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8)
―마인의 융합(融合)이로군.
씁쓸하고 아련한 느낌을 담은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전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저게 대체……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이 되었잖아!’
하얀 그림자 셋, 요정의 일족으로 보이던 세 그림자가 하나가 되면서 머리와 팔이 한 몸에 모두 뭉쳐진 꼴이었다. 그림자의 형태로만 봐도 이상한데 실제로 눈앞에서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면 투란으로서는 ‘괴물이다!’라고 외치고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강한 적을 만났을 때, 마인화해서 향상된 역량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인화된 역량을 하나로 뭉쳐서라도 상대한다. 그게 요정의 일족이 마인이 되어서 갖는 각오다. 저 형태는…… 확실히 괴물이지. 괴물이 되어서라도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다만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 저렇게 융합한 형태가 되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도 없어. 죽음을 각오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보면 돼.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미 여우의 눈동자 속에서 전해져 오는 심상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마인화된 채로 융합하는 요정의 일족 대신에 여우들이 서로 싸우는 듯한 광경이었다. 마치 블랙 버블의 여우와 어미 여우 간의 싸움처럼 보이는 장면이 조금씩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투란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블랙 버블에 먹힌 여우가 여럿이었군. 싸우다 상처 입고 먹힌 녀석도 있고 말이야.’
―그게 블랙 버블을 상대할 때 가장 난감한 점이겠지. 블랙 버블에 잠식당한 동료, 동족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싸우다가 블랙 버블에 감염되는 것…… 피하기 쉽지 않아.
‘그래, 그래서 여우 떼가 이 숲에서 떠나거나 죽거나 한 모양이네.’
투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빈가의 숲, 이 숲이 어떻게 이 산맥의 깊은 곳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로 여우 떼는 여러 무리로 나눠진 채로 제각각 싸웠고, 흩어져야 했다. 이 숲에 새로 들어온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블랙 버블은 그저 그중에서 조금 더 고약한 몬스터에 불과했다.
그림디어에게 습격당해 죽은 여우도, 비비나비 떼에 휩쓸려 죽은 여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여러 몬스터와 싸우며 여우 무리는 아빈가의 숲에서 죽거나 떠나야 했다. 마수조차도 더 이상 버티고 살 수 없는 곳이었을 테니…….
어미 여우는 그런 상황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며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미 여우도 모두 잃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투란은 어미 여우 곁에 놓인, 아직은 꿈틀거리지만 거의 죽어가는 두 마리 새끼 여우를 보며 의아해졌다. 투란에게 이 두 마리 새끼를 고쳐달라는 것일까? 하지만 투란은 어떻게 새끼 여우를 고쳐줄 수 있는지 알기는커녕 그러려는 상상도 못 하는 중인데…….
‘응?’
투란의 낯빛이 일그러졌고, 어두워졌다.
다시 어미 여우는 융합된 마인의 형상, 하얀 그림자로 똘똘 뭉쳐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마인의 앞에 누군가 서 있다…… 머리에 뿔이 돋고 등에 날개도 있으며, 손톱과 손가락이 아주 길고 날카로워 보이는 누군가였다.
투란에게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몬스터 로드로 여겨졌다.
그다음 이어지는 광경은 분명히 몬스터 로드나 할 짓이었다.
융합된 마인의 형상이 찢기고 일그러진 채로 땅바닥에 쓰러졌고, 몬스터 로드라 생각된 하얀 그림자가 그 형상을 집어삼킨 다음…… 머리가 셋이 되고 팔이 여섯이 되는 광경이었다.
‘정말 몬스터가 된 모양이네.’
투란은 마인화에 대해서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몬스터 로드에게 삼켜질 정도로 변해버리다니…….
차라리 몬스터 로드가 되는 편이 더 좋지 않은가?
캬르르…….
어미 여우의 목젖이 가볍게 울렸고, 다시 투란에게 전해져 오는 까만 바탕과 하얀 그림자가 엮이는 회색의 잔영이 또렷해졌다.
색이라고는 억지를 부려봐야 세 가지 단색뿐이었지만 투란은 숲과 들판, 나무와 작은 벌레, 새와 짐승 따위의 모든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평화롭고 아늑해 보이는 풍경이었고, 그 풍경의 중심에는 여우 네 마리가 있었다.
어미 여우와 아주 작은 새끼 여우 두 마리, 그리고 아비로 보이는 여우 한 마리.
‘아빠 여우?’
투란은 의아함과 함께 조금 더 어두운 낯빛을 띄워야 했다.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 주변에 아비로 보이는 다른 여우는 보인 적이 없었다.
지금 쓰러져 있는 두 마리 새끼 여우, 투란에게 이 풍경을 보여주는 어미 여우만이 있었다.
캬륵.
