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5)
투란은 황당했다.
‘왜 네가 오냐?’
동시에 투란의 기억 한 자락에서 엄청나게 푸념하던 멍청한 사냥꾼이 떠올랐다.
“그 망할 몬스터! 내가 안 가는데, 왜 네가 와! 덫도 안쳐놨다고! 칼도 활도 내려놓고 끼니 때우고 있는데 왜! 엉엉…….”
사냥 중에 식사를 하다가 습격해온 몬스터에게 쫓겨 달아난 작자였다.
몬스터의 활동영역에서 끼니 때울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 다른 사냥꾼들에게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였다. 몬스터 헌터는 물론, 마수 사냥꾼조차도 사냥 나갔을 때는 먹고 싸는 일에 극단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기본이었다.
짐승처럼 굽거나 데운 끼니를 포기한 채로 날것 그대로 먹는 것까지는 괜찮다 해도, 똥오줌 흘리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사냥의 기본인데 그 작자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꼬르륵거리는 배 속 채우려다가 습격당해 도망친 것이다.
어린 애들이 들어도 자길 잡아먹어 달라고 빈 듯한 꼴이었다.
노련한 사냥꾼들은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작자를 보고 궁금해한 점이 있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가.
그렇게 넋 놓고 끼니 때우겠다고 소란 떨고 있었다면 보통 습격당했을 때 죽어야 정상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그 멍청한 낯짝을 볼 일이 없어야 했다. 한데 그는 살아서 돌아왔었다.
캬앙!
‘아으, 젠장! 내가 그 멍청이 흉내 냈나?’
먹은 것도 없고, 싼 것도 없었다.
‘악마의 심장’이 내장 속에 스며든 이후로는 정말 땀 한 방울 낭비 없이, 먹어치운 것은 깔끔하게 티끌만큼도 투란의 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껍질을 만든다든가, 양분으로 소모시킬 뿐이었다.
그런데 이 블랙 버블의 여우가 찾아온 것은…….
―말 안 듣냐? 그 단검, 바지 속 칼집에 넣다 뺐다 할 때 일어나는 공간의 울림을 저 녀석이 거슬려한다니까!
‘어?’
다시 세게 뇌리를 울려오는 소리에 투란은 눈을 끔벅거렸다.
잠깐 지난 일에 훅 빠져들어서 드라고니아가 꺼낸 뭔 요술이 어쩌고 하는 말이 뭔 뜻인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단검?’
사륵, 사삭.
요술이 걸린 흠결 속으로 투란은 다시 단검을 넣다 뺐다를 반복하며 여우의 몰골을 살폈다.
캬으으― 흥!
여우가 콧김을 세차게 뿜어내며 화난 듯이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 눈꼬리의 가죽이 갈라진 틈새로 검은 거품이 자글거리며 물컹물컹 꿈틀대는 것도 아주 잘 보였다.
어떻게 봐도 그 모습은 ‘화난다! 짜증 난다!’라고 으르렁대는 꼴이었다.
‘까망 거품 때문에 저 녀석만 예민해진 거 아닌가?’
―아니. 아빈가의 여우는 저 소리에 원래 예민하다고 했다. 그래서 저 소리를 내면 반드시 나타나고…… 아, 투란 저쪽에 세 마리 돌아왔다.
‘응?’
투란이 눈가에 형성시킨 눈알이 제각각 움직였다.
시야가 갑작스럽게 주변을 모두 포착하는 듯했고, 드라고니아가 말한 여우 세 마리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거의 눈알을 제각각 굴린 순간에 보였다.
‘저거 왜 멀쩡하지?’
단검을 움직이던 손을 멈추면서, 투란은 어미 여우랑 두 마리 새끼 여우가 멀뚱거리며 역시 짜증 난다는 듯한 분위기로 저편에 서 있는 꼴을 보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새끼 한 마리 괴상하게 쪼개져 갔을 텐데?
―마인화, 여우에게 마인화라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 힘으로 일단 재생했거나 상처를 복구한 모양이군. 저건 더 이상 아빈가의 여우라고 하기 곤란할 지경인데. 몬스터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드라고니아가 뭔가 깊이 씁쓸해하며 한탄하듯이 꺼낸 말이었다.
투란의 시각이 좀 더 예리해졌고, 두 마리 새끼 여우를 뿔수리의 눈이 섬세하게 훑어봤다. 한 마리에게서 바로 전에 났던 상처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어깨에서 등짝으로 이어지는 긴 흉터 같은 것…… 가죽과 털의 색채가 거뭇하게 변해 있는 상태로 얼룩이 진 것처럼 보이는 흉터였다. 머리 앞쪽으로도 길게 이어진 그 흉터가 거의 눈에 닿아 있기도 했다.
‘눈깔도 완전히 돌아갔네?’
투란은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 두 마리의 눈동자가 완전히 달라진 것도 알아차렸다. 이전에는 어딘가 그림디어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소용돌이 모양이었다면, 지금은 눈동자 중심에 은빛 테가 선명하고 동그랗게 자리 잡은 채로 검은 꼬리를 흘리며 눈알로 번져가는 얼룩을 보이고 있었다. 얼룩은 눈알 곳곳에 점점이 솟아났다 가라앉았다 하는 듯이 보였고, 은빛 테에서 맴돌며 흘러나오는 검은 꼬리 같은 얼룩에 닿으면 커지거나 삼켜지며 하얀 눈자위의 흔적을 보였다 감췄다 하고 있었다.
