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4)
―투란, 너 그러다 머리 터진다! 시각을 엮어주는 사람의 신경망은 그렇게 쏟아붓는 시각을 감당하지 못해! 신경에 직접 자극이 가서 망가진단 말이다!
‘겁주지 마.’
살짝 겁먹은 채로 투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두개골 안쪽의 혈관을 터뜨리게 하는 풍경도 있으니까 말이다.
기지개를 켜듯이 팔다리를 뻗고 허리를 좀 더 힘차게 젖히면서 투란은 잔뜩 조이고 웅크렸던 체격을 다시 펼쳤다. 잉크와 ‘악마의 심장’이 온몸에서 뭉클거리면서 세차게 압축시켰던 힘줄, 핏줄, 골격을 풀어놓고 반듯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숨을 들이쉬니 바로 티끌과 오래된 냄새가 뒤늦게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으…… 얼른 나가야겠네.’
새삼 상쾌한 바람을 탐내면서 투란은 두어 걸음 움직였다.
그러나 서너 걸음째는 디뎌지지 않고 투란의 발이 멈췄다.
갸웃하면서 투란은 자신이 조금 전에 뭔가 살짝 잊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돌아보면서 뭘 잊었나 찾아보니, 바로 의자 위의 가죽옷이 새삼 여린 빛의 광택을 튕겨내며 보였다.
“헤…….”
히죽 웃음을 머금은 채로 바로 투란은 의자 위에 허물어져 내린 시체에 입혀 있던 가죽갑옷을 돌돌 말아 챙겼다. 그 와중에 아직 흘러내리던 시체의 잔해, 티끌은 그냥 툭툭 털어냈고 의자도 두드리면서 그 속이 그냥 꽉 찬 나무인 것을 확인했다.
가죽갑옷을 옆구리에 낀 채로 투란의 눈길이 다시 지하실의 은밀한 풍경을 둘러봤다. 여러 가지 시각의 색다른 시야가 엉키면서 투란은 이곳에 원래 있었을 법한 의자나 탁자, 항아리 따위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세월에 의해 티끌이 되어 녹아내린 형상이 대체 어떤 원형을 지녔는가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건질 것 없네.’
툴툴거리는 생각을 하면서 투란은 밖으로 나섰다.
밤은 여전히 구름 낀 채로 흐린 달을 들이댔다 감췄다 하는 중이었고, 사원의 폐허에는 기묘하게 느껴지는 적막(寂寞)이 가득했다.
투란의 눈길은 새삼스럽게 고요한 폐허를 둘러봤고, 여섯 개의 눈으로 살펴보는 밤의 풍경이 굉장히 색다르다는 점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중 두 눈은 시큰하고 연이어 따끔거려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다.
‘와, 이거 잘 덮어놨는데도 저런 달빛에 자꾸 망가지네.’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은 달빛을 느끼면서 계속 굳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채워지는 굳어짐이 아니라 눈알 깊은 곳에서 느닷없이 조그맣고 단단한 알갱이가 생겨나고 번지는 식이었다. 그 때문에 따끔함과 언짢은 시큰거림이 눈알을 계속 움찔거리게 하는 중이었다.
결국 투란은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을 잉크 속에 녹여 지웠고, 레오팬저의 눈을 형성시켰다. 뭔가 다시 여섯 개의 눈을 유지하는 것이 재밌을 듯해서…….
눈가에 부드러운 얼룩이 맺힌 듯한 레오팬저의 가죽이 잔털과 함께 솟아났고, 그 속에서 레오팬저의 눈이 데굴거렸다.
‘음, 이거 멀리 보는 것도 아니고…… 꽤 뿌옇게 보이네.’
처음 느낌은 레오팬저의 눈이 딱히 강화된 사람의 눈보다 나을 바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상한 느낌으로 흐릿하게 풍경을 얼버무리는 듯이 보게 하니, 좀 나쁜 느낌이 더 심했다. 하지만 그 흐릿함이 흔들거리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투란은 알아차렸다.
