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1)
Chapter 37. 블랙 애시
검은 재는, 나타난 그대로 뭔가가 완전히 타서 시커멓게 남은 잔해로 보였다. 그런 검은 재가 둥글게 뭉치면서 그 속에 불티가 튀었고, 둥근 모양을 따라 번지며 작은 불꽃이 형태를 갖춰갔다.
투란은 처음, 그 형태가 뭔가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고 금방 그게 땅바닥에 사람을 그리라고 하면 동그라미부터 그렸던 어린 애들의 장난질과 닮은 모양인 것을 알아차렸다. 말하자면 이 검은 재는 허공에서 춤을 추며 뭉치며, 속이 뻥 뚫린 모양 속에 불티를 휘날려 불꽃을 채우면서 조그마한 그림 장난을 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투란, 터진다!
드라고니아의 경고는 투란이 느낀 바를 그대로 말로 뱉어낸 것이었다.
검은 재의 윤곽 속에 자리 잡은 불티는 불꽃이 되었고 윤곽을 채우면서 점점 뜨거워지더니, 그대로 터졌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뭉친 것이 그렇게 터졌고, 투란은 반사적으로 팔뚝을 들어 올리며 불꽃의 열기와 튀는 불티를 막아냈다.
‘이 정도는 견딜 만……?’
작은 불꽃이 팔뚝에서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나름대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 생각은 그 뒤에 번져가는 불티, 주변을 가득 메운 채로 스륵거리며 흐르는 광경인 것처럼 보이며 피어오르는 검은 잿 더미를 보는 순간 사라져야 했다.
작게 번져가는 듯했던 불티는 잿 더미 속에 작은 인형 같은 윤곽 속으로 흩어졌고, 처음 봤던 손바닥만 하던 형태의 윤곽이 이제는 팔뚝처럼 커진 꼴로 속에 불티를 담으며 뭉쳐서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불이 번지고 바람을 타는 광경이 정말 한순간에 주변을 불구덩이로 만들 거란 예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투란은 자신의 생각을 가속하고 감각을 극단적일 정도 빠르게 재촉해야 했다.
훅, 하고 불어내면 금방 흩어질 듯한 검은 재의 흐름이 순식간에 허공에 못 박힌 것처럼 보였고, 세상이 느려진 풍경을 느끼면서 투란의 사고(思考)는 가장 먼저 드라고니아를 향해 물음을 던진다.
‘이거 뭔지 알아?’
―블랙 애시(Black Ash), 생긴 그대로 ‘검은 재’라는 몬스터다. 깊은 화산 지역에서, 지상보다는 용암이 흐르는 깊은 동굴에서나 볼 수 있는 놈이지. 얌전할 때는 그저 쌓여 있는 잿 더미 같지만 바람에 흔들리거나 주변의 움직임을 느끼면 저렇게 형태를 갖추면서 뭉치고…… 뭉치는 과정에서 불꽃을 품다가 바로 터진다. 그 폭발에 휘말리거나, 잔뜩 쌓인 잿 더미 속에만 뛰어들지 않으면 별문제 없어.
‘야……!’
드라고니아가 제시하는 안전한 대책에 대해 투란은 볼멘소리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블랙 애시가 잔뜩 쌓인 구덩이 한복판에 떨궈져 있었고, 쭈물쭈물 몸을 일으킨 투란 아닌가!
불티는 벌써 일어나고 있었고, 투란은 그 한복판에서 대책을 생각하는 판인데 이 무슨 한가한 대책이란 말인가!
―집중된 화력(火力)으로 쇠도 금방 녹아 흐르게 하는 놈이다. 뭉치길 아주 좋아하지. 뭉치자마자 터져서 그렇지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위장을 뒤집어 놓고 싶은 듯, 상황이 얼마나 불리한가에 대해서 절절히 느낄 수 있는 말만 골라 하고 있다!
