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0)
‘그런데, 이 주변은 뭐지?’
참고 기다리는 와중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주변을 파악해내는 소울테이커의 감각을 깨우치면서 투란은 의아해했다. 분명히 자신이 하얀 녀석에게 습격당한 곳은 언덕 위였고, 마그마의 흔적은 아주 멀리 봐야 하는 곳이었다. 눈이 좋아서 가까운 곳처럼 보기는 했지만, 투란은 결코 마그마의 붉은 빛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호숫가 근처에서는 아주 멀리 있었다.
한데 지금 느낌은 어쩐지 서 있던 언덕의 경계보다 마그마의 호수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있잖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에서 주변을 감지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범위가 기대보다 좁았기 때문에 투란은 정확하게 어디에 소울테이커의 돌덩이가 굴러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푸석거리는 것이 주변에 가득한 느낌이었고, 웅덩이 비슷한 땅바닥에 걸쳐진 듯한데…… 이런 묘한 자리에서 햇살을 가득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푸석대며 나풀대는 것에 덥히기라도 하면 파묻힌 꼴이 되어 햇살은 전혀 받지 못할지도 모르잖는가.
―조급해하지 마라. 아무 일 없잖나.
드라고니아가 뭔가 다독이는 듯, 위로하는 듯 건넨 말이었다.
막연하게 꼼짝도 않고 기다리는 꼴이 된 투란으로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투란은 묻기로 했다.
‘심심하잖아. 아, 그 이야기 좀 해줘. 파이로-칸이 나타났을 때 있었다는 그 재앙 말이야. 음, 그리고 돌이 펄펄 끓는 이곳이 대체 어떤 녀석의 둥지란 거지?’
바로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투란도 재촉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에 하기로 정한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으니까.
투란이 기다리기로 한 기척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낸다.
―인페르노(Inferno)의 재앙, 그건 연옥의 겁화가 출현했던 이야기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영혼마저 태워 없앤다고 알려진 지옥의 불길이 형상을 갖추고 이 세상에 나타난 사건이었지. 마법의 극점에 이르렀다는 헬플레임조차도 능가하는 인페르노 앞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불길이 바위에 닿으면 바위가 녹아 흘렀고, 그 열기는 땅을 뒤집고 갈아엎을 정도로 무시무시했고, 그 때문에 일어난 열화의 폭풍조차도 걱정할 겨를도 없을 지경이었다더군. 그래서 그 당시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연금술사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자들 모두가 거기에 대항할 방법을 찾는 데 전력을 기울였지. 드라코눔의 우리 일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인페르노를 막기 위해서, 보다 더 인페르노에 대해서 파악하기 위해서 쉼 없이 정찰을 하다가 만났다. 인페르노가 남긴 열화의 폭풍 속에서 미쳐 날뛰는 기괴한 오러 몽거…… 파이로-칸이라 부르게 되었고, 오러 몽거의 변종이라고 밝혀낸 녀석을 말이야. 물론 그 당시에는 파이로-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인페르노의 여파로 인한 변종 정도로 취급하고 인페르노를 해결한 다음에 봐야 할 녀석에 불과했으니까. 뭐, 결국 나중에도 파이로-칸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녀석은 인페르노가 남긴 자취 같은 열화의 폭풍을 추격하다가, 인페르노를 만났고 사라졌거든.
‘헐!’
조용히 듣던 투란은 결국 어이없어 소리 없이 탄식해야 했다.
결국 그 인페르노인가 뭔가랑 같이 나타났을 때, 아 저런 놈도 있구나 하고 그냥 넘어갔다는 소리 아닌가!
