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6)
Chapter 34. 초원으로
투란은 소리 나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새로 내던진 단검은 검은 거품에 꽂혔다.
한데 그 검은 거품을 품고 있어야 할 여우가 없었다.
이미 꽂혀 있던 단검들도 공중에서 뒤틀린 듯이 꼬여 있는 시커먼 거품에 박힌 채로 영기를 뿜어내는 나뭇가지를 쭉쭉 뻗어내는 채였다.
―블랙 버블까지 배제하고 이동했다!
드라고니아가 급한 소리를 투란의 뇌리로 쏟아부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투란의 눈길이 겨우 저편에서 여전히 카랑카랑하게 내질러지는 여우의 울음을 향해 돌아갔다.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 세 마리 너머로 크고 사나워 보이는 채로 가죽이 갈라진 틈새로 붉은 속살을 드러낸 여우 한 마리가 보였다.
‘저게 뭔…….’
투란은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느닷없는 파문이 투란을 덮친 탓이었다.
투란에게서 몬스터의 형상을 강제로 벗겨내는 파문이었다.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듯했고, 그랑츄의 발, 늑대와 트롤의 팔이 모두 사람의 것으로 변해야 했다. 투란의 눈 또한 잉크와 광택이 흐르는 가죽을 억지로 벗겨진 것처럼 온전한 사람의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갑작스러운 파문의 원천을 향해 저절로 투란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성스러운……?’
키린에게서 경험한 바 있던 성스럽게 느껴지는 힘의 파동, 그 파문이 투란의 살갗과 뼛속으로 스며오고 있었다. 때문에 몬스터 엠블럼은 당연하다는 듯이 몬스터의 형상을 벗어던졌고!
하지만 이는 키린의 불꽃과는 달랐다.
부드럽게 흐르는 바람, 잔잔하면서도 빠른 물결…….
어디서 새 나오는지 모를 편안한 기분은 투란에게 더 이상 여우 따위를 잡을 필요가 없다고 다독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투란은 지금 자신이 이 기분에 빠져서 해롱대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이런 식으로 무력화시키는 것, 바로 몬스터 로드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 아닌가!
그리고 이럴 경우에 대해서 키린은 투란에게 각인시켜줬다.
콱, 쩌억!
투란의 맨발이 거칠게 돌바닥을 디뎠고, 순간 밟힌 돌이 금이 가며 깨지는 소리를 냈다. 투란의 몸에서는 흐리고 여린 일렁임이 찰랑거렸고, 어느 순간부터 이글거리는 듯한 아지랑이로 휘감기는 듯이 보였다.
‘뭐냐, 저건!’
불꽃의 오러를 준비하면서 투란은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파문의 근원을 바라봤다.
검은 거품을 으깨고 빨아들이는 칼날, 그 칼자루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연녹색의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먼저 선명하게 보였다. 뿔수리의 눈이라든가 레오팬저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었지만 투란의 눈가에는 이미 오러의 휘광(輝光)이 흐릿하게 엮이며 여린 불꽃처럼 일렁이는 중이었다. 그런 눈에 선명하게 비추는 나뭇가지의 연녹색 빛은 투명하면서도 맑은 느낌만을 또렷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성령목이니 뭐니 했던 드라고니아의 말이 한층 더 또렷하게 투란의 마음속에서 되새겨졌다.
여우의 커다란 몸, 4미터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였던 그 크고 긴 몸에서 추출된 채로 남겨진 검은 거품은 칼날에 찍힌 채로 바닥에 떨어져 보글거리고 있었다. 그 거품에 꽂힌 칼날의 주변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가는 듯이 보이는데…… 도망치려 해도 도망치지 못하는 채로 휘말려들어가는 상황으로 보였다.
요정의 일족이 남긴 단검의 칼날은 그렇게 블랙 버블을 흡수하며 성스러운 나무를 거침없이 키웠고 그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기(靈氣), 바람과 물결의 찰랑임을 뿜어내는 힘으로 몬스터 로드의 힘을 강제로 억누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는 폐허의 사원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부서져 있던 돌조각 사이에서 은은한 울림이 번져 나오며 폐허를 뒤덮어가는데…….
카아앙!
여우들의 기묘한 울음소리가,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채로 울려 퍼졌다.
너무 달라진 울음소리에 투란은 움찔했고, 고개를 돌려 봤다.
여우들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 세 마리는 마인화 상태에서 벗어난 듯이 조금 체격이 줄어든 꼴로 보였고, 속살이 엿보이는 가죽을 두른 여우도 블랙 버블을 품었을 때처럼 사납게 보이지 않았다.
투란에게는 조금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만약 지금 앞에 블랙 버블이 칼날이 꽂힌 채로 나무에 짓이겨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편에 있는 속살 비치는 여우 녀석이 어딘가에서 칼에 맞고 와서 세 마리 여우에게 낑낑거리는 것이 아닌가 여겨질 광경이라니…….
