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7)
‘공간? 조작? 그게 뭔…….’
투란이 의아해할 때, 아래쪽에서는 조금 더 요란한 일이 벌어졌다.
그림디어가 갖은 괴성을 흘리면서 온몸을 비비 꼬며 발악하는 듯했고, 그 몸짓에 따라 허공에 그어진 채로 그림디어를 묶던 금이 꿈틀거리며 밀려나는 광경이 엿보였다. 마치 그림디어를 묶은 밧줄이 올이 풀려 끊어지는 것처럼…… 다만 금이 그어진 곳에 겹쳐진 풍경이 흩어지는 것이 독특하게 보일 뿐이었다.
우우웅!
그림디어의 뿔이 거센 숨결에 호응하듯, 보다 선명하게 귀에 들리는 소리를 낼 정도로 울렸다.
캬앙!
여우가 한 걸음 물러서면서 어딘가 짜증을 내는 듯, 아픈 듯한 새된 소리를 냈다.
그림디어가 그런 여우를 좀 더 압박하듯, 절뚝거리면서 굵고 강한 한쪽 발로 세차게 땅을 박차며 두 팔을 사납게 휘두르는데…….
‘응?’
투란은 그림디어를 가로지르는 새카만 색채를 한 금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힘겨워하는 여우의 기척과는 다른, 사납고 맹렬한 새로운 금이 그어진 것이다.
그리고 처음 여우가 나타났을 때와 닮은 기척…….
‘한 마리가 아냐?’
―어미로군. 과연 아직 새끼라서 돌보고 있는 중이었나…….
드라고니아가 새로 나타난, 더 큰 몸집에도 더 날렵해 보이는 여우를 보면서 중얼거림을 전해왔다.
투란으로서는 기막힌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허공을 가르면서 새로 나온 여우, 몸길이가 대강 2미터 40에서 2미터 50은 되어 보이는 체격은 앞서 나온 여우를 꼬마, 혹은 새끼 여우로 보이게 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략 봐도 2미터가 넘는 녀석이 새끼일 리가!
―아빈가의 여우는 저 정도 커야 다 자란 녀석이다. 작은 놈은 아직 덜 자란 새끼 맞아. 그림디어에게 밀릴 정도로 약하기도 하고…….
‘대체 아빈가가 뭐 하는 숲인데!’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여우가 사는 숲…… 요정과 마수의 나라, 드라고니아가 엘페룬이라 부르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숲, 아빈가는 어떤 곳이기에 저런 여우가 있을까?
의문을 품고 내려다보는 사이, 그림디어는 시커먼 색채로 그어진 금에 의해 구겨지고 파묻히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파문이 몇 차례 흘러나왔지만, 시커먼 색채에 의해 번지기 전에 모두 삼켜지고 말았다.
곧 그림디어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고, 시커먼 색채도 조금씩 줄어들면서 사라지며 풍경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작은 여우가 털을 부르르 떨면서 큰 여우 곁에 바싹 붙었다.
조금 전에 아주 무서웠다는 듯한 그 몸짓은 투란에게 꽤나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기묘한 기척이 울렸고…… 작은 여우가 한 마리 더 나타났다.
‘저것도 새끼인가?’
―그래 보이는군. 보통 두세 마리의 새끼를 낳고 키우니까. 한 마리 더 있을지도 모르지.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투란은 또 한 번 허공을 울리는 기척이 나올까 기대했지만, 없었다. 세 마리 여우는 곧 한 덩어리처럼 바싹 붙어서는 레오팬저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림디어가 먹지 못한 사냥감…….
작은 여우 두 마리가 그 근처에서 코를 킁킁거렸고, 잠깐 혀를 날름하면서 흘러나온 피를 핥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작은 여우의 입은 레오팬저의 살점에 닿지 않았다. 뭔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듯, 두 마리는 곧 툴툴대면서 혀를 날름거리고 닿았던 피를 뱉는 꼴을 보였다.
큰 여우, 어미는 아예 피맛조차 관심 없는 듯이 고개를 세운 채로 두 마리 새끼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 풍경에 투란은 ‘설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 설마 하는 일이 그대로 벌어졌으니…….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 세 마리 여우는 결국 레오팬저를 놔둔 채로 그냥 가버리잖는가!
‘뭐야, 이 녀석들…….’
투란에게는 뭔가 뱃속에서 짜증이 올라오게 하는 광경이었다.
열심히 사냥한 그림디어를 괴상한 수작으로 없애버리더니, 그 남겨진 사냥감조차 그냥 버리고 간다?
이 무슨 포악한 짓거리란 말인가!
―야, 레오팬저를 먹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드라고니아는 기막혀하는 말투로 투란에게 이리 말하고 있었다.
‘뭐가 이상한데?’
투란이 살짝 으르렁거리는 말투가 되어 되물었다.
