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
‘용서하지 않겠어!’
먼저 가슴속을 향해, 겹쳐지는 누군가를 향해 절로 포효가 터졌다.
동시에 투란은 맹렬하게 생각을 굴렸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할 것인가!
‘침착!’
복잡해지고 두서없어지려는 생각을 붙잡고서 그는 날카롭게 다짐했다.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우왕좌왕할 여유 따위는 없다!
시작하면 단숨에 끝장을 내야 한다!
어떤 빈틈도 없이!
각오하고 투란이 가장 먼저 더듬은 것은 기억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항아리 속에서 어떤 식으로 싸웠고, 어떤 식으로 그 결투가 끝장났던가? 큰 놈이 항상 이긴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더 활기차고, 더 열심히 움직인 놈이 이겼다.
그리고 기억 속의 그 시절에는 몰랐던 것, 이제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악마의 심장은 먹어 치운 심장의 맥동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몸 곳곳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넝쿨의 줄기가 투란의 심장 속에 숨은 악마의 심장을 상대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미량의 양분마저 뺏기고 말라 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란의 분노와 증오에 가장 어울리는 선택은 악마의 심장을 해체하고 온전한 사람의 심장으로 되돌리는 것일 터…….
―그러면 바로 죽는다.
하지만 투란의 가슴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냉정하게 지적하는 사실이었고, 투란도 이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때문에 분노와 증오 속에서도 반드시 심장 속에 숨어 있는 악마의 심장을 대체할 뭔가를 완성시킨 다음에 해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침착…….’
더욱 세차게 끓어오르는 분노, 거기에 좀 더 깊이 겹쳐지는 증오를 억누르기 위해 투란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소리 없이 속삭였다. 그렇게 노력해도, 뇌리에 각인된 듯한 소리가 욱신거리며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위해 뒈지라고!”
악마의 심장이 하는 짓은 사람인 투란을 죽이고 제 존재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인 투란보다 제가 더 쓸모가 많다고, 투란의 의식을 이용해서 투란에게 그 생각을 강요했다.
‘침착!’
좀 더 세게 자신을 다독이며, 투란은 눈동자에 맺혀 죽은 척하고 있는 녀석을 살폈다. 끊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혈관에 얽힌 녀석, 이 녀석은 가슴속으로 숨어든 놈과 얼마나 다를까? 이놈도 생각할 수 있게 되면 똑같아질까?
가벼운 의혹을 억누르며 투란은 아까보다 미약해진 ‘오러’의 지각 능력을 좀 더 발휘했다. 보다 세밀하게 몸의 상태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악마의 심장끼리 난투극을 저지를 항아리는 그의 몸이고, 이 부드러운 살로 된 항아리가 그 격렬함에 깨진다면 투란은 갈기갈기 안쪽에서부터 찢기게 될 터였다. 이 이상한 환경에서 상처가 더해지면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잖은가?
소심하다고 스스로를 비웃을 만큼 조심해야 했다.
조심스러운 관찰은 투란에게 분명히 새로운 것을 알려 주었다.
몸 곳곳에서 생성되는 덩굴줄기의 자잘한 가닥들, 그때마다 그 주변에 모여드는 여린 힘—오러—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생성된 가닥들 사이로 독특한 힘이 발산되었다. 그 독특한 힘의 성향은 명백하게 심장 속에 숨은 악마의 심장이 강하게 품고 있는 힘과 거의 똑같았다.
새로 생성된 작은 실 가닥들은 각각 지닌 개성이 다른 듯, 생겨난 부분의 성질을 물려받은 듯했다.
‘그렇군.’
눈동자에서 생겨나 완전히 독립된 채로, 눈물을 삼키면서 투명한 꼬락서니 그대로 죽은 척하는 녀석은 눈동자의 특성을 물려받았다. 어깨 언저리에 생겨난 줄기, 자라지 못한 악마의 심장은 어깨의 살점과 힘줄, 혈관의 특성을 지녔다. 뼈마디 사이에서 생겨난 녀석은 뼈와 뼈를 잇는 힘줄과 뼛속을 들락이는 혈관의 섬세함을 물려받았다. 그것들이 몸 곳곳에서 비슷한 형질인 악마의 심장, 그 넝쿨의 실 가닥을 이루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변화시켜 몬스터의 능력을 발휘해서 투란을 지키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문장!
투란이 이를 알든 모르든 문장은 나름대로 지닌 규범과 본능으로 투란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힘의 집결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악마의 심장은 떡하니 저 혼자 살겠다는 놈처럼 투란을 방패 삼아 숨으려 했다.
