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3)
‘뭐 이래?’
투란은 주변을 보다가 흠칫했다.
숨을 몰아 내쉬며 겨우 저 언덕 너머의 이상한 놈에게서 벗어나…… 상당히 멀리 굴러온 참이라 여겼다. 그런데 바닥에는 시커먼 돌이 거뭇하니 새로 구워졌다는 듯이 자글거리는 꼴이 보였고, 엮여 있어야 할 이끼 낀 흙바닥도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놓인, 앉은 채로 구경하는 것은 다름 아닌 투란 자신이었고!
―마그마 로드라고!
드라고니아의 꽥꽥대는 소리는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조금 전까지 웅웅거리던 울림처럼, 이는 투란의 생각 속으로 번져 갔다.
덕분에 투란은 흐릿하고 또렷하지 않은 자신의 상태를 금방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들었는데, 그 의미가 팍팍 꽂히면서 와닿지 않았다.
분명히 들었음에도 꽤 먼 곳에서 누가 메아리로 말하는 것처럼, 그 의미가 쉽게 마음에 와닿지를 않는다.
맨 처음 ‘악마의 심장’을 품은 뒤로, 이런 상태가 된 적이 있던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 감각이 꺼져갈 때까지 생각만큼은 꽤나 차갑고 명확하게 했던 듯한데…… 착각이었을까?
느릿하게 가슴에 손을 얹어보다가,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형상을 잃은 것을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설혹 가슴에 손을 댔다고 해도 ‘악마의 심장’이 맥동하는 것을 손끝으로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단단한 몸통, 뜨겁게 그 속에서 유동하는 핏줄과 힘줄이 한가지로 엮인 듯한 형상.
느리고 흐릿한 기분 속에서도 투란은 깨닫고 느꼈다.
이 몬스터, 오롯하게 자기 하나만 형성하고 나머지는 다 치우려 든다.
‘아니, 그게 아니야.’
한 번 더 숨을 쉬기 전에 투란은 느끼고 깨달은 바를 다시 검토하며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이 몬스터가 형성되면서 몸 안을 흘러다니기 시작한 것, 핏줄이면서 힘줄이 된 채로 검고 단단한 암석 같은 몸을 달구고 움직이는 것이 너무 위험해서 몬스터 로드인 투란이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이 한 가지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했더라.’
까마득하고 아련한 생각 속에서 투란은 누군가 이런 현상에 대해 말한 것을 들어본 듯했다. 어쩌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랐고, 어쩌면 정말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인지도 모를 듯한 그런 느낌이 기억해내는 것조차 어렵게 했다.
‘싸우는 성질…… 몬스터의 성질이 너무 달라서 싸우는 것들…… 서로 만나면 한쪽이 사라져야 하는 것들…… 불꽃이랑 얼음의 관계 같은…… 아니, 조금 달라. 그게 아니고, 독이었나? 쇠도 녹이고 바위도 녹이는 독극물! 아, 그거였다.’
투란은 점차 자신이 이 흐릿하게 생각하는 법에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서, 옛날에 들었던 독이 피처럼 흐른다는 괴물의 이야기를 겨우 기억해낼 수 있었다.
포세이큰 포이즌(Forsaken Poison).
그냥 놔둔 채면, 독으로 된 늪처럼 한곳에 고여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괴물이었다. 다만 누가 건드리거나 하면 똘똘 뭉치면서 뼈와 살을 만들고 가죽을 뒤집어쓴 채로 날뛴다고 했다. 그렇게 날뛸 때의 몸은 탄탄하고 강인한 짐승처럼 보이고 손톱 발톱도 또렷하고 이빨까지 갖춘 채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몸에 상처가 나거나 하면, 그 상처에서 피가 아닌 독이 흘러내린다는 괴물이었다.
그 독은 주변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지녔지만, 쇠나 바위까지도 녹이는 지독한 용해(溶解) 현상을 일으키는 것.
몬스터 로드 중에서 ‘포세이큰 포이즌’의 독으로 바위 괴물을 상대하려 한 자가 있었다고 했다. 너무 단단하고 튼튼한 바위 괴물이었기 때문에 달라붙어 녹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는데, 달라붙지도 못하고 뛰어가려 하다가 그 자리에 고인 늪처럼 철퍼덕대고 말았다고 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누가 덤비지도 않는데, 일부러 가서 들러붙는 성질 따위는 전혀 없는 괴물의 성질 탓이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워낙 크게 설쳐대는 꼴이 되어서 바위 괴물의 주의를 끌었고, 결국 바위 괴물이 먼저 다가와 준 덕분에 어느 정도 녹일 수는 있었다고 하는데, 바위 괴물을 완전히 없애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도망치는 바위 괴물을 쫓지 못해서 말이다.