‘블랙 버블이 공간 조작인가 하는 걸로 빼낼 수 있는 거야?’
투란은 문장 속으로 보다 강하게 오러를 일으키며 물어갔다.
엉겁결에 성스러운 파문에 휩쓸려 있던 문장이 오러의 힘에 물들며 드라고니아의 선명한 소리가 바로 대답을 해온다.
―그랬다면 블랙 버블에 사로잡혔을 때 바로 제거해버렸겠지. 정화의 소검이 박히면서 블랙 버블과 여우 사이에 괴리(乖離), 틈이 생긴 거야. 그 때문에 자기가 아닌 것을 떼어놓고 공간 도약을 하는 순간에 저렇게 된 걸 테고. 하지만…… 투란, 블랙 버블은 성스러운 힘에 의해서도 포착되지 않는 씨앗을 남기는 몬스터다!
‘뭐?’
순간적으로 투란의 시력이 오러에 의해 강화되었다.
속살이 비쳐 보이는 여우가 투란의 시야를 가득 메우듯이 크게 보였다.
붉은 핏방울이 맺힌 속살이 보이는 가슴, 등, 허리 언저리에는 검은 거품이 보이지 않았다.
‘눈! 저놈 눈물 속!’
여우의 콧등 쪽 눈구멍, 작게 찰랑이는 듯한 샘처럼 고인 눈알의 물기 속에서 투란은 검은 알처럼 웅크린 거품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작고, 얼핏 티끌처럼 그 속에서 맴도는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
투란은 바로 바닥을 박찼고, 여우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조금 당혹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 기분이 뭔가 투란은 금세 깨달았다.
속살 보이고 있는 저 여우에게서 다시 블랙 버블이 불거져 나온다면, 가장 먼저 저 여우가 지금의 기묘한 평정상태를 잃고 날뛸 것이다. 그 자리는 바로 위험해질 테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거리를 두고, 성스러운 힘을 뿜어내는 나무 곁에서 바닥에 떨어진 단검 한 자루 정도를 줍거나 팔뚝에 휘감은 가죽 바지의 흠결에 다시 돋아날 듯한 단검을 뽑아 던질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지금처럼 굳이 저놈 곁으로 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투란은 지금 왜 나아가는가?
드라고니아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였다.
투란도 내달리면서 이런 자신에 대해 확실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저 분명한 것이 있다면, 당장 소리부터 질러야 한다는 본능!
으우아아아앗! 아아아아!
언젠가 멀리서 들어본 적이 있는 몰이꾼의 소리를 최대한 흉내 낸, 그러나 그 몰이꾼들은 상상하지 못한 오러의 힘을 간직한 외침이 투란의 입에서 터져 나갔다.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가 팔짝 뛰면서 한쪽으로 튀어나가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속살이 드러난 여우가 투란을 향해 사납게 울부짖는다.
캬르르, 캬하항!
그 순간 여우의 눈물샘에서 검은 거품이 피어나며 여우의 눈알을 덮어가는 꼴을 투란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저절로 투란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듯 낮아졌고, 앞에 놓인 돌 하나를 낚아채는 동작으로 집어 던졌다.
오러가 힘줄 속으로 맥동하며 번졌고, 돌은 바싹 당겨진 투석기에서 쏘아진 것처럼 날아갔다.
카앙!
돌과 돌이 쇳소리를 내며 부딪혔고, 여우가 위로 뛰어올랐다.
불꽃이 튀는 아래편을 보며 한쪽 눈이 검은 거품에 덮인 여우의 사나운 울음이 흘렀다. 허공에는 검은 색채가 번져 갔고, 그 검은 색채가 향하는 곳에는 어미와 새끼 여우들이 있었다.
캬앗!
어미 여우가 노골적인 분노를 담은 소리를 토해냈고, 그 코앞으로 새롭게 투명한 일렁임이 피어나며 허공에서 번져오는 검은 색채에 마주쳤다. 짙고 거센 바람이 갑작스럽게 투명함과 검은 가닥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향해 번져갔다.
투란은 앞으로 구르면서 팔뚝에 감아놓은 가죽 갑옷을 더듬었다.
단검 자루가 될 열매가 없었다.
그 손짓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정해진 수량이 있는 모양이다. 저기 던진 단검 수만큼만 증식할 수 있나 보군.
‘쳇.’
한 바퀴 더 앞으로 구르며 투란은 돌을 집었다.
아까보다 더 큰 돌이었고, 겨냥도 좀 더 착실하게 해서 내던졌다.
그러나 여우는 공중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돌이 지나치는 광경만 남았다.
투란의 몸에서 보다 선명한 오러가 이글거리는 형상으로 피어올랐고…… 폭음이 저쪽 한편에서 세게 울려 나왔다. 소리보다 먼저 전해온 파문을 느끼면서 투란은 일단 오러 가드로 귀와 눈부터 착실하게 덮었다.
