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
Chapter 4. 왕의 자격
무슨 일인가, 잠시 동안 투란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살갗이 부서지고 흩어지는가?
살갗을 덮은 넝쿨의 실그물이 왜 말라비틀어지고 부서져 흩어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의 곳곳에서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그대로 무릎을 접고 주저앉아야 했다.
여전히 새카만 허무가, 심연이, 기둥처럼 서 있는 것이 보이고 느껴졌다.
‘저게……?’
내가 부서지는 건 저 새카만 것 탓인가?
저 고요하고 도도한 것이, 저기서부터 날 부숴 대는가?
‘아니잖아!’
몸의 곳곳에서 스러지고 사라지는 악마의 심장, 그 덩굴줄기의 빈자리를 채워 가는 여린 ‘오러’를 느끼며 투란은 바로 깨달았다.
그곳이 살을 저미고 할퀴며, 사람을 숨 쉬기조차 괴롭게 만드는 환경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투란의 몸이 지금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은 환경 따위 아랑곳없이 버텨 줄 악마의 심장이 오그라들고 있는 탓이었다.
또한 그 과정은 투란에게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을……!’
알아 버렸기 때문에 전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악마의 심장은 먼저 덩굴줄기를 축소했고, 그 안에 담긴 양분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중심이자 뿌리라 할 수 있는 심장을 향해 그렇게 양분이 모여들고 나자 사람의 심장 속으로 숨어들었다!
온몸에 그물을 짜며 퍼져 있던 덩굴줄기 가닥들은 굵은 것, 얇은 것, 가는 것…… 몸의 각 부분에 맞게 변형된 형태가 무엇이든 모두 양분을 잃고 말라 갔다. 마른 덩굴줄기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몸 곳곳에 녹아들어 투란을 놀라게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온전한 사람의 몸이 그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투란이 느낀 것은 살을 가르는 혹독한 바람, 혹한의 냉기와 함께 머리 위의 어디선가 쿡쿡 찔러 오는 뜨거운 바늘, 도무지 한 곳에 있을 리가 없다 생각되는 뒤죽박죽인 온갖 자극이었다. 그 모두는 단순하게 감각만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베고 얼리고 녹이는 현상을 동반한, 치명적인 자극이었다.
한데 그런 결과를 일으킨 악마의 심장은 어처구니없게도 투란의 심장 속으로 숨어 버렸다. 게다가 그 숨어드는 행태, 과정이 투란을 깜짝 놀라게도 했다! 너무 놀라서 투란이 잠시 몸 밖의 일보다 주의를 더 기울여야 했을 지경이니.
‘이 자식은 어떻게 온전한 심장 속에 숨는 거지!’
분명히 투란의 심장, 사람의 심장은 절반가량이 융합하듯이 먹혀 버렸다.
그런데 악마의 심장은 그런 일 없다는 듯, 온전한 사람의 심장 속으로 숨어들었다!
‘대답해!’
이보다 더 뜨거워질 수 없다는 듯이 달아오른 투란의 마음이 격하게 외쳤고, 심장 깊은 곳에 숨은 악마의 심장에게서 가늘게 속삭이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보수, 배양, 성장…….
투란은 그게 무슨 말인가 겨우 알아차렸다.
샤오콴 마을의 최고령 늙은이로 꼽히는 샤오덴 할배, 그가 아주 작은 정원을 가꿀 때 하는 얘기였다.
정원이 망가지면 고치는 일. 앞으로 계속 망가질 것 같으면 아예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들 듯이 고치기도 했다. 그걸 샤오덴 할배는 ‘보수’라고 했다.
정원에 뭔가 심고 키우는 일. 샤오덴 할배는 처음부터 정원 땅바닥에 뭔가 심어서 키우려 하지 않았다. 일단 작은 화분에 씨앗을 뿌리고, 씨앗이 흙에 적응해서 싹이 트고 주변으로부터 안전하게 뿌리를 내릴 힘을 갖도록 했다. 샤오덴 할배는 이를 ‘배양’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고쳐진 정원에 힘을 갖게 된 씨앗을 심고 기다렸다.
‘성장을 기다리며 천천히 돌본다고 했지.’
투란은 기억해 냈다.
그 기억을 통해, 방금 들은 속삭임과 함께 전해진 이상한 사념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악마의 심장은 그의 몸을 정원으로 삼았다.
지금 그 정원을 포기하려는 것이고!
돌연 투란은 그 안에 담긴 보다 깊은 의미를 깨칠 수밖에 없었다.
‘내 심장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 수 있었어! 반쪽이라도, 그 넝쿨을 이용해서 보수하고 다시 완전하게 배양할 수 있었어! 그런데 왜 하지 않았지? 왜!’
