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59)
캬하아앙!
검은 거품이 퐁퐁 튀는 광경 속에서 여우가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터졌다. 그 소리와 함께 블랙 버블의 여우의 눈동자 속에서 시커먼 안개가 뿜어지는 듯했다.
그 순간, 여우 세 마리의 눈빛도 블랙 버블의 여우에 맞서듯이 번뜩였다.
시커먼 안개가 허공에 검은 궤적을 남기며 죽죽 뻗어나갔다.
시커먼 색채, 그리고 다른 풍경이 섞인 색채가 얽히면서 그물처럼 펼쳐졌다.
한 마리 큰 여우, 힘을 합치는 세 마리 어미와 새끼인 여우…… 한쪽은 동족을 잡아먹기 위해서, 한쪽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힘을 발휘하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허공을 뒤틀면서 격돌하는 힘의 파문을 살갗 깊이 느꼈다.
마치 온 세상이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고, 피하거나 막거나 할 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 아주 기분 나쁘게 투란의 몸에 스며들고 스쳐 갔다.
‘아으, 이게 뭐야. 공간이라며……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만 울리는 거 아니었어? 왜 몸이 짜릿하고 시큰하고 찔려 관통당하는 것 같아?’
짜증을 터뜨리면서 투란은 나무를 끌어안으며 나무줄기 뒤로 숨어갔다. 그 뒤로 숨으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해서 한 짓인데…… 다시 전해오는 격돌의 파문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조금 전과 똑같이 투란을 울리며 훑고 지나갔다.
―그래서 너한테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 거다. 공간이란, 물질의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거든. 몸 안이냐 밖이냐, 그걸로 공역(空域), 공간의 영역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랑 마찬가지…… 네가 허공이라고 부르고 보고 느끼는 영역조차도 바람의 정령이 가득 채워져 있지. 그 바람을 이루는 힘의 구조 속에 다시 공역이 존재하고 말이다. 이런 공역을 조작한다는 것은…… 세계의 기반에 거의 직접 닿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야. 마법사는 그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아예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건드리지 않아도, 원하는 효과를 얻어낼 방법이 많으니까.
‘저 여우는 대체 어떻게 저런 짓을 하지? 눈알이 이상한 색으로 물드는 걸 본 것 같기는 한데.’
투란은 나무 뒤에서, 블랙 버블의 여우로부터 울려 나오는 잉크의 감각을 느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악마의 심장’으로 다독이는 채로 물어야 했다.
―눈? 저 힘은 눈과 연계된 부분이 없을 텐데?
드라고니아는 투란보다 한층 더 의아한 듯이 되묻고 있었다.
다시 저편의 격돌로부터 세상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대꾸해야 했다.
‘눈알 색깔부터 변한다고…… 눈동자도 정상이 아니야. 검은 거품에 당한 놈도, 어미랑 새끼인 저 여우도…….’
드라고니아로부터 당혹스러운 낌새가 전해져 왔다.
아무래도 드라고니아가 아는 아빈가의 여우와, 지금 이 춤추는 산맥에 옮겨진 아빈가의 여우 사이에서는 차이가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투란은 잉크의 감각을 좀 더 다듬고 강화해서 심상 속에 품었다. 드라고니아가 이를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이건 요정의 눈동자! 어째서 여우에게 요정의 일족이 지닌 특성이 나타났지?
드라고니아는 확실히 당황해하고 있었다.
투란은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가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떠오르는 생각을 던졌다.
‘어디 요정의 눈인데? 아빈가 숲에 살던 요정? 여기 요정이 없어지고 저 여우가 대신 사원에서 그런 힘을 얻은 거 아닐까? 정령이니 뭐니가 요정 대신에 여우를 골랐을 수도 있잖아?’
―뭐?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지?
‘숲의 사제, 수신이라고…… 나무의 신 말고 짐승의 신을 섬기는 사제가 뭔 일이 생기면 가끔 짐승이 그 사제를 대신하도록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던데? 정령도 나무나 짐승에게 깃들 수 있잖아?’
―아…… 분명히 그런 사례가 있었지.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기억해낸 듯, 그러면서 동시에 침착함을 되찾은 대답을 해왔다. 그 사이에 투란은 땅에 발을 디뎠고, 몸을 바로 굽히면서 땅바닥에 엎어졌다. 등골을 울리는 충격이 다시 퍼져 나갔지만, 역시 저 충돌의 영향력은 땅에 가까울수록 적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아, 골이 덜 아프다.’
땅에 파묻을 듯이 머리를 들이밀면서 투란은 겨우 골을 울리는 힘이 조금이나마 약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짝 여유가 되돌아왔고, 곧바로 투란은 땅바닥에 몸을 바짝 댄 채로 기어서 나아갔다.