―하아…… 레오팬저의 근육은 강철은 아니더라도 청동 수준은 되거든? 껍질은 차라리 쇠를 씹는 게 낫다 할 정도로 질기고 억세지. 그림디어가 바로 레오팬저의 목을 쥐어뜯지 못하고 먼저 뼈를 부숴 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멀쩡하게 움직이는 레오팬저라면 저렇게 목덜미를 쥐어뜯길 리가 없거든. 목을 잡히는 순간에 레오팬저의 발톱이 먼저 그림디어를 일단 찢어놨을 거다. 게다가 녀석의 피도 은근히 독해서 잘못 마셨다가는 배탈이 아주 심하게 날걸.
‘그런 놈이었어? 레오팬저가!’
투란은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거의 사냥감으로 꼽히지 않는 마수였기에 레오팬저에 대해서는 투란도 그저 강하다, 튼튼하다 정도로만 들어본 것이 전부였다. 설마 그 남겨진 것이 그리 못 먹을 것일 줄이야…….
―뭐 하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분을 느끼면서, 그리고 투란의 이상한 짓을 눈치챘다는 듯이 물어오고 있었다.
‘음? 뭐 하긴…… 혹시 뭘 얻을 수 있나 알아보는 거지.’
투란의 한 손은 아래로 뻗어가는 나무 중심을 잡고 시커멓게 끈적이는 잉크를 흘려내는 중이었다. 저 아래에 피를 흘리는 레오팬저를 향해서, 시커먼 잉크는 아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투란의 호기심이 시커먼 잉크를 재촉하는 듯했다.
―레오팬저에 대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잘 모르겠군.
드라고니아는 뭔가 살래살래 고개를 젓는 듯한 소리를 냈다.
투란이 혀를 날름하면서, 자신의 태도에 대해 변명하듯 말한다.
‘애매한 놈이라고. 마수 전문 헌터랑 몬스터 헌터랑 레오팬저를 놓고 아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걸 본 적 있어. 마수인데 마수 헌터는 전혀 원하지 않고, 몬스터 헌터는 가끔 잡아볼 만하지 그러거든.’
―헌터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사냥감이라고?
드라고니아도 이 이야기에는 조금 의외라고 갸웃거리는 듯했다.
‘응. 그 가죽과 힘줄이 그렇게 애매한 모양이야.’
―아니, 애매한 건 헌터들의 태도 같은데? 마수 사냥이나 몬스터 사냥이나…… 그리 구분 짓지 않는 것 아니던가?
‘음…… 뭐, 그런 사람도 있고…….’
문득 투란은 기억을 더듬으면서 갸웃거리는 대꾸를 했다.
드라고니아의 지적처럼, 헌터 중에는 이것저것 사냥감을 따지지 않는 이들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샤오콴 마을, 춤추는 산맥의 격렬한 변화를 마주 보지만 거기서 살짝 벗어난 경계에 묘하게 걸친 작은 마을에는 이를 엄격하게 따지는 이들이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덕분에 투란은 몬스터 헌터와 마수 헌터 사이의 그 기묘한 경계를 경험을 통해 나눠서 생각할 수가 있었다.
마수든 몬스터든, 일단 사냥 나가서 뭐든 잡는 쪽이 몬스터 헌터…….
마수 헌터는 몬스터를 피하고 오직 원하는 사냥감에 몰입하는 쪽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라면, 몬스터 헌터는 주로 금전으로 거래하고 마수 헌터는 은전으로 거래한다는 점도 있었다.
사용하는 장비 역시 상당히 차이가 났고…….
샤오덴 할배의 대장간 일을 도우면서 투란은 어렴풋이 헌터들의 경계를 나누고 차이점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둘 사이의 구분이 명확해진 셈인데…….
“모호함, 애매한 상대와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의지의 차이다. 마수는 아무리 이상하고 기괴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결국 그 습성과 서식의 행태가 완성되어 있는 짐승이다. 하지만 몬스터는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 언제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덫에 걸린 토끼보다 잡기 쉬울 수도, 하늘을 날며 벼락을 뿌리는 그리폰보다 잡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아직 투란이 마수 헌터용 장비와 몬스터 헌터용 장비를 구분 지어 다루기 힘들어할 때, 샤오덴 할배가 꺼낸 말이 떠올랐다. 그때 투란은 어리둥절해하면서 그냥 간단히 손질할 것과 지독하게 손질할 것으로만 구분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분명히 드라고니아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을까?
‘음, 레오팬저를 잡으려 들면 몬스터 헌터이고, 그냥 넘어가려 하면 마수 헌터…… 대충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
투란은 슬슬 아랫편에서 레오팬저의 갈라진 목덜미를 타고 그 내부로 스며가는, 길게 이어진 ‘패러블랙 잉크’의 감각을 느끼면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과연 이 정도면 드라고니아가 납득할 것인가?
―인간다운 짓이로군.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만 놀려 하는 헌터라는 말이잖아.
