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2)
‘워어? 이게 보이는 거야? 뭐야?’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을 다시 한 번 꺼낸 뒤, 투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빛이 없는 듯한 어두운 풍경 속이었으니, 당연히 눈알은 돌이 되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눈알은 울음을 터뜨리는 듯한 기묘한 떨림과 함께 도저히 ‘보고 있다’라는 감각과는 다른 광경을 투란의 뇌리로 쏟아붓고 있었다. 한데 이는 이제까지 ‘눈으로 본다.’라고 투란이 겪어온 모든 시각적 기억이 완전히 엉터리였다는 듯이 갈려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두웠고, 색채 없는 시커먼 윤곽이 서서히 파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파문이 번져가는 광경은 그저 허공에 그어진 선처럼 보이는데, 그 선이 돌을 그리고 바닥을 그리고 벽을 그리며, 자잘한 티끌까지 모두 그려낸다. 그렇게 그려낸 다음, 윤곽을 채우는 듯한 채색이 시작되는데…… 여러 가지 색이 아니라 오직 검든가 덜 검든가 하는 단일한 채색이었다. 색이 짙고 여린 바에 따라 분별만 될 뿐이고, 다채로운 다른 색은 전혀 없는 시커먼 풍경…….
‘그런데 이게 왜 보이지?’
이제는 투란도 인정해야 했다.
이 감각은 분명히 보는 것, 하지만 오로지 검은 윤곽과 그 윤곽을 그려낸 검은 선의 짙고 여린 바에 의해서만 보이는 것을 분별하는 시각이었다.
도대체 이런 특이한 시각을 지닌 리저드가 사는 디퍼 다크란 어떤 곳인가?
―마치 음향탐지(音響探知)의 시각화(視覺化) 같군. 하지만 완벽하게 미세(微細) 광파문(光波紋)을 인지(認知)하는 감각기능이라니, 이렇게 그 어둠을 간파하는 줄은 몰랐어.
돌연 드라고니아가 꺼낸 소리였다.
투란은 그게 뭔 소리냐고 묻지도 않았다.
뭔가 마법과 연계된 감각에 대해 중얼대는 중일 테고, 그게 뭔지 지금 투란이 알아들을 리가 없으니까! 못 알아들을 소리에 정신 쏟기보다는 당장 눈에 비치는 이 광경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투란은 집중했고, 서서히 더 선명해지는 어두운 풍경 속을 둘러보며 새로운 선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얗다?’
오로지 검은색의 윤곽 속에서 검은빛을 박탈당한 것처럼 보이는 하얀 선은 투란이 어둠이 가득한 풍경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서서히 나타났다. 원래는 보일 리가 없는 것이 리저드의 눈동자가 이 풍경에 완전히 적응을 하고 난 다음, 정상적이지 못한, 이 어둠과 다른 이질적(異質的)인 뭔가를 한 번 걸러내고서야 보이는 하얀 선이었다.
‘이거 실제로는 없는데 보이는 거?’
투란은 조금 더 하얗게 그어진 선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하얀 선은 검은색의 짙고 여린 윤곽으로 채워진 풍경 속을 제멋대로 채우고 있었다. 단단한 바닥이나 벽 속으로도 스며갔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고리도 그려내고 있었다. 만약 이곳이 어둡지 않고 밝았다면 이 하얀 선이 아예 보이지 않았을 거라는 묘한 확신조차 피어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투란의 막연한 느낌에 동조하는 듯,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마법이다. 당연히 안 보이지.
‘마법? 저 하얀 선이?’
―그래, 저건 여기에 걸려 있는 마법 주문이 시각 속에 잡힌 광경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투란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마법으로 불꽃을 뿜어내듯, 얼음을 만들어내듯 선을 만들어냈다는 말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터였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은, 저 하얀 선이 그렇게 불꽃이나 얼음을 끌어내는 주문이라고 하는 소리였다.
마법사가 외우는 주문이 눈에 보이는 경우가 있던가?
소리 내서 웅얼대는 것을 옆에서 듣거나, 도구에 새겨진 마법의 문장도 아닌데…….
어째서인가 드라고니아의 말에 담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챈 투란으로서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도 이런 투란의 기분을 명백하게 안다는 듯이 말한다.
―디퍼 다크 리저드의 시각은 어둠을 향해 자신만의 독특한 광파(光波)를 뿜어냄으로써 성립하는 거였다. 투란, 이 어둠 속에서 지금 네가 형성한 리저드의 눈은 계속 검은빛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어. 쉽게 말하자면, 검은빛을 뿜어내는 등불을 눈알 속에 갖고 있다고. 그래서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 검은빛의 등불은 세계의 표상(表象)으로부터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 자취까지도 포착해서 보여주는 거지. 쉽게 말하자면, 디퍼 다크 리저드는 걸려 있는 주문조차 훤히 마법의 무늬로 드러내게 해주는 시커먼 등불을 눈알 속에 갖췄다고.