그 덕분에 독을 흘리는 괴물, 늪처럼 고이는 독액 덩어리라는 ‘포세이큰 포이즌’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파악할 수는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 짓이 이 독액 덩어리 괴물의 성질을 건드리는 것이고, 어떤 짓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인지도 그 몬스터 로드 덕분에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는, 뭔가 웃긴데 웃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독액을 형성하면, 몸 전체에 바로 독이 번지면서 다른 몬스터의 형상, 구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했지. 전혀, 절대로 어울리지 않으려는 특이성을 지닌 몬스터. 몬스터 로드에게 삼켜진 다음에도 오직 자신만의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것…… 블랙 애시가 그런 거였나?’
―로드라고!
‘어?’
투란은 다시 쩌렁쩌렁 뇌리를 울리면서 뇌수까지 파고들려 하는 듯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뭔가 이미 머릿속은 후끈거리고 뜨겁게 유동하는 것이 채워버린 듯도 하다? 아무래도 블랙 애시가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머리의 구조마저도 완전히 바꿔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몬스터 로드니까, 투란은 문장을 통해서 어떻게든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조금 더 익숙해지면 금방 똑바로 생각을 할 수 있을 터이기는 했다.
‘로드라니?’
먼 곳의 깃발을 보고 다가가듯, 투란은 우선 드라고니아의 소리에 집중했다.
곧 또박또박, 투란의 상태에 맞춰주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에게 전해온다.
―블랙 애시가 아니고 마그마 로드! 네가 지금 형성한 괴물, 마그마 로드라고!
‘뭔 헛소리야?’
퍼뜩 투란은 마그마 로드가 저질러놨다던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뜨겁고 붉은 호수를 떠올리면서 부정(否定)했다. 아무리 머리가 멍한 상태라도 지금 자신의 체격은 그냥 사람, 단단하고 좀 이상한 몸뚱어리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체격이었다. 결코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괴물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잖은가.
그러니 분명히 투란에게 어딘가 헛웃음을 짓게 하는 말이잖은가.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너 자신이 어떻게 형성된 채인가를 느끼란 말이다, 어떤 식으로 몬스터 에센스가 물질구성을 바꾸고 마그마의 유동으로 네 몸을 움직이고 있는가 느끼라고! 정신 차려! 몬스터의 성질에 휩쓸려가면 어쩌자는 거냐!
‘어, 느껴야지. 느끼고 있어야지. 정신 차려야지.’
다른 부분은 옆으로 치워두더라도, 한 가지는 제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너무 멍한 것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상태가 아니란 점을 투란도 이미 느끼는 중이잖은가. 그러니 정말 정신은 똑바로 제자리에 갖다 박아놔야 했다.
크륵, 키릭, 크르륵.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흔히 하는 대로 흥분하거나 맹한 상태일 때 정신 차리려 하다 보니 숨결이 뭔가 괴상하잖은가!
아무래도 몸 상태가 사람으로서 생각하기가 곤란한 몬스터의 성질만 넘쳐나는 꼴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럴 때, 몬스터 로드가 정신을 차리려면…….
“문장, 나의 문장.”
키린이 말해준 바가 세차게 투란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몬스터 엠블럼, 몬스터 로드의 근원이 되어 주는 문장.
그 안에서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을 꺼내려 하면 오러가 피어나게 해주고, 괴물을 삼키며 괴물의 형상을 이뤄주게 하며 괴물의 힘을 사용하게 해주는 고대 마법의 정화(精華).
투란은 문장 속 풍경으로 마음을 옮겨 갔다.
* * *
맑고 깨끗하며, 텅 빈…….
“으앗! 맑아졌어!”
버럭, 투란은 가능한 한 크게 외쳤다.
그리고 다시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얘, 대체 뭐야!”
‘천칭’의 기둥 정상, 톱니마개 뚜껑 아래…… 크고 넓은 원반의 정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불타는 시커먼 바위를 보니 아무에게나 묻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게다가 뭔가 불끈불끈하는 꼴이 계속 커지겠다고 뒤뚱거리는 듯도 보인다.
“마그마 로드.”
침착하고, 뭔가 포기한 듯도 한 담담한 대답이 별빛 무리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투란도 그 한마디를 멍하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일단 믿기 힘들어하는 대꾸부터 나온다.
“에? 마그마 로드라고? 얘가?”
별빛 무리가 한숨을 쉬듯이 반짝거리는 꼴에 투란은 다시 불길을 찰랑거리며 휘감고 있는 시커먼 바위를 자세히 살펴야 했다.
분명히 블랙 애시의 에센스였을 터.
‘어? 아? 우와!’
티끌보다 작고 섬세한 정수(精髓)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톱니바퀴의 나선(螺線)을 길게 끌어내며 맞물린 채로 훨씬 크고 정교한 무늬를 자아내고 있었다.
