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8)
‘저거 분명히!’
투란은 두 번째 파이로-칸을 바라보며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조금 전에 첫 번째 파이로-칸의 주먹질에 머리통이 그대로 몸통 속으로 박힌 채로 나뒹굴었던 붉은 그랑츄, 그 녀석이 다시 일어서면서 파이로-칸이 되어 있었다. 붉은 그랑츄가 변해서 파이로-칸이 되었다!
―저게 뭐야!
투란보다 더 놀란 소리를 드라고니아가 냈다.
‘야…….’
투란으로서는 어이없어서 뭐라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파이로-칸이라는 이름부터 꺼냈고, 아주 잘 안다고 했으며 조금 더 지켜보자는 소리도 조금 전에 했다! 그런데 막상 일이 벌어지자, 어째서 더 크게 놀라고 있단 말인가!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막힌 기분 따위는 알 바 아니란 듯이 자신의 놀란 기분을 더 토해낸다.
―그랑츄가 변이를 해서 오러 몽거라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에?’
문득 투란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랑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랑츄가 다른 뭔가로 변한다는 소리는 투란도 들은 바가 없었다. 워낙 다양한 녀석들이고 그 특이성이 외모에서 바로 드러나며 집단을 형성하는 몬스터……. 하지만 정말 변신하거나 다른 뭔가가 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붉은 그랑츄만 저러는 거 아닐까?’
불쑥 생각난 바를 우선 꺼내보는 투란이었다.
―그, 그렇겠지?
아주 자신감 없는 소리가 드라고니아의 대답이었다.
어쩐지 전혀 예상도, 상상도 해본 일이 없는 일을 바로 앞에서 보고 듣는 바람에 넋이 나간 사람의 모습이 저절로 드라고니아의 몰골로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 낌새는 잘 지켜보자고 할 때가 한 만 년쯤 전인 것처럼 아련하게 느껴지게 하잖는가!
도대체 드라고니아는 뭘 잘 지켜보자고 한 것일까?
‘아, 세 번째 녀석이다.’
투란은 일단 저편의 광경을 조금 더 자세히 봐야 했다.
푸릇, 크르륵!
거침 숨결과 함께 카프리곤의 발이 거칠게 바닥을 긁었다.
단단한 발굽에 파인 검은 재가 피어오르는 듯이 보였다.
카프리곤의 심상찮은 낌새를 느낀 듯, 파이로-칸 셋이 크륵대는 목젖울림과 함께 서로를 견제하며 방향을 반쯤 돌렸다. 순간 카프리곤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검은 절벽을 배경으로 검은 털빛의 카프리곤이 마그마의 호수를 향해 뛰어든 듯 광경이었는데, 카프리곤은 절벽을 타고 달리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산양의 머리에 사람의 두 손이 까닥거리면서 절벽을 짚었고, 발굽과 각질로 이뤄진 두 발이 재빠르게 절벽을 박차며 움직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나가는 길목을 가로막은 파이로-칸을 피해서 움직이는 걸로 보였고, 파이로-칸이 뛰어내려서 막지 않는 한 그냥 절벽 아래편을 타고 그대로 나올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이로-칸 하나가 괴성과 함께 아래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마치 가볍게 연못의 물을 푸는 듯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손길과 함께 뿜어져 나온 불길은 큰 손아귀가 되었고, 절벽을 타고 움직이는 카프리곤을 퍼올릴 듯한 기세로 움직였다.
그 손짓이 파이로-칸 서로를 자극한 듯했다.
다른 두 파이로-칸 사이에서 돌연 괴성이 연이어 울렸고, 카프리곤도 거기에 반응하듯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어?”
투란은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느릿하게 보이게 했다.
‘악마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카프리곤이 번개처럼 솟구치는 광경이 흔들거리는 풍경과 함께 보였다.
어째서인가, 딱 카프리곤의 주변 풍경은 윤곽이 겹쳐진 듯했고 흔들거리는 꼴로 보였는데 그 움직임이 아주 빨랐다. 카프리곤이 두 손으로 절벽을 잡아챘고, 자신을 퍼올리려 하는 불길의 손아귀를 두 발로 내지르듯이 밟았다.
불길의 손아귀는 단순히 불꽃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것처럼 카프리곤의 발판이 되었고, 카프리곤의 몸이 쏘아진 듯이 솟구치는 광경이 이어졌다.
파이로-칸의 불로 된 팔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그 불길을 관통하듯 치솟은 카프리곤은 자신이 떨어져 내렸던 위쪽의 절벽에 달라붙는가 싶더니, 그 절벽을 잡아채고 밟으며 뛰어 달아났다.
가파른 절벽 따위는 평지랑 별 차이가 없다는 듯, 어느새 두 발로 신나게 뛰어오르는 카프리곤의 모습은 아래편에 나타난 파이로-칸 몇 마리를 아주 우스운 꼴로 보이게 했다.