‘음, 쉽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저 하얗게 보이는 주문이라는 거, 저 흰 줄에 닿지 않으면 그냥 넘어간다, 이 말인 거야? 쉽게 말해줘.’
투란은 아직 위에 얹혀 있던 손을 놓고, 바닥에 내려섰다.
가벼운 티끌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광경이 흘깃한 리저드의 눈에 바로 자잘한 구름의 윤곽처럼 보였다. 하얀 선이 뭔가가 이곳에 들어왔다고 알아차린 듯, 잠시 출렁이고 휘어지며 벽과 바닥, 허공에서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듯이 조금씩 움직였다.
―닿지 않으면, 주문은 발동하지 않겠지. 그런데 닿지 않을 수가 있겠냐?
드라고니아가 꺼낸 대답은 투란을 웃게 했다.
분명히 투란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부터, 저 하얀 선이 더 많아졌다.
그물이라도 짜듯이 이 어둠이 가득한 풍경을 채우려 하는 것처럼……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막이라도 짜는 것처럼!
‘여기 무슨 사원이라고 했지?’
―포털(Portal). 세상 어디로도 바로 갈 수 있는 비술의 사원.
‘하얀 선의 마법이 그 비술인가 아닌가 알 수 없어?’
―아니다. 저게 무슨 주문인가 모르겠지만, 절대로 그 비술은 아니야.
‘갑자기 확신하네? 그 비술이 하얀 선으로 보일 리가 없다는 거야?’
―아니. 그 비술이 담긴 사원의 방이 아니라고, 여기가.
‘아, 그래.’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드라고니아가 그 비술의 방이 어딘지 알려줄 리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거기 간다고 투란이 그 비술을 쓸 수 있을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고, 이런 폐허 속에서 비술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도 없었다. 그런 게 있다 한들, 비술을 지키고 살았다는 요정인가 뭔가도 없을 테고.
투란의 몸이 천천히 낮아졌고, 체격은 날렵하고 작은 쪽으로 변했다.
그랑츄의 살갗은 지녔지만 사람의 발이며, 붉은 털과 짙은 녹색의 팔뚝이지만 아직 어린 소년의 가는 팔이 되어 갔다. 피와 살갗 사이로 잉크가 늪처럼 맴돌았고, 몸에 퍼지는 강화된 반응속도를 느끼면서 투란이 앞으로 구르고 튀었다.
흐느적거리던 하얀 선이 미묘한 바람의 변화를 느낀 것처럼 움직였다. 변화를 주도한 자를 휘감고 주문에 담긴 마법을 발휘하려는 듯…….
하지만 투란의 몸이 벽과 바닥이 만나는 틈새에 잔뜩 웅크린 채로 멈추자, 하얀 선은 그 주변을 두껍게 긁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좀 더 뚜렷해진 주변, 검은 윤곽에 쌓인 풍경을 보면서 투란이 싱긋 웃었다.
보고 예상한 그대로, 저 하얀 선은 원래 이 방을 꽉 채우면서 물 샐 틈, 바람 샐 틈도 없이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폐허의 지하였고, 뚫려 있을 리가 없는 틈이 뚫린 채였다. 그러니 하얀 선도 원래 움직여야 할 궤도를 지키지 못한 채로, 닿지 않은 빈틈을 보이며 움직였다.
잠시 숨을 돌리며, 다시 더 안쪽의 여백을 찾아 파고 들어가면서 투란이 불쑥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이런 지하실에 대해 들은 적 없어?’
―없다. 아빈가의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비술의 방이었고, 그 방의 풍경을 본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을 봤을 뿐이야. 간혹 아빈가의 사원을 이용해 이동하려는 이들이 있었고, 요정의 일족은 그런 요청을 하는 손님이 정당한 자격을 지녔다 판단되면 비술의 방으로 안내했다더군. 하지만…… 이런 지하실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없었어. 아무래도 사원 내부, 깊은 곳이고 밖에 알려질 일이 없는 곳이었겠지.
‘그래…….’
투란은 두어 번 더 굴러서, 작은 복도와 깨진 문턱에 도달했다.
문턱의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돌로 된 문은 열리지 않겠다고 외치는 것처럼 당당했지만, 지상의 폐허가 파괴된 채인 것처럼 문의 아래편이 부서져 있어 세모꼴의 구멍이 뚫린 채였다.
하얀 선은 문의 남은 부분을 들락였지만 깨져 열린 구멍은 건드리지 않았다.
투란은 몸을 좀 더 움츠렸고, ‘악마의 심장’을 통해 최대한 체격을 압축시키듯이 조였다. 그리고 구멍을 지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방의 풍경에는 조금 있다가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음, 바로 보이는 눈이 아니구나.’
투란은 새삼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이 갖춘 시각에 대해 느끼고 이해했다. 어둠에 익숙해져야 하는 다른 눈과 다르게,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은 뭔가 보기 위해서 잠깐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한번 파악한 다음에는 정말 선명한 윤곽과 선으로 보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묵묵히 참고 봐야 하는 순간이 있는 시각이었다.