―그 뒤에…… 인페르노의 재앙이 끝난 후에야 파이로-칸에 대해 분석이 끝났다고 한다. 인페르노가 아니었다면, 파이로-칸도 만만치 않은 난동을 부렸을 거라는 점도 분명해졌지. 하지만 파이로-칸은 그 뒤로 쉽게 볼 수 없었다. 나타난다 해도 화산과 용암이 넘쳐나는 곳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파이로-칸이 인페르노의 영향력을 받아서 출현했다고 추측했지. 그랑츄가 저리 변이할 거란 가정(假定)은 전혀 한 적이 없어. 그러니까…… 인페르노가 사라진 후에 몇 차례 파이로-칸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그저 인페르노의 잔해 같은 것에서 영향을 받아 나타났구나 하고 넘어갔다. 보이더라도 춤추는 산맥 안쪽, 이런 깊은 곳의 용암 지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이니까 더 신경 쓰지 않기도 했고…….
‘흠,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도시라든가, 너네가 사는 곳에서는 만날 일도 없고 걱정할 일도 거의 없어서 그냥 저런 놈이 있구나, 하고 넘겼단 말이네?’
―그렇지. 오러 몽거, 네가 삼켰던 그 흰 털에 검은 놈이 유명한 까닭은 그게 도시의 성벽을 부수고 다니거나, 여기저기서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놈과 맞닥뜨려서 쉽게 상대할 수 없어서 주의를 기울인 거고. 원래 몬스터가 그렇잖나.
‘그렇기는 하지.’
투란은 씁쓸하게 동의했다.
사람들에게 유명한 몬스터란 대부분 사람이 사는 곳을 침범하는 놈이기 마련이고, 쉽게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몬스터라 하더라도, 지나가던 사냥꾼 화살 한 방에 죽고 끝나는 놈이라면 그저 이름 모를 짐승이구나 하고 넘기고 말 뿐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몬스터라면 정말 주의해서 상대해야 한다는 것, 몬스터 헌터에게는 꽤나 중요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운 녀석들도 있었다.
만난 자가 모두 죽어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괴물.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이 위험한 까닭은 그런 괴물이 많기 때문이라잖던가.
투란은 조용히 소울테이커의 상태를 살폈다.
아직은 완전히 회복되려면 모자란 느낌이 강했다.
‘그러면…… 마그마 속에서 검은 바위로 파이로-칸을 꿰뚫은 놈은 뭐야? 알고 있는 것 같던데.’
기다리는 시간을 심심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투란은 물음을 이어갔다.
―그놈이 그놈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이라면…….
‘야, 그놈이 뭔데!’
살짝 설명을 꺼리는 드라고니아의 낌새에 투란이 바로 후벼 파듯 물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대답이 한숨 쉬는 말투로 나온다.
―마그마 로드(Magma Lord).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아마, 인간 마도사들도 그리 부를 거야. 그 정보는 우리 쪽에서 상아탑으로 보냈다고 하니까.
‘로드?’
뭔가 상당히 심하게 광폭한 느낌을 받으며 투란이 웅얼거려봤다.
몬스터 로드, 마그마 로드.
비슷한 형식의 이름이 비슷한 뜻을 의미하고 있다면…….
―처음에는 인페르노의 잔해로 여겨졌다. 인페르노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마그마가 들끓어 오르면서 열풍의 핵이 남은 거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 예상했지. 하지만 인페르노의 재앙 이후에도, 열원(熱源)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용암을 뿜어냈다. 여기 이곳처럼, 마그마가 고이고 뭉쳐진 기괴한 지역이 생겨난 거야. 뜨거운 불의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도 여전히 녹아내린 바위가 굳어지지 않은 채, 땅의 틈새를 비집고 자리 잡은 채로 용암의 강을 만들려 했다. 그때서야 우리는 이게 파이로-칸처럼 인페르노를 계기 삼아 나타난 새로운 몬스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뭐, 그랑츄가 변이한 것이 파이로-칸인 줄 몰랐으니까. 파이로-칸이 인페르노의 영향 아래에서 태어난 놈이라 여겼으니까, 또 뭔가 비슷하게 불의 정령이 왜곡된 괴물일지 모른다고 추측한 거야. 추측하는 과정이라든가 전제는 잘못되지 않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백 년 동안, 겨우 서넛 정도의 자취였지만 결국 드라코눔의 마도사들은 알아냈다. 마그마 로드는 마그마를 기반으로 힘을 쓰는 몬스터라고 말이야. 인페르노는…… 그저 마그마 로드가 지상으로 출현하게 된 계기일 뿐이다. 마그마 로드는 지하 깊은 곳, 마그마가 바람처럼 멋대로 흐르는 지각 깊은 곳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놈이었지.
