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7)
투란은 여우의 뒤를 따랐다.
땅을 박차고, 오른팔에 힘을 주며 오러를 더 강하게 피워올리는 채로 새끼 여우를 잃은 채로 마인화 상태가 돼 버려 돌격해 가는 어미 여우의 찰랑이는 꼬리 그림자 아래 숨은 듯이 따랐다.
어미 여우는 꼬리를 크게 치켜올렸고, 세 가닥으로 갈라진 꼬리가 창날처럼 곤두서게 했다. 그 꼬리 끝이 블랙 버블의 여우를 향해 겨냥되는 순간, 투명하게 그어지는 색채가 꼬리에서 흘러나왔다.
블랙 버블의 여우는 앞발을 팔처럼 굽혔다 튕기며 옆으로 움직였고, 땅바닥에는 세 줄기의 작은 고랑이 파여나갔다. 블랙 버블의 여우 눈가에서 검은 거품이 보글거렸고, 갈라지고 뒤틀린 나선의 눈동자가 노출되며 어미 여우를 향해 사나운 눈빛을 번뜩였다.
투란은 어미 여우가 왼편으로 내닫는 광경을 보며 오른편으로 굴러갔다.
어미 여우와 투란이 비워버린 틈새로 검은 색채가 번졌고, 땅을 파고 허공을 찢어내는 음향이 입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양상으로 울려 퍼졌다.
어미 여우가 입을 열며 투명한 색채를 테두리처럼 두른 검은 구멍이 허공에 열렸을 때, 투란은 잔뜩 끌어모은 오러와 요정의 갑옷을 두른 오른팔을 힘차게 내지르는 중이었다.
블랙 버블의 여우는 투란의 주먹질에서는 별 위협을 느끼지 못한 듯이 뒷다리를 긁고 꼬리를 살랑이며 어미 여우 쪽으로 살짝 움직이는 동작으로 넘기려 했지만, 어미 여우의 입가에서 시작되어 그어져 나오는 검은 구멍의 일그러짐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맞서는 시커먼 색채를 그어대고 있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투란은 오른팔에 집중시켰던 오러를 거침없이 뿜어냈다. 키린에게서 배우고, 저 높고 뾰족한 산에서 추락하며 몸에 단단히 새겨뒀던 새의 날개가 오러를 통해 구현되며 불길을 뿜어냈다.
요정의 갑옷은 붉게 달아올랐고, 비어있는 흠결―단검의 칼집에서 영롱하고 맑은 광채를 뿜어냈다. 원래 있어야 할 단검을 대신하듯, 오러가 그 광채 속으로 어우러졌고 새의 깃털 모양을 한 불꽃이 뿜어졌다. 불꽃은 곧 날카로운 칼날처럼 깃을 꼿꼿하게 세우는 듯이 변했고, 그대로 길게 늘어지는 나선의 궤적을 그려내며 블랙 버블의 여우를 관통해갔다.
캬아항!
무시했던 투란의 주먹질에서 느닷없이 뿜어져 나온 불꽃의 깃털, 어느새 깃털 모양의 검처럼 보이는 형상에 대략 예닐곱 곳을 꿰뚫린 블랙 버블의 여우가 비명을 질렀고, 당황한 눈길로 투란을 바라봤다.
어째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불꽃의 검이 자신을 꿰는가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여우의 눈길이었으나, 곧 격렬한 광채와 함께 투란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눈길이기도 했다.
시커먼 색채가 자신을 향해 그어지는 광경을 본 투란은 내지른 오른팔을 휘저으면서 멀리 굴렀다. 어미 여우와 멀어지고, 블랙 버블을 사이에 두는 방향으로! 흘러나간 오러의 궤적은 불타는 끈처럼 이어진 채로!
