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2)
커허헝!
갑작스럽게 귀를 간지럽히는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란은 반사적으로 구덩이 주변을 둘러봤다.
푹 파인 곳에 앉은 채라서, 구덩이 밖의 풍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바람결이 구덩이 위를 스쳐 가는 것을 느끼며, 투란의 코가 찡긋거렸다.
상당히 높은 곳을 지나치는 바람에서 떨어져 내리는 듯한 냄새의 부스러기가 투란의 지각(知覺) 속으로 스며왔다.
‘뭐지? 이 냄새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낯설지는 않은 냄새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 맡아본 듯도 하고…… 저 개 짖는 듯한 소리와 연결하면 뭔가 떠오를 듯도 한데…….
투란은 일단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몸의 회복을 보다 강하게 염원하며 구덩이 가로 올라섰다.
초원의 바람, 흔들리는 풀이 큰 파도처럼 움직이는 광경이 먼저 보였다.
냄새는 그 파도의 곳곳에서 껑충거리고 튀어 오르거나 키 큰 풀을 밟아 눕히며 내달리는 녀석들을 바로 지목했고, 그놈들 틈새에서 개처럼 짖어대는 소리가 간간이 우렁차게 울려 나왔다.
‘히엔나!’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면서, 보다 분명히 몬스터의 모습을 확인했다.
가물거리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개와 늑대의 어중간한 모습이라는 짐승, 혹은 고양이도 약간 섞였다고 하는 짐승이라는…… 춤추는 산맥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평원 쪽에서는 야생의 무리를 자주 볼 수 있다고 하는 하이엔나라고 하는 짐승이 몬스터가 된 형태라고 했다.
그 머리통의 모습은 완전히 하이엔나와 히엔나 사이에 차이가 없지만, 히엔나는 두 발로 뛰거나 앞발을 팔이나 손처럼 휘두르기도 하고 덩치가 건장한 사람의 체격을 넘어선다는 점이 하이엔나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엔나? 에나가 아니라 엔나라고 해? 그것참, 말이 어렵구만. 우리 동네에서는 하이에나라고 하고 히에나라고 하는데…… 뭐, 아무려면 어때. 아무튼 그놈이라니까, 그놈이 좀 이상한 게, 어떤 놈은 앞발이 크고 어떤 놈은 뒷발이 커. 앞발이 큰 놈은 그게 완전히 손처럼 생겨먹었는데, 고양이 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모습으로 굉장히 힘이 세더라고. 뒷발이 큰 놈은 진짜 높이 뛰드만!”
투란은 히엔나에 푹 빠져 있는 몬스터 로드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 종류의 몬스터 에센스를 꾸준히 모아서, 그 종류에서 꺼낼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최고로 끌어내려 하는 몬스터 로드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했었다. 히엔나의 앞발, 뒷발을 최고로 성장시킨다면 사람으로서는 팔다리를 동시에 아주 강화된 형태로 얻을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하지만 그 시도는 여러 차례의 실패를 거쳤다고 했다.
앞발 혹은 뒷발만 크고 강한 히엔나의 에센스는 이상하게 한쪽으로 몰리며 양쪽을 동시에 키우는 것이 어렵다고 했었다. 뭔가 몬스터의 본능이 아예 다른 방향으로 발현된 상태인 듯하다고…….
그런데 히엔나에 꽂혀서 히엔나만 쫓아 평원을 헤매던 한 몬스터 로드가 마침내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앞발, 뒷발이 크고 거대한 히엔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허리가 튼튼한 히엔나, 흔히 네 발로 뛰는 몬스터 하이엔나라고 하는 놈을 잡았고 세 부위가 균형을 갖추고서야 겨우 그가 원하는 몬스터 히엔나의 형상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놀림감이 되었다.
‘트리니티(Trinity)라고 놀렸었나?’
트리니티는 어느 신전의 교리 중에 있다는 말이었다.
세계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 창조와 보존, 멸망의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절대의 신성(神聖)인지 뭔지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를 가져다가 히엔나의 몬스터 로드를 놀려먹은 것이다.
그 교리에 등장하는 마침내 세 가지가 합쳐져서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는 대목을 가져다가 히엔나의 세 부위 에센스를 얻어 제대로 된 몬스터 히엔나가 되었다고 말이다.
굉장한 노력과 끈기로 완성된 몬스터 로드의 형상이 그렇게 놀림감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히엔나의 형상이 아무리 강해져도, 그랑츄의 형상보다 약한 탓이었다.
‘차라리 그랑츄를 품종별로 따로 모으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는 말이었지.’
육체의 강인함, 괴력 따위를 따져보자면 그랑츄가 훨씬 강하고 컸다.
유일하게 히엔나가 더 우세한 점이 있다면, 뒷발이 크고 강한 경우에 그랑츄보다 높이 멀리 뛴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뒷발의 힘이 그랑츄보다 강하기 때문은 아니었고, 그저 히엔나의 체격이 그랑츄보다 작은 탓에!
