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0)
재능(才能)이란 말처럼 애매모호한 소리는 따로 없다, 이것은 투란이 샤오콴 마을에서 샤오덴 할배에게 배운 한 가지 지혜였다.
칼부림하는 데 엄청난 재능을 지녀서 칼자루에 손을 얹자마자 뼈와 살을 아주 얇게 저미는 솜씨를 보이는 자라도, 막상 그 칼을 들고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는 맹수 앞에 서게 되면 똥오줌 못 가리고 철퍼덕 주저앉아 피와 살을 뜯어먹히는 꼴이 될 수 있었다. 담력, 용기라고 하는 재능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철퍼덕 주저앉았던 상황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없던 재능이 생겨난다!
그러나 칼재주, 검술이 아무리 뛰어난 이라 해도 활을 쏘라 하면 그냥 다른 사람과 엇비슷하거나…… 심할 경우 아예 어중간한 경우도 있었다. 칼과 활을 동시에 잘 다루는 것도 또한 재능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다. 그러나 둘을 동시에 잘 다루는 이는 한 가지를 아주 잘 다루는 이만큼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한쪽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는 둘을 동시에 다루는 재능은 없을지라도, 그 한 가지에서는 완전히 압도적인 기량을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의 약점은…….
‘그 재능이니 뭐니 하는 거, 완전히 될 대로 되는 거잖아!’
재능이 있네 없네 하더라도 어느 수준까지는 공들이고 노력해서 연습하면 된다.
그 연습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수준의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재능이 좀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빨리 익히는가 느리게 익히는가의 차이도 그런 재능의 영향을 좀 받기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얼마나 연습하느냐에 따라서 대충 비슷한 기량을 보이기 마련이라 했다.
칼을 잘 쓰지만 활을 잘 다루지 못한다면, 칼만 연습하고 활 연습은 안 했을 뿐인 것이고…… 그런 경우는 화살 망가질까 봐 잘 안 쏘는 이들에게는 아주 흔했다. 칼이야 나무라든가 그냥 대충 든 몽둥이로 연습을 할 수 있지만, 화살은 한 번 날아갈 때마다 부러지거나 꺾이고 화살촉이 뭉개져서 소모되니까.
한마디로 연습을 하는데 동전이나 은전이 많이 깨질 수 있다고 꺼리는 녀석들은 뭔가 연습에 돈이 들지 않는 일에 매우 다양하고 많은 재능을 보인다는 것인데…….
―그런 얘기가 아냐! 연습이란 과정을 압축시키고, 연습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까지 도달하게 유도해주는 기초능력! 그런 재능 말이다!
“음? 그러니까, 악기 같은 거 비싸다고 만져보지도 않고 재능이 없어서 악기 연주 못 해요,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
투란은 별빛무리를 향해 매우 삐딱한 소리를 냈다.
짧은 침묵, 그리고 참는 듯한 소리가 별빛무리에서 웅웅거리며 울려 나온다.
―그건 대체 어떤 놈 이야기냐?
“어? 어…… 좋은 악기를 사서 연습해서 훌륭한 연주를 할 거라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강철 건틀릿을 사서 손에 끼고 다니던 사람. 결국 어차피 재능이 없는데 그 비싼 악기를 왜 사냐면서, 강철 건틀릿 자랑하더라고.”
―도대체 어디 사는 어떤 놈이야!
별빛무리가 찰랑거렸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투란이 재능이라는 말에 대해 이것저것 좋지 못한 인상을 많이 지닌 것에 대해 분개하는 듯한 낌새도 섞인 소리였다.
* * *
파아앙, 뚜득!
느닷없이 폭발적으로 몰려든 바람결에 투란이 밟고 있던 나무 꼭대기 가지가 결국 부러졌다. 그 부러진 가지를 발가락으로 꽉 쥔 채로 투란은 추락해야 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심하게 바람이 불지?’
조금 짜증 난 기분 속에서 투란의 손이 뻗었고, 아래쪽 가지를 잡았다.
거친 소리가 나무껍질과 투란의 손아귀 사이에서 울펴퍼졌다.
웬만큼 굳은살이 배어 있는 손이라도 홀랑 까지고 시뻘건 속살이 드러나면서 피가 맺히거나 철철 흘러야 할 격렬한 마찰이었지만, 벗겨진 채로 속살을 드러낸 쪽은 두꺼운 나뭇가지 쪽이었다. 투란의 손은 짙은 잿빛의 살갗을 드러낸 채로 바위처럼 부스러진 나무껍질의 티끌만 묻힌 채였다.
콰직!
투란의 손에 잡혀 껍질이 벗겨진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쳇.”
꽤 튼튼하고 탄력 있는 나무인데, 아무래도 좀 얇은 듯했다. 투란이 심하게 떨어져 내린 모양이기도 했고…… 그저 떨어지는 속도가 좀 줄어든 채로 투란은 계속 떨어졌다. 손도 계속 허우적거리며!