그런 여우의 눈은 어쩐지 더 위험해 보였는데…….
캬아앗!
거친 숨소리를 내며 투란을 향해 달려든 여우는 어미 여우나 새끼 여우가 아니라 블랙 버블의 여우였다. 큰 덩치로 발톱을 세운 채로, 저쪽 세 마리의 마인화와 무관한 듯이 보이는 뒤틀린 나선의 눈동자를 한 머리통이 선뜻 잘 보였다. 이 녀석은 더 이상 짜증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을 덮치고 있었다.
‘젠장, 이제 와서 미안해라고 해도 안 되겠지?’
머리로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도, 투란의 몸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이미 콧등 옆으로 가늘고 길게, 최대한 고양이 수염에 닮게 흘러나간 빳빳하고 삐죽한 ‘악마의 심장’ 줄기는 레오팬저의 눈동자에 그럴듯한 가늠자 역할을 해줬고, 늑대의 팔은 여우의 움직임을 압도하는 동작으로 번개처럼 단검을 내던졌다.
그 사이에 투란의 발과 발목은 두툼한 잿빛바위 그랑츄의 형상과 괴력을 품었고, 가벼운 사람의 몸을 옆으로 세차게 튕겨줬다. 덤으로 투란의 오른팔은 요정의 일족이 남긴 가죽 갑옷을 싹 훑듯이 집었고…….
캬하항!
블랙 버블의 여우가 고통(苦痛)과 광기(狂氣)로 가득 찬 괴성(怪聲)을 질렀다.
그 소리가 한순간 투란의 몸을 짜릿하게 했다.
‘마비의 포효…….’
사냥꾼에게 들었던 맹수의 기량 한 가지가 바로 투란의 뇌리를 스쳐 갔다.
마수에 가까운, 혹은 마수인 녀석들은 사냥감을 향해 맹렬하게 울부짖는 것만으로도 그 움직임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했다. 어지간한 보통 맹수도 간혹 지닌 능력이라고는 하는데, 마수에 가까운 놈일수록 그 포효의 힘은 엄청나다고 했다.
블랙 버블의 여우가 그저 눈알 옆에, 두 눈알 사이의 틈새에서 한쪽 눈알의 눈물샘 근처에 박힌 단검 때문에 내지른 고통스러운 절규가 그런 위력을 보인 셈이었다. 지금 투란에게는 어지간한 녀석의 포효 따위는 먹힐 리가 없는데…….
하지만 여우의 포효는 금방 잉크와 ‘악마의 심장’이 연이어 보이는 맥동에 의해 그 효과를 잃었다. 투란은 몸을 박찬 기세 그대로 굴러가며 블랙 버블에게서 거리를 뒀고…….
파드득, 촤아아아― 쏴아아!
기괴한 소리와 함께 단검이 변해가는 광경을 봤다.
‘뭐야, 저건?’
여우의 왼쪽 눈물샘에 박힌 단검은 어느새 칼날을 길게 늘였고, 칼끝이 여우의 머리를 관통하며 삐죽한 귀 사이에 삐져나오게 했다. 그리고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는 듯했던 칼자루는 가지를 치고, 나뭇잎을 펼치며 진짜 나무가 수십 년의 세월을 한 몇 초 안에 압축시킨 것처럼 성장해가는 광경을 보여줬다!
―정화(淨化)의 소검(小劍)이었나!
‘그게 뭐야!’
―요정의 일족이 아빈가의 숲을 침입하는 마물,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성스러운 무구(武具). 그중에서 마물이나 몬스터에게 박히면 성령목(聖靈木)을 성장시켜서 마물을 제압하고 정화하는 작은 검이 있었지! 하지만 작은 검이라고 해서, 정말 단검 모양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바지 하나 안에 몇 자루씩 꽂아 다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어!
‘한 자루뿐이었잖아.’
―칼집이 되는 흠결이 여러 개잖아! 칼 한 자루를 여기저기 돌려 꽂느라고 요술 칼집을 그렇게 만들겠냐! 앗, 그 바지 놓치지 마!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
‘엥? 왜?’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투란은 재빨리 오른팔을 휘둘렀고 가죽갑옷을 웃옷이니 바지니 따지지 않고 팔뚝에 감아버렸다.
―트롤의 팔을 가능한 한 강하게 형상화해 놔! 트롤의 심장도!
‘응?’
더욱 이상한 요구였지만, 투란은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일단 오른쪽 가슴 속에 강력한 두 번째 심장을 형성시켰다.
투란이 있던 자리에서 섬뜩한 파괴음이 울려 나왔다.
돌바닥이 으스러졌고, 파편이 된 자갈이 쏘아진 볼트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뒤늦게 허공에 남는 검은 자취…….