‘땅속 깊은 곳에 사는 놈이라고?’
투란은 다른 부분을 전부 흘려내고 한 가지에 주의했다.
거의 사람이고 뭐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땅속 깊은 곳의 괴물이라면, 그런 녀석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아도 사는데 별 지장 없잖은가? 굳이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는 녀석이란 소리인데…….
―네가 듣고 싶다고 했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슬슬 빼는 기분을 느낀 듯이 울컥하는 소리를 냈다.
‘그야, 여기는 땅속이 아니잖아. 그래서, 이게 만약 그 마그마 로드가 땅 위로 기어나온 것이라면…… 이렇게 용암호수를 만든 다음에 어떻게 하는데? 마구 용암을 퍼뜨려서 티탄 클래스까지 자라기라도 하나?’
문득 투란은 이 용암이 계속 번져 나가면서 들과 산을 용암으로 채우는 광경을 상상했고, 결과를 굳이 볼 것도 없이 그런 과정만으로도 상당한 재앙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아니다. 마그마 로드는 어느 수준의 범위까지 용암지대를 확장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냥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다.
‘엥? 꼼짝도 하지 않아?’
―그래, 그 덕분에 수백 년에 걸쳐서 겨우 서넛을 발견하고도 충분히 파악할 만큼 관찰하고 연구해낸 거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는 놈이고, 주변 환경을 어느 정도 뒤바꾸기는 하지만, 그것도 역시 어느 수준에서 멈춘다. 딱 이 주변 정도가 마그마 로드가 자리 잡고 변화시킨 환경의 끝이지.
‘새끼를 치거나, 쪼개져서 새로운 마그마 로드가 되거나 하지 않는단 소리야? 여기서 나가지도 않고?’
―그래. 하지만…… 춤추는 산맥의 지형은 변한다. 어떤 지역을 안으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어떤 지역은 밖으로 밀어내기도 하지. 그 덕분에 브로큰 킹덤의 경계 안으로 밀려들어 간 마그마 로드가 하나 있었다. 인간의 도시 근처는 아니었고…… 바르발로스 숲이라고 일컬어지던 마수가 가득 넘쳐난다는 곳이었지.
‘바르발로스? 들은 적 있어! 무슨 신전이 있고, 엄청나게 희귀한 마수들이 날뛰는 숲이라서 몬스터도 그 안에서 버텨내지 못하는 굉장한 숲이었다던데…… 어라? 그 숲은 옛날에 불타 없어졌…… 그게 마그마 로드 때문이었다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셈이지. 마그마 로드가 거길 침범해서 날뛴 것은 아니지만, 춤추는 산맥의 변화하는 지형이 마그마 로드가 자리 잡은 영역, 그 둥지를 바르발로스 숲으로 밀어넣었다. 숲과 용암 지역이 뒤엉기면서 숲이 사라지고 만 셈이다. 그것도 벌써 한 이, 삼백 년 전 이야기로군.
‘마수 사냥꾼들에게서 숲 이야기는 들었어. 바르발로스의 마수 사냥꾼이라면, 마수 사냥꾼으로서는 최고라는 뜻이라고. 하지만…… 그 숲이 몬스터 때문에 사라졌다는 말은 못 들었어. 게다가 바르발로스 숲은 브로큰 킹덤의 경계이기도 했다던데…… 그럼, 그 숲으로 밀려간 마그마 로드는 어떻게 되었는데?’
―아이스 베일이라고 들어봤나?
‘응? 아, 불꽃과 얼음! 파이어 그릴처럼 다른 것에 깃들어서 날뛴다는 정령 괴물이잖아. 유명하지!’
투란은 금방 대답할 수 있었다.
