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84)
투란은 언덕을 바라봤다.
그 너머에는 마그마 로드, 수 킬로미터의 호수를 만들어내며 검은 송곳바위를 가끔 뿜어내는 거대한 놈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다. 그놈과 비교하자면, 투란은 그야말로 새 발에 맺힌 작은 핏방울만도 못하다 할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 마그마 로드의 정수, 본성을 지닌 형상은 지금 투란이 고스란히 드러낸 채라니!
‘그렇군, 내가 보고 듣고 움직인다는 상황이 신기하겠네.’
새삼 투란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마그마 로드의 힘을 무심결에 휘둘러 댔을 때, 저 거대한 녀석이 어째서 그렇게 급하게 관심을 드러냈던가?
마그마 로드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한곳에 자리 잡고 자신을 끝없이 자아내려 할 뿐이었다.
대장간의 화로가 원석을 삼키듯이 주변을 야금야금 삼키면서, 쇳물보다 더 뜨겁게 녹아흐르는 마그마를 드러내며 자신을 자아낸다.
거기에 갑자기 투란이 발발거리며 나타났다. 자신을 자아내고 마그마의 영역을 조금씩 느릿하게 넓혀가는 모습과 전혀 다른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지닌 채로!
아마 오랜 세월 속에서 그저 주변을 관조하다가 정말 특별하고 이상한 자극에만 반응하던 마그마 로드에게 투란이 보인 모습은 아주 색다르고 특별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어린 애가 옆에 아이가 노는 모습에 흥미를 지닌 채로, 자신도 끼워달라는 듯이 함께 놀자는 듯이 공명하려 한 것일 테고.
‘조용하네.’
그 반응을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자 마그마 로드는 다시 본연의 고요한 자신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적어도 저 언덕을 넘어 자신이 이뤄놓은 경계를 벗어날 궁리는 전혀 없는 듯하잖은가. 비록 저편에서 꽤나 높이 치솟는 마그마의 붉은 기둥, 그 속을 채우듯이 잠시 뒤에 드러나는 시커먼 송곳 바위가 보이기는 했지만.
잠시 선 채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가락을 움직이면서, 투란은 자신이 저 언덕 너머 녀석이랑 전혀 공감하지도, 공명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강렬한 파동은 이 작은 몸으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니까.
거기 휩쓸리면 그야말로 몬스터의 조각인 채로 몬스터에게 끼워져버리는 몬스터 로드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는 않구만.’
투란은 돌아섰고, 가능한 한 저 언덕 너머의 큰 놈이랑은 엮이지 않는 쪽으로 걸어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아주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콰앙!
발바닥에서 다시 세찬 폭발이 일어나며 거의 이십여 미터를 한 방에 튀어나가잖는가!
“케에에!”
―대체 뭘 하는 게냐?
겨우 안정된 다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확실히 어이없게 보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투란으로서는 조금 뾰로통해질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게 움직이도록 노력해야지! 갑자기 또 아무 데서나 뻥뻥 터뜨리면 곤란하다고! 아, 힘들어.’
검은 바위, 용암으로 채워진 몸을 움직이며 하는 대답은 잠시 드라고니아를 침묵하게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물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해체하지 않을 생각이냐?
‘응?’
―계속 그 꼴로 다닐 참이냐고.
‘어?’
투란은 새삼 자신의 몸을 둘러봤다.
검은 바윗돌에 불끈불끈하는 붉은 줄기가 감긴 듯한 모습,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었다. 그 말고는 딱히 뭔가 이상한 것을 걸치거나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벌거숭이!
‘에, 조금 더 연습하고. 살짝 힘만 줘도 쾅쾅대는 꼴은 피해야지.’
슬그머니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투란은 다시 느릿하게 걷고 팔을 접었다 폈다 하며 움직였다. 힘을 조금만 강하게 주면, 마그마 로드의 몸은 즉각 맞물린 곳에서 뭔가 어긋나버리는 것처럼 블랙 애시의 성질을 드러내며 거센 폭발음을 일으켰다. 그러고도 몸이 깨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단지 그 폭발하는 힘에 의해 너무 사납고 거칠게 움직이는 꼴이 될 뿐이었다.
―왜…… 마그마 로드 한 가지만 계속 써먹으려고?
‘응?’
조금 색다른 물음은 잠깐 투란을 멈칫하게 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투란은 얼마 동안 다른 몬스터를 잊은 것처럼 마그마 로드에게만 몰입해 있었다. 그게 대체 얼마나 되었는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보니 해가 지는 건지 뜨는 건지 알 수 없는 흐릿하고 불그스름한 시간이 아닌가!
‘꽤 오래 이러고 있었나?’
