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7)
퍼억!
‘이크?’
멀리서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투란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타격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강화된 감각 덕분에, 저 멀리서 카프리곤에게 채여 날아간 붉은 그랑츄의 상태를 고스란히 느낀다고 착각할 지경이기도 했다.
다른 무리보다 앞서서 카프리곤에게 들이대던 붉은 그랑츄는 대충 날린 뒷발질로 걷어차여서 배와 가슴으로 이어지는 함몰(陷沒)을 드러내며 세차게 튕겨나갔고, 그 뒤를 이어 무리 중의 다른 녀석이 카프리곤의 목뒤을//목뒤를 잡겠다는 듯이 뛰는 광경이 이어졌다.
그랑츄 무리가 소문난 그대로 카프리곤에게 일족이 갈려나가든, 채여서 뒹굴든 상관없이 몬스터다운 흉포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달려드는 광경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고, 대체 저게 뭔 짓인지 보는 사람에게 의문을 느끼게 할 상황이었다.
‘덫을 놓기는 놓은 거야?’
투란으로서는 미끼로 쌓아둔 것처럼 보였던 고기 더미가 정말 덫을 놓을 작정으로 놓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거기 쌓아뒀는데 카프리곤이 뛰어내렸고 붉은 그랑츄의 무리는 그저 침입자를 격퇴하려 하는 것인지 아리송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덫이었다면, 준비된 미끼를 사냥감이 무는 순간부터 뭔가 있어야 할 듯한데……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벽처럼 늘어선 모양새를 살리기 위해서 카프리곤을 마그마의 호수 안으로 밀어넣으려는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투란이 보기에는 그랑츄 무리는 붉게 달아오른 살갗을 과시하면서 그냥 막무가내로 카프리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마치 걷어차이고 싶어서 안달 난 얼간이 한 떼거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카프리곤은 고기를 씹으면서, 그 날렵한 발차기에 주먹질을 섞어 날려주는 중이고.
‘대체 왜 저러지?’
어느 순간, 투란은 짙은 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붉은 그랑츄가 사는 곳이 이런 유황 냄새 짙은 마그마가 흐르는 곳이라 말로만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랑츄는 그랑츄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잿빛바위 일족의 그랑츄가 붉은 늑대, 그림울프를 몰며 사냥했을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보여야 했다. 한데 저 붉은 그랑츄 무리는 투란이 봤던 잿빛바위 일족 그랑츄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냥 때려달라고 들이대는 거 같은데? 뭐 아는 거 없어?’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기에 드라고니아를 향해 묻는 투란이었다.
물론 드라고니아 역시 또렷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없다. 붉은 그랑츄의 생태에 대한 기록 중에서 카프리곤과 연계된 부분은 없어. 뭐, 이런 마그마 지역에 사는 놈들에 대한 기록도 없기는 하군. 아무리 붉은 그랑츄라 하더라도 화산지대 가까이에 머물지, 화산 안이나 다름없는 이런 곳에서 저런다는 기록은 없었다.
‘흠.’
투란은 잠시 눈을 찌푸린 채로, 카프리관과 붉은 그랑츄 무리가 이상한 꼴로 다투는 주변을 자세히 둘러봤다.
검은 재가 날고, 간간이 불이 붙은 듯이 불티를 휘날리는 광경과 펄펄 끓는 것처럼 달아오른 용암 거품을 뿜어내는 마그마의 호수, 단단해 보이는 절벽과 혹독한 환경이 교차된 곳이라는 증거처럼 풀 한 포기, 이끼 한 무더기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즉, 저곳에는 몬스터를 미치게 만드는 괴상한 나무나 풀도 없다는 뜻인데…….
‘저 고기에 문제가 있나?’
투란은 저곳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으로 미끼로 쌓아뒀던, 덫이 뭔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저곳으로 카프리곤을 끌어들였던 고기 더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아 있을 때는 별거 아니지만, 죽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마수라든가 몬스터도 꽤 있다고 하잖던가.
―그냥 물소라든가, 초원의 멧돼지 따위로 보인다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강화된 시각 속에 얼핏 잡힌 고기 더미의 살아 있을 때를 추측하면서 딴지를 걸고 있었다.
‘뭘 잘못 먹어서 저런다는 것 말고 다른 답이 없잖아!’
조금 투덜대는 시늉을 하며 투란은 일단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저곳에 정말 뭐가 있는지, 눈으로 보이는 것과 멀리서 느끼는 것으로 알 수 없다면 그 근처에 가서 보는 방법만 남은 셈이었다. 그러니 일단 가까이 갈 작정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뭐냐, 멀리서 돌아갈 작정이야?
드라고니아가 조금 어이없어하듯 묻고 있었다.
투란은 마그마 호수를 향해 들어갈 작정이 전혀 없는 듯, 초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언덕을 따라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그러기 싫다고. 냄새도 그렇고 저 열기도 그렇고…… 재수 없어서 이 근처에서 저 붉은 녀석들이랑 엮이면…… 재미도 없어 보여.’
