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3)
‘카프리곤? 두 마리나!’
투란은 숨을 죽인 채로 눈을 가늘게 했다.
바로 눈가가 거뭇한 색채로 물들어 갔고, 투란의 시야가 깨끗하고 맑게 물들어버렸다. 더불어 눈썹 위로 번져 올라간 거뭇한 색채가 울퉁불퉁하다가 작고 선명하게 뿔수리의 눈을 뜨기도 했다.
그런 채로 엎어진 투란에게서 거의 이, 삼백여 미터 거리를 둔 채로 두 개의 형체가 격돌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검은 놈, 카프리곤 맞지?’
―맞아, 털빛깔과 뿔, 덩치가 조금 더 큰 놈이로군.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관찰한 형체를 보다 명쾌하게 판별해줬다.
투란은 조금 투덜거리는 기분부터 느꼈다.
‘저 녀석, 숲이랑 같이 날아갔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덩치 큰 놈이랑 싸우네?’
소울테이커의 석상 드레이크를 부숴 놓고 갔던 놈, 누런빛 털의 카프리곤이 시커먼 어둠을 두른 듯이 그림자 가닥이 나풀거리는 털빛의 카프리곤과 맞서고 있었다.
콰아앙! 크워어어!
뿔과 뿔이 마주치는 순간에 폭음이 터져 나왔고, 격돌 후에 갈라선 두 놈이 서로를 향해 마구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 여파는 두 마리 카프리곤의 주변을 갈아엎어 버리는, 정말로 땅가죽을 대패처럼 밀어버리면서 두껍게 파내며 퍼뜨리고 있었다.
돌도, 풀밭도 덕분에 완전히 밀려나간 채로 두 마리 카프리곤은 뭔가 휑해진 빈 터에서 뿔을 겨누고 격돌하는 모습이었다.
‘귀가 아파!’
투란은 고개를 숙이면서 귀를 두 손으로 막아야 했다.
머리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폭음은 그 자리의 땅가죽을 갈아엎는 여파와 함께, 땅을 울리고 귀를 헤집으며 속까지 울렁거리게 할 지경이었다. 아주 바짝 붙거나, 한 이십여 미터 앞도 아닌 거리인데…….
―투란, 구경하러 온 녀석들이 많다.
드라고니아가 이 와중에 경고하는 말을 꺼냈다.
‘어? 아, 저것들…….’
투란은 시야 구석에 슬쩍 보이는 저편 언덕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형체들을 흘깃했다. 두 마리 카프리곤이 일으키는 이 소란에 히엔나 무리는 도망쳤지만, 투란처럼 구경하려는 듯이 온 녀석들도 꽤 있었다.
맞은편에는 사람 눈에는 울긋불긋한 그림자로 보이지만, 뿔수리의 눈에는 선명한 붉은 살갗의 그랑츄인 패거리가 있었고 왼쪽 멀리 길게 늘어진 초원의 굴곡 정점으로는 이제야 어슬렁거리며 하얀 뿔처럼 생긴 뭔가를 흔들대는 이상한 놈이 하나 보였다. 오른쪽 먼 풍경 속에서는 길게 자란 풀밭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콰콰쾅! 꾸에에에!
카프리곤 두 마리가 다시 뿔을 마주하며 격돌했다.
이번에는 재빨리 두 손으로 귀를 꽉 막으면서, 투란은 귓속도 ‘악마의 심장’에서 자아낸 줄기로 채웠다. 하지만 그래도 폭음의 여파는 땅울림을 통해 머리로 스며오는 것이 아닌가!
―저 뿔이 내는 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냐. 기본적으로 드레이크의 파동장벽과 동일한 거야.
‘어?’