사나운 개가 새를 쫓는 꼴이 딱 저럴까?
‘저거, 동족하고는 목숨 걸고 싸우더니…….’
투란에게는 저 꼴이 꽤나 어이가 없었다.
저 검은 카프리곤이 전력을 다하며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운 것은 결국 누런 털빛의 카프리곤뿐이 아닌가. 다른 몬스터가 좀 사납거나 쉽지 않으면 정말 빨리 떨쳐버리고 도망치려 하는 놈이 왜 동족과는 그리 열심히 싸웠을까?
카프리곤은 투란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절벽을 올라갔고,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돌출된 선반 같은 절벽, 카프리곤을 유인하듯이 고기 더미가 쌓여 있던 곳에는 이제 서로를 마주 보며 괴성을 올리고 서로 주먹질을 할 것으로 보이는 파이로-칸 세 마리와 그보다 작지만, 그만큼 사납게 보이는 붉은 그랑츄 무리가 보였다.
붉은 그랑츄 무리는 그 와중에도 사납게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던 셈이다.
하지만 아주 잠시 뒤, 붉은 그랑츄의 남은 녀석들은 바닥에 뭉개지거나 마그마의 호수 위로 튕겨 날아갔다. 결국 세 마리째 말고는 새로운 파이오칸이 등장하지 못한 채로 돌출된 절벽의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투란은 검은 장벽처럼 보이는 절벽 전체, 그 중간에 돌출부로 이어지는 절벽을 다시 훑어봤다. 멀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그 절벽이 달라붙거나 밟고 뛸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힘으로 밟고 찍어 누른 거야. 카프리곤의 다리 힘은 그 정도는 된다.
‘아, 다리 힘…….’
투란은 뒤늦게 카프리곤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엄청나게 높이, 멀리 뛰는 놈이었잖은가.
그런 놈이니까 어쩌면 저 정도는 당연한지도…….
크워어어!
카프리곤이 사라진 다음, 붉은 그랑츄 무리마저 치워진 그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방해꾼이 없어졌다고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괴성을 올리며 파이로-칸 세 마리가 서로를 향해 불길로 된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해대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니, 쟤들은 또 왜 저런데?’
투란에게는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 그랑츄였을 때는 나란히 서 있던 녀석들 아니던가.
한데 파이로-칸이 되고 나더니, 그딴 거 모르겠다는 듯이 붉은 그랑츄 무리를 마그마 호수로 내몰고는 이제 서로 싸운다?
그 격돌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라든가 그동안의 친분에 대한 고려 따위는 전혀 없는 듯한 사나움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두 마리가 우연히 동시에 내지른 주먹질 발길질이 한 마리에게 꽂혔고, 두 마리는 어쩌다 제대로 때린 것을 기념하듯이 한 마리를 득달같이 들이박았다.
난데없이 두 마리에게 협공당한 꼴이 된 한 마리 파이로-칸은 꽤 멀리 날려졌고, 마그마의 붉은 광채가 일렁이는 호수 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그마 속에서 파이로-칸은 잠깐 허우적대는 몸부림을 보였다. 거품이 솟았고, 출렁이는 마그마의 거품이 잠깐 피어나는가 싶었지만 결국 파이로-칸은 마그마 속으로 가라앉았다.
‘헤엄칠 곳은 아닌가 보네.’
투란은 왠지 무거워 보이는 마그마의 출렁임을 보고 느끼면서 생각했다.
―녹아 흐르는 바위다. 헤엄은 무슨! 바로 불타 없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대단하긴 하네, 근데 파이로-칸은 마그마 속에서 못 버텨? 이런 곳에서 산다고 하지 않았냐?’
―글쎄, 애매하군. 저게 마그마에 상처 입을 정도는 아닌 줄 알고 있는데.
‘버티는 거냐!’
문득 생각난 대로 그냥 던진 말에 대해서 나온 대답에 투란이 놀랐다.
척 봐도 쇠가 녹아 흐르는 것 이상으로 뜨거운 마그마 덩어리 속에서 버틸 수 있다니…… 깊지 않았다면 그냥 기어나왔을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크워어어!
사라진 한 마리 따위는 금세 잊게 해주겠다는 듯, 남은 두 마리가 서로를 부여잡고 엉겨붙으며 싸우는 꼴이 보였다. 불길이 손아귀가 되고, 발이 되어 크게 치솟았고 머리 모양으로도 치솟았다. 그렇게 패고 차고 물어뜯는 괴기한 불길의 형상이 연이어 절벽을 검은 배경으로 삼아 치솟은 결과, 두 마리 파이로-칸은 뒤엉긴 채로 마그마의 호수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박살내겠다고 날뛴 탓으로 보였다.
잠깐 멍하니 그 꼴을 보다가 투란이 아예 소리를 내서 중얼거린다.
“헤에…… 과연, 저래서 쉽게 보기 힘든 몬스터구만. 나타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깔끔하게 없어지네?”