‘오러는 일단 몬스터를 끌어내 만들고 나면 흔적도 없어져. 몬스터가 생기면 오러랑 다른 힘이 맴돈다.’
투란은 몬스터 로드의 마력이란 것을 떠올렸다.
몬스터를 삼키고 다루면서 몬스터 로드에게도 마력이 생겨난다.
좀 특이하고 이상한 이 마력은 마법사가 주문을 외울 때 쓰는 마력과 아주 많이 다른 성질이라고 했다. 오로지 몬스터 로드가 문장에 집중해서 몬스터를 형성하는 데만 쓰인다고.
‘고으? 고이? 고…… 뭐라고 했는데, 에잇! 지금 그따위 알 게 뭐야!’
투란은 상쾌하게 결과만 정리하는 것으로 끝냈다.
암튼 ‘오러’는 사라지고 그 마력인지 뭔지가 생겨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생겨난 마력을 움켜쥐고 투란을 무슨 담장이나 방패처럼 써먹으려 드는 것이 악마의 심장이고!
지금으로써는 그것만 알아도 충분했다.
생각을 멈춘 투란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는 혼령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듯한 문장을 향해 원했다.
‘키워라, 뻗어라, 스며들어!’
곧, 죽은 척하던 눈동자 속의 넝쿨이 꿈틀거리는 것이 투란의 시각에 감지되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허무는 여전히 고요하고,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불러일으켰다. 그 허무에 잠깐이라도 마음을 두면, 투란 역시 죽은 척하고 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마음을 거두고, 투란은 눈동자에서 맥동하며 눈알을 감싸고 혹은 그 속을 넘나들면서 성장하는 새로운 악마의 심장에 정신을 집중했다.
시원(始原)의 한 점이 되었기에 뿌리인 눈동자의 투명한 넝쿨이 작지만 분명한 심장의 틀을 보였다. 그 줄기가 좀 더 깊이 투란의 눈을 통해 뇌수로 건너오듯이 뻗어졌다.
그리고 느릿한 느낌으로, 하지만 그 작은 근원에 비하면 아주 빠르게 투란의 머릿속에 그물을 짜고 혹은 이미 있었던 실그물의 잔해를 거둬들이며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서 투란은 몸 곳곳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멈출 수가 있었다.
새로운 자각이 찾아왔다.
머릿속을 채운 악마의 심장, 실보다 더 가는 그 줄기가 아픔을 그치게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 상처를 확실하게 알 수 있으면서도 아프지 않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될 일이었다.
‘아래로.’
보다 침착해진 투란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연료 삼아 소망했다. 문장을 향해 절실하게 탄원했다.
뇌수를 장악한 작은 괴물의 줄기는 인체의 미묘한 신경망에 저를 겹치며 척수를 따라 몸으로 뻗어 갔다. 하지만 심장에 이어진 혈관, 신경 쪽으로는 줄기를 뻗지 않았다. 단지 심장을 향해, 살을 가르고 뼈를 타고 뻗어 갈 뿐이었다. 적진을 향해 서서히 접근하는 척후처럼!
때문에 투명하게 인체의 신경망과 섞인 작은 괴물의 줄기는 심장을 감쪽같이 덮는 껍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껍질은 살로 단단히 덮인 가슴속임에도 투명한 광택을 뿜었고, 곧 심장 주변의 피와 살, 혈관을 모두 휘감았다.
투란은 새삼 마음을 불태우며, 이제는 분노와 증오뿐 아니라 굳건한 각오마저 실어 힘을 모으며 더 강하게, 더욱 간절하게 기원했다.
‘삼켜라! 먹어 치워! 나를 위해 나의 심장이 되어라!’
세찬 문장의 공명이 느껴진 순간, 눈동자에서 시작된 작은 괴물이 심장을 삼키는 줄기를 뻗었고, 그 안에서 버티는 악마의 심장과 접촉했다.
맹렬한 굉음, 눈부신 광휘, 몸을 활활 태우는 동시에 얼어붙게 만드는 이상한 감각이 한꺼번에 투란을 덮쳤다. 비명을 지를 수도, 그럴 겨를도 없는 커다란 혼돈이 홍수처럼 마음을 채웠다.
불끈, 불끈!
그 속에서 작지만 선명하게 맥동하는 투명한 매듭이 투란의 닻이 돼 주었다.
투란은 스쳐 가는 ‘혼돈의 홍수’를 경험하면서도 정신을 유지했고,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으며, 무엇을 ‘기원’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돌연 벼락 치듯, 투란의 마음이 울부짖었다.
‘먹어 치워!’