두 번째 가지는 반쯤 부러졌지만 완전히 꺾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투란도 잡자마자 손에 힘을 조절해 당기면서, 튀어나온 가지가 아닌 나무 몸통 줄기에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투란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재능이란 보통 연습으로 안 되는 것까지 되게 해주는…… 그런 기초능력이란 말이지? 저 블랙 버블은 무슨 스파클이라고 해서 그 기초능력을 완전히 발휘하게 해주고 말이야? 열 배나 되는 강화력을 발휘하기 해주는 마인화만큼이나?’
대답보다 먼저 한숨 쉬는 듯한 낌새가 투란에게 느껴졌다.
드라고니아로서는 고작 ‘재능’이란 말 한마디에 대체 이게 뭔 짓인가 하는 듯한데…… 그래도 대답이 나오기는 한다.
―블랙 버블은 숙주가 속한 종족 전체의 잠재적 가능성, 그 종족의 개체가 누락하거나 미미하게 보유하고 있는 능력의 씨앗까지 완전하게 각성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우버-스파클이라 하는 이유는 개체가 가진 결함, 누락된 부분까지 보완해서 그 종족의 최대기량까지 개체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이고.
‘흠, 그러니까 완전히 버릴 것 없는 좋은 소재로 만들어준다는 거네. 솜씨 나쁜 목공 손에서도 걸작이 나오게 하는 그런 목재(木材)처럼.’
이렇게 투란이 떠올린 생각은 드라고니아에게 뜬금없이 느껴졌을까?
―너, 이 자식! 다 알면서 여태 시침 떼고 있었냐!
돌연 아까와는 아주 다른 성난 소리가 투란의 뇌리를 쿡쿡 찔러왔다.
이는 투란에게 보다 분명하게 깨우치게 해줬다.
‘아, 네가 여태 말한 재능이란 게 그런 소재 문제였어? 에이, 진작 그리 말하지.’
툴툴대는 말투로 생각을 전하며, 투란은 옆의 나무줄기를 향해 힘차게 뛰었다. ‘악마의 심장’이 한껏 키워주고 뭉쳐준 사람의 힘줄, 거기에 살짝 더해진 듯한 늑대와 트롤, 그랑츄의 근육질이 힘을 발휘하며 투란은 단번에 6, 7미터 너머의 나무로 옮겨갈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시원하게, 두껍고 세차게 우는 바람이 다시 한 번 가죽 주머니 터뜨리는 소리를 냈다.
파아앙!
그 소리를 귓가로, 몸으로 느끼면서 투란은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침착하게, 침착!”
이는 또다시 드라고니아를 황당하게 한 모양이었다.
―뭔 소리냐, 그건?
‘어?’
쓴웃음이 곧바로 투란의 입가에 피어났다.
투란은 손발을 움직이며, 다시 나무의 꼭대기 근처로 옮겨갔다. 나무줄기를 빙빙 맴돌며 올라가는 사이에 투란의 눈길은 주변 풍경을 열심히, 주의 깊게 살폈다.
바람결이 돌연 잠잠해졌다가 폭발적으로 거세지는 광경이 숲의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조금 전, 투란이 저편 나무에서 겪은 일이 단순히 그 자리에서만 일어난 바람의 변덕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흠…….”
과연 땅에 내려가 바람이 잦기를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유독 바람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듯한 이 숲을 벗어나는 편이 좋을까?
―투란?
드라고니아가 이모저모로 바쁜 생각에 오락가락하는 투란을 불렀다.
“어? 아, 침착하자는 거…….”
투란은 조금 전에 드라고니아의 물음을 되새겼고, 입을 다문 채로 기억 너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로드의 일을 생각하며 대답을 늘어놓는다.
‘몬스터 로드가 감정에 휘둘리면 좋은 일 없다는 소리가 있어. 뭐,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삼키려는 몬스터를 단숨에 때려잡았다거나 시체줍기를 하거나, 누가 잡아준 것을 삼킨 것이 아니라면…… 고생하거든. 힘들고, 어렵고…… 터무니없어서 말해도 아무도 안 믿는 그런 일을 겪기도 해. 그럴 때, 너무 화가 나서 삼킨 몬스터를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경우가 있어. 그때 그 화를 참지 않고 몬스터를 없애는 거야. 문장 깊은 곳으로…… 담아 버려서 지우는 거지. 그게 몬스터 로드가 삼킨 몬스터에 대해 감정적으로 저지르는 짓이지. 근데…… 그런 몬스터 로드는 성장하지 못해. 늘 하급인 채로, 밑바닥에서 뒹군다고.’
―그래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침착하라고?
‘응. 남의 일일 때는 쉽게 말할 수 있고, 쉽게 생각할 수 있어…… 남에게 그렇게 충고하는 건, 참 쉽지.’
다시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조금 어두운 낯빛을 띠었다.
투란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기억의 저편에서 슬그머니 건너오고 있었다.
강력하고, 위험하고, 정말 대단한 몬스터를 몇 년에 걸쳐서 쫓아 잡았던 몬스터 로드…… 하급 수준에서 벗어날 생각도 없이 굉장한 집착으로 그 몬스터를 잡았다. 다른 것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리고 삼켜 없애 버렸다.
다들 기막혀했고 어이없어했다.