머리통이 칼에 꿰인 채, 눈가에서 갑자기 나무가 자라나는 꼴을 해서 미쳐버린 듯한 블랙 버블의 여우가 날뛰고 있었다. 그 주변이 으스러지고 깨져나가는 광경이었고 높이 치켜올린 꼬리는 그 끝이 세 가닥으로 갈라진 채로 살랑거리며 검은 자취를 흩뿌리는 듯이 보였다.
저 검은 자취에 걸리면 아무래도 몸이 단단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부서질 듯한 낌새가 역력했다. 여우가 만들어내는 검은 자취는 어떻게든 몸을 이루는 피와 살, 뼈의 빈틈으로 스며올 듯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여기에 반응하듯, 샤머닉 트롤의 심장과 팔이 강렬하게 맥동하며 투란의 몸에 힘을 불어넣었고 요정의 일족이 남긴 가죽갑옷 또한 이에 반응했다.
‘이거 죽은 가죽이었는데?’
돌연 꿈틀거리며 슬그머니 샤머닉 트롤의 팔을 단단히 감싸 조이려는 듯한 갑옷의 압박에 투란이 굴러가는 와중에도 놀란 물음을 터뜨려야 했다.
―요술이야. 자가수복(自家修復), 요술 걸린 도구가 훼손된 부분을 스스로 복구시키는 기능이지. 발동조건은 성령목의 발아(發芽). 마물을 정화하는 동안, 마물로부터 흡수한 마력을 이용하는 요술이다.
‘트롤의 팔은 왜?’
―그냥 트롤이 아니고 샤머닉 트롤이지. 비록 몬스터가 되었다고 해도, 샤머닉 트롤의 몸을 구성하는 형질은 자연과 정령에 대해 강한 친화성(親和性)을 간직한 채다. 가죽갑옷이 복구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나무에라도 걸쳐놔야 해. 너의 트롤 팔뚝이라면 복구능력이 몇 배, 아니 몇 십 배로 강화될 수도 있지.
‘그래? 그런데 이걸 복구해서 뭘 어쩌려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며 돌의 파편을 피하는 와중에도 투란은 착실하게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 또한 투란이 적절한 움직임을 보이며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따르는 것에 호응하듯 대답을 한다.
―사원에 남은 요정의 일족, 그 시체는 달랑 한 구뿐이었다. 즉, 그 갑옷의 원주인은 사원의 수호자, 최후의 방패라고 불리는 요정의 전사였을 가능성이 크지. 그 최후의 방패라는 전사의 유품인 정화의 소검이라면…… 증식할 거야.
‘뭐?’
그게 무슨 뜻인가, 투란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팔뚝에 감은 가죽 갑옷, 바지의 흠결이 꿈틀거리며 숨을 토하듯이 틈새를 부풀리고 열며 단단한 꼭지를 내밀잖나! 그 꼭지의 생김새는 처음 단추인가 열매인가 애매했던 저 단검의 칼자루 꼭지 그대로였다.
이를 보기가 무섭게 투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재빠르게 왼손을 움직였다. 늑대의 팔이 지닌 민첩성, 가늠자를 지닌 레오팬저의 눈, 거기에 주변 정황을 시야 전체에 담아주는 뿔수리의 눈이 합쳐지며 흠결에서 새로 뽑아낸 것이 날아갔다.
작은 열매, 단추 같은 것은 어느새 투란이 처음 뽑아 들었던 단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대로 블랙 버블의 여우 목덜미, 갈라진 목덜미 사이에서 검은 거품이 보글거리는 한복판에 꽂혔다.
캬하하―항!
보다 끔찍한 고통이 넘실대는 절규가 깨져나가는 검은 거품에 몸부림치는 여우에게서 터져 나왔다.
투란은 쿵쾅거리는 발울림을 남기는 채로 더욱 빨리 달리며 팔뚝에 감긴 갑옷을 더듬고 바지의 흠결이 더 잘 드러나게 했다. 거기서 새로 돋아난 단단한 칼자루 꼭지를 찾아냈고, 바로 뽑아 던졌다.
어느새 검은 거품에 휩싸인 여우의 몸 곳곳에 나뭇가지가 칼날을 뿌리 삼아 쑥쑥 자라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거 엄청 신기한데? 저 나무가 몬스터를 잡아먹고, 이 바지 속에 단검을 만들다니! 요정의 일족은 진짜 신기한 마법을 지녔잖아!’
―아빈가의 요정 일족이 좀 특이하기는 했지. 하지만…… 전멸했다. 방심하지 마라, 투란.
씁쓸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침착한 경고를 했다.
‘어, 그래. 제 발로 찾아왔으니, 잡아줘야지.’
투란은 쾅쾅거리는 발걸음을 남기다가 살짝 딛고 뛰는 식으로 소리를 교란시키며 여우의 시야에서 회피하며 다시 돋아난 단검자루를 잡아 던졌다. 거의 일곱 자루가량이 박혔고, 여덟 번째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는데…….
여우가 사라졌다.
시커먼 거품이 그 자리에 남겨졌고, 거품에 꽂힌 나무가 사륵거리는 요란한 잎사귀 스치는 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저편에서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가 절규하듯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