그 사이에 투명하게 일렁이는 테두리에 쌓인 검은 구멍, 그 일그러져 흘러온 자취가 블랙 버블의 여우에 닿았다. 느리지만 명확하게 블랙 버블의 여우에 닿은 자취는 네 발을 휘감았고, 팔딱거리는 꼬리까지 물었다.
뒤틀림, 일그러짐, 뼈가 꼬이고 파괴되는 음향 속에서 다시 블랙 버블의 여우가 지르는 절규가 퍼졌다. 사람이 표현할 영역에서 벗어난 그 절규의 음향은 투란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고, 저편에서 영기를 뿜어내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까지 자극한 모양이었다.
사원의 폐허, 돌무더기를 진동시키며 성령목이 뿌려대는 영기의 파문이 넓고 그윽하며 퍼지며 투란과 여우들을 스쳐 지나갔다.
화륵!
요정의 갑옷이 투란의 오른팔에서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이 불타올랐고, 오그라들며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번져온 성스러운 힘은 곧장 투란이 힘차게 뿜어내는 오러에 합류했고, 불꽃의 깃털은 이를 거침없이 집어삼키며 블랙 버블을 조이고 눌러 터뜨렸다.
‘오러 어설트…… 통한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증거, 키린이 심술궂은 시늉을 하며 투란의 몸에 단단히 새겨놓은 오러의 기예가 어떤 식으로 발휘되는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증명인 듯한 광경을 보며 투란은 더욱 자신 있게 팔꿈치를 당기고 주먹을 쥐었다.
오른팔에 위에서 일렁이는 불꽃이, 성스러운 힘의 파문이 오러의 영향력에 휩쓸리며 허공에 남겨진 궤적을 따르듯이 더욱 강력하게 집중되며 여우를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내가 남기는 불꽃의 오러는 성스러운 힘이 맴도는 곳이라면, 그 힘마저 끌어다 쓰게 해 줄 거야. 뭐, 내가 배운 방식이 그 모양이라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몬스터 엠블럼이 몬스터를 형성할 수 없는 곳이라면 더욱 강력해진 오러를 통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거니까, 기뻐할 일인 거야! 좋지, 투란?”
남긴 말은 놀리는 듯한 낌새가 가득했지만, 지금 맞닥뜨린 상황에서 투란은 그 말이 한마디도 헛소리가 아닌 것이 고마웠다.
과연 괴물 왕자님은 투란이 샤오콴 마을에서 봤던 스쳐 가는 몬스터 헌터라든가 몬스터 로드와는 완연히 다르잖은가!
검은 거품이 꽂혀 있는 불꽃과 만나며 터져 나갔고, 여우의 몸은 연기처럼 깨져나가는 광경을 보였다. 거기에 어미 여우가 세차게 울부짖으며 번뜩이는 눈빛은 블랙 버블의 여우를 감아버린 검은 색채를 조이며 그 뼈와 살을 파괴했다.
투란은 몸을 굴리며 다가가 블랙 버블의 여우 꼬리와 뒷다리 언저리를 향해 세차게 확산된 오러를 집결시켰다. 흩어져 있던 불꽃의 날개가 펄럭이듯 치켜 올랐다가 블랙 버블 여우의 후반신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 어미 여우는 위로 도약해서, 잠깐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두 앞발을 모아 블랙 버블의 여우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콰직, 퍼억!
투란의 오러에 붙들리고, 어미 여우가 휘두르는 검은 일그러짐에 붙들린 블랙 버블 여우의 머리는 박살날 수밖에 없었다. 그 흩어지는 피와 살을 따라 검은 거품이 보글거리며 튀어 오르는 듯했지만, 그 뒤를 쫓듯이 투란이 뿜어내는 오러의 불꽃이 번지면서 거품은 터지고 말라버리듯이 사라져야 했다.
푸으흣!
투란은 거친 숨을 토해냈고, 맥동하는 오러의 힘에 휩쓸리듯이 주변으로 번져가는 성스러운 힘을 느꼈다. 몬스터 엠블럼은 더욱 욱조이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럴수록 투란의 오러는 강화되는 느낌이 선명했다.