분명히 저 너머에 마그마 로드가 자리 잡은 언덕에서 좀 떨어진 채이기는 했지만, 그리 멀리 오지도 않았고 그저 움직이면서 익숙해지느라 바빴다. 먹고 마시는 일 따위는 싹 잊은 채, 그저 주변으로 자신을 확장하고 번져 나가기만 하면 되는 듯한 마그마 로드의 성질에 푹 빠져 있었던 셈이다.
―거의 하룻밤을 넘겼지.
그래도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시간을 제대로 재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 그러면 새벽인가?’
투란은 겨우 자신이 하루의 어느 시간에 도달했는가를 알아차린 듯이 대꾸했다.
이제는 처음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머리까지 꽉 채운 때처럼 멍하지도 않았고, 주변을 느끼는 느릿한 몸가짐도 없는 상태까지 되었다. 익숙해지면서 마그마 로드의 형상 속에 투란이 본래 지닌 사람의 형상이 좀 더 깊이 새겨들어간 덕분이었다.
카악, 카칵.
옆구리를 긁자 바위와 바위가 거칠게 마찰하는 소리가 울렸다.
화르르하며 불꽃이 가볍게 튀기도 했지만, 곧 불끈불끈하는 붉은 줄기가 불꽃을 가볍게 삼킬 뿐이었다.
‘뭐, 이 정도면 아무 데나 불 지르면서 쾅쾅거리지는 않겠지?’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평가를 물었다.
―그렇겠지. 한데 마그마 로드를 꺼낼 때는 다른 몬스터의 힘은 쓰지 않을 참이냐?
‘응? 섞일 수 있을까?’
투란은 바로 되물었다.
사실 마그마 로드만을 꺼낸 이 몰골은 다른 형상을 거의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격렬한 마그마의 흐름이 몸을 채운 탓이었다. 그래서 일단 마그마 로드에게 익숙해져야 했고, 그 힘을 조절하는 법을 연습해야 했다.
―글쎄…….
드라고니아는 자신이 꺼낸 말이지만, 투란의 물음은 조금 다르다는 듯이 난감해하는 소리를 냈다. 아마도 마그마 로드만 갖고 노는 듯한 투란의 모습에 이제 다른 것을 쓰지 않느냐고 물은 것에 투란이 대뜸 마그마 로드와 다른 것을 섞는 것에 대해 되물을 줄 몰랐다는 듯했다.
‘차차 알게 되겠지.’
투란은 주먹을 쥔 두 손을 맞댔다.
주먹과 주먹이 가볍게 맞닿는 순간, 불길이 검은 바위로 이뤄진 투란의 형상을 휘감았고 투명하고 여린 빛의 흐름이 불꽃 사이로 번져 갔다.
주먹의 돌출부에서부터, 서서히 사람의 살갗이 번져 나왔고 발끝의 형상도 이에 호응하며 검은 바위, 붉은 줄기로 이뤄졌던 투란의 모습은 다시 온전한 사람의 형상으로 덮여 갔다.
“후우앗! 으아앗!”
가슴에 선명하게 작고 검은 무늬의 몬스터 엠블럼을 드러내면서, 투란은 바로 꽥꽥거리는 다급한 외침을 터뜨렸다.
―뭐냐? 왜?
드라고니아가 그 외침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이 급히 묻물었다.
‘버, 벌거숭이야!’
―뭐? 야, 이!
잠시 뒤, 투란은 멍하니 파릇하고 푸릇한 이끼 위에 앉아 세상을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흐르는 바람결, 멀리 보이는 언덕과 지평선…… 어쩐지 아주 멀리 떨어진 듯한 삐죽한 산의 경계와 그 주변에 휑하니 뚫린 땅과 이어져 가는 숲…….
마그마 로드의 감각에서 벗어나 보니, 이 모든 것이 아주 새롭게 투란을 들쑤셔오는 듯했고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그래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을 품은 채로, ‘패러블랙 잉크’를 몸 안에 흐르게 하며 자신의 눈을 똑바로 뜬 채, 즐기고 있었다.
* * *
“이 정도면 그럭저럭 정리된 거겠지?”
‘천칭’의 정상, 톱니가 일어서서 난간처럼 둘러싼 원반의 중심에는 모닥불을 새겨 넣은 듯한 무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붉은 불꽃의 줄기라 맴도는 시커먼 바위의 파편처럼, 꽉 박혀 있는 무늬는 ‘천칭’의 축을 관통하며 저 아래로 길게 이어져 내려가는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살짝 드러낸 셈이었다.
크게 한 덩어리로 뭉친 바위처럼 버티던 모습이 축을 따라 ‘천칭’의 톱니들과 엮인 채로 길고 가는 기둥 속에 숨겨진 꼴이었다.
“원래 삼켜서 없앨 작정이었잖아?”
분명히 놀리는 말투인 드라고니아의 물음이었다.
투란은 히죽 웃는 소리로 대답한다.