‘아, 어지간한 그랑츄보다는 살짝 빠르기도 하다고 했나?’
기억을 더듬는 채로 투란은 아직 멀리 보이는 히엔나의 무리를 보고, 다른 방향을 둘러봤다.
아빈가의 숲은 사라졌지만 모든 숲이 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뾰족한 산이 꽤 멀리 보였고, 그 산기슭에서 번져 나가는 듯한 숲의 풍경이 아직 상당히 남아 있었다. 초원과 그 숲의 사이로는 조금 황량해 보이는 크게 빈자리가 끼어든 듯이 보였지만…….
숲과 들판, 멀리 보이는 산.
투란은 일단 구덩이 주변으로는 숨을 구멍이 따로 없고, 높은 나무도 없다는 것만 확실하게 파악했다.
‘바람은 이쪽으로 부니까, 냄새가 저리 가지는 않을 테지만…… 저것들 눈이나 귀가 꽤 밝다고 했었지?’
아마도 투란이 여기 떨어지는 꼴을 보고 더 멀리서 뛰어오는 중일 수도 있었다. 호기심이 꽤 많은 데다가 여기저기 들이대는 습성으로도 유명한 것이 히엔나였으니까. 그러다가 이빨이 박히고 씹어 삼킬 만하다 싶으면 일단 삼키고 보는 것도 저 히엔나의 좋지 못한 버릇 중 하나라고 했다. 몬스터 헌터가 히엔나 사냥을 쉽게 할 수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라 했고.
커허헝! 키에엥!
‘정말 고양이가 섞였나?’
어느새 꽤 다가온 몇 마리의 울음소리가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개 짖는 소리가 나는가 했는데, 살짝 고양이 목젖 울리는 소리도 낸다?
천천히 구덩이에서 벗어나 단단히 버티고 서는 자세를 취하면서 투란은 다가오는 히엔나를, 혹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땅 밑의 경우도 생각하면서 그랑츄의 형상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몸은 자연스럽게 반응했고, 늑대의 팔과 트롤의 팔도 자기 자리를 찾는 것처럼 그랑츄의 허리, 다리와 함께 형성되었다.
‘뭐, 상관없겠지.’
처음 생각으로는 순수하게 크고 강한 그랑츄만을 형성할까 하던 투란이었다. 하지만 막상 형성하다 보니, 이게 어쩐지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차피 그랑츄보다 약한 느낌은 없는 두 팔이기도 했고…….
히엔나에게 질 것 같은 느낌이 없었기에 투란은 조금 편안하게, 혹여나 저 히엔나를 잡아먹겠다고 땅속에서 불쑥 튀어나올 어떤 놈이 있더라도 놀라지 않을 작정으로 선 채로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투란을 향해 다가온 히엔나는 대략 열 서너 마리 정도 되었다.
저 무리의 수는 더 많은 듯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모습으로 우뚝 선 채로 버티는 투란에 대해 경계심을 품은 것처럼 뒷발이 큰 놈들이 앞장서면서 중간에 앞발이 큰 놈들을 서넛 끼운 꼴로 투란의 주변을 맴돌았다.
투란은 문득 그중 두어 마리가 다른 놈들과 다르게 네 발로 총총걸음을 뛰는 꼴을 봤다. 저 두어 마리는 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그저 덩치 큰 하이엔나로 여겨질 듯한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 때문에 몬스터가 아닌 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어라? 이거 다 때려잡으면 나도 트리니티 히엔나?’
갑자기 든 생각이 투란을 쓴웃음 짓게 했다.
트리니티 히엔나, 그렇게 알려진 몬스터 로드가 놀림감이 되었던 이유는 세 가지 형태의 히엔나 에센스를 하나로 합쳤음에도 그랑츄 한 마리를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랑츄 한 마리를 통째로 얻은 몬스터 로드는 어쨌든 간에 히엔나의 몬스터 로드보다 강했다. 트리니티 히엔나라고 해도 상관없이!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선 그랑츄의 체격…… 히엔나가 체격이 큰 사람 정도라 해도 2미터를 넘지 못하는 반면에 그랑츄는 일단 2미터하고 3, 40센티미터를 더 올라가는 키와 그 키를 작달막하게 보이게 하는 큰 몸집이었다.
평원에서는 종종 오우거라고 착각도 한다는 몬스터가 바로 그랑츄…… 게다가 투란이 얻은 그랑츄는 그중에서도 몸이 단단하기로 소문난 잿빛바위의 일족이었으니 이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물러설 필요가 전혀 없었다.
히엔나의 발톱이나 이빨은 사람의 뼈와 살을 단숨에 끊어놓을 정도라고는 하지만, 잿빛바위의 그랑츄에게는 흠집 하나 내기 힘들다!
이러한 여유는 문득 투란에게 다시 몸 상태를 점검하게 했고, 소울테이커에 대한 생각을 살짝 떠올리게도 했다.