‘냄새까지 시야 속에 보이는 거야?’
붉은 늑대의 눈을 처음 떴을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후각과 시각이 기묘하게 얽힌 채로 심상 속에 풍경을 비춰 보이는 것…….
레오팬저는 그런 맹수의 시각과 후각의 조화 속에 한 가지를 더하고 있었다. 주변을 비교하고 가늠하는 것이 훨씬 쉽게 해주는 점이었다. 살짝 손가락을 펼친 채로, 손가락 사이로 풍경을 바라보니 간격이 아주 선명한 감각으로 가늠된다!
―시야에 겹쳐지는 콧수염이 있다면, 정말 기막힌 가늠자를 지닌 눈이 될 뻔했군.
드라고니아는 이렇게 평했다.
‘아, 고양이 수염을 뽑으면 고양이가 거리감을 잃는다고 하던데…… 그런 소리야?’
마을의 장난꾸러기들이 고양이를 괴롭히던 일이 불쑥 투란의 뇌리에 떠올랐다. 갑자기 허둥지둥하면서 평소의 민첩함, 치밀한 움직임을 잃은 채로 여기저기 쿵쾅거리거나 마구 긁히는 채로 다니던 고양이…… 그렇게 된 까닭이 수염을 싹 뽑았기 때문이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정말인지 아닌지 투란에게는 여전히 애매한 일이었지만, 지금 드라고니아의 말을 들으니 맞는 말인 듯하다?
―그런 모양이군. 넌 지금 손으로 고양이 수염을 대신했고 말이지.
드라고니아의 대꾸도 기억 속의 일처럼 애매했다.
투란은 잠시 키득거리고 웃었다.
몬스터가 아닌 맹수, 그 가죽과 눈알을 얻었고 지금 활용했다.
아르고누스의 능력으로 마인화라는 이상한 짓을 할 수 있는 요정의 눈도 갖게 되었다. 아르고누스를 삼켰을 때, 그 많은 기괴했던 눈알 한 무더기를 뭔지 알 수 없어서 쓸 수 없는 걸 알고 좌절했던 기분이 치유되는 듯하잖은가!
‘그런데 요정의 눈은 대체 어떻게 쓰는 거지?’
천천히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를 찾아 그 위에 앉으면서, 옆구리에 끼고 있던 가죽 갑옷을 내려놓으며 탈탈 털어내면서 투란이 물었다.
마인화라는 이상한 능력이 과연 어떻게 사용되는지, 거기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다. 몬스터 로드가 사용해도 되는 눈알인지도 궁금했다.
―몰라.
드라고니아의 대꾸는 일단 아주 간결하고 분명했다.
‘엥?’
―그 눈을 가진 자가 어떤 계기로 각성하게 되면, 자신의 고유능력을 강화하거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색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정의 눈에 의해 마인화 상태가 된 요정의 일족이 모두 똑같은 모습을 보인 적은 없어. 그러니까, 누가 요정의 눈을 각성시키는가에 따라 결과물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투란, 네가 사용할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럼, 저 여우는?’
―말했잖나. 아빈가의 여우는 원래 공간 조작의 능력을 지녔던 마수(魔獸)다. 그리고 지금 어떤 이유에서인가 요정의 눈을 갖게 되었다…… 이제껏 너와 함께 본 바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저 여우의 공간 조작 능력은 마수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해야겠지. 그런 데다가…… 지금 한쪽은 블랙 버블에 의해, 한쪽은 새끼에 대한 위협을 받은 어미의 본능에 의해 몬스터의 경계를 넘은 채로 봐야 한다. 이제는 마수가 아니라 몬스터,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하지만…… 그건 여우에게 대항할 때의 자세가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 몬스터 엠블럼이 여우에게 반응할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잡아봐야 할 듯한데…… 몬스터가 된 마수는 잡고 나면, 다시 마수의 영역으로 환원(還元)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기대는 하지 마라.