몬스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지금, 투란은 키린이 전해준 오러의 기술을 열심히 써먹어야 했던 것인데…….
파아앙!
‘이크…… 큿!’
뒤늦게 소리를 느끼고 보니, 여우끼리 또다시 공간 조작의 능력으로 격돌한 모양이었다. 뭔가 뼛속까지 전해오는 충격이 이전보다 더 독한 느낌이었다. 오러 가드를 통해 걸러냈어도 몸이 으슬으슬한 듯한 떨림이 심했다.
다시 투란은 텅 빈 앞쪽으로 굴렀고, 몸을 앉힌 채로 재빠르게 눈길을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의 돌무더기, 잔해들이 바르르 떠는 듯한 흔들림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저 충격파에 투란만 당하는 것이 아니란 듯…….
하지만 여우들은 한 이십여 미터 저편에 있었다.
‘아오, 저놈들 싸움에 내가 끼어서 이게 뭐야!’
투덜거리는 생각이 저절로 투란의 마음속에 번져갔다.
―대체 왜 뛰어든 건데?
드라고니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삐죽거리는 입술로 투란은 소리 없이 대꾸한다.
‘마인화 상태라는 거, 결국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잖아. 아까 보니 저 성스러운 나무인가 뭔가 때문에도 마인화가 없어지나 보던데…… 블랙 버블은 저 나무 아래 깔려서도 망가지는 채로 멀쩡했다고. 마인화 상태가 아니라면 저 여우들은…… 잡아먹힐 테니까.’
―저 세 마리 편을 들고 싶었다고?
‘뭐, 쟤들은 일단 몬스터가 아니잖아.’
투란은 간단하게 대답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기분을 정리할 수가 있었다.
몬스터를 삼키고 몬스터와 싸우는 몬스터 로드이니까, 몬스터가 아닌 마수의 편을 든다.
뭔가 시원한 판단 아닌가?
―새끼를 감싸는 어미 편을 드는 거는 아니고?
돌연 드라고니아가 이상한 물음을 던져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투란이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캬륵, 캬아앙!
섬뜩한 괴성과 함께 깨갱대는 개소리 같은 울음이 뒤를 이었다.
새끼 한 마리가 튀어올랐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광경이 보였다.
앞다리 하나가 어찌 된 일인지 완전히 없어진 채로 피를 흘리는 채로 새끼 여우 한 마리는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뭔지 지금 투란이 포착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진 격돌에서 어미와 새끼 한 마리는 어떻게 버틴 모양인데, 저 튀어 오른 새끼 여우는 밀린 모양으로 보였다. 그리고 블랙 버블이 어느새 두 눈을 덮은 채로 속살에 핏방울이 뚝뚝 맺힌 여우는 자신이 우세해진 상황을 즐기듯이 갸릉대는 울림 소리를 괴성에 이어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멀쩡했던 새끼 여우가 허리를 뒤틀었다. 스스로 몸을 돌린 것과는 전혀 다르게, 뭔가에 의해 갑작스럽게 몸통을 붙들려 뒤틀리는 광경이었다.
콰드득!
새끼 여우의 척추가 으스스한 음향을 토해냈고, 짧은 비명과 함께 새끼 여우가 앞으로 엎어지는 꼴이 보였다.
‘젠장.’
투란은 달리기 시작했고, 오른팔에 오러의 흐름을 집중했다.
요정의 갑옷으로 오러의 흐름이 이어졌고, 확장된 감각은 즉시 투란에게 요정의 갑옷 속에 파편처럼 흩어진 성스러운 힘의 조각을 알려왔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와 요정의 갑옷에 잠겨있는 듯한 작고 성스러운 힘의 조각이었다.
투란의 본능이 즉각 오러를 세차게 조였고, 오러의 흐름 속에 힘의 조각이 휩쓸리듯이 당겨졌다. 투란은 오른손을 꽉 쥐었고, 세차게 뛰어나가며 블랙 버블이 덮인 여우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주먹은 허공을 갈랐고, 여우가 있던 자리의 바닥에 내리꽂히고 말았다.
‘역시 너무 멀었나.’
이십여 미터를 오러의 힘으로 가속하며 뛰어왔지만 여우에게는 피할 시간이 넉넉한 탓에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그 사이에 새끼 여우 두 마리는 몽땅 널브러졌고…… 어미 여우의 격노로 가득한 도약은 투란의 머리 위를 스쳐 갔다.
‘어?’
마인화 상태는 아니었지만, 어미 여우가 드러낸 박력과 투지는 그 이상이라고 투란에게 느껴졌다. 투란의 빗나간 주먹질, 거기서 느긋하게 피한 블랙 버블의 여우를 향해 어미 여우는 뛰어서 돌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