투란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교(精巧)한 무늬였고, 한 조각 한마디마다 살아 있는 채로 움직이는 것이 작으면서도 강렬하게 유동(流動)하는 움직이며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지경이었다.
‘아줌마가 실로 옷 짓는 것보다 더 신기한데!’
가장 비슷하게 신기하다 여겼던 것은 가늘고 긴 실을 끊임없이 맞물리고 엮어서 덩치 큰 사람에게 입힐 정도의 옷을 만들어내던 이웃집 아줌마의 바느질 솜씨였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문장 속 풍경에서 바라보는, 블랙 애시의 티끌이 모여서 맞물린 채로 이뤄내는 무늬는 그런 기억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동을 불러내 주고 있었다.
나사(螺絲)처럼 보이는 수많은 소용돌이, 아주 작고 섬세한 형태가 맞물리면서 큰 바위가 부풀어 올랐고, 그 속에서 붉게 마찰하며 달아오르는 듯한 광경이 점차 흐르면서 검은 잔해를 쌓고 두드리는 형태가 마치 끝없이 원석(原石)을 삼키고 걸러낸 쇳물을 뜨겁게 뿜어내는 대장간의 화로(火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형상 속에 머물고 있는 다른 것은 없었다.
그렇게만 머물고 있다면, 세상 어떤 것도 필요 없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그마 로드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다시 한 번 강조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빛 무리가 찰랑이면서 투란에게 제대로 알아들었냐고 묻는 듯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투란은 차분하고 침착한 말투로 되물었다.
드라고니아는 쓴웃음을 흘리는 듯한 투로 말한다.
“너도 이미 느끼고 파악하고 있는 일이잖나?”
고고하게 저 아래편, 심연에 뿌리를 내린 ‘천칭’이 느릿하지만 분명하게 회전하는 감각이 투란을 찾아왔다. 마치 드라고니아가 한 말이 완벽하게 맞는다는 듯…….
하지만 투란은 가만히 좀 더 고요한 말투로 묻는다.
“내가 아는 거는…… 내가 느낀 건 블랙 애시의 에센스가 몽땅 제멋대로라는 거고, 그 때문에 맞물리지 못한 채 불티를 뿜어내며 타오르다 터진다는 거랑…… 그걸 내가 맞물려 돌게 했다는 거…… 그랬더니 이게 나왔다는 것뿐이라고. 몬스터 에센스, 괴물의 정수라는 게 그럴 수 있는 거야? 한 가지 품종은…….”
―한 가지 정수를 지녔을 뿐이고, 그 정수로부터 발현되어 나오는 능력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맞다, 투란. 대부분 그렇고…… 솔직히 말해서 거의 전부 그렇다. 그게 내가 아는 바였고, 이제껏 예외가 없는 일이었지. 그나마 한 마리 괴물이라 해도, 그 부분마다 에센스의 존재 양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성질도 완전히 다른 때도 있다는 정도가 이 상황과 어울리는 지식이겠지. 하지만 한 종류의 괴물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렇게 새롭게, 고유 패턴을 지닌 전혀 다른 몬스터가 되는 일은 내게도 낯설다. 블랙 애시가 마그마 로드의 조그만 파편이고, 마그마 로드가 되지 못한 몬스터라는 걸 이제 겨우 알아낸 셈이지.
길게 이어지는 드라고니아의 넋두리 같은 소리를 마음에 담으며, 투란은 조금 더 ‘마그마 로드’에게 집중해 들어갔다. 수 킬로미터랑 전혀 관계없이 그저 자신의 작은 몸에 형성된 이놈, 그런데 정작 그 성질은 뭔가 꼼짝도 않고 그저 자신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작고 작은 나사의 맞물린 모습이라니!
새로운 의문이 바로 투란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이 녀석,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지? 어떻게 뭔가 느끼는…… 어라?’
* * *
키릭, 스으읏.
팔다리가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유동하는 힘을 통해 투란은 이 팔다리가 지금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동하는 힘, 그 감각을 일으키는 것은 핏줄과 힘줄을 대신하며 심지어 내장과 신경, 골격 안쪽까지 채워진 용암이었다.
‘마그마.’
용암을 일컫는 다른 말을 읊으면서 투란은 일어섰다.
주변에는 투란의 몸에서 방사된 고열의 자취가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략 반경 3, 4미터는 조금 전까지 투란이 격하게 뿜어내던 마그마의 열기에 의해 그을린 듯하잖은가.
원래 검었던 돌바닥의 빛깔은 뭔가 윤기가 흐르는 듯했고 그 사이를 채우듯이 엮여 있던 푸른 이끼와 누런 흙은 거뭇하게 잔해를 남긴 채 뭔가 말라가다 결국 타버린 흔적처럼 보였다.
‘마그마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