투란의 움직임을 따라 잉크가 땅 위로 흘러내렸고, 빠르게 저편을 향해 뻗어갔다.
잉크가 확산되면서 투란은 조금 더 분명하게 여우들의 싸움을 관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
캬하항!
카오오!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 세 마리는 똘똘 뭉쳐 있었다.
어미 여우를 중심으로 두 마리 새끼가 어깨를 바짝 들이대듯이 달라붙은 채로, 검은 거품을 몸에 드리운 여우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어미 여우의 눈동자는 검게 물들어 있었고, 그 중심을 차지한 동그랗고 하얀 반점 같은 눈동자는 길게 늘어진 꼬리를 흘리고 있었다. 꼬리가 나선으로 휘감겨 빙글빙글 돌 때마다 허공에는 새로운 검은 색채가 번져가는 광경이 펼쳐졌다.
새끼 여우의 눈알은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는 듯이 보였고, 회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역시 길게 이어진 꼬리를 나선으로 출렁였다. 회색 눈동자가 흔드는 꼬리는 허공에 다른 곳의 풍경을 겹쳐놓는 넓은 금을 긋고 있었다.
이 세 마리 여우에 맞서는 블랙 버블의 여우는 보다 시커멓고 탁한 눈알 속에서 두 가닥의 꼬리를 흘리며, 뒤죽박죽으로 엉킨 나선을 아무렇게나 흔들어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마다 허공에는 탁하고 어두운 자취를 남기는 시커먼 색채가 번져가며 어미 여우가 그려내는 검은 색채와, 새끼 여우들의 풍경이 깃든 선과 격돌해갔다.
이 힘의 충돌에서 밀리는 쪽은 세 마리 여우였다.
허공에서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두 마리 새끼가 몸을 떨었고, 털을 곤두세우며 어미에 기댔고 어미는 입술이 뒤집힌 채로 날카롭게 드러난 이를 악물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세 마리는 그렇게 붙박힌 모습으로 버티는 듯한데, 블랙 버블의 여우는 그런 세 마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며 더욱 강하게 눈을 부라리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블랙 버블의 여우는 어떻게 해서든 뛰어 덮칠 듯한 낌새가 아주 역력했다.
아무래도 이 대치는 오래가지 않을 듯한데…….
‘좋아, 몬스터와 마수가 싸운다. 그러면 사람은 누구 편?’
돌연 투란이 중얼거리듯이 흘린 생각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면서 대꾸한다.
―그건 오래된 격언 아닌가? 인간 사이에 전해진다는 말 같은데?
‘맞아. 답도 알고 있겠네?’
―언제나 마수…… 맞나?
“맞아.”
입술을 열어 대답하며, 투란은 숨을 몰아 내쉬었다.
입김을 타고, 검은 잉크가 침처럼 흐르며 이마를 댄 흙 아래로 번져갔다.
몬스터와 마수,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둘 다 별 차이가 없는 흉포한 녀석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둘이 싸울 때, 굳이 한쪽 편을 들어야 할 상황이라면……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가?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이야기였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면서도, 여전히 거론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결론은 그 이야기만큼이나 오래전에 내려져 있었다.
섭리를 뒤틀고 왜곡하는 존재인 몬스터를 먼저 잡는다, 그리고 남는 힘이 있다면 마수도 잡는다. 그러므로 몬스터와 마수가 싸우면 마수의 편을 들어 몬스터를 친다, 이것이 저 이야기의 정답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어째서 그것이 정답인가에 대해서 투란은 잘 몰랐다.
다만 몬스터 헌터들이 그렇게 떠들며 놀고 있었고, 거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만 샤오덴 할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설마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줄은 몰랐던 투란이었지만……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었고, 몸을 울리는 녀석들 중 한쪽을 어떻게 해야 할 때였다.
그나마 이 선택에 조금 도움이 되는 점이라면, 어미와 새끼인 여우 쪽이 아니라 블랙 버블에게 당해서 동족을 잡아먹으려 하는 여우에게 ‘패러블랙 잉크’가 묻어간 일이었다.
‘퍼져라, 커져라! 부풀어 올라!’
늪의 성질을 지닌 잉크를 향해, 투란은 염원했다.
몸에서 새로 흘러나간 잉크가 여린 파문을 일으켰고, 블랙 버블의 여우에게 달라붙어 스며들려고 노력하는 잉크 방울 사이로 이 파문이 공명(共鳴)을 통해 옮겨갔다.
투란의 곁에 고인 잉크는 더욱 빠른 속도로 블랙 버블이 보글거리는 여우를 향해 흘러갔고, 이미 여우에게 묻어 있던 잉크방울은 여우의 가죽과 살 속으로 스며들며 투란의 염원에 호응했다.