‘수습해야 하는데.’
키린이 남긴 여러 가지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자신의 몸을 그릇으로 삼아 방출되었던 오러를 천천히 감아 담아갔다. 이를 그대로 허공에 뿌리게 되는 것은 곧 생명의 낭비로 이어진다고, 착실하게 오러의 잔향을 끌어모으라 한 것도 키린의 오러 활용법이었다.
그와 함께 흐르는 불꽃으로 블랙 버블의 남은 잔해도 깔끔하게 치웠고…….
크륵, 캬르릉.
어미 여우가 투란을 보며 살짝 묘한 울음을 흘렸다.
“어?”
순간 투란은 뭔가 대답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어미 여우가 투란에게 왜 자신을 도왔냐고 묻는 듯했으니까.
어째서 자신의 새끼를 해친 녀석을 때려잡는 일을 도왔냐고 궁금해하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과연 이런 느낌이 진짜일까?
의문을 품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거리는 묘한 감각이 투란에게 ‘진짜’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투란은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욱조여지는 느낌으로, 선명하게 가슴에 모양을 드러낸 ‘천칭의 문장.’
몬스터 엠블럼 깊은 곳에서 작게 갸릉거리는 드레이크가 있잖은가.
저 깊은 곳, 심연이라 불릴 바닥 아래로 사라진 드레이크가 애써 키웠으나 실패했고 투란이 지금 대신 키우려 하는 새끼 드레이크…….
아련하게 피어나는 마음속의 풍경을 느끼면서 투란은 곧 이를 어미 여우에게 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새끼를 잃은 어미 여우에게 투란 자신의 상황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말로 하기도 곤란했지만, 말로 전한다고 알아듣기나 하겠나?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그저 물끄러미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담는 것처럼 어미 여우를 마주 바라봐줄 수밖에 없었다. 적의(敵意)가 없이, 그저 서로 힘을 합쳐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을 때려잡은 것뿐이라고…….
빠득.
“응?”
투란의 눈길에 어미 여우가 이를 악다무는 꼴을 보였다.
투란에게는 이건 뭔가 아닌 듯한 느낌이 불쑥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어미 여우, 블랙 버블을 품은 녀석보다 작다고는 해도 여전히 크고 우람한 덩치를 지녔다. 새끼를 잃었다고 그 덩치가 오그라들 일도 없으니, 그 크고 우람한 입 속에서 어지간한 단도 크기로 돋아 있는 이빨이 악다무는 동작 속에 마주치며 갈려지는 소리는 사람에게 분명히 위협적이다!
그러나 투란이 이런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기 전에 어미 여우는 뒤로 물러섰고, 껑충 뛰는 듯하더니 저편에 나타났다. 뒷걸음질을 쳤다거나 뛰어서 내려앉는 것과는 다른…… 아빈가의 여우라서 할 수 있는 기괴한 도약이었다.
슬그머니 안도하는 한숨을 머금으며 투란은 불꽃처럼 일렁이면서, 키린이 내던 그 성스러운 불꽃의 형상과 아주 닮아 있는 자신의 오러를 갈무리하는 일에 집중했다. 몸 밖으로 발출(拔出)시킨 오러를 다시 끌어당겨 수습(收拾)하는 것 또한 오러 윌더의 기량에 따라 수준이 달라진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오러 윌더는 오러의 힘을 계속 소모하며 사용해. 그러니까 화살을 열 개 쐈다면 열 개의 화살을 다시 되찾는 거랑은 달라. 열만큼 발출시킨 오러를 열만큼 되찾는다면 그건 오러 윌더 중에서도 엄청난 능력자란 거고…… 대부분은 한 다섯 정도를 되찾으면 정말 굉장한 수준이라고 하지. 이 부분에서 몬스터 로드가 오러 윌더보다 유리한 면이 있어. 몬스터 엠블럼은 어지간한 오러 사인보다 훨씬 효율이 좋거든!”