그러자 악마의 심장이 분명한 의식으로 떠올라 투란에게 반발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에, 엥?’
—나의 판단은 정확하다고!
‘뭐?’
—여기는 사람의 몸을 더 유지하고 버틸 곳이 아냐!
‘……?’
—모든 몸의 씨앗을 파악했어! 이제 저 무시무시하고 끔직한 것이 일으킬 큰 홍수 같은 힘의 물결을 기다리면 된다고!
‘대체 뭐라는 거야!’
—떠내려갈 때를 대비하는 거야!
‘떠내려가? 어디로? 어떻게!’
—사람의 몸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으니까! 악마의 심장이면 떠내려가면서도 버틸 수 있어!
‘그래서 내 몸을…… 나를 버린다고?’
—그게 아냐! 써야 해! 이 몸을 써야 해! 방패로, 담장으로, 성으로!
‘그게 버린다는 말이잖아!’
—아니라고! 그렇게 해서 버텨 내면, 다시 모두 지을 수 있어!
‘지어?’
—씨앗! 정원! 그게 나의 진정한 능력이야!
‘……진정한?’
—어떤 몬스터도, 설혹 신이라 할지라도 나처럼은 못해!
‘뭘 못하고, 뭘 한다는 거야?’
—살 한 조각, 피 한 방울까지 나는 모든 씨앗을 키워 ‘너’의 몸을 재생할 수 있어! 그대로, 한 조각도 다르지 않게! 틀림없이! 아니, 오히려 나의 줄기가, 넝쿨이 네 몸의 한계를 넘는 힘을, 감각을 발휘하게 해 준다고! 그야말로 악마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할 정도로!
‘그게…… 네 능력이라고?’
—그래!
‘나를, 내 몸을 이 꼴로 만들고 그런 소리를 해?’
—시간이, 양분이 필요했어! 씨앗을 파악하고 품기 위해서!
‘그리고……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이 아냐! 지금 나를 저 어린것으로 바꾸면 너는, 우리는 죽어!
‘왜? 너 대신이 왜 안 돼?’
—시간이 없잖아! 양분이 없잖아! 나를 희생시키면 너도 죽어! 우린 같이 죽어!
‘아, 그래?’
크륵, 크르륵.
투란의 목젖이 떨렸다.
주인이 하고 싶은 말을 토해 내려 하지만, 숨통이 조여들며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이 순간 투란이 품은 말은 마음 깊은 곳으로, 가슴 깊은 곳으로 심장을 두들기면서 투명하고 맑은 줄기가 되어 사납고 광폭하게 뿜어져 나갔다.
—희생은 기억될 거야.
간결한 말이었다.
동시에 거기에 아주 작은 심상이 더해졌다.
손톱, 사람의 몸인데도 굵게 휘어져 튀어나온 손톱이었다.
그에 대해 마지막이라는 듯, 억센 반발이 선명하게 투란의 의식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내 판단은 정확하고, 내 결정이 옳아!
‘그래? 그런데 나도 옳거든!’
투란은 눈동자 속에서 두근거림을 봤다.
마치 저편에 보이는 새카만 허무가 두근거리는 듯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눈동자 속의 투명한 매듭인 뿌리와 풍경이 겹쳐진 탓이라 여겼지만, 저 허무가 지금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때문에 투란은 저 심연이 자신에게 뭔가를 묻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가슴속에서 심장을 완전히 장악한 투명한 줄기가 허파를 채우고 목청을 가다듬게 했기에 나오는 말도 또렷했다. 바람결에 흐려져 주변으로 번져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투란 자신에게는 아주 잘 들렸다.
“몬스터 로드, 투란. 이 혼백의 주(主)이며 이 마음과 몸의 주인이고 내 피와 살로 빚어낸 모든 것의 지배자이자 이 혼령으로 그려 낸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 몬스터 로드 투란!”
너무나도 낯선 고백이었다.
다만 투란은 몸도 마음도 활활 타오르면서, 자신만 듣는 듯한 이 선언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받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거기 함께하지 않아. 나는……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 아주 많은 할 일이…….”
투란의 말이 잔잔하고 흐릿하게 맺어지는 순간부터 새카만 허무가, 기둥처럼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심연이 고요한 폭풍을 일으켰다.
하늘의 구름이 불타오르고, 땅속 깊은 곳에서 녹아내린 바위와 불타는 흙무더기가 솟아났다. 하얀 번개가 차갑게 허공에 얼음의 가지를 뻗었고, 심록(深綠)의 줄기는 강처럼 질주했다.
이 격렬하고 거대한 규모의 대격변 속에서 투란은 작은 티끌이 되어 날려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