―뿔의 진동(震動)을 통해 일으키는 파문이 카프리곤의 몸에 간섭해서 생체파동을 일으킨다. 자기 몸만이 그 고유진동에 호응하고 주변의 나머지는 모조리 밀어내고 으깨버리는 능력이지. 카프리곤마다 일으키는 고유진동이 다르기 때문에 한 놈은 반드시 죽는 기교적인 능력이다. 뿔을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고유진동으로 상대방이 내는 파동을 상쇄하지 못하는 놈이 지는 거야.
‘헐? 그럼 이게 드레이크의 비늘이 만드는 그거…… 파동장벽도 뚫는다는 거야?’
―비늘에 닿게 놔둔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뭔가 냉소적인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곧 투란은 무슨 뜻인지 깨닫고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 자란 드레이크, 살날이 많이 남은 아랄 드라클이라면 저렇게 요란 떠는 놈이 비늘 가까이 오는 것부터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높이 날아오르든가, 아니면 불꽃으로 밀어내려 하든가…… 아주 급하다면 발톱 가득히 파동장벽을 채워 잡아 찢어놓으려 할 것이다.
고르고니아에게 당해서 반시체 꼴이 된 경우가 아니라면, 드레이크가 저런 카프리곤의 접근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저런 놈에게서 멀어지려 할 것이고…… 가까이 보이면 일단 먼저 불을 뿜어내고 볼 것이다. 즉…….
‘카프리곤도 드레이크랑 친하게 지내려 할 것 같지는 않은데?’
투란은 서로 멀리 쳐다보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제 갈 길 가는 드레이크와 카프리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콰아앙! 끄아앙!
다시 한 번 격돌이 일어났고, 그 폭음 속에서 울려 나오는 괴성의 의미가 투란에게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쟤가 괜히 소리지르는 게 아니구나!’
―그렇지. 자신의 몸에 맞춰진 고유진동을 증폭시키려 하는 발성(發聲)이다. 뿔의 진동을 담은 상태로 내지르는 포효라서, 저 입 가까이에 있다가는 바위나 쇠도 으깨질 거야.
드라고니아의 설명을 들으며, 투란은 귀를 좀 더 꼭 막고 몸을 더 단단하게 조였다. ‘악마의 심장’ 줄기가 몸 곳곳에서 두꺼워지며 아예 소리를 차단하려는 듯이 견고하게 그물을 쳤다. 땅울림이 전해오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지만, 결국 투란은 뿔의 격돌에서 흘러나오는 파괴적인 음향을 어느 정도 차단하고 흘려냈다.
그렇게 해서 여유가 생기자, 곧 투란은 의문을 느꼈다.
‘한데 산양 머리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죽이겠다고 싸우기도 하는구나.’
―친하게 지내?
조금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물음이었다.
‘응. 왕국의 군단병들이랑 싸우는 녀석들, 그거 산양 머리를 한 놈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그 녀석들도 나름대로 무슨 군단처럼 서로 뭉쳐서 싸운다던데?’
―사티로스 이야기였나.
살짝 한숨 쉬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꾸였다.
투란은 그 말투에 조금 의아한 듯이 되묻는다.
‘사티로스? 그냥 사티르라고 하지 않나?’
―‘사튀르’라고도 하지. 이곳저곳에서 좀 많이 이상한 꼴로 튀어나오는 통에 부르는 이름에도 변화가 많다. 그놈들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신화에서는 사티로스라고 한다. 카프리곤이랑은 전혀 다른 기원을 지닌 몬스터다. 그러니 성질도, 능력도, 생김새도 차이가 당연히 있고…….
‘어? 그 사티르…… 사티로스도 산양 머리라던데? 저렇게 안 생겼나?’
귀를 꼭 막은 채로 다시 두 마리가 격돌하며 일으키는 폭음과 괴성을 차단하면서, 뿔수리의 눈동자로 주변을 싸악 훑어보는 것도 잊지 않으며 투란은 왕성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뭐야, 사티로스 본 적은 없나?
