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0)
콰득, 쉬이잉!
느닷없이 공중에서 맞물리는 이빨처럼 바위덩이가 튀어나오더니, 날았다.
저편으로 피해간 블랙 버블의 여우를 향해 날아간 바위는 나무를 찢고 뒹굴면서 굴렀다. 하지만 정작 노리고 있던 검은 거품이 가득한 여우는 이미 그 궤도에서 피해버린 다음이었다.
‘이건 또 뭐야?’
불쾌감과 치밀어오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젖어가던 투란은 곧 황당함을 느끼며 굴러가는 바위를 봐야 했다.
―저게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공간 조작의 능력이다. 드로위(Drawi)라고 하는 공역(空域) 제어(制御)의 요술(妖術)이지. 자연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는 요술이기에 저 힘을 사용하는 아빈가의 여우는 절대로 몬스터의 경계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블랙 버블이 개입하면 저리 될 수밖에 없나 보군.
‘야, 그러니까 왜 갑자기 바위가 튀어나오냐고! 쳇, 나중에 듣자!’
드라고니아는 뭔가 투란이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중얼거렸고, 투란은 그보다 먼저 다시 샘솟는 듯한 불쾌감과 울화를 풀어야 했다.
바로 투란의 오른손이 내밀어지면서 떨어져 내린 바위 주변을 껑충거리는 블랙 버블의 여우를 향했다. 거의 4미터에 가까운 몸길이임에도 검은 거품을 찢어진 가죽 속에서 번들거리는 여우의 움직임은 20, 30센티 정도의 고양이처럼 가볍고 빨라 보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있는 탓에 손을 들고 손가락 사이로 가늠해보니, 투란의 시야 속에서는 꼭 펼친 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만 한 크기로도 보였다. 이를 뿔수리의 눈으로 확대해서 볼 수도 있기는 했지만…….
‘조여라, 으스러뜨려!’
깡충거리던 블랙 버블의 여우가 다시 가려움에 시달리는 듯, 몸이 이상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곧 어미 여우의 사나운 울음과 함께, 또다시 불쑥거리며 허공에서 바위가 튀어나와 날아갔다. 드라고니아는 그 광경에 놀란 듯했으니…….
―맙소사, 드로위의 용량이 대체 얼마나 확장되어 있는 거지? 저 정도 크기의 바위를 연속으로 토해내다니!
이는 곧 투란에게 허공에서 맞물리며 날아갔던 아까의 바위와 지금 바위의 크기를 다시 가늠하게 했다. 바위덩어리들은 대강 비슷한 크기였고, 폭이나 지름이 얼추 2미터에서 3미터 사이로 보였다. 굴러가듯 돌고 있어서 제대로 가늠했는가 의심스러운 점도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정도 크기면 블랙 버블의 여우도 그대로 얻어맞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정도인 모양이었다.
즉, 드라고니아를 놀라게 하는 것은 대강 2, 3미터 지름의 바윗돌 두 개 정도는 저 여우가 토해낼 수 있어도 그게 세 개째, 네 개째가 되는 것은 의외란 듯한데…….
콰앙!
다시 날아들며 맞물리는 바윗돌을 블랙 버블의 여우가 피했다.
이번에는 똑바로 위로 튀어 오르는 동작이었다.
이는 그대로 날아든 바윗돌에 좌우를 얻어맞으며 그 틈새에 끼여 으스러질 듯한 가벼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동작을 하는 블랙 버블의 여우 위로 탁하고 검은 색채가 허공을 물들였고, 여우는 그 속으로 뛰어들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바윗돌은 애꿎게 허공에서 격돌하며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투란은 블랙 버블의 여우가 전혀 다른 곳에서 기척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곳, 보다 더 아래쪽 숲의 평원 가까운 영역…… 거리가 먼 곳이었다. 집중하고 있던 잉크의 감각, 주변을 쉴 새 없이 포착하기 위해 애쓰던 ‘악마의 심장’의 지각능력이 동시에 엉키면서 투란은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기며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공간 조작, 공간 도약이 대체 뭔 능력인가를…….
‘이래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어!’
저렇게 갑자기 이곳에서 사라져 먼 곳에서 나타나는 놈을 뛰어다니며 때려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투란에게 남은 것은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투란은 정신을 집중했고, 문장에 몰입하며 ‘패러블랙 잉크’를 품으며, 아르고누스의 힘에 몰입했다. 더 강하게, 잉크가 지닌 늪의 성질과 가죽을 뿜어내는 능력을 조합하고 이를 통해 저 기분 나쁘게 하는 여우를…….
“응?”
투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투란?
투란의 지금 심정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함께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몸 안에 분명히 잉크가 스며 있었어! 잉크도 놈과 함께 저 멀리 갔다고! 그런데 이게 뭐야? 왜 갑자기 잉크가 녀석에게서 떨어졌지? 이건 마치…….’
