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8)
으적! 콰지직!
단숨에 레오팬저의 목이 뜯겼고, 머리의 절반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으크!’
나무 위에 몸을 숨기는 몸짓으로 투란이 움찔했다.
블랙 버블, 이름 그대로 검은 거품을 온몸의 찢긴 가죽 틈새로 보이는 큰 여우는 레오팬저의 가죽이나 힘줄이 단단하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싹 무시하듯이 끔찍한 절삭력(切削力)의 이빨로 깨물어 찢고 삼키는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투란이 흘린 잉크, 아직 레오팬저의 몸에 스며있는 부분까지 덩달아 먹혀버리는 중인데…….
‘이거 뭐야, 무슨 느낌이 이래?’
투란은 잉크의 일부가 어딘가로 사라진 듯한, 결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멀리 가버린 듯한 감각에 당황해야 했다.
블랙 버블의 여우가 분명히 나무 아래에서 레오팬저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그 목구멍으로 배 속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아니었다. 잉크가 이빨에 씹혀 망가질 리가 없는데!
―공간 조작으로 샤프팽의 가죽과 힘줄, 뼈를 절단하는 거야. 저놈은…… 블랙 버블에 먹힌 채로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능력을 훨씬 강력하게 사용하고 있다!
‘도대체 그 공간 조작이란 게 뭐야?’
투란은 이리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블랙 버블이 조금 더 심하게 물컹거리는 채로 여유는 레오팬저의 발톱, 심장, 내장을 훑어내며 지우듯이 삼켜 없애고 있었다. 살을 발라먹는 것도, 혀를 할짝거리며 맛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을 열고 닫으면, 거기에 닿은 레오팬저의 몸이 사라질 뿐이었다.
때문에 레오팬저의 몸에 스며든 투란의 잉크는 거의 반 이상, 어딘가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머지 반은 부지런히 레오팬저의 몸에서 탈출해서 맨땅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데…….
캬하항!
여우의 입에서 다시 기괴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여우의 눈꼬리와 입가를 더 길게 찢어놓듯이 갈라진 가죽 틈새로 보글거리는 검은 거품이 한층 더 쌓이며 찰랑이듯 움직였다.
레오팬저의 꼬리가 처져 있는 방향, 여우의 앞쪽으로 시커먼 출렁임이 나타나며 허공을 물들였다. 여우가 네 발을 굴렀고, 단숨에 십여 미터를 건너뛰며 그 출렁임 속으로 뛰어들고…….
투란은 마음을 정했다.
‘오냐, 어디까지 괴상한지 보자!’
레오팬저에게서 흘러내리며 여우의 괴상한 입을 피하던 투란의 잉크가 방울방울 움직였고, 여우의 몸, 발에 닿는 대로 매달렸다. 여우는 그런 잉크의 움직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그대로 시커멓게 허공에서 출렁거리는 것 속으로 사라졌다.
“헛?”
투란은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여우에게 달라붙은 잉크, 아주 작고 미세하지만 확실하게 ‘패러블랙 잉크’인 방울들이 아주 멀리서 느껴졌다. 여우가 뛰어든 시커먼 출렁임이 사라져가는데, 잉크 방울들이 울려보내는 위치는 그쪽으로 죽 나가는 방향이 전혀 아니었다.
―젠장, 공간 도약을 아주 지독하게 하는군. 주변을 때려 부수면서 하다니!
드라고니아가 불평을 토했다.
이에 투란의 눈길이 조금 늦게 시커먼 출렁임의 주변을 훑었다.
시커먼 출렁임은 사라졌지만, 그 주변도 어느 정도 함께 지워진 것처럼 망가진 광경이 바로 보였다.
뭔가 섬뜩한 느낌이 바로 투란의 배 속을 조여왔다.
그저 출렁거리기만 했는데, 주변이 파괴된 광경이 남았다.
‘이게 대체 어떤 능력이야?’
투란은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전해오는 잉크의 위치는…… 아무래도 저 초원과 가까운 아래쪽 숲인 듯한데, 어떻게 조금 전까지 여기 있던 녀석이 저기까지 가 있을까?
―아주 위험한 능력이다. 아빈가의 여우가 정상이라면, 저리 심한 흔적을 남길 리가 없는 능력이지.
드라고니아의 에두르는 설명이었다.
뭔가 구체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기에 투란은 곧 짜증을 내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상반신의 절반을 조금 넘게, 이상한 방식으로 먹히고 남겨진 레오팬저의 주변에서 검은 얼룩처럼 잉크가 번지면서 투란에게 몰려들었다. 작은 방울들이 티끌 사이를 가로지르며 겨우 뭉치고 나니, 고작해야 손바닥에 간신히 고일 정도만 남아 있었다.