소울테이커는 투란의 영혼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그런 일 없다.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형성된 몬스터가 몬스터 로드의 영적 구조체를 망가뜨릴 수는 없어. 그러니까, 우선 눈앞의 녀석들부터 제대로 상대하라고. 여기는 아직 산맥의 깊은 곳이다. 아무리 히엔나라 해도…… 강철을 씹는 놈이 간혹 있으니까 말이다.
갑작스러운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였다.
‘어? 그래?’
투란으로서는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는 도움말이었다.
한편으로는 안심시켜주는 말이기도 했으니…….
카륵! 커허헝!
투란은 등 뒤로부터 높이 뛰는 기척과 함께 네 발로 바쁘게 움직이던 히엔나 한 마리가 달려드는 것을 느꼈다. ‘악마의 심장’이 지닌 지각 범위 내였고, 그 움직임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쥐고 더듬는 것처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한 마리가 그렇게 뒤를 덮치는 사이에 앞쪽에서 얼쩡대는 히엔나 녀석들도 슬슬 눈치를 보는 꼴이 역력했다. 뒤에서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녀석에게 놀라 돌아서거나 하면 저 녀석들도 투란의 등을 노리고 덮칠 낌새였다.
그래서 투란은 늑대의 팔을 뒤로 돌려 후려치는 동작으로, 몸만 반쯤 돌린 채로 앞을 노려보는 자세를 유지하며 히엔나의 목덜미를 잡았다.
케엥!
히엔나의 점박이 무늬와 누런 털 사이로 늑대의 붉은 털뭉치가 꽂힌 듯한 모습이 투란의 앞쪽으로 내밀어졌다.
주춤거리면서 눈치를 보던 히엔나 몇 마리가 바로 뒤로 튕겨가는 동작으로 멀어지는 꼴이 보였다. 뒷발 둘로 버티고 선 채 움직이는 모습에는 상당한 탄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늑대의 발이라야 쫓으려나.’
투란은 자신이 지닌 발 중에서 제법 빠르고 민첩한 붉은 늑대, 그림울프의 두 다리가 아니고서는 이 히엔나 녀석들을 쫓아가 잡기가 좀 곤란하다는 것을 느꼈다. 날아서 쫓아가는 것은 별개로 둔다면, 달리기로 쫓기에는 꽤 빠른 몬스터…….
살짝 투란의 혀가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한 마리 골라잡아서 삼킬까?’
강인하다는 점에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저 빠르기와 반사적인 탄력이라면 한번 생각해볼 만하잖은가?
순간, 투란의 생각하는 낌새가 고스란히 전해진 듯이 히엔나 무리가 몇 걸음씩 더 물러서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마치 호락호락 너에게 잡아먹힐 것 같냐고 한마디씩 따지는 듯한 으르렁거림과 몸짓이었는데…….
콰아앙! 크워워워!
투란과 히엔나 무리 사이의 긴장감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커다란 폭음과 괴성이 저 멀리서 밀려왔다.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히엔나 무리가 한꺼번에 튀어 오르면서 눈앞에서 멀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손에 쥐고 있던 한 마리 히엔나가 축 늘어지는 것을 느끼고 놀랐다.
“응?”
목덜미를 쥐고 있는 히엔나를 내려다보니, 목이 꺾여 있다?
―너무 힘을 줬군.
“헐?”
드라고니아의 친절한 지적처럼, 조금 전에 투란도 놀라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결과 히엔나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이놈은 네 발로 뛰는 놈이라 허리만 튼튼한데……!
인상을 찌푸린 채로 히엔나를 옆으로 던지면서 투란은 다시금 울려오는 폭음, 괴성의 방향을 노려봤다.
‘도대체 뭐야?’
투란이 궁금해하는 것과 다르게 히엔나 무리는 그쪽으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은 듯, 이미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반대방향으로 냅다 도망쳐 버렸다.
굽이치는 언덕이 시야를 가린 탓에 구체적으로 뭔가 보이는 바는 없었다.
조금 더 인상을 구긴 채로, 투란은 그랑츄의 발을 움직이면서 히엔나 무리를 쫓아내는 폭음, 괴성이 몰려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걸음으로, 나중에는 제법 힘찬 뜀박질로 투란이 멀어져갔다.
초원의 산들거리는 바람이 목뼈가 부러진 히엔나를 스쳐 갔고, 곧 땅속이 꿈틀거리면서 작고 가는 지네 떼가 올라왔다. 지네 떼는 죽은 히엔나를 뒤덮었고, 히엔나는 곧 피와 살이 사라진 뼈의 잔해만 남겨졌다.
뼈의 잔해만 남은 히엔나를 향해 다시 멀리서 폭음과 괴성이 밀려왔다.
콰앙, 쾅! 크워어어어!
‘언덕만 넘으면 보이겠는데!’
점점 커지는 소리를 느끼면서 투란은 몸을 낮췄다.
저기 뭐가 있든 간에 보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거기다 한 몸 던져 넣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곧 투란은 굽이치는 언덕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민 채가 되었고…… 몬스터의 격전(激戰)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