격노가 밴 마음의 소리는 악마의 심장을 강요해서 대답을 쥐어짜 냈다.
―당연하잖은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우리는 하나이니까, 늘 함께하는 것이니까, 심장은 지워지면 안 되니까.
‘그게…… 너의 본능?’
투란은 깨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로드에게 부적이 절대로 필요한 이유.
몬스터 로드가 부적 없이 겪게 되는 혼란…….
“이게 없으면 어떻게 되냐고? 흠…… 뭐, 다들 애송이 시절에는 궁금해하지. 그래서 잠시 몰래 떼 놓고 어떤가 알려고도 하고 말이야. 답은 간단해. 썩은 고기가 무지하게 향기롭고 사람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고 하면, 알아듣겠냐?”
몬스터의 본능으로 인해 사람으로서의 감각, 행동을 잊게 되기도 하고 그 본능에 지배당해 폭동을 일으키며 날뛰기도 한다고 했다. 부적을 지닌 채로 일으키는 폭동이 미숙한 몬스터 로드의 실수라면, 부적 없이 저지르는 폭동은 아예 ‘광란’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결과를 알 수 없는 심각한 사건이 된다고도 했다.
지금 악마의 심장은 투란의 의식을 담고, 투란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인 투란을 방패 삼아 숨어 버렸다.
죽은 척할 수 없게 되자, 아예 사람의 몸을 내세워 저를 은폐하려는 것이다. 전혀 투란이 원하는 바가 아닌 쪽으로, 오직 악마의 심장을 기준으로 삼아 꾸물거리면서 오그라들어 숨은 것이다!
몸 곳곳에 이어져 있던 제 일부를 말리고 싹 끊어 버리기까지 하면서!
“하아하…….”
쿨럭, 칵!
너무 어이가 없어서 투란은 웃으려 했지만, 웃음 대신 피를 토해야 했다.
가슴속을 누군가 할퀸 것처럼 아팠고, 들이쉬는 숨결은 뜨거웠다.
하얀 안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숨 쉴 수 없는 곳일 뿐.
악마의 심장이 허파에 깃들이지 않으면 사람인 투란은 숨을 못 쉬고 죽어 나자빠질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이 새끼가…….’
새삼 격노를 토하려는 투란의 의식 속으로 강렬하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악마의 심장으로부터 다채로운 상념이 전해졌다.
―내가, 이 심장이 무사하면 우리는 괜찮다!
투란은 그 상념을 통해, 악마의 심장이 정원—심장을 삼킨 존재—을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며 정교하게 복원할 수 있는가를 이해했다. 그 결과는 명확한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재생!’
악마의 심장에게 몸이란, 흩어진 씨앗을 품은 정원이었다.
그 씨앗을 확보하고 정원의 틀—몸의 원래 형상—을 ‘기억’하게 되면 도마뱀이 뚝 잘려 나간 꼬리를 다시 키우는 것처럼 몸을 원래대로 키울 수 있었다. 이는 투란이 조금 전 이해했던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은 성질이었다.
단순히 반쪽 난 심장을 회복시키는 정도가 아니었다!
심장의 씨앗을 확보한 악마의 심장은 아예 심장이 통째로 파여 나가도, 거기에 다시 핏줄을 이어 붙이고 심장을 새로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반쪽만 남겨 놔?’
그가 심장을 다시 사람의 것을 바꾸려 했을 때 알려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답은 금세 투란의 마음으로부터 튀어나왔다.
마치 반박하듯이!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서 강제로 사람의 심장이 복원되면서, 투란처럼 생각한 악마의 심장은 알고 있었다. 절반뿐인 심장으로는 사람이 버틸 수 없고, 투란이 다시 악마의 심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부분을 감춘 것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몬스터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저지른 짓이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고.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가?
문득 투란은 다시 자신의 물음이 원점으로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그 답은 눈앞에 고스란히 놓인 채였다.
새카맣게,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색으로 물든, 기둥으로 보이지만 그 안이 끝없이 비어 있을 뿐인 저 허무.
무엇이든 ‘존재’하는 것이라면 모두 삼키고 지워 버릴 수밖에 없는, 바닥을 모를 심연의 형상.
투란이 당장 어쩌지 못하는 악마의 심장에게 몰입했던 기분에서 벗어나는 순간, 깊은 참극을 겪는 슬픔이 밀려왔다. 저 허무의 깊은 늪, 저 심연이라면 어떤 감정이라도 괜찮을 듯했지만, 투란의 감성은 슬픔으로 기울어져 갔다.
까닭 모를 눈물이 절로 눈가에 맺혀 흘러내리려 했다.
