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5)
으적으적.
투란은 머리가 사라진 뱀의 몸통을 손목에 감고 과자처럼 씹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꽤 높이 치솟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탓에 아래로는 거의 이십여 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초록과 연녹색이 어우러진 숲은 간혹 구멍이 뚫린 듯이 빈터를 지닌 채로 세상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것처럼 우거진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짙고 긴 풀이 가득한 초원이었고, 지평선이 보여야 할 자리에는 누런 흙과 회색의 바위처럼 보이는 산맥이 굽이치는 풍경이 보였다.
카프리곤의 흔적을 쫓으면서, 그나마 미묘하게 남아 있던 냄새 따위의 흔적은 이 부근에서 끊어졌다. 카프리곤이 그 뒤로 사냥을 했거나, 어떤 놈과 한판 붙거나 했으면 또 다른 흔적이 남아 있을 거란 기대를 했지만…… 투란은 찾을 수가 없었다.
‘카프리곤이 날아다니기라도 하나.’
투란의 생각은 이렇게 엉뚱하게 번질 지경이었다.
소울테이커의 바위덩이 드레이크를 때려부술 때 봤던 것을 생각한다면, 날아갔다기보다는 엄청나게 높이 멀리 뛰어갔을 것이지만…… 투란이 쫓을 만한 흔적은 더 이상 없었다.
숲이 그 흔적을 빠르게 지운 탓도 있기는 했다.
이를테면, 지금 저 아래의 몇 미터 폭을 지닌 길목의 빈터에서 사냥한 큰 곰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는 레오팬저 같은 녀석이 풍기는 냄새가 카프리곤의 체취를 덮어씌운 것처럼 말이다.
투란이 나무를 타고 움직이다가 달려드는 뱀을 잡아먹는 사이, 아래편에서 어슬렁거리던 큰 곰은 레오팬저에게 사냥당해 저리 먹히고 있었다. 짙은 냄새를 풍기는 레오팬저를 어째서 큰 곰이 피하지 못했는가를 투란은 잠시 갸웃했지만…… 레오팬저가 높은 나무의 중간에서 아래의 곰을 향해 덮치는 광경은 말로 듣던 것보다 더 빠르고 사나웠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아래에서 밀려오는 바람결, 거기에 실린 레오팬저의 냄새와 곰이 가죽과 살이 갈라져서 풍겨나오는 피비린내는 투란의 의문을 말끔하게 지워줬다. 이 숲의 바람은 위에서 아래로 덮쳐가는 경우가 없었고, 모두 아래에서 위로 흘러 올라온다. 레오팬저는 분명히 그런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서 나무 위에 잠복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투란이 지금 더 높은 곳에서 내려보지만 레오팬저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곰도 레오팬저를 눈치채지 못한 것일 뿐이다.
‘저거 비싼데.’
뱀의 꼬리까지 날로 먹어치우면서, 그랑츄의 입과 턱을 오물거리면서 투란은 마수로 꼽히는 레오팬저의 가죽에 대해서 떠올렸다.
머리에서 허리 중간까지는 점박이 가죽이고, 허리에서 엉덩이까지는 누런 털로 덮여 있지만 꼬리는 줄무늬를 지닌 대형 고양이…… 정말 작게 소리 낼 때는 야옹거린다고 진짜 고양이가 거대화된 마수가 아니냐는 소리도 종종 듣는 것이 저 레오팬저였다. 하지만 길게 찰랑거리는 꼬리를 빼고도 몸길이가 3미터를 가뿐히 넘는 맹수를 조그마한 고양이 취급할 사람은 없었다.
레오팬저는 산맥을 누비는 짐승 중에서도 몬스터랑 거의 동급으로 쳐주는 사납고 거친 놈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레오팬저를 마수로 꼽히게 하는 것은 저 발톱과 가죽, 몬스터의 갑각도 으스러뜨리는 위력과 그랑츄의 괴력도 튕겨낸다는 가죽의 견고함은 레오팬저를 노리는 사냥꾼을 유혹하는 보물이었다.