약간 심드렁한 대답을 하면서도 투란의 눈길 한 가닥은 툭탁대는 카프리곤과 붉은 그랑츄 무리를 향해 있었다. 눈가 옆에 검게 물든 살갗 속에서 뿔수리의 눈동자 하나가 볼록하니 그쪽으로 고정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러 개의 눈동자를 동시에 사용하는 아르고누스의 능력을 드러낸 셈이었다.
―날개 쓰기가 그렇게 싫으냐?
드라고니아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이는 투란을 살짝 찔끔하게 했다.
‘빨리 가서 할 일도 없잖아?’
―또 키린의 수작에 걸려서 땅에 처박힐까 걱정하는 거야?
‘바위가 녹아 흐르는 곳이거든? 거기서 버티는 검은 바위 바닥이라고! 땅도 아니잖아! 여태 잘 걸어왔는데 뭘 새삼 날아가, 날아가긴!’
툴툴대면서 투란은 잿빛바위 그랑츄의 발로 힘차게 언덕의 흙과 검은 바위 틈새를 밟으면서 걸어 나갔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꽤 답답하게 한 모양이었다.
―느림보 걸음이구만! 다리 굵은 히엔나라도 잡았으면 몇 배는 더 빨랐을 거 아니냐!
‘응? 아니, 나한테는…… 어라?’
히엔나를 생각하는 순간, 문득 투란은 그때 자신의 기억을 되새겼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히엔나를 잡을 수도 있었다.
트리니티 히엔나라는 다소 어이없는 짓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지 않았을까?
이미 잿빛바위 그랑츄를 지녔기 때문에? 단지 그 때문이었을까?
‘뭔 생각을? 못해도 그랑츄보다 빨리 뛰는 놈들이었는데? 왜?’
‘악마의 심장’이 보다 깊이 맥동하면서 그 사냥하기 딱 좋을 때에 투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를 되짚어줬다.
‘늑대의 다리가 있다.’
어느 순간에 뇌리를 스쳐 갔던 생각이 흐릿한 풍경을 헤치고 나오듯이 또렷하게 투란의 마음속에 다시 나타났다.
“아. 이런…….”
짤막한, 별로 후회되지 않는 그 순간이 겨우 투란의 마음속에서 정리되었다.
푸훗 하는 웃음이 저절로 투란의 입가에서 새 나갔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하며 부르는 소리가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좀 더 힘차게 걸음을 내디디면서, 투란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정리된 생각을 드라고니아를 향해 소리 없이 말한다.
‘웨어울프…… 아, 네가 그림울프라고 했던 붉은 늑대가 있잖아. 내가 삼킨 녀석 말이야. 그게 달이 가득 찬 밤에 달빛을 받으면 힘이 막 차오르면서 변해. 내가 삼킨 거는 팔꿈치 정도? 팔뚝 정도에서 끊어진 조각이었는데, 달이 뜨는 밤에는 온몸으로 그 힘이 막 퍼지면서 몸이 통째로 변할 것 같았어. 이상해서 나름대로 억제는 했지만 그 번지고 퍼지는 힘을 많이 써먹었지. 근데 히엔나를 보니까…… 알았던 것 같아. 달이 가득 차오른 밤에 한번 완전히 붉은 늑대로 변신하면, 난 완전한 붉은 늑대…… 그림울프를 얻는 거였어. 아마 그 때문에 트리니티 히엔나에게 별 흥미를 못 느낀 것 같고…… 뭐, 지금은 흐리지만 낮이고 달도 없으니…… 당장은 없지만, 언제라도 얻을 수 있어서 히엔나를 그냥 지나친 모양이야.’
―그랬나…….
조금 모호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꾸했다.
다시 실실 새는 웃음을 입가에 건 채로 투란은 저 먼 곳을 보며, 가까운 곳에는 자신의 눈동자를 굴려보며 덧붙여 말한다.
‘그래, 그랬어. 그러니까 좀 궁리해봐야지. 늑대의 발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야. 달빛이 가득한 밤에 연구 좀 해봐야지.’
그 전까지는, 그 후라도 굳이 빨리 뛸 때가 아니라면 투란은 자신이 이 잿빛바위의 그랑츄 발을 자주 쓸 거라는 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발은 바닥이 뭐든 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을 수 있는 잿빛바위이니까!
자신이 삼켜서 품은 몬스터에 대한 자각(自覺)이 새삼 투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때, 저편에서 툭탁대던 꼴을 그만둔 듯한 격렬한 충돌과 함께 이전과 다른 괴성이 높이 울려 퍼졌다.
퍼어억! 크워어어!
‘응? 저건…… 저게 뭐야!’
뿔수리의 눈을 보다 크게 뜨면서, 투란은 검은 바위 선반에 새로 등장한 거체(巨體)의 몬스터를 봐야 했다. 굵게 바닥을 디뎌 가던 투란의 발은 저절로 멈춰졌다. 그리고 드라고니아도 그 몬스터의 형상을 향해 어이없고 믿을 수 없다는 한마디를 토해낸다.
―파이로-칸(Pyro-Khan)?
‘뭐?’
