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69)
화아아앙!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투란의 몸을 덮쳤고, 발을 딛고 있는 높은 나무의 정점을 휘두르려 했다. 기우뚱거리는 나무의 꼭대기였지만 발톱이 길게 휘어지고 엄지가 둘이나 달린 듯한 투란의 발가락은 단단하게 나무를 움켜쥔 채로 놓치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은 꼴로 투란은 출렁이는 나무 꼭대기, 자신이 딛고 있어서 휘어진 꼴이 된 나무 꼭대기 가지에서 숲을 둘러보며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사람으로서의 기억이 아닌 드레이크의 기억을…….
파아앙!
귓가에서 바람이 느닷없이 무엇인가를 터뜨리는 소리를 내며 스쳐 갔다.
그 순간, 투란은 불쑥 문장 속 깊은 곳에서 별빛무리처럼 일렁이는 드라고니아의 존재를 향해 물음을 던진다.
‘드레이크의 새끼나 어미를 부르는 말이 따로 있어? 전에 드레이크도 뭔가 다른 이름이 있었다고 했잖아…….’
거세진 바람에 숲이 풀잎처럼 흔들리는 경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갑작스럽게 나온 물음에 드라고니아는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을 한다.
―랄-데미-드라콘. 드레이크라는 존재를 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세대를 구분해서 표현하고자 할 때는 새끼 드레이크는 누앙 드라클, 현재의 드레이크를 낳은 어미 세대는 카눙 드라클, 어미를 기억하고 새끼를 얻은 현재의 드레이크는 아랄 드라클이라고 한다. 우리 일족의 고대(古代) 언어(言語)를 기반으로 붙여진 호칭이고…….
‘뜻도 있겠네? 무슨 뜻이야?’
투란은 조금 잔잔해진 바람이 살갗을 찢어 헤집을 듯한 기세를 버린 채로 머릿결을 스쳐 가며 머리카락을 희롱하는 것을 느끼며 짧게 물었다. 어딘가 드라고니아의 긴 이야기를 끊는 듯도 하지만 더 파고드는 듯한 낌새도 담긴 물음이었다.
―아랄 드라클, 지금 머무는 자. 새끼인 누앙 드라클은 앞으로 머물 자. 이미 사라진 어미를 부르는 카눙 드라클은 지나간 자란 의미다. 왜 갑자기 이런 호칭이 궁금해졌지?
‘헷갈려서.’
―뭐가?
‘알을 낳기도 했지만, 낳아준 어미도 있잖아. 드레이크의 기억은…… 자기가 새끼였을 때랑, 어미일 때랑 헷갈려. 뭐랄까, 할배, 아빠, 새끼를 몽땅 드레이크로 불러대다 보니까 그런가 해서. 너네도 헷갈리지 않았을까 궁금해서…… 헷갈리지 않으려면 뭔가 따로 부르는 말이 있지 않나 싶었어.’
드라고니아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기척을 투란에게 느끼게 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더 전해오지 않았다. 그저 투란의 호기심과 궁금함을 흘려 넘기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그 사이에 투란은 가까이에서는 잔잔해졌지만 멀리서는 난폭해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으로 되뇌고 있었다.
‘할배는 카눙 드라클, 지금 아빠가 된 녀석은 아랄 드라클,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누앙 드라클…… 드라클, 드라클, 드라클…… 카눙, 아랄, 누앙.’
사람이 주고받는 말과는 어딘가 다르고, 대체 왜 그런 식으로 분류를 하는가도 애매하고 이상한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잊지 않겠다는 듯이 몇 번을 더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투란을 향해 아빈가의 숲을 헤집는 바람이 결국 여기라는 듯한 거친 소리를 내면서 거세게 몰려왔다. 투박하고 거친 소리, 날카롭게 스쳐 가는 소리, 둔하게 울리는 소리 따위가 한꺼번에 투란의 주변에서 메아리쳤다.
그 속에서 살짝 스쳐 간 바람결은 투란의 머리카락 끝을 베어 자르기도 했고, 둔하게 밀려온 바람결에는 나무가 슬슬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듯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귀를 울리는 둔한 소리 속에서 투란은 이 모든 것을 느꼈고 드레이크―아랄 드라클의 기억 속에 흩어져 있는 이 숲의 풍경을 짜맞춰냈다.
‘응, 그게 변한 거로군.’
투란은 흔들거리는 숲의 풍경을 보며, 폐허의 사원으로 듬성듬성 이어지는 돌의 잔해가 숲 전체에 어떤 식으로 널려 있는가를,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던가를 제대로 파악해냈다.
이 심상은 곧장 드라고니아에게도 느껴진 듯, 중얼거림이 나온다.
―아빈가의 사원 길이로군. 숲 전체를 아우르는 길이지만…… 요정의 일족이 아닌 자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했는데…….
‘그래? 드레이크…… 아랄 드라클에게는 아주 잘 보였나 봐. 굉장히 기분 나쁜 느낌이라고 기억하는걸…….’
투란은 쪼그렸던 자세를 풀면서 나무 꼭대기에 우뚝 서는 모습으로 일어섰다.