“쳇.”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고요한 폐허 위로 흐른 이 소리는 의외로 크게 울린 듯했고, 덕분에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아무도 없어서 나름 안심한 김에 투덜대는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에 자기가 놀란 이 상황…….
‘우와, 바보 같아!’
스스로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문득 깊은 산속의 동굴 안에서 헤매게 된 사냥꾼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자기가 들고 있는 횃불에 비친 자기 그림자에 놀란다든가, 자신이 내뱉은 기침의 메아리가 늦게 돌아오는 소리에 놀라 숨게 된다는 이야기…….
―대체 그 가죽갑옷으로 뭘 하려는 거냐?
잠깐 스쳐 가는 생각은 생각인 것이고, 투란의 손길은 바쁘게 가죽갑옷을 쓰다듬으며 털었고, 이리저리 더듬으면서 살피는 중이었다.
‘응? 왜?’
투란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대체 그런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이 드라고니아에게 반문했다.
―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이잖아. 요정의 일족 치고는 큰 체격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시체의 몸집을 생각해봐라. 너한테 그 옷은 맞지 않아. 게다가…… 요정의 갑옷이라 불리지만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어. 왜 그 옷에 집착하는 거냐? 더 좋은 가죽을 이용해서 몸을 감싸는 능력도 있으면서…….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온갖 궁리를 해가면서 결국 ‘패러블랙 잉크’의 새로운 품종까지 확보한 것을 지적하며 묻고 있었다. 덤으로 이 가죽갑옷이 그림모스의 가죽이라든가, 뱀의 왕족의 비늘가죽…… 심지어 뿔수리가 잡아줬던 보르가의 가죽보다도 나을 바가 없다는 점까지 짚고 있었다.
마음 깊이 울려오는 드라고니아의 의문(疑問)에 잠시 투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손길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고…….
‘글쎄? 몸을 그냥 칭칭 말아버린다고 해서, 옷이라고 하기는 곤란하지? 게다가 그렇게 겹쳐놓으면 그냥 껍질이나 몬스터의 가죽 같잖아. 이건 제대로 된 옷이고 말이야. 아, 너무 제대로 가죽을 연마한 옷인가…… 맛없네.’
어느새 손을 찰랑이는 잉크로 물들인 채로 투란이 혀를 날름거렸다.
잉크의 미각(味覺)은 요정의 일족 갑옷에 생기가 없고, 완전히 죽은 것이라서 아무 쓸모도 없다고 퉤퉤거리는 느낌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런 거 먹지 말고, 그냥 뱉어버리자는 듯한 낌새였다.
확실하게 잉크가 선호하는 것은 분명히 살아 있는 가죽이었고, 그 속에서 힘줄이 꿈틀거리거나 독을 뿜어내거나 어지간히 날카로운 것에도 거뜬히 버텨내는 질기고 강한 가죽이란 점이 분명했다.
그래서 투란은 일단 자신을 향해, 잉크의 미각을 달래는 소리를 생각해야 했다.
‘위장용이야, 위장용. 이 정도 위장이면 어디서든 둘러댈 수 있으니까. 키린도 적당히 그럴듯한 몬스터로 위장하는 재주를 익히라고 했어.’
키린까지 들먹인 자신을 향한 설득은 조금 통한 모양이었다.
잉크는 마지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투란의 의지에 따라 가죽갑옷의 삐져나온 끈 한 조각까지 철저하게 스며들며 그 구조와 특성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투란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단단한 열매처럼…… 뒤척여 보니 무슨 굵은 단추처럼 갑옷의 바지 부분에 불쑥 튀어나온 것이 있었다. 가죽도 아니었고, 쇠도 아닌 단단한 나무 조각인 듯했는데, 당겨보니 길쭉한 목제(木製) 손잡이가 칼날을 물고 나온다?