어미 여우의 눈가가 실룩였고, 마치 투란의 의혹을 알겠다는 듯한 콧김이 새 나왔다. 그리고 곧 투란은 아비 여우의 하얀 그림자가 멀어지고…… 또 다른 여우와 싸우다가 작고 검은 알에 의해 얼룩지며 몸부림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블랙 버블에 감염된 한 마리.
드라고니아가 짧게 짚었다.
투란도 무슨 뜻인가 알 수 있었다.
회색의 잔영 속에 검은 얼룩이 번진 채로, 돌아선 여우가 어미와 새끼를 노리고 돌아서며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
캬르륵!
투란의 눈길이 잠시 옆으로 옮겨지려는 순간, 어미 여우가 험한 소리를 냈다.
눈 돌리지 말고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듯한 소리였고, 투란은 그 느낌대로 고개를 멈춘 채로 어미 여우의 눈동자를 마주 봤다.
다시 몬스터 로드로 보이는 하얀 그림자가 융합된 마인을 자기 몸으로 집어삼켜 하나로 엮이는 광경이 이어졌다.
‘아까 보여준 건데?’
투란의 눈가가 살짝 실룩거릴 때, 어미 여우가 입을 열고 깊은 숨을 들이쉬는 시늉을 했다. 투명한 윤곽, 검은 광택의 색채가 순간적으로 어미 여우의 목 양쪽, 사람으로 치면 어깨 언저리를 스쳐 갔다. 더불어 바닥에서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듯한 두 마리 새끼 여우의 목덜미도 스쳤다.
거의 죽은 걸로 보였던 새끼 여우 두 마리의 머리통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어미 여우의 양쪽 어깨 언저리가 몸통까지 베어진 것처럼 갈라지며 핏방울이 가득한 속살을 드러냈다.
크륵!
굵고 강한 목울림 소리가 어미 여우에게서 흘러나왔고, 튀어 오른 새끼 여우 두 마리의 머리가 갈라진 어미 여우의 속살로 뛰어들 듯이 떨어져 내렸다.
켕! 케켕!
새끼 여우 둘의 머리통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조금 뒤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볼 수 있었다.
어미 여우의 눈이 새카맣게 물든 채로, 은빛의 테를 지닌 시커먼 구멍을 드러낸 광경…… 돌아갈 수 없는 마인화가 끝난 채 새끼 여우의 머리를 두 어깨에 매단 어미 여우의 모습이었다.
잠시 투란은 마음이 텅 빈 듯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어미 여우가 한 번 더 입을 꽉 다문 채로 목젖을 울렸고, 이 울림은 캥캥거리는 새끼 여우의 머리 둘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다음에 어미 여우의 입이 살짝 열리면서, 검은 입매 사이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그 핏빛에 투란이 흠칫해서 바라보는 순간, 어미 여우가 입으로 핏줄기를 뿜어내며 투란의 턱부터 가슴 아래까지 물들여버렸다. 느닷없이 뿜어진 핏물에 거의 아랫입술이 축축해지면서 몸이 붉게 채색된 꼴이 된 투란이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고 말았다.
“야, 이게 뭔…….”
상대가 여우라는 사실을 잊은 듯이 연 말문이었고, 어미 여우는 곧 이에 대해 대답하듯이 투란과 눈동자를 마주쳤다.
다시 한 번 전해져 온, 보다 선명한 하얀 그림자와 까만 배경, 회색의 잔영은 융합한 마인의 형태를 삼키는 몬스터 로드의 모습을 보여줬다.
―투란, 이 녀석은 더 이상 마수라고 할 수가 없다. 몬스터야.
드라고니아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게 꺼낸 소리가 투란의 뇌리를 울리며 마음 깊이 퍼져 나갔다.
캬르르르…….
조금 길고 가는 여우의 울음이 투란의 귓가로 깊이 스며왔다.
처음에는 어미 여우가, 그다음에는 어느새 어깨에 달라붙어 눈을 껌벅이는 꼴이 된 새끼 여우의 두 머리가 가늘게 소리를 냈다.
투란은 꼼짝도 하지 않고 머리 셋이 된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미 여우의 눈동자를 바라봤고…… 어미 여우는 물끄러미 투란을 마주 보며 다시 심상을 전해왔다.
역시 몬스터 로드와 융합된 마인 사이의 일이었다.
그리고 살짝 어미 여우가 입을 열며 내민 혀는 갈라진 채로 핏물을 뚝뚝 흘리는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는데…… 그 갈라진 틈새로 검은 방울처럼 거품이 매달린 꼴이 보였다.
보글거리는 검은 거품은 느릿하지만 분명하게 길게 내민 어미 여우의 혀를 거슬러 올라가 핏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다시 고요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블랙 버블이다. 어떻게 해도…… 몬스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군.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바로 투란의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다.
‘시꺼.’
하지만 그런 기분과 다르게, 투란은 한 걸음 여우를 향해 다가섰다.