몸을 부드럽게 덮다가 세차게 밀어대는 바람결이 바로 투란을 맴돌았다.
아빈가의 숲을 주욱 둘러보며, 바람결을 품듯이 느끼면서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에 집중했다. 폐허의 사원에서 멀어진 이 자리까지 살짝 새로 자라난 성령목의 영기가 느껴지고는 있었지만, ‘천칭의 문장’은 이 정도로는 그다지 방해받지 않는 듯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 * *
투명한 껍질 속에 머리가 셋인 여우가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무슨 모포(毛布)라든가, 망토처럼 투명한 껍질은 두껍게 머리 셋인 여우와 여우 몸에서 방울져 나오는 검은 거품을 고스란히 휘말아 덮은 꼴이었다. 한 방울의 거품도, 털끝 하나도 새 나오지 않게 하려는 듯…….
‘천칭’의 정상이었고, 단단하게 조여진 톱니바퀴의 마개는 여전히 탑처럼 쌓인 채로 높이 떠 있는 풍경이었다.
아빈가의 숲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투란이 오랜만에 문장의 풍경을 보고 있다는 듯…….
‘아랄과 두 마리 누앙.’
문득 투란의 마음은 가장 자연스럽게 이 머리 셋인…… 사실은 세 마리였던 마수인 여우의 세대를 나눠봤다. 드레이크에게는 오로지 한 마리만 있을 수 있는 누앙, 새끼가 두 마리였다. 어미 여우가 이 두 마리 새끼를 죽음과 함께 포기했다면, 어쩌면 새로 짝짓기를 해서 새로운 새끼―새로운 세대의 누앙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어미는 이 두 마리 새끼를 버리지 못한 채 괴물의 형상을 마다하지 않았고, 몬스터 로드에게 자신을 맡겼다.
드레이크, 저 ‘천칭’의 아래 깊은 곳으로 아랄 드라클을 보내 지우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투란 자신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모르겠네, 모르면 넘어가야지.”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 여우와 검은 거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필요 없다면, 다룰 수 없다면…… 이 또한 드레이크처럼 갈기갈기 찢긴 흔적을 마음에 남긴 채로 지워야 한다.
각오를 되뇌면서, 집중한 투란은 곧 머리 셋인 여우와 블랙 버블―검은 거품이 미묘하게 갈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서로의 정수, 몬스터 에센스가 섞이지 못한 상태인 듯한 느낌이었다. 제대로 완전히 엉겨붙기 전에, 그러나 한꺼번에 문장에 삼켜졌기 때문에 그저 지금 함께 보이드의 껍질을 뒤집어쓴 것뿐인 듯한 느낌…….
그런 상태에서 블랙 버블은 거북해하고 있었고, 여우는 세 개나 되는 머리를 아주 편안하게 길고 풍성한 꼬리에 얹은 꼴로 몸을 웅크린 채로 꿈을 꾸는 듯했다. 블랙 버블은 그 꿈에 어떻게든 끼어들려 하지만 뜻대로 안 돼서 뭉클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갈라버릴까? 아니, 갈라버리겠어.’
투란은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해버리자고 결심했다.
블랙 버블이 지닌 본성, 동류(同類)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그 탐욕은 여러모로 위험했다. 그 특징이라고 해도, 결국은 원래 지닌 능력을 강화하는 정도라고 했으니 그다지 특별한 느낌도 없잖은가.
임모그 웜의 경우처럼, 그저 ‘악마의 심장’만도 못할 수도 있었고…….
투란이 이렇게 판단하고 날카롭게 마음을 벼리는 순간, 여우와 거품을 감싼 투명한 껍질 속에 새롭게 얇은 피막이 생겨났다. 새로운 피막은 그대로 여우와 거품 속으로 스며들었고, 갈라지면서 한 가지로 엉겨 있는 둘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블랙 버블의 여우가 성령목의 단검을 몸에 박고 느닷없이 검은 거품을 거의 떼놓은 채로 이동해버린 광경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집중했다.
투명한 피막이 여우의 형상을 두어 번 걸러냈고, 검은 거품은 모조리 새로 형성된 피막의 그물질에 걸린 듯이 따로 뭉쳐졌다.
결국 머리 셋인 여우를 감싼 껍질과 블랙 버블의 알을 뭉쳐 감싼 껍질이 갈라섰다.
―흥미롭군. 거의 하나로 융합된 몬스터의 정수를 다시 분리하다니.
“아직은 완전히 하나가 된 것 아닌 모양이니까.”
중얼거려 대꾸하면서 투란은 블랙 버블의 여우에게 성령목 단검이 꽂혔을 때를 다시 되새겼다. 성령목의 영기에 물들면서 여우는 블랙 버블을 자신과 다르다고 알아차렸고, 일단 떼어놨다. 하지만 이미 여우에게 단단히 박혀 결합된 블랙 버블은 결국 새롭게 시커먼 거품을 뿜어내는 꼴을 보였다. 그 눈가에 아주 조금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블랙 버블은 여우에게 동족, 동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게 했다.