‘응. 걔네는 말만 들었어. 나 살던 마을 쪽으로는 얼씬도 안 하는 놈들이라…….’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그 마을 주변에는 사티로스가 꺼리는 놈들이 많을지도 모르니까. 무리를 짓지 않으면 싸울 낌새가 없는 놈들이기도 하니…… 뭐, 생김새의 차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산양 머리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놈들은 목 아래에서 배꼽 위까지 인간의 몸통을 하고 있다. 팔이나 손은 완전히 손톱 좀 두꺼운 인간으로 보여. 가슴이나 등짝도 잔털이 조금 굵은 인간의 몸 그대로지. 배꼽 아래로는 길고 두툼한 털가죽인 채로 뒷발 둘을 다리 삼아 우뚝 선 산양의 꼴이지만.
‘아, 저 녀석은…….’
설명을 들으면서 투란은 생김새의 차이를 깨달았다.
카프리곤은 두 발로 서고, 두 팔을 휘두른다. 하지만 몸통은 두껍고 긴 털에 촘촘히 덮인 모습이었다. 팔뚝의 굵기라든가, 기본적인 생김새가 두 발로 걷고 두 손을 쓰는 사람과 같다지만…… 저 털가죽에 덮인 모습만으로도 이미 사람의 몸으로 볼 수는 없었다. 무슨 병이나 저주에 걸려 몸이 털로 가득 채워진 것과도 다르게, 저 털가죽은 윤기를 머금고 잔잔한 파문이 흐르는 형상이니까.
‘정말 넌 아는 게 많네. 난 그냥 사티르, 사티로스란 놈 중에서 혼자 다니는 놈이라 카프리곤인가 싶었는데…… 아, 근데 말이야. 저기 저 하얀 더듬이를 까닥대는 놈은 뭔지 몰라? 굉장히 신기해 보여. 꼬리가…… 여우 꼬리 같은데 여럿 달려 있잖아?’
투란은 슬슬 자신과 멀어지는 쪽으로 움직여, 이제는 확실히 3백 미터 너머에서 격돌하는 카프리곤을 보다가 왼쪽 멀리…… 카프리곤보다 훨씬 더 먼 몇 킬로미터 언덕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색다른 형상에 대해 물었다.
뿔수리의 눈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평선을 가린 언덕에 살짝 흰 점이라도 박혔나 싶었을 형상이었다. 하지만 아빈가의 여우가 지녔던 끝자락이 갈라진 듯했던 꼬리를 닮았으나, 아예 엉덩이부터 좍좍 갈라진 듯한 꼬리를 여러 가닥 살랑이며 절대로 여우 머리라 할 수 없는 동글동글한 머리통에 뿔인지 더듬이인지 알 수 없는 토끼 귀 같은 것을 둘 달고 살랑대며 카프리곤의 격돌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하는 놈이었다.
그 주변에는 꿈틀거리는 풀밭도, 붉은 살갗을 반짝이는 그랑츄도 없었다.
아니, 아예 다른 기척 자체가 없는 듯이 고요해 보였다.
심지어 카프리곤이 일으키는 땅울림조차 그 근처에서는 수그러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은 너무 멀어서 폭음과 괴성이 가다가 사그라드는 것이지만…….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가까운 곳에서 격돌하는 카프리곤 두 마리보다 더 투란의 신경을 긁을 지경이었다.
때문에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물어본 것인데…….
―모르겠는데? 머리통 반을 여는 꼴로 입을 벌리고 하품까지 하는군! 저런 놈에 대해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딱 부러지게 처음 보는 놈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래? 흠.’
투란은 일단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마음 놓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기는 해야겠지만…… 일단은 음향을 차단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욱 세게 격돌하며 파동을 한층 더 짙게 뿜어내는 카프리곤 쪽부터 조심해야 했다. 여차하면 저 패여 나간 땅가죽처럼 살이 갈라지고 밀려버릴 듯한 진짜 위협이었으니!
‘아, 저것들 더 못 참나 보네.’