파이어 그릴 베어가 바로 키린이 삼켰다는 불꽃의 괴물이 아니던가!
―그래, 아이스 베일은 다른 뭔가에 깃들어서 날뛰지. 그 성질을 이용해서 바르발로스의 숲, 그때 아직 남아 있던 곳을 몽땅 얼어붙게 했다.
‘뭐?’
―마도사,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거의 다 동원돼서 마법을 이용한 온갖 조성생명체를 만들어냈지. 거기에 아이스 베일을 깃들게 해서 마그마 로드의 둥지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해서 마그마를 굳게 했고, 결국 마그마 로드까지 얼어붙게 했지. 일단 얼어붙게 되면, 마그마 로드는 힘을 잃게 되니까. 그렇게 얼어붙은 마그마 지역은 다시 산맥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고 하더군. 물론 바르발로스 숲도 함께 사라졌다.
‘괴물을 괴물로 물리쳤다는 소리야?’
투란은 사냥꾼 사이의 격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두 마리 괴물이 싸워서 한 마리가 죽어준다면, 사냥할 수 있는 한 마리만 남게 된다는 상황이야말로 몬스터 헌터가 좋아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간혹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덫을 준비하기도 한다잖던가.
그걸 엄청나게 많은 마도사들이 모여서 시도했고, 그걸로 물리쳤다는 이야기라니…… 뭔가 재미있게 들렸다.
―그렇게 재미난 일은 아니야, 투란. 그때…… 아이스 베일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활용한 탓에 거기 휩쓸려서 피해를 입은 경우도 적지 않아. 그리고 그 피해자 중에서…… 거의 이백 년 가까운 시간을 날뛴 몬스터가 된 이도 있으니까.
‘마그마 로드를 물리친 것뿐 아니라, 그냥 아이스 베일의 몬스터가 된 경우도 있다는 거야?’
투란은 흠칫해서 제대로 다시 물어야 했다.
드라고니아가 긴 세월 너머의 고뇌를 되새기듯이 대답한다.
―그래, 프로즌 킹이라 불린 자가 그중에서 유명할 거야. 설산 메를랑이라고 들어봤나? 프로즌 킹은 결국 사냥당했다고 하던데…… 눈보라로 덮인 산, 메를랑이 그가 둥지를 틀었던 곳이다. 아마 메를랑은 아직도 눈 덮인 채일 거다. 거기가 원래 바르발로스 숲이 있던 곳이기도 하고…….
‘잘 몰라. 근데 그렇게 아이스 베일에 당할 정도였다면, 차라리 몬스터 로드를 불러 움직이는 게 좋지 않았을까? 몬스터 로드라면 아이스 베일을 삼키고 힘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문득 떠오른 생각을 흘리면서 투란은 몸의 감각을 점검했다.
서서히 팔다리, 배가 울렁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소울테이커가 몸의 재생을 거의 완료했다는 신호인 듯이.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상태를 잠시 엿보는 듯이 침묵하다가 대답을 꺼낸다.
―몬스터 로드를 마그마 로드 앞에 그런 식으로 떠민다는 것은 그냥 죽으란 말이야, 투란. 마그마 로드가 뿜어내는 열기 앞에서 아이스 베일이 깃들어 괴물이 된 녀석들이 엄청나게 많이 녹았다. 괜히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거의 다 동원되는 큰일이 된 게 아니라고. 하나둘 정도의 아이스 베일 정도로 어떻게 안 되는 일이라서 숫자로, 물량으로 때려박아서 겨우 얼어붙게 했거든. 여기 이곳보다,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한 놈이었으니까.
‘그런가.’
투란은 납득했다.
그리고 돌 껍질을 깨며 기지개를 켰다.
소울테이커의 알이 깨지며, 눈과 귀에 주변이 다시 훤히 보이고 들리는데…….
“어?”
시커먼 재가 찰랑거리며 불티를 휘날리는 광경이 가장 먼저 껍질을 깬 투란을 맞이해주잖는가!
화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