만약 몬스터 로드가 블랙 버블을 삼켰다가 그 본능, 본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사람 잡아먹고 죽이려 하는 괴물이 될 뿐이잖은가.
‘없애 버릴까?’
투란은 가장 단순한 해답부터 생각했다.
위험한 요소는 아예 제거한다, 이보다 간단한 답이 없었다.
그 위험을 감당해야 할 특별한 능력인 것도 아니니.
―투란, 블랙 버블의 능력은 특별하다.
돌연 드라고니아가 툭 던진 말은 투란의 이어지던 생각을 멈추게 했다.
“뭐?”
별빛무리를 향해, 형체 없는 눈길을 던지며 주의를 기울이는 채로 투란이 소리 냈다.
느닷없이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투란의 의혹은 넉넉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진 듯했고, 드라고니아는 망설임과 한숨을 섞은 말투로 대답을 해온다.
―우버-스파클(Uber-Spakle). 블랙 버블이라는 외형에 기댄 이름이 아니고, 그 속성에 기댄 이름이다. 뜻은, 최고이며 최대의 확장된 재능의 빛을 뿜는다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 어미 여우가 마인화를 해서 맞상대한 여우는 마인화를 하지 않았다는 거, 알고 있나?
잠시 투란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몬스터가 된 마수, 한쪽은 블랙 버블―우버-스파클인가 뭔가하는 새로운 이름을 꺼내게 한 몬스터가 달라붙어서 몬스터가 된 여우였고 한쪽은 요정의 일족이 남긴 기괴한 눈을 이식한 탓에 마인화해서 몬스터가 된 여우였다.
‘원래는 아빠, 엄마인 한 가족인 여우였지.’
어미 여우가 보여줬던 심상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기억해내야 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블랙 버블의 여우는 분명히 몬스터였지만 마인화 상태라고는 할 수 없었다. 즉…….
“그게 무슨 뜻이지?”
투란으로서는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제대로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거대한 풍경 속에서 천칭이 끼릭거리고 삐걱대며 톱니를 굴리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마치 드라고니아의 설명이 아주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잔뜩 주의하고 집중하겠다는 투란의 기분을 드러내는 듯!
―요정의 일족에게 마인화는 정말 위급한 순간에 꺼내는 비술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힘에 겨워 죽는 순간에도 꺼내지 않는 비술이기도 하지. 그런 마인화의 비술이 지닌 효과는 우선 강화(强化)다. 평소에 전혀 낼 수 없는 강대한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거야.
“강화…… 오러 윌더가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게 강화력(强化力)이라고 했어. 강화력의 수준에 따라 오러 윌더의 수준차이가 그냥 드러난다고…… 그래서 강화력에 등급까지 매겨놓는 평가법이 있다는 말도 들었어. 그 평가를 통과하면 상위의 오러 윌더인가 아닌가 금방 밝혀진다고…….”
투란은 흐릿하게 스쳐 갔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오러 윌더는 그런 강화력으로 평소 내던 힘의 두 배, 세 배가량의 괴력을 거침없이 발휘한다 했다. 그 수준이 상위에 이른 자라면, 거의 일곱 배에서 여덟 배까지의 힘도 부담 없이 발휘한다는 말도 있었다.
키린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빙긋 웃으며 그냥 넘겼었는데…… 그런 평가법에 기대지 말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힘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며 몬스터 로드에게는 그런 식의 평가법이 정확하지 못하다고도 했다.
마인화 역시 그런 강화력을 부여한다는 뜻일까?
그런 거라면 ‘악마의 심장’이나 임모그 웜도 역시 갖춘 능력일 텐데?
대체 드라고니아가 무엇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담은 듯이 ‘강화’라고 말하는 것인가?
―투란, 마인화를 통해 요정의 일족이 얻는 강화의 힘은 기본적으로 열 배다. 평소 자기 힘의 열 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힘을 열 배 이상 강화해 발휘하게 해주는 거야. 마인화하는 자의 기량에 따라서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지지. 여우는…… 어미 여우는 이 마경과 맞물린 숲에서 살아남아 새끼를 낳고 키울 정도였다. 아마 다른 여우가 발휘하는 것보다 몇 배나 되는 마수로서의 능력을 열었겠지. 그런 여우 어미가 마인화까지 해서 발휘하는 힘에 거의 대등하게 맞선 거다, 블랙 버블에 감염된 여우는…….
“그거야 몬스터가 되었으니까, 몬스터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투란이 중얼거려 대꾸했다.
드라고니아도 그 중얼거림을 인정한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그래, 몬스터지. 하지만 그 능력은 마수인 여우의 힘을 최고로 끌어올린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블랙 버블은 자신이 깃든 숙주(宿主)의 역량을 그 종족의 최고이자 최대 수준의 재능을 완전히 피워낸 자처럼 만드는 몬스터라고…… 숙주가 지닌 특성, 재능을 최고로, 최대로 빛나게 해주는 몬스터지. 그래서 우버-스파클이라고 부른다. 그 대신…… 동류, 동족을 잡아먹게 하지만 말이다.
“젠장…….”
투란은 겨우 드라고니아의 말을 알아차렸고, 차오르는 욕을 뱉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