투란의 눈길은 맞은편에서 본격적으로 덩치를 드러내는 붉은 그랑츄 무리를 향했다. 카프리곤의 소란에 이끌려 왔지만 잠깐 구경만 하는 듯했던 붉은 그랑츄 무리였다. 하지만 그 격돌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위험하게 느껴진다면…….
그워억! 그워! 워어어어어!
그랑츄는 저렇게 전투태세로 돌변해서 위험을 향해 돌격한다!
사람이라면, 보통 짐승이라면 이런 위협적인 상황 앞에서는 일단 피할 길부터 찾기 마련이었다. 피할 수 없을 때 맞서 싸우는 것이 제대로 된 살아 있는 자의 본능이니까.
그랑츄는 아니었다.
몬스터라 불리는 그랑츄는 뭔가 자신을 위협하면, 그 위협을 향해 진격했다.
누가 먼저 박살나든가 끝장을 보려 드는 것이 그랑츄가 지닌 본능이었다.
‘와아, 저게 그랑츄의 돌격이란 거구나!’
투란은 헌터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감탄했다.
2미터하고 3, 40센티가 넘는 거구들이 발가락으로 땅을 파올리며 뛰어오는 느낌, 어지간한 사람이라도 수십은 되는 그런 거구를 앞에 놓게 되면 일단 어떤 식으로든 놀랄 수밖에 없을 광경이었다.
때문에 그랑츄 수십 마리가 돌격을 시작하면 사티르 수천 마리가 흩어진다고 했다. 사티르, 사티로스는 사람의 몸통만 지닌 것이 아니라 그 체격도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조금 큰 정도였으니까…… 사티로스 입장에서도 저런 그랑츄의 돌격을 보면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느낌을 받을 터였다.
저 돌격에 먼저 걸리는 사람, 혹은 사티로스 한둘 혹은 수십이 일단 죽고 시작하는 싸움이 될 것이 너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격돌 중인 카프리곤은 사티로스가 아니었고, 사람도 아니었다.
카프리곤 두 마리는 자신들을 향해 열심히 뛰며 전투의 포효를 질러대는 그랑츄 따위에게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콰아앙! 크워어어!
더욱 맹렬한 폭음과 괴성을 질러대며 서로에게 몰입하는 듯한 카프리곤.
그 두 마리를 향해 짓쳐 들어가는 그랑츄의 붉은 살갗은 이글거리는 듯한 광택으로 물든 듯이 보였고…… 불꽃처럼 흩날리며 뼈를 드러내고 피안개가 되며 사라져갔다.
“에? 엥?”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던 손으로 앞을 짚으며 고개를 들고, 몸도 슬쩍 일으키고 말았다.
―뭘 기대한 거냐? 드레이크의 파동장벽이랑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했잖아. 그걸로 땅이 저리 패이고 있는데, 거기 뛰어든 그랑츄가 어떻게 될 줄 알았어?
‘그, 그렇다고 그냥 저렇게 뛰다가 갈려서 죽이 되냐!’
투란은 뿔수리의 눈과 자신의 눈, 두 가지 시야를 겹치며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따질 수밖에 없었다.
카프리곤은 딱히 그랑츄 돌격대에게 뭔가 하지 않았다.
카프리곤 두 마리는 그저 자신들의 싸움에만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 싸움에 끼어들 듯이 가까이 간 그랑츄가 살갗부터 갈리며 피안개를 뿜어내고 뼈가 깨져 날려간다!
물론 그렇다고 앞에 선 놈들이 박살났다, 겁이 난다 물러서자……라고 할 그랑츄도 아니었다. 덕분에 연거푸 피안개를 뿜어내며 잘게 갈린 꼴로 붉은 그랑츄가 사라져가는 광경이 아주 선명하다!
‘저 녀석들, 저런 힘으로 아직 계속 쿵쾅거리며 버틴 거야?’
새삼 투란은 카프리곤이란 몬스터에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땅거죽을 걷어차듯 파내는 것이 아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