―그렇군. 녀석이 공간 도약을 다시 하면서, 잉크를 분리시킨 거야.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야? 공간 조작이란 게?’
―물질의 내재된 공역에 간섭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물질체계에 아주 섬세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아닌 부분, 자신의 공역 구조에서 벗어난 잉크를 제외해버리는 새로운 도약용 공간을 구성한 셈이지.
‘몸 안이고 밖이고 상관없이 잉크를 벗겨낼 수 있다니…….’
투란은 엄청나게 불쾌한 기분이 되었다.
이에 호응하듯, 저쪽에서 어미 여우가 기분 나쁜 울음을 토해냈다.
새끼 여우에 대한 애절함보다는 보다 더 지독한 격노를 뿜어내는 듯…….
드라고니아가 곧장 어미 여우의 저 울음에 대해 염려를 토해낸다.
―이런…… 새끼 여우가 한 마리 더 있는데! 역시 여우에게 요정의 눈은 너무 위험했군.
‘무슨 일인데, 왜 저래?’
―마인화(魔人化)…… 원래 요정의 일족이 저 눈을 사용할 때, 어느 선을 넘어서게 되면 눈알의 마력이 온몸으로 번지면서 육체변이(肉體變移)가 일어난다. 마수인 여우라면…… 몬스터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게 뭔 소리야!’
투란에게는 낯설고 기막힌 이야기를 드라고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고 있었다. 마수화란 말은 들어봤어도, 마인화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째 말투가 비슷한 경우를 말한 것 같잖은가. 게다가 그게 저 여우에게는 몬스터가 되는 것이라니!
즉 블랙 버블에게 씐 채로 몬스터가 되어 날뛰는 것과 별개로, 저 어미 여우까지 몬스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것인지 그냥 떠드는 것인지 의심할 지경이었다. 스스로의 눈과 귀로 보지 못한 채, 투란의 감각에 의존한 나머지 상황파악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캬으아앙!
갑작스럽게 어미 여우가 다시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절박함, 애절함 속에 격노가 가득한 외침이 투란의 생각을 끊었다.
그다음에 보인 광경은 잠시 투란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어미 여우가 찢긴 새끼 여우를 다시 끌어모으듯이 한 덩어리로 입에 물고 몸을 돌리고 있었다. 마치 이 자리에 새끼를 찢긴 채로 놓아둘 수 없다는 듯, 물고 엉덩이를 보이며, 두툼하고 넓은 꼬리를 휘저으며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곁에서 또 한 마리의 새끼 여우가 어미의 울음을 흉내 내듯이 서글픈 소리를 흘리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투란은 그 풍경 속에 이웃집 아줌마의 모습을 겹쳐 넣을 수 있었다.
이는 그저 문득 떠오른 것이었지만, 어쩐지 투란에게는 딱 이 풍경이 그때 그 상황이랑 맞물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우리 티아를 건드려? 뒈지고 싶은 놈이 누구냐!”
지나가던 누군가가 야란 아줌마의 딸, 투란의 이웃의 소녀에게 ‘야, 네 이름이 티아라라고? 사내아이였으면 크라운이 될 뻔했다며? 푸하핫, 뭔 이름이 그 모양이냐? 황당하다, 정말!’이라고 놀렸기 때문에 티아라―이 또한 줄여서 티아―라 불린 소녀가 울음을 터뜨렸고, 티아의 엄마인 야란 아줌마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게 했었다.
‘티아는 왜 울었을까? 아줌마는 왜 울기만 하는 티아 때문에 그렇게 화를 냈을까?’
여전히 투란에게는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저 어미 여우가 지금 품었을 격노가 그때 야란 아줌마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저절로 투란에게도 찾아들었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분노는 당연할지도 몰랐다. 드레이크가 새끼를 잃었을 때처럼…….
‘아,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
돌연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깨달았다.
사람으로서 투란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지는 몰라도, 드레이크의 ‘삶’을 통해서는 확실히 납득할 수 있는 격노였다. 이 격노의 바탕에 깔린 것은 아직 함께 있어야 할 자를 잃은 슬픔…….
“끄응, 아프잖아.”
여우들이 사라진 후, 겨우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빼는 순간부터 격통이 온몸을 누비며 투란을 감싸고 있었다. 격렬한 허공의 충격, 바위를 뿜어냈던 그 이상한 요술의 여파(餘波)는 그냥 잠깐 아픈 정도가 아니라 투란의 몸 곳곳에 상처를 심어 넣은 모양이었다.