‘음, 몬스터는 아니지만…… 몬스터 헌터도 금전 때문에 저걸 노리기도 한다고 했는데…….’
투란은 살짝 갈등하고 있었다.
레오팬저를 여기서 덮칠 것인가, 말 것인가.
몬스터 로드로서 생각한다면, 사실 레오팬저는 배가 고파서 잡아먹을 경우가 아니면 딱히 덮칠 대상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였다면, 투란도 뱀 잡아먹고 배를 어느 정도 채운 지금 새삼 몬스터 급 마수라는 레오팬저를 노릴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르고누스를, 그 시커먼 잉크를 지닌 지금의 투란은 조금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팬저의 눈알과 가죽, 얻을 수 있잖은가.
투란은 이 욕심이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잉크의 본능인지 조금 애매하다 여기고 있었다. 본능에 의해 움직였다면 벌써 덮쳤겠지만, 뭔가를 사냥해서 한창 배를 채우고 있는 맹수를 잡으려 할 때는 보다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에 자제하는 중이기는 했다. 하지만 자제할수록 깊고 커지는 욕심이라니…….
‘없기는 없잖아. 레오팬저가 사슬의 끝이 맞는 것 같은데.’
사냥에 대한 격언을 되새기면서, 투란은 조금 더 주변을 살폈다.
“토끼를 늑대가 잡아먹고, 그 늑대를 사자가 잡아먹지. 그리고 그 사자는 괴물 악어한테 먹히고 말이야. 줄줄이 이어진 먹고 먹히는 이 사슬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주의해야 해. 끝나지 않는 사슬의 중간을 멋대로 덮치다가는 사슬의 뒷마디에 자기도 같이 처먹히는 수가 있으니까.”
능숙한 사냥꾼이 초보 사냥꾼을 놓고 떠드는 말은, 사실 초보 사냥꾼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기 쉬웠다. 물론 그 초보 사냥꾼이 시체로 돌아오는 꼴을 본 마을의 꼬맹이들에게는 아주 깊이 전해지기 마련이고!
조금 더 레오팬저가 곰을 먹어치우는 꼴을 보다가 투란은 천천히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돌연 불쑥 뇌리에 울려 퍼진 소리가 투란의 몸짓을 멈칫하게 했으니…….
―투란, 소울테이커가 보인 이변(異變)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냈다.
‘응? 알아내?’
왜 하필 이 순간이냐고, 삐죽거리는 기분이 먼저 투란을 찾아들었다.
한데 이 순간, 아래에서 한창 곰의 가죽 틈새로 주둥이를 처박으면 발톱으로 가죽을 더 열어젖히던 레오팬저가 고개를 휙 돌리며 위를 쳐다보기도 했다!
투란으로서는 뭔가 멋쩍은 웃음으로 레오팬저랑 두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가늘게 세로로, 수직으로 내리그어진 듯한 눈동자의 중간에서 수평으로 살짝 덧칠하듯 그은 작은 금이 보이는 반사광이 어린 레오팬저의 눈길은 투란을 똑바로 바라보는 듯했지만……, 레오팬저는 혀를 날름거리고는 계속해서 곰을 찢어삼켜갔다.
‘하아, 뭘 알아냈다는 거야?’
뛰어내릴 기회가 사라진 것을 느끼고, 레오팬저가 숲에서 얼마나 빠른가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되물었다.
―몬스터 엠블럼 속에서 지켜본 것이 드라코눔의 탐색결과에서 어긋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냈다. 보이드…… 투란, 네가 보이드를 강화시켜 이뤄낸 그 장막 껍질, 그것이 소울테이커가 탐식(貪食)하는 영혼구조체, 영혼의 자리를 차지했어. 소울테이커는 영혼을 먹어치우고, 그 양분으로 자신의 구조를 키워간다. 하지만 한 가지 영혼으로 키울 수 있는 부분은 그 크기가 한정되지. 한데 나중에 다른 영혼을 먹어치우게 되면, 소울테이커는 이미 키워놨던 부분을 다시 재구성하며 키워낸다. 그러니까…….