뭔가 드라고니아도 어이가 없는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런 독특한 환경에서 출현해서는, 나타나기가 무섭게 저리 용암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면 보기 힘든 놈인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이는 곧 투란을 갸웃하게 했다.
‘옛날에는 어디서 봤던 거래?’
저리 빨리 사라지는 놈을 관측하고, 그 능력을 나름대로 파악했다는 것이 더 놀랄 일 아닌가?
―인페르노의 재앙 때 나타났었다.
‘뭔 재앙?’
투란은 낯선 이야기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고요해진 저편 마그마의 풍경 속에 느닷없이 피어난 검은 송곳을 보며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끝에 파이로-칸이 꿰어진 채로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이건 뭔가 당연히 놀라야 하는 의무 같잖은가!
―저게 뭐야!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토했다.
그래서 투란은 한숨처럼 짧은 한마디를 흘릴 수 있었다.
“야…….”
보이는 광경은 너무 선명해서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마그마의 붉은 호수 곳곳에서 솟아 있는 시커먼 송곳처럼 보이는 크고 검은 암석(巖石), 그것이 떨어져 내린 파이로-칸을 꿰뚫으며 표면 위로 올라온 것뿐이었다.
그 광경을 놓고 대체 뭘 뭐냐 따진단 말인가?
드라고니아는 뭔가 광분한 것처럼 빠르게 투란의 뇌리로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파이로-칸은 일종의 오러 몽거라고 했잖아! 네가 지닌 놈처럼 어비셜 볼텍스를 지니지는 않았지만, 엘레멘탈 볼텍스를 지녔다고! 그 힘으로 녀석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불의 형상을 빌려 확장하거나 그려낼 수가 있다. 그 힘 때문에 외부에서 가하는 충격의 대부분을 불의 파동장벽을 이용해 걸러낼 수 있는 놈이라고! 저 검은 바위가 아무리 날카롭고 강하다고 해도 저렇게 파이로-칸을 관통할 수는 없어! 고작 저따위에 뚫릴 놈이라면…….
‘저 검은 바위처럼 보이는 것도 몬스터란 소리야? 저 바위가 녹아 흐르는 뻘건 것 속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더 길어지고 끝날 리가 없는 소리처럼 느껴졌기에 투란이 툭 끼어들어 물었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잠깐 침묵하게 했고, 곧 살짝 질린 소리를 더듬거리면서 내게 했다.
―뭐? 저것도 몬스터…… 설마 그럴…… 아니, 만약 그렇다면…… 젠장, 투란 이 근처에서 벗어나라, 당장!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자신이 발을 디딘 자리를 내려다봤다.
검은 돌이 간간이 깔려 있고, 짙고 푸른 이끼가 묘하게 섞인 부드러운 흙이 그 틈새를 메우고 있는 풍경에는 변함이 없었다. 저쪽의 붉게 달아오른 마그마의 호수가 보내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카프리곤이나 붉은 그랑츄가 있는 절벽 돌출부랑 비교하면 상당히 시원한 곳이 분명했다.
파이로-칸이 꿰어진 채로 떠 있는 붉은 호수 표면과는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 곳이었다.
‘나 아직 경계도 안 넘었거든!’
그런 채로 투란은 걷고 있었다.
날개를 쓰지도 않았고, 잿빛바위 그랑츄의 살갗을 믿고 이 시커먼 빛이 맴도는 붉은 호숫가를 가로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예감이었지만, 어쨌든 저 검은 재가 바람을 타고 휘휘 날아다니는 풍경 속으로 들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굳이 벗어나고 어쩌고 할 상태가 아닌데, 드라고니아는 대체 영문도 모를 상황을 혼자 파악하고 난리 치고 있잖은가.
이런 투란의 기분과 생각을 뒤늦게 눈치챈 듯, 드라고니아가 슬쩍 낮은 말투로 덧붙인다. 약간 무겁고 신중한 느낌을 담은 소리였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각균열(地殼龜裂)이 드러난 곳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이 수 킬로미터의 용암호수 전체가 어떤 몬스터의 둥지일 수 있다고. 절대로 깊이 들어갈 생각하지 마라!
그냥 흘려들으려 했지만, 이는 분명히 투란을 움찔하게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투란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되묻는다.
‘아, 굉장한 놈이네? 지평선을 채우고 내가 몇 달이나 헤매며 사냥했던 늪만큼이나 큰 놈일까?’
티탄 클래스랑 비교할 만하냐 말은 곧 드라고니아를 조용하게 했다.
투란은 여기서 더 대답을 재촉할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상태를 고려해서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파이로-칸에 대해서 물을 것이 몇 가지 더 있었으니까.
투란이 더 묻지 못한 까닭은, 느닷없이 새하얀 기척이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카프리곤을 쫓아가던 그 하얀 녀석이 불과 서너 걸음 사이를 둔 채, 투란 곁에서 괴이한 눈동자를 들이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