왼손으로 땅을 짚으며 잉크를 회수한 뒤, 투란은 고개를 쳐들어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봤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아주 다른 듯이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방이 우거진 나무의 벽으로 감싸인 듯했고, 이 길목은 그런 나무들이 겨우 내준 틈새처럼 보였다. 거기에 쓰러져 있는 레오팬저의 잔해가 을씨년스럽고 섬뜩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광경이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며, 아직 남아 있는 곰의 피냄새와 짙게 겹쳐지는 레오팬저의 피냄새, 여우 세 마리의 체취, 블랙 버블의 여우가 남긴 독한 냄새를 한꺼번에 훑듯이 맡으면서 투란의 왼팔이 붉은 털을 뿜어냈다.
투란은 힘차게 뛰어올랐고, 나무줄기를 늑대의 팔로 잡아챘다.
허공으로 높이, 강력한 붉은 늑대의 팔은 사람 하나 정도는 높은 나무보다 더 높이 치솟게 한다는 것을 과시하듯이 날아오르며 투란은 다시 물었다.
‘공간 조작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설명 안 해줄 거야?’
―제대로 설명하는 게 힘들다고! 투란, 너는 아직 공간이란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음, 그냥 허공이란 말 아냐?’
―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설명하기가 곤란하다는 거다!
‘쳇.’
삐죽거리면서, 투란은 허공에서 빙빙 도는 채로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둘러봤다.
초록이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 진청의 빛깔, 때로는 시커먼 그림자처럼 보이는 숲의 풍경, 저 숲의 건너편에 연하게 펼쳐진 초원…… 간혹 듬성듬성 뚫린 듯이 보이는 숲의 빈터…….
삐죽한 산을 넘어서고 나서는 발작하며 가지를 휘두르는 나무라든가, 닿는 것만으로 사람 가죽을 긁어서 뼈까지 파낼 듯한 거친 껍질을 자랑하는 나무 따위는 없었다. 그저 춤추는 산맥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는 튼튼하고 단단하면서 억센 나무로 채워진 것뿐인 숲이었다.
블랙 버블의 여우는 그런 숲을 깡충거리며 뛰거나 걸어서 가지 않았다.
단번에 여기 있다가 저기 있는, 괴상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신전 사제의 귀환술조차도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려면 빛의 궤적을 남기고, 마법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른 이동을 중간에 가로막힌다고 하는데…… 이 블랙 버블의 여우는 그런 궤적이나 가로막는 장애물 따위는 걸리적거릴 일이 아예 없는 듯이 옮겨간 것이다.
―제대로 느꼈군. 그게 공간 도약이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심상(心想)을 알아차린 듯이 말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의 몸은 공중에서 자세를 잡았고, 붉은 늑대의 감각을 온몸에 두르면서 계속해서 나무를 잡아채는 동작을 이어가며 숲을 가로질렀다. 흔적도 없이 저편으로 가버린 블랙 버블의 여우를 쫓기 위해서는 쉴 새가 없었으므로!
이런 투란의 의도를 조금 늦게 알아차린 듯, 드라고니아가 묻는다.
―한데 대체 왜 쫓는 거냐? 저 능력은 마수인 여우의 능력이라고! 블랙 버블은 임모그 웜보다고 쓸모없을 텐데?
‘글쎄? 과연 저 희한한 능력을 지닌 여우끼리 싸움이 어찌 되나 봐두고 싶은데?’
투란은 슬쩍 건너뛰는 대답을 해줬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침묵했다.
블랙 버블에 사로잡힌 여우가 동족을 쫓는 것은 명확했다.
그 뒤를 투란은 쫓으면서 구경하겠다고 하는 것이고…….
하지만 과연 몬스터 로드인 투란이, 여태껏 드라고니아가 지켜봐 온 투란이 겨우 그런 구경거리 때문에 저런 위험한 것을 뒤따르는가?
―너…… 설마 여우가 마수에서 몬스터의 경계로 넘어갈 경우를 생각해서 쫓는 거냐?
‘음? 아, 그런 수도 있겠네.’
조금 의외의 말에 투란이 살짝 놀란 낌새를 드러냈다.
―아니었냐? 그럼, 대체 왜……?
‘여우의 눈. 잉크가…… 아르고누스가 느꼈어. 그 눈 속에 이상한 힘이 있다고. 눈알을 갖고 싶다고나 할까? 게다가 정말 궁금하잖아. 대체 그 공간 조작이란 게 뭔지 말이야. 나중에 또 뭔 일을 겪을지 모르니까, 봐두고 싶다고.’
―그건 키린의 권고로군.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대꾸했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해보라. 이 또한 키린이 남긴 목록 중에 있었다. 물론 항상 조심하란 말이 꼬리처럼 딱 붙은 권유이기도 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일단 도망치란 말도 함께 하는…….
파악, 콰직.
늑대의 손길이 잡고 당긴 가지가 부러졌다.
그럼에도 투란의 몸은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고, 재빠르게 훑어내린 시야 속에서 마침내 블랙 버블의 여우를 찾아냈다. 그 큰 덩치는 숲의 빈터, 돌이 잔뜩 깔리면서 간혹 기둥처럼 벽처럼 큰 덩어리가 보이는 곳에서 어느새 잡았는지 모를 비비나비를 뜯어먹고 있었다.