이런 대답은 투란에게 납득이 쉽지 않았다.
‘선을 그어? 그 안에서만 놀아?’
마수 헌터는 자신의 역량을 알고 거기에 맞춰 살려는 것이 아니던가?
몬스터 헌터는 자신의 기량에 대한 자신감에 목숨을 거는 쪽이고…….
―언젠가는 너 스스로 알아차릴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레오팬저를 어쩌겠다고?
‘어? 아까 말했잖아. 녀석의 눈과 가죽, 잉크 흘려내는 거 보고 모르겠어?’
―아빈가의 여우가 먹지 않은 것을 먹겠다니…….
뭔가 한숨을 쉬면서 질려 하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였다.
투란은 레오팬저의 몸 안으로 스며든 잉크를 조금 더 빠르게 재촉하면서, 얼른 묻는 말을 들이댄다.
‘아빈가가 대체 뭐 하는 숲이야? 여기가 엘페룬도 아니잖아. 진짜 여기가 아빈가인가 하는 숲이라고?’
쏟아내는 물음은 살짝 건너뛴 부분도 있었지만, 드라고니아는 모두 정확하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거기는…… 샤프팽, 저 레오팬저가 그렇게 불리는 곳이다. 엘페룬의 숲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곳이었지.
투란은 문득 ‘얼룩 고양이’라고 드라고니아가 처음 레오팬저를 가리킨 말을 떠올렸다. 그때는 슬쩍 저 샤프팽이란 이름을 감춘 것일까? 아니면 투란이 아빈가라는 숲에 대해 모를 것이라 여긴 것일까?
잉크가 레오팬저의 눈알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고, 곧 레오팬저의 몸을 휘젓듯이 번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불어 드라고니아의 이어지는 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스며온다.
―요정의 피를 이은 일족이 아빈가의 수호자라 불리면서 오래 물려 내려온 숲의 보물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에게 저 여우는 동반자이면서 경쟁자였지. 풍요로운 숲이었고, 마수로 꼽히는 샤프팽도 사냥 이외의 일로는 생명을 살상하는 일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엘페룬에서 아빈가는 사라졌다. 아빈가의 수호자들도, 저 여우도…… 더 이상 엘페룬에서 볼 수 없게 된 거야.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드라코눔에서도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한 추측만이 기록으로 남겨졌어. 그 기록은 아빈가의 보물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각성해서 숲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보물은…… 응?
‘뭐가 또 와?’
드라고니아의 말을 끊은 느낌은 투란에게 아주 명확했다.
여우가 느닷없이 나타날 때처럼, 뭔가가 레오팬저의 주변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레오팬저의 몸에 스며든 잉크가 이를 보다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뭔가가 주변에 있다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과 아주 다른 느낌이 투란에게 선명했다. 이 순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은폐가 아니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고, 이해했다.
정말로 저것은 숨어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던 것이 뛰쳐나오는 것이다!
‘공간 조작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지?’
길게 이어진 잉크를 통해서 투란은 자신이 느끼는, 전혀 다른 곳의 풍경과 새로 튀어나오는 놈에 대한 섬뜩한 분위기에 드라고니아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캬아앙!
여우의 울음소리를 몇 십 배로 키우고 끔찍하게 변조(變調)시킨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주변에 살아 있는 것의 신경을 긁으며 마비시킬 듯한 위력의 음파(音波)였다.
투란은 몸의 절반가량이 저절로 굳어지는 느낌에 놀랐다.
‘악마의 심장’조차도 움찔하면서 잠시 겁에 질린 듯이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잉크는 마비되지 않았다.
투란의 다음 할 일은 금방 정해졌다.
즉각 잉크를 온몸으로 퍼뜨리며, 아래로 늘어뜨린 부분에서 타고 올라오는 채취, 섭취의 결과를 받아들인 다음…… 최대한 몸을 나무와 겹치면서 나무를 물들이는 그림자처럼 자신을 꾸몄다.
이것이 저 새로 등장한 여우……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놈에게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저 괴성의 영향력으로부터는 벗어난 셈이었다.
―블랙 버블(Black Bubble)!
그리고 드라고니아는 아래에 거의 4미터의 몸길이를 자랑하는 여우, 그 몸의 가죽과 살을 가르며 그물처럼 번진 검은 얼룩 속에 자리 잡은 거품을 보며 외치고 있었다. 이 소리는 곧장 투란의 눈동자를 조이게 했고, 뿔수리의 눈이 아래편에서 크르렁거리는 거대한 여우의 가죽과 검은 얼룩, 그 속의 더 짙은 검은 색채의 거품을 보게 했다.
‘저 검은 거품이 몬스터?’
―그래, 기생형 몬스터 블랙 버블이다. 임모그 웜보다 더 악질이지. 저건 동족(同族) 포식(捕食)을 재촉하고 강요하는 괴물 기생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