‘완전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딱 한 종류의 영혼을 먹어야 한다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이야기가 이어질 방향을 예측하고 나니, 어이없어서 중간에 끼어들어 물어야 했다.
―그래. 소울테이커는 원래 단 한 가지, 하나의 영혼만을 삼키고 완전히 성장한 자신의 구조를 갖춰야 한다. 삼키는 영혼이 달라지거나 여럿이 되면, 모두 제각각 자라면서 파편이 되는 거야. 한데 소울테이커는 여러 곳에 있어도 단 하나뿐이다. 결국…… 여러 곳에서 모두 일그러진 꼴이 되어서 이런 식으로 성장할 수가 없는 몬스터이지. 하지만 너에게 삼켜진 다음에는…….
‘내 보이드 껍질로 제 속을 채웠다는 거네. 꼭 셰이프 이터 같은 놈이네. 그런데 이건 그럼 무슨 능력을 지닌 거야?’
―셰이프 이터?
‘응? 그거 뭔지 몰라? 사냥감의 모습으로 변하는 녀석 말이야. 먹어치운 사냥감으로 변하는 몬스터잖아. 이것 먹다가 저것 먹으면 모습이 괴상하게 꼬여 변하는 놈이라잖아. 한가지 사냥감을 완전히 먹어치우면, 그 사냥감으로 완전히 변하지만…….’
―아, 듀플러 말이로군.
‘듀플러?’
―그래, 셰이프 이터라고 들었나? 그건 아마 퓨전(Fusion) 능력이 없는 하급 듀플러를 가리키는 모양이로군.
‘퓨전 능력?’
―융합(融合)하는 능력, 뜻 그대로 여러 생명체의 기능을 하나로 융합해서 새로운 개체로 상태변이를 거듭하는 몬스터가 상급 듀플러다. 키마이라의 하위 등급이라고도 하지.
‘키마이라?’
―투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계속할래?
‘키마이라가 뭔지만 얘기해 줘. 셰이프 이터가 어떤 놈의 하급이란 소리도 처음 듣는다고!’
―여러 생명체의 다양한 생태기능을 재현, 강화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아버리는 몬스터, 그게 키마이라다. 음, 몬스터 로드랑 비슷한 성질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다만 키마이라는 몬스터가 아닌 것, 짐승을 삼키고 그 기능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 완전히 다른 부분이겠지.
‘엄청 까다롭겠군. 셰이프 이터가 하급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저기 레오팬저 같은 걸 완전히 삼키면 진짜 그 앞에다가 토끼라도 던져놔야 한다던데.’
―일리가 있군. 듀플러는 뭘 삼키든 계속해서 삼킨 것의 상태를 자신에게 반영하는 놈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놈이기도 해서, 그런 식으로 사냥하는 방법이 좋기는 하겠군. 그런데 투란…… 저놈을 잡아먹으려는 거냐? 저 아래에서 널 노려보는 큰 얼룩 고양이 말이다.
‘레오팬저라고!’
―그래, 그거. 너보다 먼저 잡아먹으려는 놈이 있는데, 모르겠나?
‘응? 엥?’
투란은 눈을 깜박였고, 주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폈다.
레오팬저가 곰을 잡은 길목, 조금 폭이 넓은 터의 주변에 딱히 뭔가 새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슴뿔?’
나무 틈새를 비집으면서, 아직 아래에 있는 레오팬저는 알아차리지 못한 방향에서 가지를 친 뿔을 지닌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핏 투란에게 보이기로는 뿔의 모양 그대로 사슴 머리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네 발로 움직이는 사슴 따위는 결코 아닌 놈이었다. 두 발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대는 몰골이라 볼 수도 있는 움직임인데…….