뭔가 아는 듯한 한마디 이름이었기에 투란이 더 자세한 설명을 재촉하려는 순간, 저쪽에서 보다 강력한 포효가 터졌다. 조금 전에 투란의 주의를 확 잡아끌었던 형상이 쿵쾅거리며 선반이 흔들거리게 하는 걸음을 디디며 내는 소리였다.
크워어어!
콰앙!
바위를 깰 듯이 디딘 발 구름 소리가 울렸고, 검은 카프리곤의 몸이 높이 날아올랐다. 바위는 깨지지 않았다. 대신 카프리곤의 윤기 나는 검은 털빛이 수십 미터 위로 튀어올랐다.
크워엇!
다시 뜨거운 포효가 피어났고, 카프리곤을 향해 불로 이뤄진 손아귀가 허공을 가르며 흘러나갔다. 덩달아 3미터를 넘어 거의 4미터에서 조금 모자라 보이는 거체도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카프리곤의 비상(非常)한 도약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 또한 가볍게 2, 30미터 높이에 이르는 도약이었다.
투란은 그런 도약과 함께 카프리곤을 향해 뛴 높이에 맞먹는 불로 된 손아귀를 날린 몬스터, 드라고니아가 파이로-칸이라 부른 놈을 황당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야,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그 생김새는 투란에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오러 몽거를 떠올리게 했다.
불꽃을 휘날리는 시뻘건 몸통, 붉은 그랑츄의 살갗보다 더 짙은 붉은 광채가 거의 마그마의 빛깔과 닮아 있는 체격의 형상은 딱 오러 몽거랑 닮아 있었다. 불꽃이 너울거리며 그 몸을 감아 둘러 털을 대신하는 듯한 모습과 색만 다른 그런 느낌이 짙었다. 좀 더 자세히 보려 하면, 뭔가 세세한 부분에서 더 많이 다를 듯도 하지만.
―오러 몽거의 변종(變種)이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느낌을 보다 확실하게 해주는 말을 꺼냈다.
‘뭐? 변종?’
투란은 막연한 감이 맞았다는 시원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가슴을 채우는 것을 느껴야 했다.
‘시커먼 놈 말고 오러 몽거가 또 있다고?’
변종, 그 한마디 속에는 그런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랑츄의 수많은 품종, 이 또한 뭔가 원형이라 할 만한 그랑츄가 있고 거기서부터 변해 나왔다고 하는 말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어떤 몬스터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변화시키며 번식하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변종은 이전보다 약해지는 경우보다 더 강하고 까다로워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저건 어비셜 볼텍스가 아닌, 엘레멘탈 볼텍스로 이뤄진 오러 몽거야. 붉은 살갗에 불꽃이 튀어 오르는, 불꽃의 엘레멘탈을 강제로 휘감는 소용돌이를 지닌 오러 몽거…… 그래서 불꽃의 왕족 같다고, 파이로-칸이라 이름 지어졌다. 형성되는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고, 이런 마그마가 범람하는 지역에서 가끔 보이기는 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아마 너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놈일 거다.
‘그래, 듣도 보도 못한 놈이긴 하지! 그런데 저게 어디서 나온 거야? 저놈이 있던 부근에는 저런 덩치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전혀 없다고!’
―투란, 괜히 흥분하지 말고 잘 지켜봐. 어쩌면…… 지금 녀석이 어떻게 형성된 몬스터인지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갑작스럽게, 차가운 강철 같은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던진 소리였다.
이는 분명하게 투란의 들뜨면서 의혹으로 달아오르려던 생각을 확 누르는 효과를 발휘했다.
‘형성? 알게 된다니?’
―지켜봐.
단호한 말에 투란은 일단 지켜봤다.
푸릇, 크륵!
콧김을 뿜어내며 카프리곤이 두 발로 허공을 휘젓듯이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굵고 큰 불의 손아귀가 두 발 근처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한창 날아오르던 카프리곤의 자세는 흐트러졌고, 뒤이어 날아온 두 번째 불길의 압력에 뛰어오른 힘마저 소모된 듯했다. 결국 카프리곤은 떨어져 내려야 했다. 카프리곤을 향해 두 손을 휘둘러, 거대한 불꽃 손아귀를 날린 덩치도 함께 떨어져 내렸다.
선반 위에서 우왕좌왕하던 붉은 그랑츄 무리가 카프리곤과 파이로-칸을 가리지 않고 워워,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카프리곤이 발길질, 주먹질로 이를 맞이했다. 잔뜩 귀찮아하는 태도로, 그러나 사정 봐주는 것 없는 강력한 타격이었기에 붉은 그랑츄가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꼴이 보였다. 어떤 놈은 그대로 마그마의 호수로 떨어졌고, 어떤 놈은 동족을 찍어 누르는 파이로-칸을 향해 날아갔다.
파이로-칸은 그랑츄를 가슴 아래 두는 듯한 체격을 바탕으로 큰 말뚝이라도 박듯이 주먹질로 찍어누르는 중이었다.
크워어어어!
새로운 파이로-칸이 몸을 일으키는 광경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