새끼 여우의 머리 둘이 제각각 이를 드러내면서 투란에게 위협을 느꼈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어미 여우가 앞발에 힘을 주고 머리를 낮추는 순간, 새끼 여우의 머리 둘은 바로 조용해졌다.
등이 불쑥 치솟은 채로, 머리를 낮추는 어미 여우를 향해 투란이 속삭였다.
“이런 얘기 들은 적 없다고…… 무슨 짓이냐고, 대체.”
가만히 투란은 손을 내밀었고, 크고 사나워 보이는 여우 어미의 볼과 귀를 더듬어갔다. 그 사이에 투란의 가슴, 붉게 물든 가슴에서는 핏빛의 고리가 불거지며 맴돌며 퍼져 나갔다.
가슴에 번진 여우의 피 위로 맴도는 핏빛 고리에는 작은 톱니가 돋아났고, 번져 있던 피의 자취는 서서히 투명한 색채로 변해가며 사라져갔다. 곧 핏빛 고리는 투란의 가슴 한 곳에만 머무는 듯했고…… 투란은 천천히 어미 여우의 큰 머리를 품에 안으며 그 콧등에 가슴을 댔다.
어미 여우가 코를 실룩였다.
검은 가죽이 덮인 듯한 코의 주름 사이에 핏빛의 톱니고리가 닿은 채였고, 맴돌며 여우의 가죽 속으로 스며들었다.
케켕!
새끼 여우 두 마리가 깜짝 놀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어미 여우는 더 깊이 투란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듯이 들이댔고, 앞발을 굽히며 힘을 줘 버텼다. 그대로 투란의 품속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듯…….
머리가 셋인 여우의 형상이 허물어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투란은 손에 힘을 주고 펄렁이는 여우의 가죽을 꽉 붙들었다.
여우의 몸에서 뼈와 살이 사라진 듯했고, 흘러내리는 피도 없었다.
그저 눈구멍이 휑하게 뚫린 채로, 검은 눈가의 흔적 속에는 원래 눈알 따위가 없었다는 듯이 여우의 가죽은 세 개의 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투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투란의 눈길이 가죽을 더듬었고…….
“오그라들었네.”
뭔가 소리 내고 싶은 기분을 그대로 담은 중얼거림이 새 나왔다.
아빈가의 여우가 지닌 큰 덩치는 남겨진 가죽에서 그리 또렷하게 느낄 수가 없어 보였다. 몬스터가 된 여우의 정수가 사라지며 부풀었던 몸집이 줄어들었다는 듯이 가죽도 많이 오그라든 채였다.
펄럭이는 가죽을 어딘가에 걸어놓는다면 그저 보통 여우보다 꽤 큰 여우로 보일 듯했다.
천천히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투란은 기지개를 켜듯이 팔을 휘둘러서 여우 가죽을 몸에 걸쳤다. 이는 헐렁하고 펄렁이는 앞발의 가죽을 묶고, 허리춤에서 대충 당긴 가죽을 어떻게든 맞물리듯이 돌려놓은 이상한 짓으로 끝났다.
조금 허전한 기분을 떨치려는 듯, 투란은 폐허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성령목은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났고, 더 강한 영기를 일으키며 한층 더 짙은 파문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파문이 이제는 짜릿하게 투란의 살갗을 헤집는 느낌마저 일으킬 정도였다.
‘이거 오러로 막아야 하나?’
섭리를 따르는 오러의 힘으로 ‘천칭의 문장’을 덮지 않으면 몬스터 엠블럼은 그저 몸에 새긴 문신처럼 맹해질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속에 담긴 몬스터의 정수조차 제대로 느끼기 힘들 정도로 폐허에 새로 박힌 나무의 영기가 강렬했다.
투란은 잠시 폐허의 풍경을 바라봤다.
저 정도 강한 힘이라면 둘 중 하나의 결과가 곧 닥쳐올 것이다.
여기에 느닷없이 성스러운 영역을 만들어 버리고, 주변을 맴도는 몬스터가 다가오지 못하는 구역이 되든가…… 아니면 이 힘에 자극받은 몬스터가 뛰어와서 성령목을 짓밟고 뭉개서 다시 잔해뿐인 폐허가 되든가!
차분하게 문장에서 오러의 힘을 끌어내며, 집중한 채로 투란은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여기는 아빈가의 숲이다. 요정의 일족이 사라졌고, 숲을 뛰노는 마수가 사라졌다고 해도…… 아빈가의 숲이지. 원래 있던 곳에서 어떻게 여기로 옮겨졌는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아빈가의 숲이다. 저 단검의 자루는 아빈가의 숲에서 자생(自生)하는 영목(靈木)으로 만들었기에 저렇게 성령목으로 자라난 거고.
‘음, 그래서 어떻게 된단 말이야?’
―어느 쪽이든…… 쉽게 결말이 나지는 않을 거야. 알고 싶다면,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지.
신중한 결론은 투란을 웃게 했다.
‘난…… 여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