크릉, 캬앙!
레오팬저가 곰에게서 피투성이 입을 떼며 뒤로 물러섰다.
위협적인 목울림을 토해내기는 했지만, 레오팬저는 이미 자신이 아주 곤란한 처지에 빠진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사냥한 곰에게서 계속 물러섰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달아날 방향을 찾는 모습을 보이니…….
빠득, 우지근.
나무가 밀려나면서, 부러지는 소리를 냈다.
곰처럼 열린 숲의 길목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나무를 밀고 부러뜨리면서 마치 윙거를 떠올리게 하지만 윙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절뚝대며 다가온 놈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두 발로 걷는 사슴?’
투란이 그 몰골에 맨 처음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언젠가 비슷한 놈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애매했다.
저것이 사슴 머리에 두 발로 걷는다는 그림디어라면, 절뚝거릴 일이 없을 텐데?
―그림디어 맞다.
드라고니아가 확실하게 나타난 괴물의 정체를 말했다.
‘아니, 그런데 왜 다리를 절고 있어? 저놈…… 두 발이 흉기인 놈 아니었나? 부러지거나 잘려도 웬만하면 저 다리는 복구된다고 들었는데?’
―글쎄…… 지금 복구 중인지도 모르지. 혹은…… 그림디어 중에서 절뚝거리는 신품종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저놈은 분명히 그림디어다. 놈의 뿔과 머리, 거기서 풍겨나오는 냄새가 분명히 그림디어야.
‘아, 그래?’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더 따지지 않았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지각하고 있는 저 괴물의 형상, 체취, 미묘하게 일그러진 힘의 성향까지 검토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놈은 절뚝거리는 그림디어가 분명했다. 그림디어의 낯선 품종일 수 있었다.
‘레오팬저가 왜 저러지?’
투란은 새로운 의혹을 품어야 했다.
절뚝거리는 그림디어가 길목으로 발을 옮겼고, 절뚝대는 느린 동작으로 다가가는데 레오팬저는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사방이 타고 오를 수 없는 매끈한 벽으로 가로막힌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버둥거릴 뿐이었다.
―현혹당했군.
‘현혹? 설마 그림디어가 이상한 능력으로 레오팬저를 잡은 거라고?’
―그래, 네가 좀 이상한 그림디어라고 느낀 것이 맞은 모양이다. 저건…… 일 세대 그림디어인 모양이다. 처음 괴물로 태어난 그림디어에게는 현혹능력이 있어. 가끔 그 생김새가 유별나기도 하지. 저건 절뚝거리는 대신에 현혹능력이 강화된 놈인가 보다. 투란, 정신 차려.
‘어? 어…….’
아래의 풍경을 자세히 보려다가, 그림디어의 이상한 눈동자에 잠깐 기우뚱하던 투란이 몸을 바로 세웠다.
‘와, 저거 눈동자가 소용돌이치네? 뿔도 묘하게 울리고! 신기한 놈이잖아!’
곧 투란의 마음속에 조금 묘한 감탄이 피어났다.
절뚝거리는 그림디어는 투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아예 위를 올려다볼 낌새도 없었다.
절뚝거리는 다리, 한쪽은 굵고 크지만 한쪽은 너무 짧고 가는 다리 탓인지 그림디어는 자신의 눈높이 아래만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도 위에서 엿보던 투란 자신이 그 현혹능력에 잠시 혹할 지경이 되다니!
절뚝대는 그림디어는 누가 자신을 내려다보는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느긋하게 먼저 곰을 잡았다. 두꺼운 털가죽에 굵은 두 팔, 앞다리 대신에 달린 그림디어의 두 팔은 가볍게 곰의 잔해를 찢었고 길게 찢어진 듯한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사냥감을 빼앗긴 레오팬저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캬릉거리는 목울림만 토해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