는 거야?’
투란은 어디를 향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어이없어하면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소울테이커에 대해서 잘 알아서 삼키라고 권하더니, 삼키고 나니까 ‘이건 뭐임?’이라 묻는 것은 반칙 아닌가!
천칭의 축과 먼 곳에서 별빛무리가 아주 또렷하게 출렁거리듯이 반짝거리면서, 드라고니아의 당황함이 가득한 변명이 나온다.
“몬스터 엠블럼 속이라서 이런 변화가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드라코눔의 어떤 마도사도 이런 식으로 몬스터 엠블럼에 삼켜진 소울테이커를 관찰하거나…… 이런 상황을 상정한 실험계측은 한 적이 없으니까.”
‘젠장.’
결국 모른다는 소리였고, 투란은 뭔가 망해버린 느낌에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렇게 되면 남은 일은…….
* * *
느릿하니 몸을 뒤집어 누운 채로 투란은 자신의 몸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악마의 심장’이 색채와 미묘한 소름까지 뒤척이면서 검토한 결과가 금방 투란의 심상 속으로 투영되었다.
‘배꼽?’
소울테이커가 어떤 식으로 몸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냉정하고 침착하게 지켜보기 위해서 소울테이커의 힘을 끌어낸 결과는 배꼽 주변에 나타난 무늬가 전부였다. 뭘 하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그저 배꼽을 감싼 원을 그리다가, 위쪽으로 맞닿지 못한 채로 열린 무늬…… 소울테이커의 마크가 옅은 회색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투란은 조심스럽게 문장에 집중한 채로, 다시 소울테이커 속으로 마음을 움직이며 자신에게 드러난 영향이 따로 있는가를 검토했다. ‘악마의 심장’은 빠르고 냉정하게 결과를 내놓았다.
배꼽을 감으며 나타난 마크, 위편 가슴 쪽으로 열린 무늬를 빼고는 없었다.
이쯤 되면 투란으로서는 한 가지 의심을 해야 했다.
‘이거, 제대로 삼켜진 건가?’
이렇게 아무런 흔적없이 그저 살갗 위에 여린 색조의 변화만 살짝 드러내는 경우, 그것은 몬스터 에센스를 맛만 겨우 본 몬스터 엠블럼이 제대로 된 몬스터를 형성하지 못할 때나 간혹 보이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할 경우, 도대체 문장 속 풍경에서 보이드의 투명한 막을 꾸역꾸역 삼키며 성장해 나타난 것은 대체 뭔가?
드라고니아는 대체 투란에게 뭔 짓을 시킨 건가!
문득 투란은 이 소울테이커의 드레이크를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갔다. 시작은 키린 덕분에 샘가에 처박히면서부터였고, 물사슴 떼랑 마주하다가 뿔비비를 보게 된 것, 뿔비비가 윙거에게 납치당한 것…… 그리고 키린 덕분에 주변을 돌아볼 겨를없이 있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보니, 비비나비랑 윙거가 숨바꼭질하는 듯했던 분위기…….
윙거를 쫓다가 소울테이커의 괴상한 바위조각 같은 드레이크를 만나고, 윙거가 통으로 삼켜 버리는 광경을 보고 나서 카프리곤이 등장한 것…….
‘그리고 난 드라고니아 말 듣고 시체줍기 하려다가 이 꼴인가.’
연이어 이어진 사슬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흐름의 결말이 꽤나 허무하잖은가.
배꼽 주변에 이상한 무늬 생겼어요, 하고 끝이다!
―소울테이커는 확실히 제거했다. 섭리가 조금 더 안전해진 거야. 그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딘가 고집스럽게, 억지를 쓰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로 전해져 왔다. 아무래도 이 괴상한 결과를 어떻게든 슬그머니 넘기려는 꼴 아닌가!
‘아, 그렇다고 하자고.’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일어서야 했다.
몬스터 로드가 엉뚱한 몬스터의 잔해를 붙잡고 헛짓거리하는 경우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고…… 투란에게 낯선 일도 아니었다. 특별히 이상한 상태가 된 것도 아니고…… 일단은 거창하게 시간을 소모한 바도 있고, 투란 자신의 문장에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뜻밖에도 괴상한 도움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다만 그걸 멀뚱히 앉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다음 쫓아야 할 놈은 정해져 있었으므로…….
‘카프리곤, 어디 좀 보자!’
투란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부서져 내린 바위의 티끌 사이에 아직 남아 있을 산양 머리 몬스터의 냄새를 찾기 시작했다.
사슬의 다음 마디가 그놈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