캬으하앙!
블랙 버블의 여우가 돌연 몸을 뒤틀면서 색다른 괴성을 질렀다.
갑자기 몸이 가려운 듯한 모양으로 앞다리로 귀와 볼을 긁적였고, 뒷다리로 목뒤를 긁어대는 자세가 되었다. 때문에 세 마리 여우를 향해 다가가던 걸음은 어느새 멈춰버린 꼴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허공을 그어대는 탁하고 검은 색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주춤거릴 상황에서도 세 마리 여우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이는 투란에게 아주 명확하게 느껴졌고, 투란은 더 앞으로 기어가면서 잉크를 더 가까이 밀어넣으려 했다. 그와 함께 더 세차게 염원하니…….
‘들러붙어, 뒤틀어! 번져라, 부풀어 올라!’
블랙 버블에 의해 동족을 잡아먹을 힘을 얻은 여우의 몸 안을 녹이고 살갗을 긁으면서, 그 몸에 잔뜩 번져 있는 블랙 버블―검은 거품까지도 잉크로 덮쳐 녹이기를 투란은 기대했다.
그 결과는 조금 이상하게 찾아왔다.
캬으…… 크어어엉!
돌연 블랙 버블의 여우가 뒷다리를 접으며 앞다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높은 하늘을 향해 맑고 깨끗한 울음을 터뜨렸다.
이는 세 마리 여우를 놀라게 했고, 투란도 놀라게 했다.
‘뭐야, 왜 저래?’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뭔가 이전에 탁하고 음침하게 울던 소리와는 너무 달랐다. 마치 이제까지 적이었다가 갑자기 친구라고 외치는 듯하다니?
―이런, 위험하다! 투란, 녀석을 망가뜨려!
드라고니아의 외침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외침과 동시에 여우 몸 안으로 스며든 잉크, 그 주변으로 흘러가 이제 막 닿은 잉크까지 모두 마음에 품으면서 강하게 염원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느닷없이 이상한 짓을 할 때, 그 순간이야말로 몬스터 사냥에 나선 이들에게는 가장 위험하다고 오랫동안 들어왔잖은가!
‘빨리, 어서!’
투란이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색다른 음향이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 동시에 울려 나오는 듯했다.
하늘을 휘젓고, 땅을 치솟게 하는 듯한 느낌이 그 음향 속에 담겨 있었고 이는 투란과 저편에서 놀라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여우까지 동시에 덮쳤다.
그 뒤를 잇는 섬뜩한 절삭음…….
싸아― 싹!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소리는 살갗을 거꾸로 뒤집는 듯했고, 단숨에 매듭짓는 것처럼 단음(斷音)으로 맺힌 소리는 뼈를 가르는 듯했다.
투란은 바로 자신의 몸 상태부터 점검해야 했다.
저 음향은 분명히 뭔가가 잘려나간 소리가 몇 배로 커져서 울린 것인데, 대체 그게 어디에 있는 누군가 알 수 없을 뿐이었으니!
‘난 멀쩡해!’
겨우 안도하며 투란의 낯이 일그러졌다.
투란이 무사하다면…….
캬항!
어미 여우의 고통스러운 울음이 터졌다.
흠칫하며, 투란은 일단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를 찌근거리며 아프게 하는 기괴한 충돌의 영향력이 다시 투란의 머리로 스며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악마의 심장’을 머릿속에 퍼뜨리며, ‘패러블랙 잉크’까지 뇌수 속으로 흘려넣으며 투란은 뿔수리의 눈을 크게 뜬 채로 봐야 했다.
어미 여우 곁에서, 작은 여우 한 마리가 한쪽 눈과 앞발을 시작으로 몸이 갈라지는 광경이 보였다. 완전히 절반으로 쪼개진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머리부터 허리 언저리까지 쪼개진다면 살기 힘들다…… 마수라 해도, 여전히 짐승이므로!
컁컁거리는 또 다른 새끼 여우의 울음이 울렸고, 어미 여우의 분노에 가득 찬 울음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블랙 버블의 여우가 킹킹거리며…… 마치 웃는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콰릉, 콰르륵!
돌이 갈라지고 파이며 치솟았다.
블랙 버블의 여우는 옆으로 높이 뛰었고, 자기가 있던 자리가 박살나는 광경을 향해 다시 킹킹대며 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투란은 이해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저 블랙 버블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한 말을 다시 되새겼다.
“동족 포식을 강요하고 재촉하는 괴물…….”
덧붙여 그 과정을 즐기게 만드는 기생하는 몬스터!
―저 지경일 줄은 몰랐는데…….
드라고니아의 씁쓸한, 투란과 불쾌함을 공유하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