―잿빛바위 그랑츄라면 속살이 좀 익는 수준에서 버틸 수 있을 거다. 물론 몸통에 방어를 집중해야 할 거야. 팔다리는 다시 키운다고 생각하고. 일단 그랑츄로 버틴 뒤에 고르고니아나 드레이크의 몸으로 변환시켜서 빠져나가는 것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도 나름대로 대책이라고 늘어놓는 말이 더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이 순간 대체 뭐가 문제인가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시차(時差)…….’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블랙 애시가 펑펑 터지면서 쇠도 녹이는 불꽃을 뿜어내는 사이, 과연 투란이 방어에 필요한 몬스터의 형상을 완전히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끌어낸다면 이런 블랙 애시 따위는 전혀 위협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끌어내지 못한다면, 겨우 소울테이커에 의해 완전하게 재생된 사람의 몸이 손상을 입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 해도 결국 충분한 양분을 확보한 다음에 ‘악마의 심장’으로 손상된 부분을 재생성할 수야 있겠지만.
‘몬스터 로드의 약점, 그리고 지금 내가 지닌 가장 큰 약점.’
키린에게서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이 때문에 키린은 투란에게 ‘육왕(六王)의 비전(秘傳)’이라는 궁정무술을 전해준 것이 아니던가. 몬스터 로드라면 누구나 지닐 수밖에 없는 약점,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낼 때까지의 시간…… 아주 잠깐이라지만 그 짧은 동안에도 죽을 수가 있으므로!
게다가 지금 드라고니아의 제안에는 분명히 손상에 대한 말이 있었다.
즉,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어떻게 변화하든 그 사이에 상당히 불꽃에 몸을 다칠 거라고 예상한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분명한 바는 ‘악마의 심장’이 강화되었고 ‘작은 늪’을 품는다 해도, 심장에서 길게 늘어져 나온 잔가지―팔다리― 언저리는 잿빛 바위의 살갗으로 막아낸다 해도 익어버릴 거라는 예상!
눈앞에 흐르는 시커먼 재의 윤곽, 아주 느리게 그 속을 채워가는 불티의 바람결, 느려진 풍경을 보듯이 자신의 생각과 반응을 가속하고 있음에도 또렷하게 번지며 검은 윤곽 속에 채워져 가는 불꽃의 형상이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상황은 드라고니아의 예상을 피할 수가 없다는 증거였다.
그나마 투란으로서는 이렇게 사고의 가속(加速)이 가능한 덕분에 생각할 여유를 얻은 것이다. 이런 가속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미 온몸이 쇠도 녹인다는 불꽃에 불타오르는 것부터 느끼고 있었을 터!
‘살기는 살겠지만.’
뭔가 갑자기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과 함께 뒤틀리는 기분이 솟아났다.
난데없이 하얀 녀석에게 당했던 그 울화가 기분을 꽤나 뒤틀면서 지금 상황과 다시 겹쳐지고 있었다.
블랙 애시, 미리 알고 들어왔다면 정말 투란에게 아무런 위협도 아닌 하찮은 몬스터였을 터!
갑작스럽게 피어난 오기(傲氣)가 투란의 마음을 물들였다.
드라고니아가 꺼내놓은 이 상황의 대책은 분명히 냉정했고, 이치에 닿았다.
어느 정도의 손상을 각오하며, 일단 투란이 가장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그랑츄의 형상을 이용하고…… ‘악마의 심장’과 ‘작은 늪’을 이용해서 몸의 주요한 부분을 지킨다면 그다음에는 고르고니아라든가 드레이크의 형상을 한 박자 늦게 꺼냄으로써 이 검은 잿 더미의 불구덩이에서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하얀 녀석에게 당한 다음에 ‘나는 몸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라고 외치면서 억울하지 않은 척하는 짓이다.
그런 척하지 않았고, 할 마음이 전혀 없기에 투란은 아주 깊이 억울했다!
한데 그 억울한 꼴을 한 번 더 겪으라고?