―광파를 발출해야 하는 눈이라 그렇다.
드라고니아가 간단하게 투란의 생각에 답하듯 말했다.
투란은 조금 더 인내를 품은 채로, 넓고 긴 문 안의 풍경이 더 자세히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검은빛의 윤곽이 선명해졌고, 곧 하얀 선도 보이기 시작했다.
‘어? 저기 뭐가 있나?’
이번에는 하얀 선이 문의 반대편인 저쪽 벽에 단단히 응어리진 형상으로 뭉쳐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 있는 뭔가가 마법의 주문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있기라도 한 것일까?
―요정의 일족이다! 자기 몸에 주문을 걸어놨군! 저 주문이 이 지하 전체에 퍼져 있는 거야. 그런데 저거 살아 있나, 죽었나?
‘심장이 뛰거나 피가 돌고 있는 걸로는 안 보여.’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놀라게 한 누구, 요정의 일족이라 지목된 이에게서 살아 있는 자의 모습이 없다고 지적했다. 약 10여 미터의 저편이었지만, 리저드의 눈이 그려낸 그 형상에는 하얀 선의 출렁임 말고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리고 ‘악마의 심장’ 또한 저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느끼지 않았다.
이는 곧바로 드라고니아에게 의혹을 느끼게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 주문이 유지되지?
‘응? 뭔 소리야?’
―이 주문, 감지 마법이다. 누군가 여기 들어오면 알게 해주는 마법이라고. 저기 엉킨 하얀 선의 형상, 저건 아빈가 요정의 일족이 흔히 사용하는 마법 도구에서 잘 보이는 무늬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저건 죽은 자에게 걸려 있을 마법이 아니라고.
‘뭔가 살아 있는 것이 달라붙어 있을 수도 있지.’
하얀 선이 움직이는 광경을 보면서, 허공에 너울거리는 하얀 장막이 오락가락하는 율동을 재면서 투란이 툭 꺼낸 대꾸였다.
―그렇군.
드라고니아가 너무 쉽게 납득해서 투란은 놀라기도 했지만, 맥이 풀리는 느낌도 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속의 대화랑 별개로, 투란의 감각은 예리하게 유지되었고 눈에 보이는 하얀 선의 장막을 건드리지 않고 저쪽에 닿을 수 있는 경로를 찾아냈다.
‘더 가까이 가서 보면 알겠지.’
간단한 생각을 하고, 투란은 다시 엎드린 채 기고 구르면서 어둠 속의 하얀 선을 피해 움직였다. 길고 널찍한 방 안에는 울퉁불퉁 깨진 바닥 돌과 살짝 삐죽거리는 벽의 형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구르고 기는 동안에 크게 방해받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투란은 크고 튼튼해 보이는 의자에 앉은 요정의 일족과 서너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갔다. 아주 담담한 자세로 앉은 요정의 일족, 하얀 선은 그 머리의 한쪽에 집중되어 감긴 것처럼 보였다. 머리를 관통까지 하면서 머리 한쪽 뭔가에 집중해 매달린 것처럼도 보였는데…….
―요정의 눈이야. 이 주문을 유지하고 살아 있는 거는…… 눈알뿐이다.
드라고니아가 신음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찰랑이는 하얀 선을 피하듯이 몸을 낮췄고, 오리걸음으로 의자 가까이 좀 더 붙었다. 가슴과 허리, 시커먼 윤곽을 통해 보니 얇고 튼튼한 가죽으로 된 갑옷 계통의 옷을 두른 것처럼 느껴졌다. 의자의 팔걸이를 잡은 손은 앙상하게 말라서 살가죽만 남은 듯이 보였고, 팔뚝이나 어깨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가죽 소매는 가죽 갑옷의 한 부분인 듯했다.
‘이 옷, 아빈가의 요정들이 입는 거 맞아?’
뭔가 나뭇잎을 두르고 작은 날개로 팔딱거리면서 마수에게 먹힐까 덜덜 떤다는 요정 이야기랑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에 투란이 투덜대듯 물었다. 콧물 질질 흘리는 애들에게나 통할 이야기였지만, 투란이 요정이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들은 바는 거의 그게 전부였으니!
―뭔가 요정의 일족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이들은 요정이 아니라 요정의 힘을 혈통으로 이어받은 인간이다. 그리고, 저 옷에 그려진 날개와 구름, 바람의 문장은 분명히 이 아빈가의 숲에 사는 일족이 사용한다.
‘그래, 그런데 몸은 죽었는데 눈알만 달랑거리며 살아 있는 이거, 대체 뭔 상황이야?’
쪼그리고 앉은 채, 하얀 선의 그물질을 피하는 자세로 투란은 다시 묻고 있었다.
이번에는 드라고니아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 자체가 드라고니아에게도 아주 낯설고 이상하다는 낌새만 분명하게 투란에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드라고니아가 보다 깊이 생각하는 기척을 느낀 투란은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슬그머니 바닥에 다섯 손가락을 짚고, 손바닥에서 검은 잉크를 찰랑찰랑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