‘열에 다섯은 거의 기본적으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
투란은 몬스터 로드가 오러를 휘두를 때, 거기에는 오러 사인이 갖추고 있는 오러 어설트, 오러 가드의 기교가 없는 대신에 가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릇답게 아주 높은 효율이 있다는 말을 되새겼다.
키린이라면 발출시킨 오러의 힘을 반 이상 다시 거둘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자신의 미숙함을 느낄 수 있는 투란이었다.
‘열에 둘, 셋?’
소모된 오러가 허공에서 불꽃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아직 몸을 움직이기에는 넉넉하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된 것을 깨달으며 투란은 기분이 조금 씁쓸해졌다. 과감하게 오러를 사용하는 순간에는 키린과 아주 가까워진 듯했지만, 막상 이렇게 수습해가는 순간이 되니 아주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투란이 도달해야 할 곳은 멀고 먼 듯한…….
“응?”
잠깐 눈을 깜박이면서 투란은 자기 앞에 다시 쑥 솟아나듯이 나타난 어미 여우를 바라봐야 했다. 어미 여우의 어깨 양쪽으로 투명한 일렁임이 나타났고, 새끼 여우 두 마리가 그 일렁거림 속에 겹쳐지며 툭 튀어나왔다.
갑자기 저편에서 이편으로, 거의 죽은 것으로 보이는 새끼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난 어미 여우의 눈빛은 똑바로 투란에게 고정된 채였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투란으로서는 뭔가 짐작되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저 눈싸움을 걸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어미 여우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 볼 뿐이었는데…….
시커멓게 물든 눈알, 그 위로 기묘한 은색의 테를 지닌 채 반짝이는 깊은 구멍 같은 눈동자 위로 뭔가 어른거리며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뭐?’
투란은 의아함과 함께, 점차 뇌리로 스며오는 광경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희미한 기억처럼, 하얀 그림자와 까만 배경, 그 위에 맴도는 회색(灰色)의 잔영(殘影)이 움직임을 표현하는 듯한 이상한 풍경…….
이게 도대체 뭔가 의아해하면서도 투란은 점차 선명하게 보이는 시커먼 배경 속에 담긴 하얀 그림자가 회색의 잔영을 남기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런 투란의 뇌리로 드라고니아의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심상전이(心像轉移)…… 마인(魔人)의 기술이다.
문득 투란은 알아차렸다.
지금 어미 여우는 마인화 상태…… 그러니까 요정의 일족이 마인화해서 사용하는 기교(技巧)를 쓸 줄 안다. 그리고 그 재주를 통해서 투란에게 말하고 싶어 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저절로 피어나는 의문 속에서 투란은 어미 여우의 눈동자에 조금 더 집중했다.
말의 형태를 벗어버린 이야기였고, 놓치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을지 모른다는 얇은 불안감이 슬쩍 투란의 마음에 찾아들잖는가.
이는 어미 여우의 입 속에서 살짝 빠각거리는 이 가는 소리를 내게 한 듯싶었고, 투란은 보다 선명하게 천천히 보이는 그림자의 춤이 가득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어미 여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투란의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넓은 초원, 아빈가의 숲과 마주 닿은 상쾌하고 시원한 들판을 자유롭게 누비던 시절의 여우 가족…… 어미와 새끼뿐 아니라 아비로 보이는 여우까지 있었다. 단 하나뿐인 여우 가족도 아니었다. 가족을 이룬 여우 무리는 적지 않았다.
아빈가의 숲을 보금자리 삼아, 갑자기 넓어진 주변 세상을 구경하며 여우 무리는 여러 패로 나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여우 무리를 지켜보는 요정의 일족이 있었고…….
‘어라?’
투란은 그 요정의 일족에게 일어난 기괴한 변화, 하얀 그림자의 형상이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여우 무리를 놀라게 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