“이런 왕끗발 횡재를 놓칠 수는 없지! 기회가 왔을 때, 콱 잡아야지! 독사처럼 콱 물어야 왕끗발이 도망치지 못한다고.”
이 소리에 드라고니아가 조금 진지하고 신중하게 묻는다.
“실제로 써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응? 왜?”
의아한 듯이 투란이 별빛 무리를 살폈다.
별빛 무리가 살짝 일렁이면서 조금 더 깊이 파는 물음이 나온다.
“잘 다룬다고 해도, 결국 마그마를 뿜어내고 주변을 초열(焦熱)로 휩쓸잖나. 인간이란, 그 근처에 서기만 해도 타버릴걸. 그런 녀석을 갖고 세상에 나갈 거냐고. 과연 인간의 도시에서 쓸 수 있겠냐는 말이다.”
“어, 에…… 무, 무리겠지?”
머뭇거리다가 결국 투란은 크고 긴 한숨을 내쉬듯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사람의 크기, 투란의 체격에 맞춰진 꼴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에 토해내는 숨결만으로 주변에 독을 뿜어내는 꼴이고, 그 열기는 정말 사람 사는 곳이라면 아주 쉽게 불길을 일으킬 것이다. 옷이든, 가죽이든 정말 한순간에 불붙여 태워버릴 테고…… 쇳덩이도 녹일 테니까!
그러나, 곧 투란은 아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면서 쾌활한 쪽으로 생각을 옮겼다.
“그래도, 여기서는 엄청 좋잖아! 뭔지 모를 녀석이 날 건드리려 한다면, 마그마 로드의 튼튼하고 단단한 몸으로 금방 받아칠 수 있고 말이야.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먼저 위험한 녀석이 될 수 있잖아?”
“그래, 여기서는 그렇지.”
드라고니아는 아주 순순히 대답했다.
이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이라면 확실히 투란의 말대로라는 듯이, 하지만 말을 거기서 끝내지 않고 살짝 덧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투란, 여기서도 다른 놈들에게 너무 보여줄 생각은 하지 마라. 몬스터가 지닌 힘이란…… 애초에 섭리에서 벗어난 이단의 능력. 마그마 로드라고 해서 완전히 넋 놓고 방심하다가는 죽는다.”
“알아!”
* * *
“우잇, 겁주고 그래!”
투란은 고개를 흔들면서 일어섰다.
멍하니 앉아서 즐기는 것도 멈춰야 할 때였다.
아침 햇살이 또렷해지고 바람이 세찬 지금, 사방에서 뛰노는 이상한 녀석들이랑, 멀리서 들려오는 포악한 소리를 따라가야 할 때였다.
‘저거 분명히 카프리곤 녀석 소리지?’
코웃음을 치는 듯한, 푸릇거리면서 크륵대는 기묘한 울림은 투란에게 아주 선명하게 그 모습을 되새기게 했다.
―그 검은 카프리곤을 계속 쫓으려고?
드라고니아가 조금 의아한 듯 묻고 있었다.
마그마 로드를 얻은 부분은 확실히 횡재한 듯했지만, 그 전에 뒈질 뻔한 일은 홀랑 잊었냐고 슬그머니 따지는 낌새도 있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좀 세게 대답을 한다.
‘응. 일단…… 카프리곤을 쫓다 보면 다시 그 하얀 녀석을 만날지도 모르잖아. 이번에는 내가 그 녀석을 박살낼 거야! 갚아줘야지!’
으르렁거리는 듯한 포효처럼, 투란의 마음이 각오를 울려냈다.
―또 뭘 해보지도 못하고 당할 수도 있지.
슬쩍 놀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경고하고 있었다.
정말 당하라는 말은 아니었지만, 투란을 충분히 경계하게 하고 삐치게 하는 데는 아주 맞는 소리였다.
‘안 당해!’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여전히 놀리는 말투였다.
입술을 삐죽대면서, 투란은 꽤 먼 곳에서 툭탁거리는 소리를 내는 카프리곤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뿔수리의 눈을 통해 카프리곤이 지금 뭘 하고 있는가 볼 수 있었다.
붉은 그랑츄 무리가 카프리곤을 포위하듯 감싼 채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낮게 퍼뜨리며 달려들고, 카프리곤은 그 중심에서 쌓인 고기 더미를 냠냠거리며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무래도 저 붉은 그랑츄 말이야…….’
―그래, 저것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자신들이 파이로-칸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열쇠로서 저 카프리곤을 이용하려 하고 있어.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살짝 떠올린 생각을 선명하게 정리해줬다.
‘죽는 놈이 더 많은데, 정말 상관하지 않는군.’
투란에게는 그 부분이 전혀 납득하지 못한 일이었다.
너무나 무모했고, 당장 벌어지는 참혹한 결과물이란…….