손목을 지나쳐서 팔뚝에 이를 정도인 그 길이와 폭을 생각하며 바지의 안팎을 더듬어봤지만, 이 정도 단검이 박혀 있을 주머니가 없었다.
투란은 잠깐 당기다가 칼날을 완전히 뽑아내지 않고 다시 밀어넣었다. 그와 함께 칼날이 밀려들어가는 언저리의 바지를 움켜쥐면서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느껴보려 했지만, 그런 느낌이 없었다. 바지의 옷감은 그저 구겨지고, 접히면서 단단한 열매 같은 단검 자루의 끝이 장식처럼 매달려 있는 상태만 드러낼 뿐이었다.
‘이거…….’
―드로워(Drawer) 요술이다. 가죽과 단검의 재질이 지닌 공간구조의 편차를 이용해서 겹쳐 넣는 거지. 여우가 가진 능력과 기본적으로 같은 계통의 마법이라 할 수 있겠군.
‘특별한 마법 같은 거 없다며?’
―칼집에 불과한 사소한 요술이거든? 그냥 칼집을 바지에 붙여놓은 정도야. 굳이 그런 요술을 동원할 필요도 없잖은가.
‘바지에 길쭉하고 단단하게 붙어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완전히 다르다고!’
심술 난 생각을 그대로 으르렁거리듯이 뿜어내면서, 투란은 다시 요술 칼집 안으로 단검을 집어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사륵거리면서 경쾌한 울림이 피어나는데, 아무리 해도 칼날이 바지를 쑤시는 느낌이 없는 것이 아주 신기했다.
말로만 듣던 것을 직접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마법 주머니를 갖고 싶어 하던 기분이 슬그머니 이해가 되는 투란이었다. 이런 거라면 정말 어떤 동작에도 방해 없이 몸에 여러 가지 장비를 아주 자연스럽게 부착하고 다닐 수 있잖겠는가!
내친김에 투란은 바지를 좀 더 세밀하게 뒤졌고, 흠결이 파인 듯한 몇 곳의 흔적을 더 찾아냈다. 그 흠결에 단검을 밀어넣으니, 쏘옥 들어가는 것이 역시나 요술 칼집이었다.
‘우와, 칼을 여러 자루 차고 다녔겠는데!’
하지만 거기에 투란이 손가락을 밀어넣으려 하니 들어가지를 않는다?
―대상지정형 요술이로군. 규격에 정해진 검이 아니면 요술이 발동하지 않는 거야. 네 손가락은 검이 아니니까 들어가지 않는 거다.
드라고니아가 간단히 설명해줬다.
‘아니, 왜? 꼭 정해진 규격에 맞춘 검만 담을 주머니라니! 이상하잖아!’
―그편이 훨씬 안정적인 요술이니까. 무작위로 선별한 대상을 아무거나 담는 요술은 격이 다를 정도로 복잡해지고 까다롭다. 요정의 일족 전사들이 입을 갑옷에 그런 공을 들일 필요가 없는 거였겠지.
‘음…….’
사악, 스륵, 사악, 스륵.
바지의 흠결마다 슬슬 단검을 밀어넣어보면서 투란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아쉬운 표정은 약간 망가진 듯한 흠결을 뚫고 단검이 투란의 손바닥을 써억 긁었을 때, 바로 사라졌다.
“으켁?”
―그건 그냥 긁힌 자국이었나 보군.
키득거리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놀리는 소리를 냈다.
“우씨…….”
투란은 삐친 소리를 내는데, 돌연 저쪽에서 투란보다 몇 배는 더 삐치고 짜증 난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캬르르…… 크릉!
갈라진 몸의 틈새에 검은 거품이 채워진 여우가 목젖을 울리고 있었다.
―흠, 아빈가의 여우가 드로워 요술에 민감하게 짜증 낸다는 말이 맞나 보군.
뭔가 태평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