살갗은 ‘악마의 심장’이 단단히 봉합하고 있었고, 찢어진 속살과 힘줄은 그 줄기가 다시 뻗으며 엮어갔지만 금이 간 채로 삐걱대는 뼈대는 그 주변에 지독한 통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공역이 요란(搖亂)한 탓에 생긴 충격파가 남긴 상처다. 가능하다면 빠르게 뼈를 아물게 하는 게 좋고…… 되도록 오래 뼈를 묶어두는 치료가 필요해. 이 충격파는 한번 스며든 곳에 며칠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공간 조작의 후유증이라서 말이다.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늘어놓는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조금 까다로운 조건을 내미는 것처럼 들리는 중이었고, 어쨌든 이를 참고로 해서 투란이 할 일은 금방 정해졌다.
투란의 오른팔이 샤머닉 트롤의 팔로 변했다.
오른쪽 가슴에는 두 번째 심장, 샤머닉 트롤의 강력한 심장이 자리 잡았다.
격렬한 맥동이 혈관을 꿰뚫으며 퍼졌고, 투란은 순식간에 몸의 곳곳에서 상처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감각, 뼈가 단단하게 맞물리면서 더 튼튼하고 강한 조직으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감각은…….
‘어라, 전보다 더 선명한데?’
확실하게 투란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전과 다르게 아르고누스로부터 흘러나오는 ‘패러블랙 잉크’가 신경의 틈새를 누비고 채우며 투란이 내부를 관망(觀望)하는 지각을 더 넓은 폭과 속도로 알게 해주는 덕분이었다.
‘악마의 심장’만으로 자각(自覺)할 때보다 훨씬 빠른 지각(知覺)이었다.
‘뭐, 대충 다 맞춰 회복한 모양인데.’
느긋하게 붉은 늑대의 팔과 샤머닉 트롤의 팔을 왼편, 오른편에 형성한 채로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며 발을 내디뎠다. 어느새 두껍고 강한 잿빛바위 그랑츄의 발이 투란의 두 다리를 버텨내며, 발바닥에 닿는 자갈을 으깨고 있었다.
―그 정도면, 후유증 따위는 염려할 필요가 없군. 하지만 좀 오래 유지하고 있는 편이 좋을 거야. 며칠 동안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여파니까.
‘그러지 뭐.’
투란은 간단히 대답하며, 어슬렁거리며 사원의 잔해 사이를 둘러보며 맴돌았다. 기억 너머에서, 이 풍경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던 일이 서서히 떠올랐다. 사람으로서가 아닌 드레이크로서, 이 숲을 몇 차례 지나쳤었다…… 내려온 적도 없고, 오래 위에서 맴돌며 내려다본 적도 없었다.
드레이크에게 이 숲은 뭔가 불쾌한 것이 맴도는 곳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이 숲이 춤추는 산맥이 아닌 머나먼 곳에 있던, 요정과 마수가 뛰어노는 숲인 아빈가라고 했으니…….
돌의 잔해 사이를 가로지르며, 서서히 잉크 방울이 다시 투란에게 돌아왔다.
블랙 버블의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온 잉크 역시 다시 엮이면서 투란의 감각에 희미하게 반응하는 채로 되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여기 머물고 있다면, 몇 시간 후에는 잉크 방울을 모두 회수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투란은 잠시 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돌을 찾아 그 위에 걸터앉았다. 앉아서 조금 물끄러미 주변의 풍경을 지켜보다 보니, 저절로 의문이 투란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여기 있는 사원, 그거 대체 뭐였어? 요정의 일족이란 거…… 여우도 새끼 낳으면서 버텨낸 이곳에서 버텨낼 정도로 강하지 못했나?’
―모르겠다. 솔직히 그때 일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나는 그저 기록만으로 접한 탓이겠지만…… 나는 여우가 요정의 눈을 물려받았을 거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막연한 추측 말고는 해줄 말이 없어.
‘막연한 추측이라도 말해줘 봐.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잖아. 막연한 생각이라도 해야 뭔가 나중에 더하고 빼서 제대로 상황파악하는 거 아냐?’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나? 뭐, 틀린 말이 아니긴 하군. 하지만 너무 막연하고 억지로 끼워 맞춘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들어. 내 추측으로는…… 여우에게 요정의 눈을 물려준 것은 역시 요정의 일족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에게 저 여우는 아빈가의 숲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경쟁자였으니까.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저 여우의 영리함에 기대를 걸고 물려줬을 수가 있거든. 다만, 여기가 비록 아빈가 숲이라 해도…… 결국 춤추는 산맥의 경계 안쪽, 아주 깊은 곳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저 검은 산맥, 검은 강 너머에는 블랙 버블 같은 몬스터는 없어. 여기에는 블랙 버블 말고도 온갖 것들이 다 기어나오고 말이야. 그 탓에 요정의 일족이 전멸하면서, 몬스터보다는 차라리 마수가 갖는 편이 좋다고 여겨서 여우에게 물려줬을 수도 있다는 거지.
‘음, 그러니까 그 요정의 눈이라는 게…… 무슨 마법의 아티팩트야?’
발아래로 졸졸 흘러오는 잉크의 감촉 속에서 투란은 조용히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