자신의 수준이라든가 기량을 높이지도 않은 채로 집착했던 몬스터였다.
잡을 수 있다면 단숨에 중급을 넘어 상급에 가까운 수준으로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거의 유니크로 꼽히는 몬스터라 했다.
한데 그는 그걸 잡고 삼켜서, 지워 없앴다.
자신이 품을 마음이 없다면 다른 이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직접 삼켜서 없애 버렸다.
어른들이 기막혀했고, 어린 투란에게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그랬던 까닭이란, 흔하디흔한 사연…… 복수였다.
몬스터 로드가 되었던 까닭은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아주 큰 돈이 필요했고 다른 재능이 없어서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족이 몬스터에게 몰살당했고…… 그에게 살아가야 할 유일한 이유는 복수가 되었다.
그 복수가 끝났을 때, 그는 다시 그저 그렇고 그런 하급 몬스터 로드로 남았다.
‘얼마 못 가 죽었지, 참.’
투란은 기억의 끝자락에 희미하게 떠오른 부분에 입술을 살짝 뒤틀고 말았다.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그는 복수를 마치고 나서, 텅 비어 버렸다.
하급 몬스터 로드로 그냥 우왕좌왕했고, 어느 사냥에 섭외되어 갔다가 죽었다.
그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어린 투란은 깜짝 놀랐지만…… 어른들은 그저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감정에 휘둘려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몬스터 헌터에게서는 오히려 흔한 일이기도 하다고.
몬스터를 상대하려 한다면, 결코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때 투란이 새겨놓은 다짐이었다. 강력한 몬스터를 얻었는데, 지우다니…… 어림도 없다고 단단히 다짐했었다.
휘이이, 쿠르릉!
바람이 벼락이라도 부르는 듯한 광경이 저편에서 터졌다.
숲 한 곳이 우르르 풀잎처럼 한쪽으로 쏠렸고, 허공을 뒤트는 바람결을 탄 듯한 나뭇잎, 자잘한 가지들이 큰 소용돌이처럼 흔들거렸다. 그 속에서 한순간에 번쩍거리는 번개가 스쳐 가기도 했다.
그 광경을 보며, 곁을 스쳐 가는 세찬 바람결을 느끼면서 투란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생각했다.
‘블랙 버블은 일단 좀 더 생각해보고…… 이 숲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어?’
―없다. 이 숲의 바람이 저렇게 거칠게 날뛴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없어. 신기하군, 늘 가지런하고 정돈된 바람이 길을 따라 움직인다는 아빈가의 숲인데…… 과연 이 산맥의 영향력인가…….
‘잠깐, 가지런하고 정돈된 바람이 뭘 따라 어째?’
투란은 흘려내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짚었다.
―응? 원래 아빈가의 숲에는 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잖았나? 요정의 일족만이 걷는 감춰진 길 같은 것도 있고…… 아무튼, 아빈가의 숲에서는 바람조차도 그 길을 존중하듯이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그 길이 끊어졌는데도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하면?’
―뭐?
‘바람이 그렇게 정해진 길로 다닌다는 거…… 그거 마법 아냐?’
―어? 어라?
‘아빈가의 숲에는…… 무지하게 크고 거대한 마법이 있다고 하잖았어? 사원은 그 마법의 비술인가를 간직했다고도 한 것 같은데?’
―그래, 분명히 그랬지.
‘그 마법이랑 성령목이 관계있어?’
―아빈가의 사원에서 만들어지는 마법도구는 모두 성령목과 관계가 있지! 애초에 이 숲을 이룬 바탕에 자리 잡은 것도 가장 신성한 한줄기 나무였다고…… 아! 이렇게 숲 전체를 흔드는 마법이라면…… 젠장!
‘이 숲, 또 어디로 날아간다고 할 참이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쌍욕을 흘리면서 빼놓은 부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소리 없이 크게 외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재빠르게 손발을 움직여서 투란은 다시 나무 꼭대기 가지를 손으로 잡은 채로, 가능한 한 높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거센 바람결은 숲의 곳곳에서 엮이고…… 어느새 몇 곳에서는 회오리가 기둥처럼 서고 있었다. 그 회오리 기둥이 선 곳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거기서 뿜어나오는 바람결이 모이는 중심지를 찾아보니…….
―블랙 버블을 삼키고 발아(發芽)해 버린 성령목이 사원의 힘을 건드리고 있어! 젠장, 저렇게 파괴된 폐허에도 아직 사원의 마법이 살아남아 있었다니!
잠깐 드라고니아의 말을 되뇌면서 투란은 티끌만 한 희망을 담아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어?”
―알 게 뭐냐! 제어되지 않은 마법이라면…… 더욱 혼돈에 가까워지기 위해 이 산맥의 더 깊은 곳으로 끌려갈지도 모르지!
산맥 밖, 혹여나 엘페룬이란 말을 기대했던 투란에게는 공포가 절규하는 듯이 느껴지게 하는 대답이었다.
‘나, 정말 여기 싫어!’
드레이크의 기억까지 합쳐지면서, 투란에게는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멀리서 숲의 가장자리가 보였고……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숲 너머로 초원의 풍경이 유난히 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