화가 난 상황은 투란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찾게 했고…….
‘망할 하필이면 이것도 자멸, 자폭하는 놈이냐!’
완전한 소모성 능력의 몬스터, 몬스터 로드에게는 정말 꺼릴 수밖에 없는 타입의 몬스터…… 딱 이 블랙 애시 아닌가! 눈깔꽃도 그 때문에 나중에 계속해서 뿜어낼 수 있는 아르고누스를 얻을 때까지 삼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투란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으로서, 그랑츄의 잿빛바위 살갗을 끌어내는 것보다 더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그래, 삼킬수록 강해진다! 지워버린다 해도, 결국 내 그릇이 커지는 거겠지!’
몬스터 엠블럼이었다.
몸이 반쯤 파묻힌 채로, 겨우 윗몸만 슬쩍 일으켜 앉은 잿 더미 속에서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에 집중했다.
하얀 톱니바퀴가 핏빛을 일렁이며 나선의 막대 끝에 매달린 듯이 뿜어져 나왔다.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은 투란의 가슴에서 거의 1, 2미터 거리까지 톱니바퀴로 이어지는 나선(螺線)의 궤적을 만들어냈다.
흐릿하면서도 영롱한 느낌이 새겨진 빛의 나선, 그 끝에 매달린 하얀 톱니가 핏빛을 강하게 머금으며 시커먼 재를 휘감아가기 시작했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놀랐고, 한껏 의아한 소리를 냈다.
투란은 침묵한 채로, 보다 강하게 엠블럼에 집중하며 손을 내밀어서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여린 빛의 궤적을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핏빛 톱니가 먼 곳에서 돌아와 손바닥 위에서 맴도는 형상이 되었다.
검은 재가 톱니의 흐름이 이끌린 듯이 흘러왔고, 불티가 더 세차게 번지면서 터지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전에 불티를 뭉쳐가던 윤곽 속으로 핏빛의 미세한 톱니로 선이 그물처럼 번져 갔다.
그 광경을 깨달은 듯, 드라고니아의 어이없어하는 말이 바로 투란의 뇌리로 또박또박 흘러든다.
―투란, 블랙 애시의 능력은 그저 뭉쳐서 불꽃으로 터지는 것뿐이야. 한 구덩이의 블랙 애시라 해도, 일단 점화(點火)되면 쇠를 녹이는 고열(高熱)의 불길을 한 번 세게 뿜어내고 그냥 사라진다. 다른 능력은 전혀 없고…… 점화하면 그걸로 끝인 놈이라니까.
‘알아, 딱 그래 보이는구만.’
투란은 간단하게 대답해야 했다.
실타래의 중심인 실패처럼, 몬스터 엠브럼에서 흐릿하게 나온 빛은 축이 된 채로 검은 재를 끌어당겨 휘감고 있었다. 핏빛 톱니에서 잘게 흩어져가는 미세한 끈, 역시 톱니고리의 형상을 한 채로 맞물려 이어진 형상이 검은 바람결 같은 재를 헤집으며 번져가는 와중에 분명한 느낌이 있었다.
검은 재, 블랙 애시는 윤곽으로 이뤄진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소용돌이 같은 회전을 일으켰다. 그 회전이 시작할 때는 아주 잘 맞물린 것이 되는데, 좀 더 많은 검은 재가 거기에 휩쓸리면서 맞물리지 않은 또 다른 소용돌이가 바로 생겨난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소용돌이는 서로 어긋난 채로 회전했고, 그 회전이 충돌하면서 불티가 태어나며…… 불티는 검은 재 사이로 번져가며 더 엉망진창으로 어긋난 회전이 되면서 소용돌이가 확산되었다. 여기저기서 일어난 제멋대로의 소용돌이가 규모를 키우면서 불티가 더 크게 번지고 확산되다가 결국 처음 일어난 탓에 가장 커진 소용돌이조차도 불꽃에 휩쓸리다가 뭉쳐가는 불꽃을 더 지탱하고 가두지 못해 터져버리고 만다.