‘어?’
눈물이 고였다고 느낀 순간, 그것이 흘러내릴 정도로 넘친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도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다른 곳도 아닌 투란의 눈으로!
투명하고 섬세한 그물이 잠시 보였다.
꿈틀거리는 미세한 맥동을 두어 번 하며 눈물 한 방울을 삼키고 다시 죽은 척 잠잠해진 녀석, 눈동자에서 생성된 악마의 심장이었다. 제대로 뿌리 형상도 못 갖추었을 텐데, 녀석은 지금 독립해 있었다!
투란의 정신이 돌연 번쩍이기 시작했고, 혼백 깊이 각인된 ‘천칭의 문장’이 여리고 여린 파문을 흘리며 그를 도왔다.
‘이 녀석도 끊어졌어. 그런데 왜 유지되지? 어떻게 독립을 했지!’
투란은 알고자 했고,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심장에 자리 잡은 악마의 심장처럼 눈동자에서 시작한 녀석도 투란의 의도에 따라 생성되었다. 눈알을 덮는 장막이 된 넝쿨의 실그물, 그 껍질과 다르게 앞을 보고 싶다는 의도에 충실히 아예 눈동자 속에서 태어난 놈이었다.
그러나 악마의 심장이 심장을 차지했고 더 강했기 때문에, 거기 닿고 붙여지면서 거기서 생성된 의식에 복종했다. 별개로 존재할 수도 있었지만, 악마의 심장은 한 몸에서 둘이나 주도권을 유지하지 않는 것이 본능! 때문에 복종한 것이다.
―무섭다, 싫어!
심장 속에 자리한 ‘투란’이 외치는 답이었다.
투란이 눈으로 본 것은 녀석도 모두 봤다.
그렇게 본 것은 모두 기억되었고, 녀석은 저 새카만 허무까지도 봤다!
그다음에 한 짓은 악마의 심장답게 일단 죽은 척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죽은 척에서 마지못해, 투란의 강요로 깨어나야 했던 악마의 심장은 이 녀석을 맨 먼저 잘라 버렸다. 반항이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잘려 나간 이놈은 투란이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계속 죽은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척을 해도 양분은 필요하고 양분의 바탕이 될 수분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투란의 온몸이 망가지고 말라 가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머리에 몰린 모든 수분이 집중되어 흘러내린 듯한 눈물 한 방울을 놓치지 않고 삼킨 것이다.
너무 작은 놈이, 너무 어이없이 자신을 노출한 셈이었다.
‘이 녀석은 생각이 없어!’
당연한 일이었다.
심장에 자리한 악마의 심장처럼 스스로를 성장시킬 기회를 얻지 못한, 악마의 심장이면서도 겨우 눈동자라는 작은 구역 안에 뿌리를 둬야 했던 놈이니까.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을 오롯하게 본능에 몰아넣고 거기에 충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투란은 다시 온몸을 샅샅이 헤집듯이 느끼고, 점검해 봤다.
‘아……!’
기묘한, 정말 이상한 감동이 투란을 두들겼다.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이 온몸을 향해 여린 파문을 흘리며 다시 투란을 보호할 몬스터—악마의 심장—를 생성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작은 덩굴줄기 가닥들, 어떻게든 혈관에 닿고 다시 맥동하기 위해 심장에 이르려는 것들이 몸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몬스터 로드가 왜 문장을 믿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듯했다.
문제는 그렇게 겨우 심장에 이르는 실 가닥이 닿는 순간, 투란의 심장 속에 숨은 악마의 심장이 날름 그 넝쿨을 낚아서 말려 버린다는 것!
눈동자에 실린 놈과 다르게, 심장 속에 숨은 놈은 어떤 기억도 없이 처음부터 오롯하게 순수한 악마의 심장이 지닌 본능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투란조차 ‘오러’의 감각에 집중하지 않으면 모를 지경으로 여린 놈이었다.
게다가…….
‘소모되고 있잖아!’
투란을 지켜 주는 ‘오러’가 줄어들고 있었다.
문장에 담긴 힘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않으면, 결국 이 ‘오러’가 바닥날 테고 그러면 투란은 이제 주저앉은 꼴도 유지 못 하고 쓰러져서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될 처지였다.
저 새카만 것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악마의 심장이 다시 투란이란 정원을 보수, 배양, 성장시킬 때까지! 그 재생이 완료될 때까지 생각 없이 뒹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빠르게, 번개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 생각이 여기에 도달한 순간 투란은 참을 수 없는 격한 정서에 휘말렸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격렬함이 아니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신, 의무를 저버린 자에 대한 증오도 섞여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 자리한 심장이 누군가와 겹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두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