이미 머리통이 없어진, 어깨와 허리가 반만 남은 비비나비가 사라지며 여우의 몸에 돋아난 검은 거품이 좀 더 자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듯이 보였다. 사방에서 잔잔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비비나비의 기척은 꽤 멀어지는 듯하기도 했다.
‘여긴…… 무슨 돌집이 있었나?’
투란은 빈터 가까운 나뭇가지에 매달리며 의아해했다.
소울테이커의 드레이크가 남긴 바윗돌의 잔해랑 다른, 어딘가 석공(石工)의 솜씨가 엿보이는 돌로 된 건축물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빈터였다. 원래 모습을 추측하면, 분명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석조(石造)의 건물들이 몇 채 있었을 것처럼 보였다.
―아빈가의 사원(寺院)…… 여긴 진짜 아빈가의 숲이었어!
드라고니아가 뭔가에 주의하며, 투란이 봤지만 알지 못했던 뭔가를 알아차린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거 엘페룬…… 저기 브로큰 킹덤 너머에 있는 거라며? 여긴 춤추는 산맥 깊은 곳인데?’
투란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 숲이 저 여우처럼 통째로 이 산맥 안으로 옮겨오기라도 했을까!
―저 사원에는 시공(時空)을 제어(制御)하는 고대(古代)의 비술(秘術)이 담겨 있다고 했다. 저 사원을 이용하면, 한순간에 세상 어디로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힘의 기반은 정령(精靈)이었고…… 그 정령이 강하게 머무는 숲이었기 때문에 아빈가의 여우는 공간을 조작하는 마성(魔性)의 힘을 얻었다고 하지.
‘엥? 그럼, 저 사원이 뭘 옮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리로 옮겨오면서 숲도 통째로 퍼왔다고?’
어이없어하며 투란이 바로 되물었다.
―그거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군.
‘너네…… 그 드라코눔인가 하는 곳의 너네 일족은 저 사원이 뭔지 알면서 여기 와 있는 걸 몰랐다고? 그 도약인가를 하면 쫓을 방법이 없어? 그런 힘을 지닌 사원을 추적할 마법 같은 것은 있을 것 같은데?’
투란은 자신이 지금 여우를 쫓아온 방법을 떠올리며 묻고 있었다.
뭔가 저 사원에 대해 안다면, 저 사원이 강한 힘을 지녔다면 그런 마법이 있을까 싶은 느낌이 저절로 들었으니…….
―춤추는 산맥은 끊임없이 변한다. 마법으로 탐색해도 한계가 있고…… 산맥 밖에서 이 안으로 마법을 써서 탐색하는 범위도 그리 넓거나 깊을 수가 없어. 여기는 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힘이 계속 충돌하는 곳이라고.
‘음…… 그렇겠지.’
투란은 문득 황금색 태양이 여럿 둥실거리면서 서리를 뿜어내는 안개와 싸우던 광경을 떠올리며 그냥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산맥에 어떤 괴상한 것이 튀어나와 날아다니며 구경하는 마법의 새를 날름 잡아먹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건…… 투란, 대체 뭘 본 거냐?
잠시 투란의 심상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당혹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투란은 곧 기억을 깔끔하게 털고, 나뭇가지 위로 몸을 얹으면서 여우에 몰입하는 태도로 이 물음을 외면했다. 대신 다른 말을 꺼내며 묻는다.
‘저 여우는 왜 여기로 왔지? 세 마리 쪽으로 뛰어든 줄 알았는데…….’
―투란, 냄새.
드라고니아는 화제가 돌려진 것을 따지는 대신에 투란이 느끼면서 그냥 넘긴 감각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에 곧 투란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사원의 잔해 곳곳에서 짙게 흘러나오는 여우의 냄새…….
블랙 버블의 여우가 풍겨내는 냄새가 아닌, 세 마리 여우가 이리저리 이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남겨놓은 냄새였다.
‘여기가 집이었나…….’
투란은 냄새를 통해서 세 마리 여우가 이곳을 아주 편안하게 여기며 뒹굴었다는 것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굴처럼 여우 셋의 냄새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블랙 버블의 여우는 일단 세 마리의 흔적을 쫓으며, 이쪽으로 건너와 확인하려 한 듯했고…… 비비나비 무리는 이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며 놀다가 걸린 모양이었다.
‘어라, 잠깐. 그러면 저 녀석 헛다리 짚은 거면…… 그 여우 어미랑 새끼는 이쪽으로 안 온다는 건가? 저게 노리는 줄 알면 그럴 수도 있겠네.’
투란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하고, 자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곳을 피하는 것은 이런 숲에서 살아가는 짐승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잖은가.
―글쎄…… 아빈가의 여우라면, 이렇게 사원의 잔해에서 머무는 놈이라면…… 그렇게 계속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또 뭔 말이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이 말은 마치…….
캬하항!
비비나비를 흔적 없이 먹어치우던 블랙 버블의 여우가 돌연 한쪽을 노려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투란도 얼른 그쪽을 봤고, 세 마리 여우가 숲에서 빼꼼하니 눈동자를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왔어? 왜?’
드라고니아의 말보다, 여우 셋의 행동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