산산이 흩어진 채인 블랙 애시였기에 핏빛 톱니는 고리를 만들면서 거의 바로 투란의 문장 속 풍경에 그 에센스를 퍼담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미세한 에센스였기에 그저 투명한 막 위에 점이 박히는가 싶을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점점 그 양이 쌓이면서 투란은 블랙 애시의 에센스를 보다 강하게 느꼈고, 이 시커먼 재로 이뤄진 몬스터가 어떤 식으로 자기폭쇄(自己爆碎)를 일으키는가를 관조하며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로 블랙 애시는 딱 드라고니아의 말 그대로인 몬스터였다.
검은 재라는 티끌 형상 속에 이런 힘이 담겼다는, 정상적일 수 없는 상태 때문에 몬스터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특정한 조건이 갖춰진 곳에나 겨우 자리 잡고 나타나면서 이 모양이라면 사람에게는 거의 위협이라 할 수가 없는 놈이다.
누구든 지나가다가 없애려 마음먹는다면 거기다 돌이라든가 마른 가지 하나만 던져주면 알아서 불티를 만들다가 구덩이째로 터져버릴 뿐이니까.
아마도 이 구덩이 역시 투란이 처음 소울테이커의 파편인 채로 떨어졌을 때, 몇 번 터졌을 것이다. 소울테이커의 파편은 그 속에서 몇 차례 더 부서졌을지도 몰랐다. 다만 그 뒤로 얌전하게 서서히 성장을 하면서 블랙 애시에 아무 자극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구덩이도 얌전하게 살랑대는 잿 더미인 채였을 터다.
지금 투란이 그 파편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앉은 순간, 그 크지 않은 움직임에 다시 불티가 피어나며 자멸을 꾀하는 폭발을 일으키려 하는 셈이었다.
‘어긋나지 않으면 불티가 생겨나지 않아. 불티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불꽃에 새로운 재가 합류하지 않는다면…… 터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이런 판단에 따라서 투란은 검은 재를 삼키는 핏빛 톱니에 집중했다.
구덩이를 가득 메우고 살랑거리는 불티를 머금어 가는 검은 재 사이로 핏빛의 끈이 미세하고 선명하게 번져가며 맞물린다.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는 탓에 어긋난 채 맞닥뜨리며 불티를 일으키던 블랙 애시의 소용돌이 틈새로 번개가 스쳐 가듯이 핏빛이 흐르면서 불꽃으로 자폭하는 것을 막아가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터지지 않은 채, 그러나 여전히 붉게 달아오르는 블랙 애시의 에센스는 고스란히 투란의 품속으로, 몬스터 엠블럼 ‘천칭’ 속으로 흘러들었다.
“음하하하핫!”
터뜨리지 않은 채, 구덩이의 검은 재를 모두 해결한 투란은 일부러 크게 웃었다. 두근거리는 ‘악마의 심장’이 더 이상 주변에 검은 재도 없고, 따로 움직임을 느끼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걱정 없이 터뜨릴 수 있는 웃음이었다.
투란이 이렇게 웃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블랙 애시, 터지는 것 말고 하는 일 없이 그저 뭉친 채로 구덩이 속에서 살랑대는 자멸하고 자폭하는 몬스터를 터뜨리지 않고 불 지르지 못하게 삼켜버린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은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렇게 티끌인 채인 몬스터를 세상에서 지운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투란이!
‘에헤헷, 이런 건 키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걸!’
의기양양해하는 생각이 저절로 입가에 히죽대며 매달린 웃음처럼 투란의 뇌리에서 흘러나갈 만하잖은가?
당연히 드라고니아가 기막혀했다.
―대체 뭔 짓이냐?
‘잘 궁리하면, 작염통처럼 쓸 수 있다고!’
억지로 투란은 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